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저는 월남전에는 참가할 수 없는 나이라 여러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당시 국민학교에서 인기짱인 아이들은 월남간 형님들이 들고 온 레이션(깡통음식)을
자랑하는 아이들이었죠. 우리들을 그 주위에 졸래졸래 둘러앉아 똥강아지마냥
그 비스킷 한개라도 얻으먹으려고 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 모두 영어를 몰라서
"자 이 깡통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번 따볼까 ?" 이러면 눈이 왕방울 만해지면서
모두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실망한 깡통도 꽤 있었죠.  가장 기억나는 것은
커피캔이었는데, 촌놈들 눈에는 분명 초코렛 같았는데 맛은 영 아닌거죠. 이상하다
이상하다 했는데, 누군가 미국을 잘 안다고 주장한 아이가, "이거 쵸꼬렛 원료다.
이것하고 우유하고 섞으면 바로 초꼬랫 된다. 해바라..."  겨우 사정해서 얻어온
반 티스푼 분량의 커피가루와 집에 있든 우윳가루(그때는 그 가루를 개우유라고 불렀
습니다. 미군부대에서 개 키울 때 사용해서 그런가 ?)에 섞어 먹어보았는데 양이
너무 작아서 그런지 쵸코렛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니
우리 동네에서 제일 처음 밀크우유를 맛본 사람이었지만.  다음날 가서 "야, 니가 준
미제 쪼코렛 영 이상하든데, 진짜맞나 ? " 물어니 그 친구대답 "야 촌놈같이, 임마,
그기 진짜 미제 쪼꼬렛 맛 이다. 니 어데가서 그런 촌놈같은 소리 하지마라"
저의 월남전 개입은 미제 쪼꼬렛으로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당시 동네 쪼무래기들이 
총싸움할 때 부른 맹호부대 노래가 대략 생각납니다.  그런 놀이라면 키작고 마른 놈들이
분리되어 베트콩 역할을 하도록 시키고 그랬죠.  베트콩이 영어 약자인줄은 진짜 대학와서 차음 알았죠.  부끄러운 사실,
         
월남전에 대한 참전자의 첫 생생한 증언은 고등학교때 교련선생님에게서 들었습니다.
당시 비가 오면 교련수업은 교실에서 했는데, 딱히 인문과정을  배우지 못한 교련샘들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만한 것은 월남전 이야기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교련선생님이 4분 계셨는데, 한분은 6.25 전공, 다른 한분은
월남전 전공이었죠.  다른 두 분은 예비군 중대장 출신의 할아버지.  그 분의 입에서 나온 놀라운 이야기.
보통의 우리가 알고 있는 <악독한>  베트콩 잡아죽인  늠름한 국군의 이야기,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와는
전혀 딴 판의 이야기가 선생님의 입에서 증언이 되는 겁니다. 약간의 객기까지 있는 교련 선생님은
자신의 이야기에 아이들이 넋을 잃고 듣자, 신이난 긔 교련 선생님은 겉잡을 수 없이 생생한 경험담을 쏱아내었습니다.
약간의 뻥도 있었겠지만, 여기서 글로 모두 전해줄 수 없는 것이 좀 아쉽네요. 

교련 선생님에게 들은 한가지  내용만 말씀드릴께요. 당시 베트콩이나 월맹군이 한국군을 생포하면
나무에 걸어놓고 항문쪽에 총구를 넣어 위로 발사했다고합니다. 그러면 내장이 머릿쪽을 부수고 거꾸로 나오죠.
상상이 되십니까 ?이런 건 영화로도 허용이 안될 겁니다. 너무 잔혹해서. 상상만으로도 그 끔찍함이 전해집니다.
그렇게 된 시신을  한국군이 다닐만한 주요 길에 서있는 높은 나무에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내장이 머리위로 너덜너들 나온 시신을 말 입니다.  베트콩들은 한국군을 왜 그랬을까요 ?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철들어 월남전쟁 소설이 나오면서 어릴 적 기억의 파편과 교련 선생님의 무공담이
퍼즐조각같이 맟주어 졌습니다. 7년전에 베트남에 처음 갔습니다. 일행은 모두 밖에 
"민정 탐방" 나간 사이에 혼자 10층 바에 맥주한잔 하러갔습니다. 제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아는지,
가수가 한국노래, 기억나기로는 노사연의 무슨 노래였는데, 를 부르더군요.
 바 카운터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든 중에, 취기도 좀 오르고, 그래서 그 주인장에게 한국사람으로
 진짜 월남전은 미안하다고 말을 했습니다. 

