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역주의, 호남배제에 대한 보편적 설명은 정치우위에 입각한 설명입니다. 박정희 군사독재의 영남패권적 성격과 전두환의 5.18때문에 선거에서의 지역적 투표성향이 고착화됐고, 전국적인 호남비하, 호남왕따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죠.

지역주의가 문제다, 영남패권주의가 문제다(일단 영남패권주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포함, 영남에도 거지가 있으므로 영남패권주의는 틀렸다는 식으로 영남패권은 없다고 하는사람들도 상당수기 때문)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보통 정치우위의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정치, 사회적인 호남배제가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떤 지역을 왕따시키고 배제시키는 거대한 정치기획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마항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지만 그 이후 그 지역에서 그리고 그 지역을 바라보는 정치사회적 현상변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광주항쟁은 달랐죠. 그리고 박정희 독재정권의 모든 측면에서의 호남배제가 별다른 수고없이 가능했던 점, 광주에 공수부대를 무리없이 투입시켜서 국군이 국민을 살상하도록 하는 결정을 어렵지 않게 내릴 수 있었던 배경은 과연 무엇인지 제대로 된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런 논의가 없으면, 그런 것들이 가능했던 이유로, 정치사회적인 호남배제가 쉽게 정치엘리트들에 의해 가능했던 이유로, 길게는 훈요십조, 짧게는 조선시대부터 있어왔던 호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만연이 호남차별을 도왔다고 결론 내리고 맙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해결방법은 별게 없죠. 국민적인 의식개선과 그것을 위해서 호남배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의 반성이면 됩니다.

그런데 정말 저러면 해결될까요 모든 것이?


호남은 경부축 중심의 경제개발과정에서 소외됨으로 인하여, 개발의 수혜를 상대적으로 적게 받은 결과 엄청난 인구유출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치른 첫 대선에서 영남은(영남만) 최초로 '영남지역주의적 투표'를 했죠. 박정희는 그 표로 당선됩니다. 서울-부산을 축으로 자원이 분배되면서 각종 인프라는 대부분 수도권과 영남에 배치되었죠. (혹자는 충청을 이야기 하며 정치우위의 지역주의 설명을 계속하지만, 수도권과 영남을 잇는 중간에 위치한 충청은 점차 수도권에 편입되어가면서 '수도권화'되면서 호남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저는 정치사회적 호남배제에서 정치의 문제, 즉 선거에 유리하게 호남을 이용한 정치인들의 행태가 호남배제의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강고한 군사독재시절, 특히 영남군부에 치우친 정치권력의 패권적 정치에 그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유독 호남이 배제되는 그러한 거대한 정치현상, 정치기획이 쉽게 가능했는지, 그 배경에 대해 정말 제대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경제적 격차, 산업자원배분의 격차를 건드리지 않고 대충 넘어가면, 표면적인 선거에서의 영호남 지역별 투표격차는 완화될지 몰라도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요원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민주화 이후에도 주민자치의 모습을 잘 보여주지 못하는 지방행정,정치가 계속해서 이전처럼 중앙정부에 의존하기 때문에, 예산을 따고 사업을 따고 공기업 유치를 위해 중앙정부를 지역적 차원에서 장악하려는 시도가 점점 심해지는데, 기존의 호남배제의 근원(이라고 제가 생각하는) 경제문제를 안 건드리면, 문제는 더 악화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