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여전히 그들이 노빠일까, 아니면 그 순간부터 그들은 더이상 노빠가 아니게 되는걸까?


스스로 노빠임을 선언하는 노빠들-서영석이나 김동렬,김어준등-에게 노빠딱지를 붙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게 없다.  문제는 이들과 정치적 지향과 논리체계가 거의 유사하면서도 스스로를 노빠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노빠라는 라벨링을 할 때 일어난다. 두 부류의 가장 큰 차이는 단지 노빠라는 정치적 범주안에 자신을 자리매김하느냐 부정하느냐의 차이뿐인데, 이 구분을 계기로  정치적 지향에서조차 둘을 전혀 다르다고 구분해줘야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두부류의 정치적 지향은 철저히 같다.
 

우리는 보통 강아지처럼 짓고 행동하며 강아지와 유전자 지도가 같은 동물을 강아지라고 부른다. 아무리 그것이 스스로를 강아지가 아니고 소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그런 동물은 우리기준으로 보아 강아지임에 틀림이 없다. 노빠도 마찬가지다. 노빠들과 거의 같은 논리체계를 갖고 있고 행동하는 분들을 노빠라고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그러나 그럴 경우 국외자는 이들에게 카운터 펀치를 맞게 된다 . 딱지치기나 일삼는 족속들이라는 회심의 카운터 펀치.


노빠라는 범주구분을 이용해 딱지붙이기를 한다고  국외자를 향해 분노를 폭발시킨다는 이야기다.자기는 절대 노빠가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국외자의 시선에서 볼때 그들은 정확히 노빠다 실질적 의미에서 노빠의 행태속에  여전히 푹 젖어있다는 이야기다. 노빠행동을 하면서 노빠로 불리기를 거부하는 자일뿐이지 그렇다고 노빠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는 노빠라는 범주 부여는 딱지붙이기가 아니라 실은 정확한 자기자리 찾아주기다.


이와 반대로 노빠면서도 노빠로 불리기를 거부하는 자들의 논리를 인정해주는 경우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서영석이나 김동렬, 김어준등이 기존의 정치적 지향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이제 이후부터 자신들은 노빠가 아니라고 주장하면, 당연히 그들은 더이상 노빠가 아니라고 인정해 줘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논리는 친일파가 친일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순간 친일행동 여부와는 별개로 무조건 친일파가 아니게 되며,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순간부터 미국 남부의 노예농장주들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범주에서 벗어나게되고 오히려 자기들에게 그런 라벨을 붙이는 사람들에게 반격할 무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노빠이면서 노빠로 불리기를 거부하는자들, 아마도 자신들이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게다. 노빠짓을 하면서 반노들에게 가장 확실하게 반격을 가할 있는 유리한 포지션, 결국 그게 노빠면서 노빠임을 부정하는 정신착란 노빠를 탄생시키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