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신당(국밈참여정당 창당제안모임)은 여태까지 내가 아는 그 어떤 당보다 아는 사람이 많은 당이다. 마찬가지로 내 이름과 얼굴을 아는 사람이 가장 많은 당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신당이 명백하게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적어도 한번쯤은 성심 성의껏, 가능한 소상히 그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아는 사람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여의도에서 정치평론을 조금은 해 온 사람으로서의 회피할 수 없는 의무라고 생각한다.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비판도 없다. 가장 강력한 적의는 침묵과 무시다. 어쨌든 나는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서 비판할 생각이 없다. 이제 당분간은 신당에 대해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이 글도 두세 개로 쪼개서 올릴까 하다가 신당에 대한 유감이자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책무를 이번 기회에 확 털어버리고, 연구소가 하기로 한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장문의 글을 그냥 올린다. 호흡 짧은 독자들에게는 별로 친절하고 싶지가 않다.

 

1.jpg

국민참여정당 홈페이지


나는 신당제안 모임이 제시한 창당 제안문, 10문10답집, 팜플렛(신대한민국 여권), 인터넷에 공개된 발기인 이력 등 공개된 자료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 중에서 창당제안문과 10문10답을 주요하게 분석했다. 이 글에는 신당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생각의 정수가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창당과 관련해서 필요한 말이 무수히 많은데,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 안 했는지,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강조하지 않았는지를 뜯어 보면 신당의 철학, 가치, 이념, 정서의 대강을 알 수 있다. 신당은 ‘참여’에 대한 강조, 국가/사회 비전이나 핵심 정책은 발기인 토론으로 넘긴데 반해, 지배구조, 대의원 제도 철폐, 16개 시도당 별 조직 등은 창당제안문(참여자와 제안자의 계약서)에 명시하므로 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결론만 먼저 얘기하면 신당의 핵심 문제는 주요하게 표방하는 가치(참여)와 조직/지배 구조와 문화가 세 칸 오두막 이상이 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참여’라는 가치는 참여정부처럼 ‘국민들이 주인적 자세를 가지고 여럿이 함께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는 식으로 쓴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의미라면 ‘참여’는 ‘민주’나 ‘시민주권’이나 ‘연대’처럼 너무나 보편 타당한 가치가 된다. 그런데 당의 문턱을 낮추고, 대의원제도를 없애고, 인터넷과 핸드폰 등을 활용하여 참여자의 발언권, 결정권을 폭넓게 보장한다는 이유로, 다른 당은 소수 유력자가 주인인데 반해 신당은 국민이 주인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면 ‘참여’는 버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대역죄’를 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쨌든 ‘참여’에 대한 과잉 의미 부여(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각하기)는 당내에서 풍성한 토론이 벌어지면 바로 잡히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창당 제안문이라는 계약서에 들어있는 조직/지배구조이다. 이는 새로운 사람들과 리더십이 들어오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 칸 오두막 구조를 혁파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조직/지배구조를 혁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문화를 바꾸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문화는 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장시간 교제하고 활동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신당이 제시한 문건은 여태 내가 본 많은 정치결사(정치조직) 중에서, 표방하는 논리의 외적(현실적) 정합성은 접어두더라도 내적 정합성이 좀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현실(의도)과 논리(표현)의 모순이 많기 때문이다. 

 

