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심리 기제, 생각, 행동은 모두 자연 선택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연 선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자연 선택에서 기원했고 무엇이 문화에서 기원했는지 따지는 것은 이런 면에서 의미가 없다. 문화 자체가 자연 선택의 산물인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본성/양육, 생물학적/문화적 이분법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과 간접적 산물을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의 시각 기제는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 즉 적응이다. 우리의 조상들 중에 더 잘 보았던 이들이 그렇지 못했던 이들에 비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인간의 눈은 고도로 정교하게 진화했다. 양자역학은 자연 선택의 간접적 산물 즉 부산물이다. 우리의 조상들 중에 양자역학을 더 잘 이해했던 이들이 그렇지 못했던 이들에 비해 더 잘 번식했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양자역학은 20세기에 생겼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은 뭔가 다른 이유들 때문에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심리 기제들이 작동한 결과일 뿐이며 시각을 위한 심리 기제가 진화했듯이 양자역학을 위한 심리 기제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것은 아니다.

 

 

 

인류 보편적인 규범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첫째, 무고한 내집단(부족, 공동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나쁘다.

둘째, 내집단 여자를 강간하는 것은 나쁘다.

셋째, 내집단 사람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것은 나쁘다.

넷째, 무고한 내집단 사람을 폭행하는 것은 나쁘다.

다섯째,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내집단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나쁘다.

여섯째, 자신이 큰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면 심각한 위험에 처한 내집단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런 규범들은 시각 기제처럼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인가, 아니면 양자역학처럼 자연 선택의 간접적 산물인가? 살인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웬만하면 살인을 하지 않고 남이 살인을 하면 도덕적으로 분노했던 우리 조상들이 그렇지 않았던 이들에 비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우리가 살인은 나쁘다고 믿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것일까? 아니면 모종의 사회화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믿는 것일까? 나는 전자의 가설이 더 가망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내가 왜 그렇게 믿는지 그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하겠다. 나는 규범의 적응 가설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유력한 가설로 인정 받을 정도는 된다고 본다.

 

 

 

첫째, 인류 보편성 자체가 인간 본성임을 암시한다.

 

시각 기제는 인류 보편적이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색을 3차원으로 보고, 어떤 문화권에서는 2차원으로 보고, 어떤 문화권에서는 4차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소수의 예외(시각 장애인, 색맹)를 제외하면 모든 문화권에서 모든 사람들이 색을 3차원으로 보기 때문에 빛의 3원색(빨강, 녹색, 파랑)이 있어야 인간이 보는 색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적록 색약의 경우에는 2원색(빨강, 녹색)만 있어도 그 사람이 보는 색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 완전 색맹의 경우에는 1차원으로 색을 보기 때문에 1원색으로 그 사람이 보는 색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

 

반면 양자 역학은 일류 보편적이지 않다. 20세기 이전에는 어떤 문화권에도 양자역학이 없었다. 또한 21세기에도 여러 원시 문화권에서는 양자역학에 대해 전혀 모른다.

 

위에서 나열한 규범들이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보편성이 나타나는지 대안적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우연히 모든 문화권에서 그런 규범들이 나타나고 계속 유지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둘째, 동물 사회에도 규범이 있다. 예컨대 침팬지 사회에는 서열의 규범과 소유권의 규범이 있다. 사냥으로 잡은 고기의 경우에는 소유권이 존중되어서 서열이 높고 힘이 센 침팬지도 남의 고기를 빼앗지 않는다. 대신 구걸을 한다.

 

인간 사회의 규범이 인간의 고도의 사고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왜 동물 사회에도 규범이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게다가 왜 동물 사회의 규범과 인간 사회의 규범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는지까지 설명해야 한다. 침팬지 사회의 서열의 규범 및 소유권의 규범은 인간 사회의 그것들과 상당히 비슷하다.

 

침팬지의 시각 기제와 인간의 시각 기제가 상동(homology)임을 의심하는 진화론자는 없어 보인다. 서열의 규범이나 소유권의 규범을 처리하는 침팬지의 심리 기제와 인간의 심리 기제가 상동일 가능성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셋째, 모종의 사회계약론을 끌어들여 규범의 기원을 설명하는 시도들은 다 가망성이 없어 보인다. 적어도 나는 가망성이 있어 보이는 설명을 본 적이 없다.

 

 

 

넷째, 언어의 경우와 비슷하게 어린이들은 자신이 배운 것에 비해 규범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것 같다.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는 이것을 자극의 빈곤이라고 불렀다. 환경에서 제공하는 빈곤한 자극(정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에 비해 아이들이 언어를 너무 잘 구사한다는 이야기다. 말을 하려면 엄청나게 복잡한 정보 처리가 필요하다. 만약 언어와 관련된 선천적 지식이 없다면 주변에서 제공하는 정보만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이다.

 

도덕 판단의 경우에도 그에 버금가는 복잡한 정보 처리가 필요한 것 같다. 예컨대 살인은 나쁘다, 강간은 나쁘다라는 단순한 명제로는 살인이나 강간과 관련된 도덕적 판단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살인은 강간보다 더 나쁘다와 같은 명제도 필요하며, 정당 방위와 같은 예외 조항도 필요하다. 그리고 의도적이며 계획적 살인과 폭행 치사나 과실 치사도 구분해야 한다. 나는 규범과 관련된 이런 온갖 복잡한 사정들에 대한 정보를 인간 사회에서 모두 제공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인간이 자라면서 살인, 강간, 폭행, 절도, 거짓말 등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나쁜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몽땅 제공 받지는 않는 것 같다.

 

 

 

다섯째, 인간은 자신이 왜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시각 기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왜 그런 도덕적 판단을 내렸는지 설명해 보라고 질문하면 사람들은 조리 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도 모른다고 실토한다. 이런 현상을 도덕적 어리둥절함(moral dumbfounding)이라고 하는데 조너떤 하이트(Jonathan Haidt)가 이 방면에서 유명하다.

 

 

 

여섯째, 도덕적 판단은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내려진다. 이것은 인간의 시각 기제가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자동적으로 빨리 작동한다고 해서 선천적 기제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피아노 연주, 타자, 암산에 능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런 과업들을 아주 빠르고, 자동적으로, 그리고 상당 부분 무의식적으로 수행한다. 피아노 연주, 타자, 암산 등이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이 아님은 명백하다.

 

 

 

일곱째, 규범에는 진화의 논리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 번식에 더 심각한 해를 끼칠수록 더 나쁘다고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살인이 강간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살인 당하면 강간 당하는 경우보다 번식에 더 심각한 차질이 생긴다. 사람들은 강간이 성추행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강간 당하면 성추행 당할 때보다 번식에 더 심각한 차질이 생긴다.

 

이런 현상을 피해자가 당하는 고통이 클수록 도덕적으로 더 나쁘다라는 식의 원칙으로 몽땅 설명할 수는 없다. 예컨대 불시에 머리에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지만 살인은 가장 나쁜 범죄로 생각된다. 출산에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지만 남편이 아내를 임신시켰다고 그 자체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2011-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