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운 기능부전
 

이 글에서는 정신적 질병(disease) 또는 장애(disorder)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소개하는 개념은 신체적 질병이나 장애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Jerome C Wakefield는 「Disorder as Harmful Dysfunction: A Conceptual Critique of "DSM-III-R's" Definition of Mental Disorder(1992)」라는 논문에서 정신 장애(mental disorder)를 정의하는 한 가지 방식을 제시했다. 나는 이 논문을 직접 읽지는 않았으며 『The Causes Of Rape: Understanding Individual Differences In Male Propensity For Sexual Aggression(2005)』에 소개된 내용을 보았다. 그는 정신 장애를 “해로운 기능부전(harmful dysfunction)”으로 정의한다.

 

“해로운”과 “기능부전”이라는 단어를 이용해서 정신 장애를 정의한 것이 Wakefield가 처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진화 생물학을 바탕으로 “해로운 기능부전”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명확히 했다. 그렇다면 Wakefield가 제시한 “해로운 기능부전”의 의미는 무엇인가?

 

 

 

 

 

“기능부전”의 의미
 

먼저 “기능부전”부터 살펴보자. 기능부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능(function)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기서 기능은 진화 생물학적 의미의 기능이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기능 개념을 “이로운 효과” 개념과 명확히 구분하려고 한다. 어떤 표현형의 기능은 그 표현형의 유래와 관련되어 있다. 어떤 표현형이 대안이 되는 표현형보다 어떤 일을 더 잘했기 때문에 그 표현형이 자연 선택되었을 때 그 어떤 일을 기능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눈의 기능은 보는 것이다. 그 이유는 더 잘 보았던 개체가 상대적으로 잘 못 보았던 개체에 비해 번식 경쟁에서 유리했기 때문에 자연 선택되었으며 그 때문에 눈이 현재의 형태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기능이 아닌지를 살펴보자. 팡글로스(Pangloss)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한 가지 예를 뽑아 보겠다. 팡글로스에 따르면 인간의 코가 현재의 모양으로 생긴 이유는 안경을 쓸 때 흘러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여기에서 팡글로스는 코의 기능 중 하나가 안경을 잘 쓰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능이 아니다. 왜냐하면 안경은 인간 진화의 척도로 보면 최근에 발명되어서 인간의 코의 모양이 진화하는 데 영향을 끼칠 수 없었음이 뻔하기 때문이다. 설사 코가 안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이로운 효과를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코의 자연 선택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인간은 타자, 피아노 등을 배울 수 있다. 제대로 배운 타자수나 피아니스트는 거의 자동적으로 칠 수 있다. 그들은 그런 기술을 이용하여 돈을 벌 수도 있고, 남들을 기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학습 메커니즘의 기능에는 타자나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타자기나 피아노는 최근에 발명되어서 인간의 학습 메커니즘이 진화하는 데 영향을 끼쳤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기능부전은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눈의 기능은 보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한다면 이것은 기능부전이다.

 

기능부전 개념은 과학적 판단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왜냐하면 기능부전 개념은 진화 생물학적으로 정의된 기능 개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해로운”의 의미
 

여기에서 “해로운”은 과학과 별로 상관이 없다. 이것은 도덕적 기준,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 관련자가 느끼는 고통 등을 포함한 온갖 기준들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어떤 것을 두고 누구는 해롭다고 주장하고 누구는 해롭지 않다고 주장할 때 논쟁을 결판 낼 확실한 길이 없다.

 

과학 논쟁에서는 당장 증거가 부족해서 결론을 보류할 수는 있지만 결국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품을 수 있다. 반면 도덕적 기준을 두고 근본적인 수준에서 논쟁이 벌어졌을 때에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해로운 기능부전”이라는 정의는 “해로운”이라는 용어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렇게 정의된 질병 또는 장애 개념을 사용한다면 과학적 기준만으로 어떤 것이 질병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가치관 같은 과학을 초월한 것들이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난독증
 

대다수 사람들은 일년 정도 배우면 모국어를 읽고 쓸 수 있다. 맞춤법을 아주 정밀하게 익히려면 수년 동안의 고된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어느 정도 읽고 쓰는 정도는 일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특수한 방식으로 가르치지 않은 한 글을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난독증(dyslexia)이 있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난독증을 학습 장애로 분류한다. 즉 장애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소개하는 “해로운 기능부전” 개념에 따르면 난독증은 장애라고 보기 힘들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인류가 문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수천 년 밖에 안 되었다. 대중들까지 문자가 보급된 것은 백 년 정도 밖에 안 되었다. 이것은 인간 진화의 척도로 보면 순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류가 자연 선택에 의해 글 읽기 능력을 적응으로서 진화시켰다고 보기 힘들다.