대의원 제도 철폐 문제


신당의 조직(지배) 구조상 뚜렷한 특징 중의 하나는 “대의원 제도를 두지 않고 중요한 정치적 선택과 핵심 정책을 국민 토론과 당원 직접투표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결정권은 “당비를 내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당원들에게 그에 부응하는 권리”로 확실히 부여된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어떤 정당이든지 당원으로서 권리와 의무가 명확하고, 권리(선거권, 피선거권)를 의무(당비 납부, 활동참여)와 긴밀하게 연동시키면, 초기에 당의 재정적, 인적 기반이 튼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로 반대 급부로 평소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은 단순 지지자들을 당의 중요한 결정(공직 후보자 선출 등)에 참여시키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중요 공직 후보 결정시에 국민경선(오픈 프라이머리) 형태를 취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기간 당원이 5만 명이 넘은 민주노동당과 기간 당원이 20만 명이 넘은 프랑스 사회당은 2007년에 당내 경선을 통해서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였다. 하지만 새천년민주당과 미국 민주당은 기간당원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국민경선(오픈 프라이머리) 형태를 취하여 당심과 민심을 근접시켰다.  2002년 당시 당내 기반이 약한 노무현은 이런 방식으로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민주당이나 새천년민주당 방식이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평소 국민을 잘 섬기는 기간당원 중심으로 운영하다가 결정적인 시기에 오픈 프라이머리를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몇 년 동안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 당원들과 이들을 딛고 서 있는 계파 지도자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것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이 통설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신당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즉 권리와 의무를 긴밀히 연동시키면, 정작 민심과 당심을 일치시켜야 할 중요한 당내 선거를 치를 때, 신당은 당심을 좇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참여정당이라는 이름이 무색해 질 것이다. (내가 앞에서 신당의 문턱이 결코 낮아지지 않았다고 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것이다) 신당의 이런 시스템은 가뜩이나 당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는 열망이 강하고, 또 권리를 주지 않으면 의무를 잘 이행하지 않는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로 당의 초기 동력을 구성하는데 따른 반대 급부가 아닐까? 그런데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등 시민단체의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은 가치와 사업과 리더십에 공감해서 지지, 성원, 참여 할 뿐, 권리와 의무를 긴밀히 연동시키지는 않는다.

 

어쨌든 대의원제도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신당이 힘주어 강조하는 조직/운영원리이다. 그런데 대의원 제도는 당원수가 적고, 결정해야 할 사안이 단순하고, 인터넷, 휴대폰 등 정보통신기술을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잘 활용하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정해야 할 사안이 많고, 복잡미묘하며, 당원수(열성참여자 수)가 많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런 경우 대의원제도가 없어지면 복잡미묘한 사안은 대부분 지도부에게 일임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복잡미묘한 사안이 전 당원 토론 및 투표에 부쳐지면 (인터넷 상에서) 집요하고 목소리가 큰 사람의 영향력이 커지지 않을 수가 없다. 요컨대 대의원 제도가 없으면 당이 양, 질적으로 성장했을 때는 최고 지도부와 소수의 선동가가 좌지우지 하는 당이 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게 되면 ‘당원이 주인’이라는 신당의 대표 상품은 빛을 잃게 되어있다.

 

그리고 원초적으로 대의원제도는 단지 정보통신기술의 미발달의 산물 만은 아니다. 토론과 결정의 효율성과 효과성 제고, (현실이나 전체를 고려하지 않는) 목소리 크고 집요한 구성원에 대한 제어(포퓰리즘 제어) 등도 있다. 이는 공화주의의 철학적 기초의 하나이다. 요컨대 신당이 평범한 당원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사안만 다룬다면 대의원제도는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총회시 의견 블록을 만들겠다는 것도, 가두투쟁을 조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잡겠다는 당이 처리해야 할 복잡미묘한 사안이 좀 많을까?

 

대의원제도는 조직이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면 반드시 필요하다. 조직이 왜소하면 여건에 따라 만들어 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요컨대 대의원 제도 유무는 전술적, 기술적 사안이기에, 대의원 제도가 없다는 것이 간판 상품이 되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를 앞세운 이유가 무엇일까? 추측하건대 참여자, 당원이 주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거나 과시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닐까? 이는 철학, 가치, (국가 개조의) 비전, 정책이 조직의 영혼이 되지 않고, 당원이 주인이라는 컨셉(권력 구조)이 조직의 영혼이 된 특이한 정치조직의 불가피한 행보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아는 상식은 당원이 주인이라는 말은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처럼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인 것은 맞지만 대체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소수의 유력자들(정치인, 언론사, 재벌대기업, 이익집단 등)이다. 그처럼 신당도 열린우리당, 새천년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마찬가지로 당원이 주인인 것은 맞지만 소수의 지도자가 당을 좌지우지 하게 되어있다. 이는 정치학의 상식이라고 알고 있다.

