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편지를 주고받을 때보다 직접 만났을 때 더 기분이 좋았던 적은 드물다. 물론 그 누군가가 편지를 쓰는 데에 최소한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발언을 무력하고 에너지가 부족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고백으로 여겼다. "당신은 진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군요." 이런 말도 들어보았다. 하지만 내 말을 들어보시라. 누군가를 면전에서 대할 때 그 사람이 더 실제적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뭔가? 누군가의 본성이 편지에 보다 정확하게, 그도 아니면 그저 다르게라도 드러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난다는 점. 누군가와 같이 있어야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글을 읽어야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아무튼 나는 누군가와 함께 살 정도로 좋아도, 그 사람이 나에게 쓴 편지가 필요하다. 편지를 주고받는 부분이 채워질 때, 그 누군가와의 관계가 완전해 보이는 것이다. 
     -아멜리 노통브 <생명의 한 형태>


  열대야다. 밤 새 읽는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은 가을이 아니라 여름이다.
  매미는 운다. 웃나? 소리를 낸다.
  10년 동안, 여름은 아멜리 노통브와 함께 간다.
  처음의 충격이 많이 줄었지만,
  충격을 받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니다.
  글은 그(작가)와 나(독자) 사이에 투명한 관을 연결한다.
  우[竽], 적[笛], 훈[塤], 소[簫]...
  소리를 낼 수 없으나 보고 소리를 상상하듯,
  책을 읽는다.

  매미는 운다. 웃나?
  그 폭우를 어떻게 견디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