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론(deism)이라는 것이 있다.

 

세계를 창조한 하나의 신을 인정하되, 그 신은 세계와 별도로 존재하며 세상을 창조한 뒤에는 세상, 물리법칙을 바꾸거나 인간에게 접촉하는 인격적 주재자로 보지 않는다.

http://ko.wikipedia.org/wiki/%EC%9D%B4%EC%8B%A0%EB%A1%A0

 

Deism holds that God does not intervene with the functioning of the natural world in any way, allowing it to run according to the laws of nature.

http://en.wikipedia.org/wiki/Deism

 

현대 과학의 용어를 빌려서 다음과 같은 이신론을 창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잠적 이신론: 신은 인간과 같은 지적 존재의 진화가 가능하도록 우주의 기본적인 물질과 물리 법칙을 설계했다. 그리고 빅뱅을 일으켰다. 그 직후에 신은 잠적했다. 그래서 우주는 물리 법칙에 의해서만 돌아가고 있다. 잠적한 신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미래에도 우주는 물리 법칙에 의해서만 돌아갈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참으로 희한하게 생겨먹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누군가 인간과 같은 지적 존재의 진화를 가능하게 하려고 그렇게 만든 것만 같다는 것이다.

 

잠적 이신론은 왜 우주가 이렇게 희한하게 생겨먹었는지 “설명”한다. 그것은 전지전능한 신이 우주를 그렇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우주가 왜 이렇게 생겨먹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중 우주론도 할 말이 있다.

 

다중 우주론: 세상에는 우주가 무한히 많다. 우리가 사는 우주와 다른 우주는 완벽히 단절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관찰이나 실험을 하더라도 다른 우주에 대한 정보를 전혀 얻을 수 없다. 각 우주들의 기본 물질과 물리 법칙은 제각각이다. 그 중에서 지극히 소수의 우주에만 인간과 같은 지적 존재가 진화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우주다.

 

잠적 이신론에서는 전지전능한 신이 우리 우주의 희한한 생김새를 “설명”한다. 반면 다중 우주론에서는 무한히 많은 우주들의 존재로 우리 우주의 희한한 생김새를 “설명”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설명 포기론이다.

 

설명 포기론: 우리 우주는 참으로 희한하게 생겼다. 마치 누군가 인간과 같은 지적 존재가 진화할 수 있도록 우주를 설계한 것 같다. 왜 우주가 그렇게 생겨 먹었냐고? 내가 알 바 아니다.

 

 

 

잠적 이신론과 다중 우주론과 설명 포기론은 실증적으로 동등하다(empirically equivalent). 즉 어떤 관찰이나 실험으로도 이 중 어느 쪽이 옳은지 가릴 수가 없다. 따라서 잠적 이신론자와 다중 우주론자와 설명 포기론자가 과학 연구를 하더라도 서로 싸울 일이 없다.

 

잠적 이신론과 다중 우주론은 과학과 충돌하지 않는다. 만약 잠적 이신론자가 “나는 종교인이야. 그리고 내 종교와 과학은 충돌하지 않아”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나는 반대할 생각이 없다. 이런 면에서 종교와 과학은 아주 사이 좋게 공존할 수 있다.

 

 

 

내가 잠적 이신론에게 “당신의 종교가 과학과 충돌한다”라고 시비를 걸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대신 “당신의 종교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더블 잠적 이신론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더블 잠적 이신론: 메타-(meta-god)은 인간과 같은 지적 존재의 진화가 가능하도록 우주의 기본적인 물질과 물리 법칙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신을 창조했다. 신을 창조한 직후에 메타-신은 잠적했다. 그 후 신은 인간과 같은 지적 존재의 진화가 가능하도록 우주의 기본적인 물질과 물리 법칙을 설계했다. 그리고 빅뱅을 일으켰다. 그 직후에 신은 잠적했다. 그래서 우주는 물리 법칙에 의해서만 돌아가고 있다. 잠적한 신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미래에도 우주는 물리 법칙에 의해서만 돌아갈 것이다. 잠적한 메타-신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미래에도 메타-신은 신이 하는 일에 이래라저래라 참견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제대로 된 설명이라면 메타-신이 신을 창조했다는 이야기도 제대로 된 설명이다. 우리 우주보다는 우리 우주를 창조할 수 있는 신이 더 희한하게 생겼을 것 같다. 따라서 잠적 이신론이 설명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더블 잠적 이신론이 설명해낸 것이다.