아래 조선일보 글에서 정말, 새벽에 배를 잡고 웃은 것은 "미군이 양민 베트콩 구분없이 공격하는데
 한국군은  한명의 양민이라도 다치지 않도록 ... " 이 부분인데요 여러분 상상이 갑니까 ?  대단한 베트콩 감별사 나셨네요. 그렇쵸 ?

아래는 채명신이 군인으로서 하는 말이긴 하겠지만, 속으로는 정말 베트남
밈중들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게 사람의 길입니다. 고엽체 피해자들에게
손사락 5개를 끊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말도 안되는 왜곡을 하면 안되죠. 그냥 가만히 있어면 돱니다. 
월남전은 역사에 찾아보기 힘든 더러운 전쟁입니다. 결과도 나쁘고.  채명신의 베트콩 양민 분리 운운은
베트남 전쟁의 역사성과 본질을 망각한 3류군인의 시각입니다. 물론 책임자로서 당연히 해야할 이야기는
맞을 겁니다.  민간인 하나도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고..그런 식이면 미군은 훨씬 더 엄격하고 정교한 교전수칙이
있습니다. 군사재판도 한국군보다 엄격하고 좀 더 독립적이었을거고요.  문제는 장군의  레토릭이 아니고
현장의 상황이요. "에.. 내가 민간인을 한 명도 해치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
바보인증 밖에 안됩니다.   
     
고위 공무원 위장전입은 불법이라고 잘 알려져 있으며 어떤 정부에서도 권고하지
않았습니다만  현장은 어떠합니까?  대법원판사부터 연루되지 않은 고위공무원이 거의 없죠. 
그러니까 MB의 공정사회, 법이 근간이 되는사회, 우파의 준법정신 이런 말이 개소리가 되는거죠. 
혹 채명신을 존경하는 밀리매니어가 이글을 보시면 의견을 좀 달아주세요. 월남전이 채명신대로 되었는지.
    
조선일보도 좀 미안했는지 채명신의 말에 인용부호를 달았네요. 그 밑의 댓글이
정말 가관입니다.   "잘 모르면 직접 물어바라"  이게 이 댓글러에 대한 저의 조언입니다. 
참전용사가 살아있을 동안 이 전쟁에 대한 진짜 현장 자료가 잘 정리되어 후세에 전달되기 기원합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02/2011080200082.html?news_topR
  

--------- 조선일보 오늘자 내용 (문갑식 기자 정리) -------------
[정전협정 58주년 주간 연재] "베트남전 때 양민학살?… 좌파의 거짓말"

베트남에서 미군과 한국군의 전술은 확연히 달랐다. 당시 베트남 국민 다수는 호치민(胡志明)을 지지했다.
그는 프랑스와의 독립전쟁 영웅이었으며 부패와 불교도 억압으로 얼룩진 고딘 디엠 정권과 불퇴전의 용기로
싸우고 있었다. 베트남은 초대 퍼스트레이디 '마담 누'의 망언으로 국민의 반감을 샀다. 본명이 쩐레수언인
 '마담 누'는 군사정권 독재에 맞서 승려 틱꽝덕이 분신하자 '인간 바비큐'라고 비아냥댔다. 그 후 베트남의 양민은 베트콩 편으로 돌아섰다.

그들은 앞에선 웃다 미군이 등만 돌리면 총을 쏴대거나 수류탄을 던졌다. 거기 당한 미군은 양민, 베트콩을
가리지 않고 섬멸하려 했다. 내 생각은 달랐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물(양민)'과 '고기(게릴라)'를 분리해야 했다.

한국군은 '베트콩 1만명을 놓쳐도 양민 1명을 구하자'는 자세를 취했다. 의약품 부족으로 고통받는 월남민을
위해 의료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베트남전 때 우리가 만행(蠻行)을 저질렀다는 좌파들이 많다. 그건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다.
한국군은 마을 수색 때 제일 연장인 촌장(村長)에게 공손히 대했으며 야간작전 때 주민들에게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사전경고했다.
외교관계가 회복될 때 베트남정부가 당시 한국군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다.

---------- 첫번째 달려있는 댓글 ---------
김oo(oys4065)2011.08.02 06:59:19신고 | 삭제

역시 예상했던 대로 좌파 쓰레기들의 조작이었구만. 정말 이제 우리 사회에서 좌파들을 매국노로 규정하고
단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국가를 망치고 독재자 살인마 김정일과 김일성의 편만을 드는 좌파 쓰레기들을
더 이상 좌시해선 안될 일이다. 매국노 좌파를 모두 쓸어내자. 친일파보다 더 나쁜 이적 집단 좌파를 응징하고 분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