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이 더 좋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식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런 경향을 보인다. 인공 식품을 만들 때 매우 해로운 화학 물질을 첨가해서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에서 나온 것들도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자연에는 치명적인 독버섯이나 기생충도 있다.

 

독은 괜히 진화한 것이 아니다독은 자신을 죽이려는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때도 있고다른 동물을 죽여서 먹기 위한 것일 때도 있다독의 진화는 자연계에 충돌과 착취가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기생은 착취의 한 방식이다구약 성서에서는 신이 인간을 위해 자연을 만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잘 익은 과일처럼 인간에게 유익한 것도 존재하지만 독사처럼 인간에게 해로운 것도 존재한다동양 철학에서는 자연의 조화에 대해 떠들지만 자연에는 온갖 종류 끔찍함이 있다.

 

 

 

어떤 이들은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엄청나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 중 무엇을 따라야 한단 말인가성교를 하면서 수컷의 머리를 뜯어 먹는 암컷 사마귀를 본받아서 성교를 할 때에는 살인도 해야 한단 말인가새로 차지한 무리의 새끼들을 몽땅 죽이는 수컷 사자를 본받아서 남자들은 애가 있는 여자와 결혼을 할 때에는 애를 죽여야 한단 말인가자연에서는 중병에 걸리면 곧 죽으니까 인간 사회에서도 병원을 몽땅 없애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개미처럼 한 공동체에서 한 명 또는 소수의 여자만 애를 낳고 나머지 여자들은 그 애를 돌보는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기생 생물들을 본 받아서 남들에게 기생하면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자연에는 조화와 공존도 있지만 충돌과 착취도 있다자연에는 미적 아름다움과 도덕적 아름다움도 있지만 미적 추함과 도덕적 추함도 있다자연의 섭리 중 하나인 자연 선택에서는 잘 번식하는 자가 성공한다때로는 자기 희생,협동보살핌이 번식에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속임수와 착취가 번식에 도움이 된다개미 군락의 일개미처럼 극단적인 자기 희생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 반면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처럼 잔인한 속임수와 착취의 사례도 있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려는 사람은 성경 말씀을 따르려는 사람만큼이나 혼란에 빠질 것이다성경에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도 있지만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서 남자들을 몽땅 죽이고 여자들을 전리품으로 차지해도 된다는 말도 있다.이웃을 사랑하라는 좋은 말만 인용하면서 자신이 성경을 따른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실제로 성경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그 사람은 자신 나름의 가치관을 따르고 있을 뿐이며 거기에 부합하는 성경 구절만 인용하는 것일 뿐이다.

 

어떤 사람이 자연의 섭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개미처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어미 침팬지처럼 자식을 정성스럽게 돌보고보노보처럼 웬만하면 싸우지 않고벌처럼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하자그 사람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다양한 자연에서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것들만 고르고 있는 것이다만약 정말로 자연의 섭리를 따르려고 결심했다면 엄청난 고뇌에 빠질 것이다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연에는 성교 중에 짝을 잡아먹는 사마귀와 새끼들을 죽이는 사자도 있기 때문이다.

 

공학자들은 자연에서 배울 것이 많이 있다인간의 눈이나 거미줄처럼 자연에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들이 있다하지만 도덕적인 측면에서는 자연은 결코 모범이 될 수 없다.

 

 

 

내가 알기로는 강간의 적응 가설을 보고 자연의 섭리인 강간이 정당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어쨌든 그런 사람이 있다고 치자그런 사람에게 강간은 자연의 섭리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반박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강간의 적응 가설이 옳다는 것이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된다면 그 때부터는 강간이 정당하다고 이야기할 셈인가그런 사람에게는 나는 자연의 섭리 따위는 무시하고 산다라고 대답해 주면 된다.

 

동물 세계가 약육강식의 세계이니까 이런 자연의 섭리를 본받아서 인간 사회도 복지제도를 없애고 강자독식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자연의 섭리를 언급하면서 강간을 정당화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는 반면 약육강식의 섭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조금은 있는 것 같다그런 사람들에게는 당신 자식들이 중병에 걸렸을 때에는 병원에 보내지 말고 자연의 섭리대로 죽게 내버려둘 것인가?라고 반문하면 된다.

 

 

 

어떤 이들은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것도 웃기는 얘기다자연에 사랑도 있지만 투쟁과 착취도 있는 것처럼 인간 본성에도 온갖 측면들이 있다사랑동정심합리성처럼 사람들이 대체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지만자기 기만이기심과 같이 사람들이 대체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다어떤 진화 심리학자들은 강간 기제나 살인 기제가 진화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강간의 적응 가설에는 남자가 강간 행동을 조절하도록 하는 기제가 진화했다도 있지만여자가 강간을 당하면 고통을 느끼도록 하는 기제가 진화했다도 있으며인간이 강간이 악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기제가 진화했다까지 있다이 세 가지가 모두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해 보자어떤 섭리를 따라야 한단 말인가강간 행동 조절 기제가 있으니까 강간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해야 하나강간에 대한 도덕적 평가 기제가 있으니까 강간을 비난해야 하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이것을 보통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고 부른다자연주의적 오류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룰 생각이다.

 

「진화 심리학 첫걸음마 --- 010. 자연주의적 오류」

 

 

 

덕하

2011-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