 

어쨌든 도덕성을 엄청나게 강조하는 사람은 사소한 도덕적 불찰에 큰 상처를 입기 마련인 것처럼, ‘당원 주인론’을 대표상품으로 내세우는 조직은 운영 과정에서 의외로 큰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조직 운영 과정에서 때때로 지도자들의 결단 내지 과두제적 운영이 필연이기 때문이다.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을 생명처럼 너무 강조한다는 얘기다.  

 

분권형 지배구조 문제


신당의 조직 구조상 또 하나의 뚜렷한 특징은 “시도당이 스스로 지역 정책을 결정하고, 공천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며, “중앙 아래에 지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연합하여 중앙을 구성”하며, “당의 최고 지도부에는 직선으로 선출된 16개 광역시도 대표가 참여”한다는 것이다.

 

대의원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는 의도와 달리 최고 지도부의 권능이 매우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앞에서 얘기하였다. 그리고 지방 분권적 요소가 강한 조직 구조에서는 지방당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는 최고 지도부 성원의 권능이 매우 크고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 창당제안문에는 광역시도당 대표는 자체적으로 선출하고, 이들이 사실상 공천권을 가진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방당이 수평적으로 결합하여 중앙을 구성하는 방식을 취하면(아무래도 동등한 발언권을 행사하기 십상이기에) 인구가 천만이 넘는 서울, 경기에 비해 훨씬 작은 인구를 가진 제주(55만) 울산(102만) 광주(145만), 강원(147만) 등 지방당 지도자(지방 맹주)의 권능이 여간 큰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신당의 지배구조는 지방당과 그 지도자의 이해와 요구가 철저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구조가 광범위한 국민들의 참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지방 활동가들의 참여와는 관련이 좀 있어 보이지만……

 

16개 광역시도당 별 조직 구조 문제


젊은 유권자나 진보, 개혁 성향 유권자들은 원래 지역에 대한 이해관계나 소속감은 약하다. 직업, 직장, 취향, 배우자/육아, 교육 조건 등을 따라서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구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광역 지자체도 바꾼다. 경기도에 살다가, 인천으로 이사하고, 다시 서울로 이사 가기도 하고, 광주에서도 살다가 전남에서도 산다. 높은 이동성과 지역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은 유럽, 일본, 미국과 확연히 다른 한국인(젊은 유권자)의 특징이다. 당연히 관심 범위와 사고 방식이 전국구인 사람이 많다. 또한 상대적으로 직업, 직능적 이해관계가 강하다. 자신의 이익 여부와 상관없이 불의는 성토하고 정의는 찬양한다. 그래서 물질적 이익을 줄 것 같지 않는 노무현에 대해서 열광한 것 아닌가? 또한 진보, 개혁 성향의 유권자들 상당수는 네티즌으로 활동한다. 따라서 웹 공간에서는 진보.개혁 성향-민노당, 진보신당 성향이 아니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반면에 보수의 핵심 세력들은 대체로 이익이나 이권을 쫓는다. 이들은 재정, 자리나 정부의 규제/촉진권을 활용할 줄 안다. 한마디로 재정을 해먹을 줄 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재정이 흘러가는 길에 포진해 있다. 이 길은 주로 지역이다. 선거구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웹 공간에서는 약세지만 선거가 치러지는 지역에서는 그 영향력, 조직력이 막강하다. 정보도 적고 판단력도 취약한 약간 어리버리한 계층을 잘도 동원한다. 그래서 네티즌이 힘을 발휘하기 힘든 지방선거에서는 영. 호남 가리지 않고 해먹을 줄 아는 지방 토호(주로 토건족)들의 점유율이 점점 높아져왔던 것이다.

 

요컨대 내 얘기는 진보.개혁 성향 유권자들을 조직하려면 16개 광역시도별 당 조직도 필요하지만, 선거구별, 직능 별, 이슈(가치)별 조직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진보.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은 직능 별, 이슈(가치)별 조직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진보.개혁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진보가 그렇게 예찬하는 다양한 촛불 시위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요 광역시의 중심지에 집결하긴 했지만 그 뿌리는 수많은 온.오프라인 모임(쌍코와 화장발로 대표되는 인터넷 까페/동호회, 동문회, 생협, 노조 등)이었다.

