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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의 배타성과 독선적인 부분을 지적하면서 근본주의에 바탕한 신학을 문제삼습니다.
맞습니다
신학의 문제가 크지만 그보다는 상식의 문제라고 봅니다.
신학이 보수적이라고해서 지금처럼 욕먹는 것은 아니지요
개신교가 타 종교나 사회와 만나는 지점에서 자신의 폐쇄성과 독선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부패하고 몰상식해서 도덕성도 바닥이니 욕먹는 것이 당연하고요
상대방에 대한 존중 사회공통적 가치에 대한 배려와 공감능력이 없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 것입니다.
뭐 신학이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니 그런 행동이 나온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근본주의적인 신학을 견지한다해도 제대로 성경을 믿으면 사회나 타종교로부터 욕먹지 않습니다.
결국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는 짜가라는 이야기이고 한국 교회의 성경이해나 해석은 사실 한국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신학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나 각 종교의 특성과 정체성이 있습니다.
과거 인습이나 국교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이것이 사회와 아무런 갈등을 유발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양성의 시대이며 민주사회입니다.
그리고 과거보다 더욱 빈번하게 각 종교간 종교와 사회 여러부문간 접촉과 이해관계가 많아지고 교류도 활발합니다.
아울러 메스컴과 소통 도구의 발달로 조그만 갈등도 쉽게 증폭되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각 종교는 자신의 정체성과 고유한 특성을 지키면서도 사회나 타 종교와 마찰이 없이 공존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교회 성장이라는 우상과 민족 복음화란 비성서적인 프레임에 빠져서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분별하지 못하여 비난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미숙한 신앙입니다.
신정국가 시대의 구약을 재 해석이 없이 그대로 설교하고 적용하여 타종교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마찰을 빚는 경우 땅밟기 같은 정통신학에서도 허용하지 않는 미신적인 행위들이 검증없이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에 대한 공격적인 선교는 백투더 예루살렘이라는 신학적 근거없는 선동구호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미숙한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신학이 없는 목회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신학의 검증과 신학의 바탕에 의하여 발전을 해야하는데 신학이 교회의 시녀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바르트의 말처럼 신학은 교회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잘못된 교회를 합리화하는 신학을 하거나 침묵하는 신학이지요
아울러 한국의 신학자들 역시 게으르고 용기가 없습니다.
아크로에서 토론된 많은 주제들은 현재 많은 신자들이 공격받거나 질문받고 자신들도 고민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어느 신학자가 어느 교단이 그때 그때 제대로 된 신학적 대응을 하고 있는지 과문하지만 알길이 없습니다.
한두명의 신학자들이 잡지나 신문에 짧은 기고는 하지만 그걸로는 어림없습니다.
이단에 대한 연구에 정성을 들인만큼만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연구를 하고 답을 만들어도 많은 신자들은 덜 답답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그러하듯이 한국 교회 역시 상식이 실종된 상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상식을 무시하는 것이 신앙인양 주장하기도 합니다.
과거 어느 근본주의 신학교의 교수가 학자가 되고 목사가 되기전에 인간이 되라고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과 교리를 이야기하기 전에 상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상식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살아가면서 서로 관계하는데 필요한 공통적 합의점을 말 하는 것이지 교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의 신앙적 지형도를 대충 적어봅니다.
