남녀의 신체가 선천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아주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남자에게는 음경과 고환이 있으며 여자에게는 질과 자궁이 있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유방이 발달하며 엉덩이가 크다. 반면 남자는 어깨가 넓으며 근육질이다. 평균적으로 남자의 근력이 여자보다 훨씬 세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남녀의 정신 역시 선천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선천적인 남녀 차이에 대한 온갖 가설들이 제시되었다. 몇 가지만 나열하자면, 선천적으로 여자가 남자에 비해 자식을 더 사랑하며, 아기의 표정을 더 잘 알아보며, 지위에 덜 집착하며, 배우자의 육체적 바람기(자신이 아닌 사람과 성교하는 것)에 덜 민감하며, 위험한 것을 더 피하며, 육탄전을 덜 선호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대다수 여성주의자들은 이런 차이가 가부장제 문화나 자본주의 체제 때문에 후천적으로 생긴다고 주장한다.

 

여자는 학교에 갈 수 없다, 여자는 운전을 할 수 없다, 여자는 의사가 될 수 없다와 같은 노골적이고 공식적인 여성 차별이 사라진 선진 산업국에서도 여전히 여자들의 평균 수입은 남자들의 평균 수입의 70% 정도 밖에 안 된다. 대다수 여성주의자들은 이것이 여성 차별 때문에 생긴다고 주장한다. 즉 여자를 차별하는 사회에서 여자가 자랐기 때문이거나 자본가나 관리자가 여자를 은근히 차별하기 때문에 그런 소득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반면 진화 심리학자들은 남녀의 수입 차이 중 적어도 일부는 남녀의 선천적 차이 때문에 생긴다고 주장한다. 여자가 자식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직장보다는 자식에 더 신경을 쓰고, 지위에 덜 집착하기 때문에 남자처럼 치열하게 경쟁에 나서지 않고, 위험을 더 피하기 때문에 위험하지만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직종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남자보다 적게 번다는 식의 설명이다. 고위 공직자 중에 여자가 적은 이유도 비슷하게 설명한다.

 

만약 진화 심리학자들의 설명이 옳다면 고위 공직자 비율이나 소득 차이는 미래에도 계속 존재할지도 모른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남녀의 선천적 차이 때문에 여자는 영원히 열등한 지위에 머무를지도 모른다. 바꿔 말하면 여자의 열등한 지위의 원인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 있다. 앞으로 인간이 오랜 세월 진화하거나 유전 공학을 획기적으로 인간에 적용하지 않는 이상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자의 열등한 지위는 생물학적 운명이다.

 

아주 뛰어난 작곡가나 과학자 대부분이 남자인 이유도 남녀의 선천적 능력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진화 심리학자들도 있다. 만약 그런 주장이 옳다면 이런 방면에서도 여자의 열등한 지위는 생물학적 운명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진화 심리학의 가설들은 평등을 향한 여성주의자들의 꿈에 초를 치고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것이 쓰디쓴 진실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여성주의자들은 진화 심리학이 과학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시녀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진화 심리학이 과학인지 아니면 사이비 과학에 불과한지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는 그 이데올로기적 효과(예컨대 여성주의자들의 꿈을 망치는지 여부)가 아니라 논리와 실증이라는 과학의 기준을 따져야 한다. 진화 심리학이 평등을 향한 여성주의자들의 꿈을 아무리 망친다고 해도 만약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고 실증적으로 잘 검증되었다면 과학이다.

 

그건 그렇고, 진화 심리학이 정말로 평등의 꿈을 망치는 것일까? 이것은 어떤 평등이냐에 달려 있다. 만약 결과의 평등 또는 결과의 균등이 꿈이라면 진화 심리학이 평등의 꿈을 망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만약 기회의 평등이 꿈이라면 진화 심리학이 평등의 꿈을 망친다고 보기 힘들다.

 

나는 결과의 평등을 꿈꾸지 않는다. 나는 공대에 여학생의 비율이 50% 정도가 되는 사회, 국회의원 중 절반 정도가 여자인 사회, 여자의 소득이 남자와 거의 비슷해지는 사회, 노벨 과학상의 절반 정도를 여자가 받는 사회를 꿈꾸지 않는다. 공대에 갈 기회, 국회의원이 될 기회, 고소득을 올릴 기회, 과학자가 될 기회를 여자에게도 똑 같이 제공한다면 나는 그 사회에서 여성 차별이 없어졌다고 여길 것이다.

 

 

 

공산주의 사상이 어느 정도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진화 심리학은 이런 주장의 최신판이다. 진화 심리학에서 이기적 유전자가 이기적 개인을 만들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명한 진화 심리학자들인 에드워드 윌슨(여기서 사회생물학과 진화 심리학의 구분이 중요하지는 않다), 스티븐 핑커, 존 투비 & 리더 코스미디스가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들은 공산주의가 인간 본성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거나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면에서 진화 심리학자들이 자본주의 옹호론을 펴고 있다는 비판자들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니다.

 

저명한 진화 심리학자들 중에 공산주의자는 지극히 드문 것 같다(아예 한 명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나도 여성주의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진화 심리학이 공산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생각은 진화 심리학 비판자들뿐만이 아니라 진화 심리학자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진화 심리학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공산주의자인데 학자들 중에 나와 의견이 비슷한 사람을 아직 한 명도 찾지 못했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공산주의가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할 때 보통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쓰는 사회를 염두에 두는 것 같다. 다른 말로 하면 일할 놈은 일하고 놀고 싶은 놈은 놀지만 아무나 원하는 대로 또는 필요한 대로 소비하는 사회. 즉 노동과 소비 사이에 어떤 상관 관계도 없는 사회다. 지독하게 게을러서 아무 일도 안 하던 사람도 아주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똑 같이 소비하겠다고 덤비는 사회인 것이다. 기계가 인간만큼 똑똑해져서 생산을 몽땅 책임진다면 모를까 나도 이런 사회는 유지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공산주의만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의 대가를 어느 정도 챙길 수 있는 공산주의 사회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다.

 

 

 

진화 심리학이 이기적 유전자를 언급하면서 인간의 기성만 부각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기적 유전자』의 핵심 테마는 인간의 이타성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친족 선택, 상호적 이타성, 핸디캡 원리, 집단 선택 등을 언급하면서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은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산주의 사상에는 가난한 사람을 향한 동정심과 부자들의 착취에 대한 도덕적 분노가 깔려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동정심이나 도덕성 중 적어도 상당 부분은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다.

 

 

 

이기성이 공산주의 사회에 방해만 되는 것도 아니다. 만약 노동자들이 지극히 이타적이어서 아무리 착취를 당해도 실실 웃고만 있다면 어떻게 공산주의 혁명이 가능하겠는가? 부자에 대한 시기심, 더 많이 벌고 싶어하는 노동자의 이기심은 혁명의 추동력이 될 수 있다.

 

다수의 이기심은 공산주의 사회가 소수 독재자들을 위한 또 다른 착취 체제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것은 다수의 이기심(예컨대 나도 한 표를 행사하고 싶다”)이 자유민주주의가 소수의 독재가 되지 않도록 하는 힘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기심은 내가 독재자(또는 자본가)가 되어서 몽땅 차지하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저 독재자(또는 자본가들)를 끌어내려야 내 몫이 커진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직 심리학자들(진화 심리학을 옹호하든 싫어하든)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쓰는 사회보다는 소박한 공산주의 사회가 불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의 심리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이덕하

2011-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