 

그런데 창당제안문에는 광역시도별 조직이 골간으로 명문화되어 있고, 이 단위가 지도부의 압도적 다수를 배출한다. 이는 정말 진보.개혁 정당과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조직구조이다. 백 보 양보하더라도 16개 광역시도별 조직 구조 역시 대의원 제도 철폐처럼 창당선언문에 명기될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직구조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당 참여와 동시에 16개광역시도 별 조직구조와 독특한 지배구조를 승인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친노 정당(노무현의 정신, 방법을 체현한 정당)이어서 혹은 당원이 주인인 정당이어서 지지하고 가입하는데, 이와 별로 관련이 없는 조직/지배 구조를 패키지로 승인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런 사안이야말로 전 당원 토론 사항이 아닐까 한다.

 

왜 지금 신당인가에 대한 설명


창당 제안문은 지금 신당 창당의 절박성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이번에 창당하지 않으면 다음 총선 전에나 가능”할텐데, 그 때가 되면, “대선 후보들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서 국민과 당원이 주인인 정당”을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말도 다수 국민들이나 유력 정치인 팬클럽 사람들에게는 난해하다. 왜 대선 후보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문제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국민 모두가 당원이 될 수 없는 노릇이기에(더 정확히 말하면 아주 특별한 사람만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당원이 될 수 있다) ‘국민이 당의 주인’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중요한 것은 대선 후보가 당의 사실상의 주인이냐 아니면 다수의 기간당원(열성참여자) 혹은 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명의 지도자들이 당의 사실상의 주인이냐는 것이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당원이 주인이 아닌 당은 없다. 현재 민주당 조차도……그런데 국민들은 당의 실질적인 주인이 누구인지는 별 관심이 없다. 거듭 말하지만 국민들은 정당의 조직 형태가 기간당원이 주인인지, 1인 보스가 주인인지는 관심이 없다. 마치 기업이 노동조합이 있는지 없는지,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하는지 않는지, 족벌 경영을 하는지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는지 관심이 없고 그 상품.서비스의 품질과 가격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물론 가능하면 노동조합도 있고,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전문경영인이 경영하고, 환경보호 등 사회적 책임도 잘 이행하는 기업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가치들은 어디까지나 생산하는 상품.서비스의 품질/효용과 (라이프 싸이클 전체에 걸친) 가격 보다 우위에 오지는 않는다.

 

이처럼 국민들이 정당에 대한 관심의 핵심은 국민을 잘 섬기느냐 않느냐이다. 국민의 요구, 불만, 고통에 제대로 반응하느냐 않느냐이다. 종업원 지주제가 잘 실시되는 기업이 소비자를 잘 섬긴다는 보장이 없는 것처럼, 다수의 기간당원의 발언권과 결정권이 센 정당이 국민을 잘 섬긴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분명한 것은 기간당원(열성참여자)들과 이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무명의 지도자들이 평소 국민을 잘 섬겨왔다면, 국민들은 이런 사람들이 실질적인 주인인 정당을 지지하고 신뢰할 것이다. 따라서 제안문의 주장; (다음 총선 전에는) “대선 후보들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서 국민과 당원이 주인인 정당을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을 우려하면서 지금 태동하는 신당에 아낌없는 지지와 신뢰를 보낼 것이다. 나 역시 작은 힘이나마 보탤 것이다. 그런데 과연 기간당원들과 무명의 신당 지도자들이 (비록 국민들은 잘 몰라도) 알만한 사람은 알 정도로 국민을 잘 섬겨왔던가? 시대정신을 잘 읽고 구현해 왔던가? 참여정부의 성과와 노무현의 합리적 핵심을 잘 계승하고, 그 한계와 오류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치열하게 펼쳐왔던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국민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간당원들과 신당 지도자들이 대권 후보들을 능가하는 지지와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이 제안문은 아무런 감동이 없는 말이다. 오히려 기간당원들과 신당 지도부의 권력 욕의 발로로 보이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신당을 자꾸 유력 정치인과 연관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창당제안문에 나타난 신당의 조직/지배 구조와 정신을 보면 신당의 실질적인 주인은 기간당원(열성참여자)들, 좀 좁히면 최고 지도부, 더 좁히면 거기에 들어가 있는 지방당 지도자들이다. 신당이 제시한 문건에는 이들이 수도권 세력이나 유력 정치인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컨트롤 하는 주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기백이 진하게 베여있다. 이것이 감동을 주는지, 오버(over)인지는 독자가 판단할 일이다.