자유주의 계통
감리교(2000년 126만명), 기독교 장로회,(2011년 305천명) 성공회 (1-2만명?), 복음교회 (만명내외)
신정통주의 계통
장로교 통합 (2010년 302만명 ) 기독교 성결교 (2011년 59만명 )
정통주의 (근본주의)
장로교 합동 (2009년 293만) 고신 (46만) 백석 (86만명) 침례교 (80만명) 기하성 순복음 (118만명)
그외 기타교단들
검은글씨 수는 재적교인 빨간색은 출석수
이 통계는 교회성장 연구소 발표 자료
1. 여의도순복음교회 784.221명 (439,643명)
2. 은혜와진리순복음교회127,426명 ( 60,227명)
3. 금란감리교회 91,622명 ( 40,274명)
4. 광림감리교회 81,427명 ( 35,264명)
5. 인천숭의감리교회 81,022명 ( 32,417명)
6. 사랑의 장로교회 72,990명 ( 35,262명) (합동)
7. 주안장로교회 72,246명 ( 28,264명) (통합)
8. 인천순복음교회 65,241명 ( 29,264명)
9. 영락장로교회 55,423명 ( 22,147명) (통합)
10. 온누리 장로교회 46,227명 ( 28,436명) (통합)
11. 소망장로교회 44,227명 ( 18,274명) (통합)
12. 명성장로교회 40,014명 ( 15,102명) (통합)
13. 연세중앙침례교회 38,264명 ( 14,227명)
14. 할렐루야교회 30,321명 ( 11,241명) (독립교단)
15. 수영로 장로교회 22,149명 ( 9,426명) (합동)
[출처] 대형교회의 발표교인수와 실제 출석교인수|작성자 바나바
감리교는 웨슬레계열인데 우리나라 대형교회 감리교는 글쎼요. 자유주의라고 보는 것 자체가 아니죠. 그리고 웨슬레 자체도 자유주의가 아니고 복음주의 정도에요. 그리고 기장도 바르트 신학에 자유주의일부 추가아닌가요?
장로교 통합이 신정통주의라고 하는데 바르트 우파의 하나님 주권 강조만 써먹은 거 같네요. 바르트 좌파의 보편적 구원론도 아니구요.
결국 따지고 보면 전체적으로 근본주의 신학이 지배한다고 봐야 맞을 듯 싶네요.
그리고 근본주의 신학은 솔직히 문제가 많은 거죠. 교리자체가 당장 예수에 대한 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에 대해 지옥이라고 밖에 볼 수 없으니깐요. 그것도 영원한 지옥인데 이미 하나님이 지옥갈 사람은 다 예정해놓고 지옥보낸다고 가르치잖아요. 계시론 자체는 이미 충분히 언급을 드렸구요. 그리고 문자주의적 해석이 가지는 문제점은 네오님이 많이 언급했던 같네요.
결과적으로 근본주의 신학의 계시론, 구원론, 해석론 모두 하나님을 폭군 비슷하게 만들어 버리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편협적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죠. 거기다 예정론(신론으로 보기도 하고 구원론으로 보기도 함)은 그 자체로 문제이고 나아가 원죄이야기가 아래 나오던데 이건 인간론도 문제라는 걸 말해주네요. 마지막으로 삼위일체신론은 직접적 근거규정이 변조로 밝혀져버렸구요,
언젠가 제게 노빠도 제 수준정도면 어느정도 참을만 하다고 하신적이 있지요. 제가 이 글을 보고 느낀게 그 비슷한 거네요. 개신교도 흐르는 강물처럼님 정도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되네요. 그렇다고 그 어렵다는 자아비판을 했다고 그러는게 아니라 상식을 생각하시고, 공존을 말씀하시는 그 내용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종교주제에선 지켜야할 기본 예의가 있지요. 남이사 뒷산 너럭바위에 촛불을 켜놓고 치성을 하건 말건, 곰대가리 잘라 막대기에 꽂아놓고 춤을 추건말건, 믿음의 영역에 대해서 누가 왈가왈부한다는건 주제넘은 짓이고, 그것처럼 우스운 짓이 없습니다. 시체말로 전봇대로 이를 쑤시든 뿌시든 뭔 상관이란 거죠. 다만 말씀대로 현재의 다원주의사회에서 자신의 믿음이 다른사람에게, 혹은 공동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을 땐, 그 지점에 대해서만, 전체교리가 아니라 꼭 그 지점에 대해서만 비판을 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거죠. 멀쩡한 사람 죽을 죄 지은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또 그 죄를 대신해줬다고 주장하는거,, 어떡하겠습까. 뭐 그러라고 그럴 수밖에요. 그런데 그 대가를 내놓으라고 하고, 안 주면 또 지옥에 보내버리겠다고 협박하는게 바로 그 지점입니다. 이게 개인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격상되면 더 곤란해지는거죠. 예를 들면 동성애와 관련해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이번에 국립국어원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남녀간의 사랑으로 국한햇다는 뉴스나오고 여론을 보시면 잘 아실겁니다. 