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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ders of the Faith (by Slavoj Zizek)

신앙의 변호자들 (슬라보예 지젝)

 

* 출처: <뉴욕 타임즈> 2006312

http://www.nytimes.com/2006/03/12/opinion/12zizek.html

 

FOR centuries, we have been told that without religion we are no more than egotistic animals fighting for our share, our only morality that of a pack of wolves; only religion, it is said, can elevate us to a higher spiritual level. Today, when religion is emerging as the wellspring of murderous violence around the world, assurances that Christian or Muslim or Hindu fundamentalists are only abusing and perverting the noble spiritual messages of their creeds ring increasingly hollow. What about restoring the dignity of atheism, one of Europe's greatest legacies and perhaps our only chance for peace?

 

수 세기 동안 우리는 종교 없이는 우리는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이기적 동물들에 불과하다는, [그 경우] 우리의 유일한 도덕은 늑대 무리의 도덕이라는 얘기를 들어 왔다. 종교만이 우리를 더 높은 정신적 수준으로 승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가 세계 도처에서 살인적 폭력의 원천으로 출현하고 있는 오늘 날, 기독교나 이슬람교나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이 그들의 신조들의 고귀한 정신적 메시지들을 남용하고 왜곡시키고 있을 뿐이라는 확신은 점점 공허한 것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유럽의 가장 위대한 유산들 중 하나이자 아마도 평화를 위한 우리의 유일한 기회일 무신론의 위풍을 되살려 보는 것은 어떨까?

 

More than a century ago, in "The Brothers Karamazov" and other works, Dostoyevsky warned against the dangers of godless moral nihilism, arguing in essence that if God doesn't exist, then everything is permitted. The French philosopher André Glucksmann even applied Dostoyevsky's critique of godless nihilism to 9/11, as the title of his book, "Dostoyevsky in Manhattan," suggests.

 

1 세기 이상 전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다른 작품들에서 도스토프예스키는, 핵심만 간추리자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논하면서, 신 없는 도덕적 니힐리즘의 위험을 경고했다. 프랑스 철학자 앙드레 글룩스만은 심지어, 그의 저서의 제목인 <맨하탄의 도스토프예스키>가 암시하듯이, 도스토프예스키의 신없는 니힐리즘 비판을 9/11에 적용했다.

 

This argument couldn't have been more wrong: the lesson of today's terrorism is that if God exists, then everything, including blowing up thousands of innocent bystanders, is permitted at least to those who claim to act directly on behalf of God, since, clearly, a direct link to God justifies the violation of any merely human constraints and considerations. In short, fundamentalists have become no different than the "godless" Stalinist Communists, to whom everything was permitted since they perceived themselves as direct instruments of their divinity, the Historical Necessity of Progress Toward Communism.

 

이 논변보다 더 그릇된 논변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테러리즘의 교훈은 신이 존재한다면, 수천의 무고한 국외자들을 날려버리는 것을 포함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 적어도 신을 위해 직접 행동한다고 자처하는 이들에게는 그렇다. 왜냐하면, 분명히, 신과의 직접적 연결은 어떤 한갓 인간적인 제한들과 고려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위반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간략히 말하면,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을 그들의 신인 공산주의를 향한 진보의 역사적 필연성의 직접적 도구들로 지각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허용되었던 신 없는스탈린주의 공산주의자들과 다르지 않게 되었다.

 

During the Seventh Crusade, led by St. Louis, Yves le Breton reported how he once encountered an old woman who wandered down the street with a dish full of fire in her right hand and a bowl full of water in her left hand. Asked why she carried the two bowls, she answered that with the fire she would burn up Paradise until nothing remained of it, and with the water she would put out the fires of Hell until nothing remained of them: "Because I want no one to do good in order to receive the reward of Paradise, or from fear of Hell; but solely out of love for God." Today, this properly Christian ethical stance survives mostly in atheism.

 

성 루이가 주도한 7차 십자군 원정 동안, 입스 르 브레통은 오른 손에는 불덩이가 가득한 접시를 들고 왼 손에는 물이 가득한 그릇을 든 채 거리를 배회하는 노파를 만났던 경험을 전하고 있다. 왜 그러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녀는 불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천국을 태워버릴 것이고 물로는 완전히 꺼질 때까지 지옥의 불을 끌 것이라고 응답했다: “나는 아무도 천국의 보상을 받기 위해서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에서 선행을 하기를 바라지 않아요. 오직 신을 사랑해서만 선행을 하기를 바래요.” 오늘날, 이 고유하게 기독교적인 윤리적 입장은 대체로 무신론에서 생존해 있다.

 

Fundamentalists do what they perceive as good deeds in order to fulfill God's will and to earn salvation; atheists do them simply because it is the right thing to do. Is this also not our most elementary experience of morality? When I do a good deed, I do so not with an eye toward gaining God's favor; I do it because if I did not, I could not look at myself in the mirror. A moral deed is by definition its own reward. David Hume, a believer, made this point in a very poignant way, when he wrote that the only way to show true respect for God is to act morally while ignoring God's existence.

 

근본주의자들은 신의 의지를 충족시키고 구원을 획득하기 위해 그들이 선행으로 지각하는 것을 행한다; 무신론자들은 단순히 행해야 할 올바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행한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도덕 경험이 아닌가? 내가 하나의 선행을 행할 때, 나는 신의 호감을 살 목적으로 행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거울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행한다. 도덕적 행위는 정의상 그 자체로 하나의 보상이다. [기독교] 신자였던 데이비드 흄은, 신에 대한 진실한 존중을 보이는 유일한 방도는 신의 존재를 무시하면서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것이라고 썼을 때, 이 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Two years ago, Europeans were debating whether the preamble of the European Constitution should mention Christianity as a key component of the European legacy. As usual, a compromise was worked out, a reference in general terms to the "religious inheritance" of Europe. But where was modern Europe's most precious legacy, that of atheism? What makes modern Europe unique is that it is the first and only civilization in which atheism is a fully legitimate option, not an obstacle to any public post.

