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밥님의 글을 읽고 생각이 있어서 나름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적어볼까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다른 사람이 글을 접할 때에는 누구나 명시적, 암묵적으로 해석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자신의 해석을 통해 상대방의 견해를 접하게 되는 것이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된 상대방의 견해를 토대로 상대방의 견해를 비판하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백수광부님이 아니니 백수광부님이 글에서 정확히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는지 세세하게 없습니다. 다만 백수광부님의 글을 나름대로 해석한 토대 위에서, 바오밥님의 견해에 대해 나름대로의 코멘트를 전개할 있을 뿐이지요.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회 안에서 집단 혹은 개인이 사회적인 차별을 당할 , 차별을 당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면, 차별의 메카니즘은 대동소이하지요. 사람이 속한 자연적, 사회적, 경제적인 유적인 특성을 집어내서 그것을 동일한 특성을 가진 집단들 속에 투영시키고,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가치 평가를 내리고, 특정 개인이 집단이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인 가치 평가를 뒤집어 씌웁니다. 개인이 가진 특성을 획일화해서 오로지 특성만을 토대로 특성을 가진 집단에 대한 편견을 개인에게 뒤집어 씌우는거지요. 사람이 가진 피부색, 출신 계층, 직업, 학력, 성별, 그리고 고향 등등.. 이런 식으로 집단 편견의 희생양이 되는 개인의 특징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있습니다.


도덕의 보편성을 이야기할 , 흔히 간과되는 것이 도덕의 근원이  부도덕적 행위에  대한  분노의  보편성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공감되기 쉬운 것은 가장 도덕적인 소재입니다. 유영철이 벌인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에 대해서 사안과 직접 연관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수준의  분노를 느낄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보편적으로 자극되는 분노의 공감대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런 식으로 명쾌하게 들어나는 도덕적 패악과는 달리, 사회 내부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집단적인 차별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전라도 출신 사람들에 대한 차별, 장애인에 대한 차별,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 출신 학교에 대한 차별,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차별,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적 임금 등등… (엄밀히 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적 처우는 사회적 차별이라고 보다는 경제적 차별에 가깝지만 비정규직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인 질시를 받는 사례는 얼마든지 생각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차별의 정치 사회학을 구성하는 변수들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다양 합니다.


<차별 받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 호남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언명은 다양하게 해석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것을  <호남에 많은 것을 요구한다> 뜻으로 이해하십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한편으론 맞지만, 한편으로는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간단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우선 언급되어야 것은, 사회적인 차별이 도덕적인 현상, 보편적인 공분을 불러 일으킬 있는 현상에 속하면서도, 이것이 은밀한 사회 메커니즘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이 있고, 무엇보다도 공적인 담론 속에서 정치적인 언어로 표현되고 주장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차별의 토대가 되는 변수를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집단에게는 직접적으로 어필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장애인들이 겪는 사회적인 차별에 대한 이슈가 우리 사회에 별로 공론화 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사회적 차별의 이슈로 자주 공론화되고 있으면서도, 사회의 은밀한 메커니즘 속에서 쉽사리 해결이 안되는 사안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집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라도 출신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의 이름 없는 무명 대학 출신자들로 구성된 집단입니다. 전자의 집단은 지역적인 차별을 받고 있는 집단이고 후자의 집단은 학벌 차별을 받고 있는 집단이지요. 공개적인 차별을 받지는 않지만 사회 경제적인 기회의 면에서 은밀한 배제를 당한다는 의미에서 집단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 사회 내에서 차별의 메카니즘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경우 지역과 학벌이라는 가지 변수에 대해, 집단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지 상이한 반응 양식이 나타날 것입니다. 먼저 전라도 지역 사람들의 경우에는 지역 차별에 대해서는 집단적인 저항 주체를 형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차별을 당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자신이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에 있기 때문이지요. 반면 지방 무명대 출신자들의 경에는 학벌차별이라는 변수에 대하여 집단적으로 저항을 하는 집단 주체를 형성할 것입니다. 전라도 사람들이 뭉치는 이유와 똑같이 마찬가지 이유에서이지요. 반면 전라도에 속하면서 학벌 차벌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학벌 차별의 사안에 대해서는 정도 수준의 집단 주체를 형성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학벌 차별에  반대하여 집단 주체를 형성한 사람들도 지역 차별에 대해서는 마찬가지일 것이구요. 


사회적 차별의 정치 사회학을 생각해 ,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는 주체들이 현실 속에서 자신이 차별 받고 있는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자연적 특성에 따라 집단 주체로 뭉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지는 집단 주체성의  흐름들은 사회의 정치 사회적, 제도적 환경에 따라 촉진되거나 억압될 있을 따름이지요. 이런 전제하에서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차별 받고 있는 집단이,  자신이  받고 있는 차별이  아닌 자신과  무관한  차별의  다른  범주에서도 <집단 주체로서> 형성될 있는가? 집단 주체로서 어떤 태도를 취할 있는가? 그렇게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예컨대, 차별 받고 있는 <전라도 사람들의 집단>, 또다른 범주에서 차별받고 있는 <지방 무명대 출신자들의 집단> 대해 집단 주체로서 어떤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여기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일단 오픈시켜 놓겠습니다. 답변보다는 질문 자체가 백수광부님의 글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하나의 열쇠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백수광부님의 글에 대해 <호남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생각하시는 분들은 백수광부님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시는 같습니다. 제가 사례를 빗대어 이야기해 보자면,  , <지역 차별을 받고 있는 호남 (사람들) 응당  학벌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에 감아서는 안되고, 외에 다른 모든 차별에 대해서도 눈감아서는 안된다> 라구요. 그리고 이것을 <호남에 대한>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시는 같습니다.