기독교가 그런 혐의를 쓰는건 어떤면에서 자초한 면이 있지 않나 합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여론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정도면 지난 세월을 볼때 어쩌면 훨 양반이지 않나 합니다. 삼국에 불교가 유입되고 토착의 무속신앙이 사라진 과정이나, 조선건국후에 유교로 불교가 대체되는 과정이나 어떻게 보면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죠. 그런데 기독교가 유입되는 과정은 약간 다르죠. 지금의 상황이 말을 해줍니다. 물론 옛날과 지금의 시대적인 상황이 다를수도 있겠죠. 왕정하에 국교로써 종교를 세우는것과 지금의 민주정과는 다르고, 무엇보다 문화적인 면이나 교리적인 면에서 상극적인 기독교와 유교의 상호교섭내지는 배척, 면역 등등... 한참 내리썼더니 뭔말을 하는건지 써놓고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좋은 말씀 읽었습니다. 제가 오늘은 덕담이라고 하나 던졌습니다. 덕담 베개삼아 좋은 꿈 꾸세요.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해나 달이나 하늘의 모든 천체와 같은 다른 신들을 찾아가서 섬기고 엎드려 절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이런 일이 있다는 보고를 듣거든, 너희는 그것이 사실인지 들어보고 잘 조사해 보아야 한다. 만일 이스라엘 가운데 누군가가 그같이 불측한 일을 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거든, 그런 못할 짓을 한 자가 남자든 여자든 성문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죽여라. (신명기 17:3~5)
기독교에서 구약은 그대로 실천규범이 되지 않고 재해석한다???
누가 정한 원칙이죠? 그리고 그 원칙이 유효한 근거는 성경에 근거해야 할 것인데 성경의 어느 구절이 그 유효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지요?
구약은 실천규범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왜 십일조를 내라고 하죠? 왜 동성애를 반대하죠? 물론 신약에도 그런 내용이 없지는 않죠. 하지만 구약을 근거로 내세우지 않습니까? 재해석을 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예수나 바울이나 모두 구약을 근거로 하여 가르침을 남긴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구약을 재해석했나요? 그런데 예수는 구약의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죠. 재해석을 의미하는 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그럼 한 가지의 가능성만 남습니다. 예수는 이미 구약에 대한 재해석을 한 후에 자신의 가르침을 준 것이라는 결론이죠.
이게 무슨 말이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를 하실런지는 모르겟습니다. 그러니 결론만 말씀드리죠..
님은 자가당착에 빠지신 것입니다.
자충수를 두셨네요.
언제부터 이런 원칙이 기독교에서 합의 되었으며 이런 원칙이 합의되기 이전의 기독교인은 어떤 식으로 구약을 이해했는지요? 그리고 그들은 천국에 갔습니까 아니면 지옥에 갔습니까?
님도 언젠가는 기독교의 역사에서 성경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역사의 한 안물로 기록될텐데요. 현대의 개신교인들이 로마카톨릭의 면죄부를 비난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덕하님
문제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라도 도킨스같은 이들이(이덕하님같은 분들을 포함해서..) 자신들의 어설픈 종교이해의 수준안에서 헛발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는 것이죠..
카렌 암스트롱이나 테리 이글턴, 촘스키나 힉스, 바지니같은 무신론자들이 왜 도킨스류의 종교이해를 비웃는지.. 그걸 이해하는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그걸 모르는 본인들에게는 어렵겠지만요..)
기독교신앙이라는걸 옹호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한 단어 한 단어에서의 성경의 완전무오함이 전제되어야만 기독교신앙이 시작될 토양이 갖춰진다고 믿는 분들의 극단성을 조금만 뒤집어보면.. 도킨스류들의 극단성과 매우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당장 보세요.. 성경이 심플하게 히틀러의 [나의 투쟁]과 동일시되는 이 단순한 비약에 대해.. 이덕하님은 대체 자신의 말에서 뭐가 문제인지도 못느끼고 계실겁니다..
