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 개념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조하라.

 

「기능론: 목적론과 인과론」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400

 

 

 

어떤 나라의 임금이 전반적으로 인상되면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높아진다. 그러면 자본가는 상품을 더 잘 판매할 수 있다. 그러면 과잉 생산 공황(또는 과소 소비 공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러면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여기까지는 좋다. 전반적인 임금 인상이 그런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임금 인상의 이런 효과가 임금 인상의 기능이라고 주장하는 데 있다(나는 이런 주장을 책에서 적어도 한 번은 본 적이 있는데 어느 책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임금 인상이 구매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명제는 엉터리 기능론으로 보인다. 임금 인상이 구매력을 높여서 공황 가능성을 줄인다면 그것은 임금 인상의 부작용(side effect) 즉 효과일 뿐이지 임금 인상의 기능이 아니다.

 

 

 

임금 인상은 보통 개별 기업 수준에서 일어난다. 개별 기업의 자본가는 왜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해 주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두 가지만 살펴 보자.

 

첫째, 노동 조합이 강력해서 열심히 싸울 때 자본가가 어느 정도 양보하기로 결정할 때가 있다. 노동 조합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파업은 자본가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자본가는 쉽게 분쇄할 수 없어 보이는 파업의 경우에는 임금 인상이라는 양보를 선택할 때가 꽤 있다.

 

둘째, 자본가는 노동자를 두고 다른 자본가와 경쟁한다. 노동자는 더 대우가 좋은 기업을 찾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만약 어떤 기업의 임금이 같은 직종인 다른 기업의 임금에 비해 현저히 낮다면 노동자들이 다른 기업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쉽게 구하기 힘든 숙련 노동자가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면 기업은 상당한 타격을 받는다. 이럴 때에는 자본가가 눈물을 머금고 임금을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

 

요컨대, 자본가가 임금을 인상해 줄 때에는 파업을 멈추게 하거나, 노동자 유출을 멈추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자본가는 그 나라 전체 노동자의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임금 인상을 해 주는 것이 아니다.

 

 

 

설사 자본가가 공황에 대해 걱정한다고 하더라도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임금을 인상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임금을 인상해 주면 자기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본가들의 공공재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다. 자본가들이 모두 노동자의 구매력이 높아져야 공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작다라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자기 기업의 임금을 인상하기는 힘들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자기 기업에서 임금을 인상하면 그로 인한 구매력 상승으로 모든 자본가들이 이득을 보지만 비용은 혼자 치른다. 이것은 자본가들이 환경 오염 방지를 위한 장치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런 장치를 잘 가동하면 이득은 모두가 보는데 비용은 자신이 들여야 한다.

 

 

 

자본가가 임금 인상을 해 주는 이유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다. 즉 파업으로 인한 손해나 숙련 노동자 유출로 인한 손해를 막기 위해서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면 결국 전반적인 임금 인상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는 이유는 구매력을 상승시켜 공황을 줄이자라는 생각에 노동자들이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다. 노동자들 개인은 돈을 더 많이 벌고 싶기 때문에 투쟁에 나선다.

 

노동자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즉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파업을 하고, 그런 파업이 벌어졌을 때 자본가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즉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때로는 임금 인상을 해 준다. 만약 한 기업에서 파업이 일어나서 임금이 인상되면 다른 기업 노동자들도 우리도 파업을 하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면 또 다른 파업이 일어나기 쉽다. 이런 도미노 현상 때문에 전반적으로 임금이 인상되면 결국 나라 전체의 노동자 구매력이 상승해서 자본가는 상품을 더 잘 팔아 먹을 수 있다. 노동자도 자본가도 구매력 상승을 위해 애쓰지 않았다. 그리고 구매력 상승을 위한 헤겔식 이성의 간지가 작동했다고 볼 이유도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