만약 백수광부님의 견해를 이렇게 해석한다면, 저도 다른 분들의 의견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역시 그것이 <호남에게 무리한 요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차별의 범주가 아닌, 다른 차별 범주에 대해서도  <집단적인 분노의 주체>로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 가능성 혹은 그래야 한다는 당위론이, 제가 보기에는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비록 각양 각색의 형태로 나타나는 사회적인 차별이 보편적인 분노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라고 할지라도, 특정한 차별의 범주에 속한 사람들에게 범주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두에게 자신이 직접  체감 못할 수도 있는, 다른 종류의 차별에 대해서도 분노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차별의 현상이 도덕적인 분노를 불러 일으키는 소재라고 해도 인간의 공감 능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무엇보다 차별의 메카니즘이 사회 메카니즘에 깊숙히 파묻혀서 제대로 공론화 되어 있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저는 백수광부님의 글은 이와는 다르게  해석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백수광부님이 <호남 사람들이 영남 패권에 맞서 싸우는 민주당에게 90 퍼센트의 지지를 보내는 것처럼, 학벌 차별, 성차별, 양심적 병역 거부나 동성애자들의 정치적 권리의 박탈등 소수 집단 차별,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에 대해 일관적으로, 90퍼센트 이상의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백수광부님의 주장을 <자신이 속하지 않는 다른 범주의 차별에 대해서도 호남이라는 집단 주체의 일원으로서 차별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출신 지역이 전라도라는 이유만으로 지역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 개개인이 취할   있는, 개인의  정치적인 선택의  일반적인  원리 환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수광부님의 언급은  <호남이라는  집단 주체의  윤리적인 선택> 문제가 아니라, < 종류의 사회적 차별을 숙명적으로 안고 살아가는 개인의 입장에서, 다른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취할 있는 정치  원리적 태도>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읽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차별의 종류는 다를 지라도, 차별 당하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의 깊이를 헤아리는 것은, 비록 그것이 자신과는 무관한 다른 종류의 고통일지라도, <차별을 받은 경험이 없었거나 가해자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그럴 듯한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고통의 언어가 차별의 언어로 치환되고, 차별의 언어가 정치적인 언어로 치환되어 정치적인 담론의 장에 나아갔을 , 차별이 그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치적인 선택의 문제에 되었을 , 만약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 단순히 자신이 이익을 증진시켜 주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차별받는 현실, 보편적으로 분노되어야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내려진다면, 이것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원리적인 선택의 문제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원리적인 입장을 취한 개인들에게, 다른 비슷한 차별의 사안에 대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동일한 원리에 따라, 비록 그것이 자신과 직접 관련된 사안이 아닐지라도, 행동하는 것을 기대해 수는 있다 것이지요. 백수광부님의 주문은 저에게는 바로 이런 식으로 들립니다.  , < 선택을 하게 만들었던 자신의 정치적인 원리를, 다른 사안에도 적용해 보라.>, 이런 주문으로 이해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자신이 겪고 있는 지역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다른 소수자 차별 관련 사안에 대해, 예컨대 동성애자들에게 특정한 정치적 권리를 제도적으로 부여하는 (예컨대 법적인 의미의 <가족> 구성할 있는 권리를 부여해 주는 )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있을 것입니다. 관건은 <특정한 사안에 대해 특정한 의미의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지 말라> 아니라, 보수적인 입장이 적어도 <자신이 받는 차별을 시정하도록 요구하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적인 원리> 적어도 일관될 것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백수광부님의 주장을 다른 차원에서 보자면, 지역 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집단 주체로서의 호남의 선택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 본다고 하더라도, 다른 차별의 문제와 함께 연대해서 있는 보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언어의 담론을 구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절실히 필요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집단적 주체로서 행동하는 영남이 아닌,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비호남 유권자들, 지역 문제에 대해서 체감을 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정치적인 양심과 원리에 따라 정치적인 선택을 내릴 있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먼저 호소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왜나하면 지역 차별은 무엇보다도 현실 정치 권력을 산출하는데 동원되는 유권자들의 집단적 힘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고, 바로 거기에서 강화되고 약화될 있기 때문입니다. 호남 유권자들이 영남 유권자들을 숫적으로 압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정치적으로 불리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이익에 따른 정치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원리에 따른 정치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 호남에 대한 무리한 요구로 보일 있지만, 어쩌면 이것이 지역 차별 극복을 위해서 투쟁하는 집단 주체로서의 호남이 내려야 불가피한 선택의 문제일 있다는 것이지요. <영남 패권주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많은 타지역 사람들을 단순히 <한국 사회의 핵심적 사회 모순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으로만 취급하지 말고, 그들 <원리적인 선택> 내릴 있는 사람들과 연대해서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미투라고라님이 주장하시는 지역 차별 극복을 위한 < 폭로>  담론과 백수광부님이 주장하시는, 보다 일반적인 차원에서 전개되는 소수자 차별 혁파에 관한 <원리>  담론은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만, 글은 호남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회적인 차별의 문제에 대해 실제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느냐라는 것을 문제 삼는 글이 아닙니다. 부분은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