 

만약 글 읽기 메커니즘 또는 글 읽기 학습 메커니즘이 따로 적응으로서 진화하지 않았다면 글 읽기라는 기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따라서 글을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은 기능부전이라고 볼 수 없다.

 

 

 

 

 

동성애
 

이전에는 동성애를 정신 장애로 분류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식으로 분류하는 학자가 거의 없다. “해로운 기능부전” 개념에 따르면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엿장수 맘대로다.

 

동성애는 기능부전인가?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그렇게 믿으며 나 역시 그렇다고 본다. 이성과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성교를 해야 자신의 유전적 자식을 낳을 수 있다. 동성애자는 동성을 사랑하고 동성에게서 성적 매력을 느낀다. 이런 취향과 행동은 인류 진화사에서 번식 경쟁에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갈매기의 경우에는 암컷들이 동성끼리 “결혼”을 하기도 한다. 수컷 짝을 구하지 못한 암컷 두 마리가 한 살림을 차리고 공동으로 자식을 돌보는 것이다. 정자만 제공해주는 일이라면 자신이 하겠다고 나설 수컷들이 아주 많으므로 정자를 얻는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갈매기 중에 수컷끼리 짝을 이루어서 빈 둥지를 함께 지키는 경우는 없다. 갈매기의 경우에는 암컷끼리의 결혼이 적응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오히려 남자 쪽에 동성애자가 많다. 또한 동성애자끼리 결혼하여 자신들의 유전적 자식을 기르는 경우도 별로 없다.

 

동성애가 적응이라고 주장한 진화 심리학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거의 사장된 듯하다. 다수의 진화 심리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동성애는 사랑 메커니즘이나 성욕 메커니즘의 기능부전인 것이다. 물론 기능부전이라는 말이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순전히 진화 생물학의 개념인 기능 개념에서 파생된 것이며 어떤 도덕적, 미적 판단도 개입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해로운”의 측면을 따져보다. 여전히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동성애가 해롭다고 본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가 해롭지 않다고 본다. 누구 말이 옳을까? 내가 위에서 엿장수 맘대로라고 한 이유는 이 논쟁을 결판 낼 확실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적어도 선진산업국의 학계에서는 해롭지 않다고 주장하는 쪽이 우세한 듯하다.

 

 

 

 

 

정신병질
 

정신병질(psychopathy)은 뇌 손상의 징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극히 싸가지가 없는 것을 가리킨다. 정신병질자는 동정심, 죄책감, 양심이 없거나 극히 미미해서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악행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대다수 사람들은 정신병질이 해롭다고 보는 것 같다. 보통 정신병질자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라 정신병질자에게 당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해롭다.

 

그렇다면 정신병질은 기능부전인가? 이것은 과학적 문제다.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학자들은 대체로 정신병질이 기능부전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들이 정신병질에 대해 쓰는 글에는 기능부전이라는 단어가 거의 항상 나온다. 하지만 그들이 진화 생물학적 의미의 기능 개념을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진화 심리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두 진영으로 갈려 있다. 한 진영에는 정신병질이 사취자 전략(cheater strategy)으로서 진화한 적응이라고 본다. 반면 다른 진영에서는 정신병질이 도덕성 메커니즘 등이 고장 난 것이라고 본다. 양 진영에 속한 대다수 학자들은 아직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Juvenile Delinquency: Understanding the Origins of Individual Differences』에서 정신병질이 적응임을 충분히 입증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정신병질이 적응이라면 질병이라고 볼 수 없다. 해롭기는 하지만 기능부전은 아니기 때문이다.

 


2009-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