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 사회계약론의 한 가지 판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판본에 따르면 어느 날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해서 이런 결론을 내린다: 만약 우리가 규범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식으로 계속 살아간다면 우리 공동체는 멸망할 것이다. 그러니까 살인, 폭행, 사기, 강간 등을 금지하는 규범을 만들어서 지키자.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규범을 제정했으며 대체로 그런 규범을 지키기 시작했다.

 

이런 식의 설명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어느 날 이전까지는 규범이 없이 살았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그 공동체는 그 어느 날까지도 멸망하지 않았다. 둘째, 규범이 없으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라는 식의 생각을 할 것 같지 않은 하등 동물들도 대체로 규범을 지키며 사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여러 종에서 짝짓기를 위해 수컷끼리 힘겨루기를 할 때 보통 힘만 겨룰 뿐이고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한 쪽이 패배를 선언하면 더 이상 공격하지 않는다.

 

어쨌든 잠시 그런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보자. 이 설명에 따르면 사람들은 규범이 없으면 공동체가 멸망한다는 추론을 한다. 규범을 지키지 않고 서로 마구 폭행하거나 살인을 하는 사회에 비해 규범을 어느 정도 지키는 사회가 멸망할 가능성이 적다는 추론은 합리적이다. 이 추론은 사람들의 뇌에서 일어난다. 이런 추론의 합리성은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기능론적 사회학에서는 규범이 없으면 사회가 망하기 때문에 규범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만약 기능론적 사회학자가 기독교인이라면 규범이 없으면 사회가 망하기 때문에 신이 규범을 만들어서 인간에게 가르쳤다 또는 규범이 없으면 사회가 망하기 때문에 신이 규범을 지키도록 인간을 설계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능론적 사회학자 중에서 이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신학에 의존하는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없다.

 

규범에 대한 기능론적 사회학의 설명이 인과론적 설명이 되기 위해서는 위에서 소개한 사회계약론의 한 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즉 사람들이 규범이 없으면 사회가 망한다라는 합리적 추론을 했기 때문에 규범이 존재하게 되었고 유지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집단 선택론자는 어떤 면에서는 위의 설명과 상당히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규범을 잘 지키지 않는 집단이 규범을 잘 지키는 집단에 비해 더 자주 절멸했다. 규범을 잘 지키지 않는 집단의 개인 안에 있는 유전자는 대체로 규범을 잘 지키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다. 반면 규범을 잘 지키는 집단의 개인 안에 있는 유전자는 대체로 규범을 잘 지키도록 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다. 규범을 잘 지키도록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가 개체군 내에서 퍼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 유전자를 품은 개인이 속한 집단이 덜 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모종의 합리성이 개입된다. 하지만 그 합리성은 개인의 뇌에서 추론된 것이 아니다. 의인화를 하자면 추론은 자연 선택이 했다.

 

 

 

좀 다른 예를 들면 개인의 뇌에서 벌어지는 추론자연 선택의 추론의 차이를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인간은 왜 밥을 먹고 성교를 하나? 밥을 먹고 성교를 해야 번식할 수 있다. 이것은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렇다면 이 추론은 누가 한 것일까? 사람들이 맞아. 밥을 먹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되기 때문에 번식을 할 수 없어. 그리고 성교를 하면 번식이 안 되지. 그러니까 나는 번식을 하기 위해 밥을 먹고 성교를 해야 되겠군.이라고 생각하면서 밥을 먹고 성교를 할까? 아니다. 그냥 배가 고프고 성교가 땡기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고도의 합리적 추론을 할 것 같지 않은 갓난아기와 하등 동물도 열심히 먹는다.

 

다시 한번 의인화를 하자면 여기에서 추론은 자연 선택이 했다. 밥을 먹도록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가 밥을 먹지 않도록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에 비해 유전자 풀(gene pool)에서 더 잘 퍼졌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식욕이라는 기제가 진화해서 유지된 것이다. 성 충동이라는 기제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진화 심리학자의 뇌 속에서 밥을 먹고 성교를 해야 번식을 잘 할 수 있다는 식의 추론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진화 심리학자도 밥을 먹고 성교를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배가 고프고 성교가 땡기기 때문이지 밥을 먹고 성교를 해야 내 몸 속에 있는 유전자가 더 잘 퍼진다. 나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이제 밥을 먹고 성교를 해야지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번에는 규범 사회계약론의 다른 판형을 소개하겠다. 이 판형에 따르면 어느 날 사람들은 규범에 대해 토론을 한다. 하지만 이 때에 사람들의 뇌 속에서는 위의 판형과는 다른 일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속으로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만약 규범이 없으면 남들이 나와 내 가족을 폭행할 수도, 강간할 수도, 살인할 수도 있겠군. 규범이 있는 것이 나의 이해 관계에 도움이 되니까 규범을 만들자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야지. 그리하여 사람들은 규범을 만들어서 대체로 지키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합리적 추론은 뇌 속에서 일어났다.

 

 

 

첫 번째 판형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고려해서 규범을 만들었으며 이것은 규범의 집단 선택론과 닮았다. 두 번째 판형에는 개인의 이익을 고려해서 규범을 만들었으며 이것은 규범의 개체 선택론과 닮았다. 규범의 개체 선택론은 내가 좋아하는 설명이다. 나는 집단 선택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단 선택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집단 선택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222

 

규범의 개체 선택론에 따르면 규범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사람이 그렇지 않고 툭 하면 규범을 어긴 사람에 비해 집단 내에서 더 잘 번식했다. 규범을 마구 어기는 사람은 결혼 시장과 우정 시장에서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잘 번식하기 힘들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부족에서 쫓겨나거나 사형 당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규범을 어느 정도 잘 지키도록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가 개체군 내에서 퍼지게 되었다. 또는 규범을 마구 어기도록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는 개체군에서 퇴출되었다.

 

여기에서 내가 규범을 잘 지키지 않으면 남보다 잘 번식할 수 없다는 추론이 개인의 뇌 속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무지막지한 의인화를 또 해보자면 그런 추론은 자연 선택이 했다.

 

 

 

2011-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