아침112 /
“카렌 암스트롱이나 테리 이글턴, 촘스키나 힉스, 바지니같은 무신론자들이 왜 도킨스류의 종교이해를 비웃는지”
---> 이름만 대지 마시고,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거나 그들이 쓴 짧은 글을 소개해 주시면 영양가 있는 토론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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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am Chomsky calls Christopher Hitchens and Sam Harris “Religious Fanatics”
http://disinfo.com/2012/08/noam-chomsky-calls-christopher-hitchens-and-sam-harris-religious-fanatics/
Some of Dawkins’ detractors say that he’s a fundamentalist. Noam Chomsky is one such critic. Chomsky has said that Harris, Dawkins and Hitchens are “religious fanatics” and that in their quest to bludgeon society with their beliefs about secularism, they have actually adopted the state religion — one that, though void of prayers and rituals, demands that its followers blindly support the whims of politicians. Dawkins rejects such characterizations. “The true scientist,” he writes, “however passionately he may ‘believe’, in evolution for example, knows exactly what would change his mind: evidence! The fundamentalist knows that nothing will.”
http://www.salon.com/2013/03/30/dawkins_harris_hitchens_new_atheists_flirt_with_islamophobia/
덕하님은 도킨스 같은 아마추어들의 책을 포함해서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이들의 짧지 않은 글들도 분명 읽었겠죠? 사람이란게 자신이 동의하고 찬성하는 이들의 글만큼 그렇지 않은 이들의 글을 읽기 힘든 존재입니다. 하지만 아마추어든 프로든 공부를 업으로 하는 이들은 그 힘듦을 극복해야죠. 마르크스가 속류경제학자들 책들도 열심히 읽은 것처럼요. 도킨스-히친스식의 기독교 이해가 왜 엉터리고 왜 해로운가에 대한 가장 명쾌하면서도 설득력있고 이해가 어렵지 않은 설명은 영어권에서,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가/비평가/작가인 테리 이글턴의 <신을 옹호하다>에 들어 있습니다. 그 책을 이렇게 저렇게 요약한 글들 100개 읽는 것보다 그냥 그 책 구립도서관에서 빌리거나 구매해서 처음서부터 끝까지 차분히 읽는게 덕하님의 기독교에 대한 생각과 장차의 토론이 더 그럴듯한 것이 되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교조적인 작자들 말고 공산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들 가운데 기독교에 덕하님처럼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 이들은 매우 드뭅니다. 아카데미에서도 이미 철학자로 인정받은 지젝은 물론이고 바디우같은 대가도 기독교를 존경하고 활용해야 할 인간해방의 자원으로 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를 그리 대하는 것은 20세기 전반에는 에른스트 블로흐같은 이에 의해 대표되었던 하나의 유구한 전통입니다.
칼도 /
사실 <신을 옹호하다> 한국어판과 영어판을 샀습니다. 왜 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칼도 님이 꼬셔서 샀을 가능성이 꽤 큽니다.
제가 사 놓고 못 읽은 책이 너무 많아서 과연 이 책을 언제 읽고 제 비판을 써서 올릴 수 있을지 암담합니다. 아무래도 지금은 과학 철학과 심리 철학을 공부하는 일에 꽂혀서....
그리고 저는 성경의 문학적 가치, 성경 말씀 중 일부의 진보성, 기독교인들이 이룩한 성과 등을 몽땅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제 성경 비꼬기의 표적은 성경을 신의 말씀으로 보는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쓴 글이며 훌륭한 말도 있지만 당시의 시대적 한계도 반영한다”라고 한다면 제가 왜 부정하겠습니까?
“자본론은 인간이 쓴 글이며 훌륭한 말도 있지만 당시의 시대적 한계도 반영한다”이라는 말에 제가 당연히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를 신으로 보는 지독한 교조주의자가 있다면 자본론을 마찬가지로 비꼴 생각도 있습니다.
이덕하님
지금 대다수의 목사들과 신자들은“성경은 인간이 쓴 글이며 훌륭한 말도 있지만 당시의 시대적 한계도 반영한다”라고 한다면 제가 왜 부정하겠습니까? 이걸 인정하는데요
저역시 인정하고
다만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은 신의 계시를 받아 인간이 썼으며 당시의 시대적 한계도 반영한다라고 이해하고 믿고 있는데
신의 계시를 빼면 기독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기에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면 종교 비판으로 들어가야지요
신학에서도 계시의 점진성이라는 파트가 있고요
신학자들에 대하여 논할 때도 시대의 아들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즉 깔뱅역시 위대하지만 그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고 사실 인간 그 누구도 그 시대를 한 발짝은 앞서갈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대의 제약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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