 

나는 지난 2004~2008년, 그 좋은 시절 대권 후보 급들이 보여준 졸렬한 모습에 이만저만 실망한 것이 아니다. 이 실망은 열린우리당에서 ‘참여’(기간당원제 사수)를 외치며 투쟁해 온 사람들도 비껴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정신적으로, 정치적으로, 정책적으로, 조직적으로 압도하는 정치조직의 출범을 학수고대해 왔다. 아니 지난 몇 년 간 나는 그런 정치조직(정치조직에 필요한 부품=컨텐츠)을 만드는데 일조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나를 포함하여 제대로 된 정치조직을 만들어 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성과는 보잘것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 소망과 시도를 접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초라한 중간 성적표를 들고 진짜 시험장에 들어간다면 당연히 실력만큼 성적을 받을 생각을 해야 한다. 실력 이상으로 성적을 받으려 하면 부정행위를 하는 수 밖에 없다. 요컨대 나를 포함한 무명의 활동가들은 정당을 만들거나 참여할 때는 자신의 총체적 실력(역량)에 상응하는 만큼의 권능을 행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방법을 계승하고, 높은 국민적 대중적 인지도와 신뢰도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국민의 첫 번째 종이 될 역량을 갖춘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의 기여, 실력에 상응하는 만큼의 권능을 행사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 국민의 뜻이자,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형평(공평) 감각


사실 나는 신당(사람들)을 볼 때 제일 아쉬운 것이 형평 감각이다. 지난 열린우리당에서 ‘참여’(기간당원제 사수)를 외치며 투쟁한 사람들이 자신의 실력에 맞는 수준의 요구를 했더라면, 그래서 시간을 두고 당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했다면 열린우리당이 그렇게 허망하게 깨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설사 깨졌다 하더라도 그 후신인 지금 민주당이 당원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평당원의 영향력도 거의 없고, 특정 지역 출신 연로한 사람들이 당의 하부를 구성할 정도로 퇴행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어차피 시간이 참여를 외치는 젊은 사람들의 편이었으니 시간이 가면서 점점 유리한 정치적 입지를 확보했으리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신당의 구조와 리더십과 문화를 보면 역량에 비해 욕심이 너무 크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누가 나보고 이름대면 알만한 유력 정치인의 참여 여부를 가지고 10만원 내기를 한다면 나는 신당의 환골탈태 없이는 절대로 유력 정치인이 참여하지 않는다는데 10만원을 건다. 아니 참여정부와 무관한 명망 있는 교수, 전문가 등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데 10만원을 건다.

 

신당의 유전자 형성 방식


소수가 특정한 철학, 가치, 비전을 공공연하게 표방한 운동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사람을 모았다면, 또 그 과정에서 표방하는 바를 검증, 발전시키고, 리더십을 재구축했다면 조직의 유전자는 폭발적 증식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신당은 이런 과정을 밟지 않았다. 신당은 공공연한 운동 없이 전화로, 이메일로, 인적 접촉으로 전국적으로 1642명을 결집시켰다. 그것도 대단히 특이한 창당선언문으로! 이는 여간 경이로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외부자들은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불러모았을까, 이들이 공유하는 철학, 가치, 문화, 역사, 경험 등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1600여명의 상당수는 지난 몇 년 간 ‘참여’를 내걸고 숱한 전투를 치른 전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참정연, 참평포럼, 참여정부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참여를 표방한 이 조직/운동들이 다 실패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짙은 그늘 내지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진보, 개혁 진영 전체가 마찬가지였지만…… 어쨌든 ‘참여’를 내건 전투에 함께 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전우애가 돈독한 창당 주체들이 이 조직/운동의 한계와 오류를 어떻게 반성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조직/운동이 별 문제 없었다거나-저 간악한 무리들 때문에 실패했다고 보거나- 한계와 오류를 성찰하지 않는 문화라면 새로운 참여자가 붙기가 매우 힘들다고 보아야 한다.

