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교 다닐 땐 매우 친했던 동아리 후배와 거의 5년만에 대화를 했습니다. 최근 5년여 동안 연락이 없었던 이유는 저는 독일, 그 친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나오는 바람에.. 조금씩 소원해 지게 되었다는. 근데 저는 사실 그 5년 동안 변한 게 별로 없다고 보는데 그 친구는 그 동안 많이 변했더군요. 우선 뭐 가정을 만들고 아이 둘 낳은 아빠가 되었다는 거야 축하해 줄 일이고..근데 오늘에서야 안 사실인데 이 친구가 그동안 골수(?) 기독교 인으로 변신을 했더라구요. 건축하는 친구이고 유학 나오기 전에 저랑 친하게 지낼 때는 사실 그런 기미가 전혀 없었고, 본인 스스로도 전에는 기독교 안티였다고 말할 정도 였으니, 뭐 저도 많이 놀랬어요. 사실 전에는 둘 사이에 흉금 없이 터놓고 말하던 사이라 이번엔 대놓고 저한테 전도를 하려고 하더군요.. 덕분에 두 어시간 좀 땀을 뺐는데.. 뭐 저야 전에도 다른 친구들이나 지인한테서 전도도 받아본 적도 있고, 옛날에는 한때 좋아했던 처자 따라서 교회도 가본적이 있어놔서...그렇긴 했지만.. 뭐랄까 교회의 교리 자체는 저한테 참으로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던 대화 였다고나 할까요.. 얼핏 아침 112님 같은 분은 어렸을 때 삼촌들한테 맞아가면서 까지 교회에 나가셨다고 하니..뭔가 자신의 성향에 맞는 종교적 믿음을 갖게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여튼 오늘 이 친구한테 들은 것도 있고 제가 궁금한 것도 있고 해서 그냥 물어봅니다. 


 1. 왜 교회는 죄를 저지른 특정인이 아닌, 인간 모두가 죄인이라고 말하는가? 


 사실 가장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예요. 정확히 인간이 죄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뜻이 뭔가요? 아담과 하와가 뱀이 준 선악과를 먹고, 근데 그 뱀이 <이 사과를 먹으면 너희들은 신처럼 될 수 있어> 라고 하면서 유혹을 하였다고 하더군요. 결국 <아담과 하와가 신에게 저지른 교만의 죄> 를 그 자손들이 대대손손이 물려받아온거고, 그래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죄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예수님이 그 죄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셨다.. 요게 근본 교리 아닌가요? 제 후배 말로는 자기도 처음엔 믿지 않았다가, 기도를 계속 하면서 어느 한 순간 <내가 죄인이구나> 라고 깨달았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이게 지식으로 전달이 되는 영역이 아니라 마음, 느낌, 영적으로 전달되는 영역이라 그 친구 표현을 빌리자면 <올리고 있는 가드를 내리지 않으면> 그 느낌, 그 영적인 진리가 안 들어온다고 하더라구요. 교회를 믿기 전까지 자신은 <죄로 인해 더럽혀진 존재> 였다고 하더라구요. 본인 스스로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과거형으로 말한 거 보면 지금은 그 죄를 씻어 냈다고 믿는 거 같았어요. 


 제가 <머리로만>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왜 기독교가 <원죄> 라는 도그마를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가더라구요. 이를테면 이런 거지요. 불교에서도 <인생은 고해> 라고 규정하고, 그 고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견성>을 통해서 <해탈>을 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근데 이 교리 자체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 교리처럼 도그마화 되어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에서는 <지식>이 아닌 <영>을 통한 깨달음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문제는 그 영적인 깨달음이라는 것이 어느 한 순간에 <지식의 가드를 내리고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부터 시작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불교의 고해/견성/해탈의 교리와 기독교의 원죄/속죄/구원 교리를 비교해 보면, 적어도 불교에서는 인생은 고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영적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하지 않거든요. 그냥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 가면서 고- 즉 자신의 현재의 고통-를 이루는 인과적 요소들을 스스로 발견해 내고, 그것을 또 객관화 시켜나가면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와지라고 가르치는 것 같아요. 여기는 사실 신화적인 설명이 필요가 없는데, 기독교에서는 불교 교리와는 달리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내가 왜 짓지도 않은 죄를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인지> 라는 물음에 대해 기독교가 신화적인 설명 밖에 할 수 없다면,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지식이나 논리가 아닌 그냥 영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면, 그건 좀 문제가 많이 있는 것 아닌가요? 예컨대 저는 불교에서도 고해/견성/해탈 교리를 기독교에서 하는 것처럼 사유가 아닌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가드를 내린 채>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쳤다면, 불교의 교리를 마찬가지로 거부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그 어떤 성경 말씀이나 다른 교리들보다도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이런 기독교의 제일 전제를 받아들이고 사는 것인지 제일 궁금합니다. 제 후배와 영화 <밀양> 이야기도 잠깐 했습니다만, 그 영화에 나오는 살인범 처럼. 아이를 유괴한 살인범이라도 하나님이 용서해주면 자신의 죄가 다 용서가 되고 마음의 평화 - 심지어 죽은 아이 엄마인 전도연 앞에서도 태연할 수 있는 마음의 평화- 가 찾아올 수 있는 것인가요? 도대체 기독교인들에게 자신이 지은 죄를 대신 씻겨 주는 나와 다른 영적 존재가 있고, 그 존재를 통해 나는 그 죄로부터, 그 죄의 피해자들과는 상관 없이 직접적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적인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요? 이건 인간들에게 짓지도 않은 죄가 있다고 인간의 죄의식을 끊임없이 자극하면서, 그 죄의식 컴플렉스를 자신의 교세 확장의 제일 수단으로 사용하고, 정작 자신의 실제로 지은 죄에 대해서는 눈감게 만드는, 다시 말해 다수의 선한 자를 죄인으로 몰아 넣고, 소수의 가해자 - 즉 실제적인 의미의 죄인들 - 에게 속죄의 알리바이를 내려 주는, 매우 불합리하고 기만적인 메커니즘 아닌가요? 


 어쩌보면 너무 초보적인 질문일 수 있지만, - 한편으론 또 교인분들 입장에서는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 제가 <일반 지식과 논리>의 수준에서 느끼는 이런 불합리함과 모순들을 교인분들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계시지만  영적인 감화를 통해 극복하고 계신 것인지, 아니면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여기에 아무런 모순도 없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제가 기독교의 원죄 교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물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