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한심하고 답답한 일을 많이 봅니다. 논리에 맞지 않게 옆 사람 허벅지 긁는 류의 사람들 얘깁니다. 요즘 광우병 소 수입 찬성 세력들과 무상급식 투표추진세력들 때문에 느낀 겁니다.


광우병 소 수입반대 촛불시위를 비난하고 수입을 찬성했던 사람들이 문제의 본질을 모르고 자기들이 옳았다고 의기양양하게 아직도 떠들고 있더군요. 그 사람들은 ‘아직까지 광우병 걸린 사람들이 없지 않았느냐 그러니 너희들이 틀린 거 아니냐?‘라고 주장합디다. 나는 그런 주장이 너무 한심해 반박할 가치조차 없기에 가만히 있었지만, 이번에 무상급식 문제에서도 유사한 주장이 일어나고 있기에 한마디 하렵니다.   


광우병 소 수입 논란의 핵심은 광우병 걸린 소가 안전한가 안 한가가 아닙니다. 그건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왜 우리 돈을 주고 우리가 원치 않는 소를 수입해 먹어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식량주권이나 구매주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원한다면 광우병 소든 구제역 소든 얼마든지 수입해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이 반대하는 식품을 단지 강대국의 압력 때문에 이명박 정권이 수입하려는 것을 반대한 겁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서 ‘광우병 소 먹었는데도 아직까지 괜찮으니 너희들이 잘 못했다’라고 주장한다면 쪼다 밖에는 안 되는 거지요.


이번 무상급식문제도 그렇습니다. 누구는 ‘전면적 무상급식 같은 복지 포퓰리즘은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포퓰리즘은 주관적으로 판단할 문제이기에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로 주민투표를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차별적 무상급식과 전면적 무상급식 사이에서 별 선호차가 없습니다. 애들이 밥만 먹는다면 못사는 집 애들만 무상으로 먹든 재벌집 애들까지 무상으로 먹든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예산을 조금 더 쓰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어차피 재벌들도 세금은 내니까 그들 아이들도 그 정도의 복지(?)는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는 급식비를 내야하고 누구는 무상으로 먹을 수 있고를 따지는 것이 위화감이나 선별에 따르는 업무적 비용을 발생시킬 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걸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막대한 비용을 낭비하면서 주민투표까지 하려는 오세훈과, 조중동에 주민투표를 지지하는 글을 쓰는 논객들이 한심하다는 겁니다.


주민투표를 해야 할 만큼 중차대한 사안도 아닌데, 이미 시의회에서 부결되었든 통과되었든 결정이 났으면 그대로 따르면 된다는 말입니다. 만약 그 문제가 주민투표에 붙일 만큼 중대한 문제였다면 의회의 결정을 보면서 기회주의적으로 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주민투표로 갔어야하지요. 오세훈의 논리대로 그게 나쁜 복지 포퓰리즘이고 주민투표까지 해야 할 만큼 중요한 문제라면 주민투표가 아니라 국민투표를 해서 전국적으로 발 못 붙이게 해야죠.


설사 그게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합시다. 그렇게 따지면 복지 포퓰리즘이 한 두 가지인가요. 선거철만 되면 골목에 멀쩡한 보도블럭 새로 까는 것은 쓸데없고 낭비적인 복지 포퓰리즘이죠. 그러나 무상급식은 적어도 쓸데없고 낭비적인 포퓰리즘은 아니잖습니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 포퓰리즘이라고 물고 늘어지며 주민투표까지 몰고 가는 오세훈이가 포퓰리즘을 쓰는 거지요.

   

그런데 아직도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 전면적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이냐 아니냐‘만을 따지는 헛 다리 긁는 아저씨, 아줌마들을 보노라면 더운 날씨에 더 더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