 

만약 창당 제안(주체) 세력이 과거의 조직/운동을 제대로 성찰하지 않는다면, 전우가 아닌 사람들의 눈에는 이들은 ‘여호와의 증인’처럼 자신들만의 독특한 철학, 가치, 문화를 공유하는 소수 집단처럼 비치게 되어있다. 어찌 보면 창당 제안(주체) 세력을 ‘참여 정치의 증인’들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이들이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가치의 증인들이라면 엄청난 지지와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참여라는 가치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에 대한 500만 추모 민심이 ‘참여’를 앞세운 조직/운동에 대한 지지로 조금은 올 수 있겠지만 많이 올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나는 신당이 ‘참여 정치의 증인’들이라고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양당 구도를 흔들 수 있는 제대로 된 정당 건설의 한 블록으로서 존재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이 그 정당의 중심이 되려고 한다면 글쎄다.

 

나는 궁궐에 비유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당은, 그것이 지하당이 아니라면, 태동단계부터 10명이 모이든, 20명이 모이든 그 가치와 노선을 공공연하게 표방하고, 대중적 검증, 토론과 작은 실천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작은 회오리 바람이 국민적 지지와 신뢰 에너지를 모아 거대한 토네이도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조직의 유전자를 형성할 때부터 참여를 제대로 조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신당은 과거 고립분산적인 민주/민중 운동이 전국조직을 형성할 때 그랬던 것처럼 지역별, 직능 별로 독립적인 신당 추진체(운동체)를 만들고, 각각이 내부 토론을 통해서 조직의 유전자(이념, 조직/지배구조, 리더십, 문화)를 형성하여 전국 단위 토론을 통해서 이를 발전시키고, 통일시키고, 공유하는 프로세스를 밟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참여 정치의 증인’들의 핵심들이 모여서 유전자를 형성하여 ‘짠’하고 나타나는 방식이 아니라!

 

신당의 위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신당의 조직적 확장이 쉽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도 신당의 주인과 조직의 유전자가 명확하고, 그것이 국민을 잘 섬기는 첫 번째 종으로 발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지배 구조에 창당 주체들의 협소한 안목과 이해관계가 너무 강하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초가 삼칸을 지었다고 한 것은 가치 측면에서도, 조직/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참여 정치의 증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흡인력이 너무나 약하기 때문이다.

 

정말 신당에는 국민에게 감동과 기대를 줄 수 있는 위대한 생각이 없다. 위대한 생각 없이는 위대한 정당과 나라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신당에는 힘센 정치세력(민주당 호남파, 수도권 정치세력)에 의해 휘둘리고, 내쫓기고, 무시당한 사람들의 권력의지 내지 방어의지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정당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의지도 강하다. 이는 참여와 집단지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와 연결되고, 나라를 정확히 알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방법을 멀리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신당은 완전히 새로 설계하지 않는 한 한나라당,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이 흡수하지 못하는 엄청난 정치적 에너지를 흡수할 수가 없다. 유력 정치인들과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은 결코 신당에 합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당이 거대한 궁궐로 발전하려면 참여를 중심에 놓으면 안 된다. 국가/사회 비전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창당 주체 세력이 정당의 주인이 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열성적인 참여자, 최고지도부, 지방정치조직 지도자들의, 신당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국민을 진정한 주인으로 섬기는 열정과 지혜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하면 원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신당은 거대한 궁궐로 발전하고,창당 주체 세력은 그 궁궐의 주인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끝-

 

사족


모르겠다. 표방하는 바와 달리 애초부터 작게 설계된 정당에 대해서 작게 설계 했다고, 쓸데없이 긴 비판을 늘어 놓은 것이 아닌지? 어쨌든 지금 대한민국은 양당 구도를 크게 흔들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진보, 개혁 진영은 민주당의 환골탈태가 희망이 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치세력이 땅에서 솟아나지 않는다면 초가 삼칸 신당의 환골탈태가 희망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희망이 없는 민주당과 신당이 아옹다옹 다투는 꼴을 가슴 쥐어 뜯으며 지켜보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으로서는 슬픈 일이고,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서는 기쁜 일이다. 제발 이런 꼴은 보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