 

2년 전 유럽인들은 유럽 헌법의 전문(前文)이 기독교를 유럽 유산의 한 핵심 성분으로 언급해야만 하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 이런 경우 으레 그렇게 하듯이, 절충안이 채택되었다. 일반적 용어들을 써 유럽의 종교적 유산이라는 언급이 들어갔다. 그러나 근대 유럽의 가장 귀중한 유산, 즉 무신론이라는 유산은 어디에 있는가? 근대 유럽을 독특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유럽이 무신론이 완전히 정당한 선택지인, 어떤 공직 임용이나 선출에 대해서도 불가조건이 아닌 첫 문명이자 유일한 문명이라는 점이다.

 

Atheism is a European legacy worth fighting for, not least because it creates a safe public space for believers. Consider the debate that raged in Ljubljana, the capital of Slovenia, my home country, as the constitutional controversy simmered: should Muslims (mostly immigrant workers from the old Yugoslav republics) be allowed to build a mosque? While conservatives opposed the mosque for cultural, political and even architectural reasons, the liberal weekly journal Mladina was consistently outspoken in its support for the mosque, in keeping with its concern for the rights of those from other former Yugoslav republics.

 

무신론은 위해서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유럽 유산이다. 특히 그것이 신자들을 위해 안전한 공적 공간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렇다. 헌법 전문을 둘러싼 논전이 들끓었을 때 내 조국인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냐에서 시끌벅적하게 일어났던 논란을 고찰해보자: 무슬림들 (대개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들로부터의 이주노동자들)이 모스크 사원을 짓는 것을 허용해야 하는가? 보수주의자들이 문화적, 정치적 및 심지어 건축적 이유들을 들어 반대했던 반면, 자유주의적인 주간 저널 <믈라디나>, 다른 이전 유고슬라비아 공화국 출신자들의 권리에 대한 그것의 관심에 일치해서, 일관되게 찬성을 큰 소리로 외쳤다.

 

Not surprisingly, given its liberal attitudes, Mladina was also one of the few Slovenian publications to reprint the infamous caricatures of Muhammad. And, conversely, those who displayed the greatest "understanding" for the violent Muslim protests those cartoons caused were also the ones who regularly expressed their concern for the fate of Christianity in Europe.

 

그것의 자유주의적 태도들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은 아닌데, <믈라디나>는 또한 악명높은 무하마드 캐리커쳐들을 재수록 했던 소수의 슬로베니아 출판물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역으로, 그 카툰들이 유발했던 무슬림들의 폭력적 항의에 대해 가장 큰 이해를 보여주었던 출판물들 또한 유럽에서의 기독교의 운명에 대해 계속 관심을 표현했던 그 출판물들이었다.


These weird alliances confront Europe's Muslims with a difficult choice: the only political force that does not reduce them to second-class citizens and allows them the space to express their religious identity are the "godless" atheist liberals, while those closest to their religious social practice, their Christian mirror-image, are their greatest political enemies. The paradox is that Muslims' only real allies are not those who first published the caricatures for shock value, but those who, in support of the ideal of freedom of expression, reprinted them.

 

이 기묘한 동맹은 유럽의 무슬림들에게 어려운 선택을 요구한다: 그들을 이급 시민들로 전락시키지 않으며 그들에게 그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표현할 공간을 허용하는 유일한 정치세력은 신 없는무신론적 자유주의자들인 반면, 그들의 종교적 사회적 관행/실천에 가장 가까운 정치세력, 즉 그들의 기독교적 거울이미지는 그들의 가장 큰 정치적 적들이다. 역설은 무슬림의 유일한 진정한 동맹자들은 충격 가치를 위해 그 캐리커쳐들을 최초로 실었던 이들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는 이상을 지지해 그것들을 재수록 했던 이들이라는 것이다.

 

While a true atheist has no need to boost his own stance by provoking believers with blasphemy, he also refuses to reduce the problem of the Muhammad caricatures to one of respect for other's beliefs. Respect for other's beliefs as the highest value can mean only one of two things: either we treat the other in a patronizing way and avoid hurting him in order not to ruin his illusions, or we adopt the relativist stance of multiple "regimes of truth," disqualifying as violent imposition any clear insistence on truth.

 

진실한 무신론자가 신성모독적인 말들로 신자들을 도발하는 것에 의해 그 자신의 입장을 떠받들 필요가 없는 반면, 그는 또한 무하마드 캐리커쳐들의 문제를 타인의 믿음들에 대한 존중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을 거부한다. 타인의 믿음들에 대한 존중을 최고의 가치로 놓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만을 의미할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후원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취급하며 그의 환상들을 깨지 않기 위해 그를 상처주는 것을 피한다. 또는 우리는, 진리에 대한 어떤 분명한 강조도 폭력적 강요라고 기각하면서, 복수의 진리체제들이라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채택한다.

 

What, however, about submitting Islam together with all other religions to a respectful, but for that reason no less ruthless, critical analysis? This, and only this, is the way to show a true respect for Muslims: to treat them as serious adults responsible for their beliefs.

 

그런데, 이슬람을 - 모든 다른 종교들과 더불어 - 존중적인,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덜 가차없지는 않은, 비판적 분석에 회부하는 것은 어떤가? 이것이, 그리고 오직 이것만이, 무슬림들에 대한 진실한 존중을 보여주는 방도이다. 그들을 그들의 믿음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진중한 어른들로 취급하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