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심리학자들이 범적응론(panadaptationism)이라는 오류를 범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범적응론이란 모든 형질이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인 적응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순수한 유전자 결정론이 정말 바보 같은 믿음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순수한 범적응론 또는 극단적 범적응론은 말도 안 된다.

 

순수한 범적응론에 따르면 뼈의 색이 흰 것도 적응이다즉 과거에 뼈가 흰색이었던 조상이 그렇지 않았던 조상에 비해 바로 그 흰색 덕분에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뼈가 흰색이 되도록 진화했다순수한 범적응론에 따르면 맹점도 적응이다즉 맹점 자체가 번식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맹점이 진화했다순수한 범적응론에 따르면 피아노 연주 능력도 적응이다즉 과거에 피아노를 더 잘 연주했던 조상이 피아노 연주 능력 덕분에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피아노 연주 능력이 진화했다과거에 피아노가 없었는데도 말이다순수한 범적응론에 따르면 콘돔 사용 행동도 적응이다즉 과거에 콘돔을 사용했던 조상이 콘돔 덕분에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진화했다과거에 콘돔이 없었을 뿐 아니라 콘돔을 일관되게 사용하면 번식에 엄청난 지장을 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어떤 진화 심리학자가 이런 바보 같은 것들을 믿는단 말인가?

 

 

 

진화 심리학자들은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인 적응(adaptation)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선택의 간접적 산물인 부산물(by-product)도 있다는 점을 늘 인정해왔다그런데도 진화 심리학자들이 범적응론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일까그런 비판자들이 바보도 사기꾼도 아니라고 가정해 보자그들이 범적응론이라는 용어를 과장된 적응론 또는 범적응론적 편향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즉 모든 것을 적응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적응이라고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화 심리학이 범적응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학술 토론에서 시적 허용을 허용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정말로 진화 심리학자들이 모든 형질을 적응이라고 주장할 만큼 바보라고 생각하는지,아니면 범적응론적 편향을 범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진화 심리학이 범적응론이라고 비판하는 동시에 진화 심리학 가설이 그럴 듯한 이야기에 불과하며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이들에 따르면 어떤 형질이 적응이라는 진화 심리학 가설은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참인지 거짓인지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다그런데 그들에 따르면 진화 심리학은 범적응론이다그들이 바보나 사기꾼이 아니라고 가정해 보자즉 범적응론을 범적응론적 편향이라는 뜻으로 해석해 보자그렇다면 진화 심리학자들이 부산물을 적응으로 오해하는 일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하지만 비판자들은 그것들이 적응이 아니라 부산물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그들에 따르면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응인지 부산물인지 알 수 없는데도 말이다신의 계시라도 받았나?

 

 

 

나는 진화 심리학 가설이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가능한 만큼 확실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검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여전히 많은 진화 심리학 가설들에 대한 검증은 낮은 수준의 검증 즉 별로 확실하지 않은 검증에 머물러 있다어떤 형질이 적응이라는 진화 심리학 가설을 의심할 여지가 거의 없이 확실히 검증한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다하지만 진화 심리학 비판자들이 그런 가설을 의심할 여지가 거의 없이 확실히 반증한 사례도 거의 없어 보인다.따라서 비판자들은 범적응론적 편향이라는 온건한 의미의 범적응론이라는 비판도 진화 심리학자들에게 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수 많은 경우에 적응 가설이 아니라 부산물 가설을 선호한다따라서 진화 심리학자들이 순수한 의미의 범적응론자라는 비판은 터무니 없다또한 비판자들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제시한 적응 가설을 제대로 반증한 사례가 거의 없다따라서 진화 심리학자들이 범적응론적 편향을 보인다고 비판할 만한 근거도 없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자신의 기존 지식과 직관을 바탕으로 적응 가설들을 제시한다비판자들은 대체로 아직 그런 적응 가설들을 확실히 반증하지 못했다따라서 범적응론적 편향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증거가 아니라 자신의 기존 지식과 직관을 바탕으로 적응 가설이 가망성이 없다고 보는 것일 뿐이다내가 보기에는 대체로 비판자들은 진화 심리학자들보다 진화 생물학에 대해 잘 모른다누구의 직관이 더 가망성이 있을까?

 

 

 

진화 심리학 첫걸음마 --- 003. 대량 모듈성 테제가 논점인가」에서 나는 대량 모듈성 테제가 재채기하품눈 깜빡이기와 같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것들과 관련될 때에는 순순히 인정하던 사람들이 근친상간질투,친족애강간외모 선호도덕 판단우정사랑(연애 감정), 지위복수공격성정의감과 같이 민감한 주제와 관련될 때에는 반발한다고 이야기했다범적응론이라는 비판의 경우에도 거의 비슷한 것 같다재채기하품눈 깜빡이기와 같이 민감하지 않은 것들과 관련된 적응 가설은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근친상간 회피의 적응 가설질투의 적응 가설친족애의 적응 가설강간의 적응 가설 등과 같이 민감한 것들과 관련된 적응 가설이 나올 때에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그들은 진화 심리학이 순수한 범적응론이거나 범적응론적 편향을 보인다고 일관되게 비판하고 있다기 보다는 진화 심리학이 자신들이 보기에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을 때에만 범적응론이라고 비판하는 것 같다.

 

 

 

이덕하

2011-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