 

원한다면 트리플 잠적 이신론을 만들어서 잠적 이신론이나 더블 잠적 이신론보다 더 많은 것을 설명했다고 우길 수도 있을 것이다. 메타-메타-신을 끌어들이면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설명 참 쉽죠잉... 앞에 “메타”만 붙이면 설명 하나가 뚝딱 만들어지고...

 

이래서 나는 잠적 이신론을 “우주의 희한성”에 대한 설명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냥 머리를 긁적이며 “모른다”라고 말할 것이다. 싸구려 사이비 설명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보다는 모른다고 실토하는 것이 더 뽀대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논리 실증론자(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실증과 완전히 절연된 이야기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무의미”라는 말까지 쓰는 것은 오바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정신은 존중한다. 나는 “무의미하다”는 표현 대신 “그건 설명이 아니다”라는 표현을 쓸 것이다.

 

 

 

어쨌든 잠적 이신론은 과학과 충돌하지 않는다. 하지만 잠적 이신론만큼이나 일관된 이신론 또는 범신론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아인슈타인과 같이 자칭 종교인이면서도 우주가 물리 법칙에 의해서만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드문 것 같다.

 

일관된 이신론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1. 성경과 같은 경전을 신성시하지 않게 된다. 신은 우주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경은 신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다. 위대한 인간이 썼다면 위대한 글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한계와 개인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정되어야 할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2. 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기도를 해도 신이 소원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에 개입하지 않는 신에게 기도를 해 봤자 얻을 것이 없다. 기도를 해서 마음이 편안해질지는 모르겠다.

 

3. 기적을 믿지 않게 된다. 기적이란 물리 법칙과 모순되는 일이다. 그런데 우주는 물리 법칙에 의해서만 돌아간다. 예수의 기적도 성자들의 기적도 다 뻥이거나 일종의 상징일 뿐이다.

 

4. 과학을 배우게 된다면 신이 인간을 직접 창조했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게 된다. 논리적으로는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인간도 같이 창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온갖 증거들에 따르면 아주 옛날에는 인간이 없었다.

 

5. 교황과 같은 고위 성직자의 엄청난 권위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교황 무오류설과 같은 것은 신이 교황의 배후에 있다는 믿음 때문에 가능하다. 신이 우주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면 교황도 그냥 인간일 뿐이다. 교황으로 뽑혔으니까 능력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 인정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런 능력이라면 자수성가해서 대통령으로 뽑힌 이명박에게도 있다.

 

6. 천국과 지옥도 믿지 않게 된다. 신이 우주에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착하게 살든 악하게 살든 신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신은 인간이 신을 믿든 말든 상관 안 한다. 착하게 살거나 진심으로 회개한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니고 죽을 때까지 악하게 산다고 해서 지옥에 가는 것도 아니다. 신을 모욕한다고 해도 신의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열 받는 종교인한테 맞아 죽을 수는 있겠지만...

 

7. 과학을 배운다면 정신도 결국 뇌의 산물이며 물리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신이 준 자유”는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신앙심 있는 종교인 중에 도대체 몇%나 자칭 이신론자일까? 그리고 자칭 이신론자 중에 이신론의 함의를 일관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설문조사를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 전체 종교인 중에 일관된 이신론자는 1%도 안 될 것이다.

 

극소수의 종교는 과학과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종교 비판에서 중요한 것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극소수가 아니라 성경책을 신성시하고, 예수와 성자의 기적을 믿고, 신이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기도를 하고, 때로는 <창세기> 이야기를 거의 글자 그대로 믿고, 교황을 신성시하기도 하는 그런 종교인들이 믿는 종교다.

 

종교의 이론적 가능성과 관련된 비판도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면에서 일관된 이신론을 둘러싼 논쟁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현실 종교인 대다수가 믿는 “개입하는 신”에 대한 비판이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

 

이렇게 볼 때 종교는 과학과 충돌한다. 종교는 과학의 적이다. 이전처럼 과학자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과학의 발전을 1초라도 더디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