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에 공무원 생활을 좀 할 때... 가끔씩 대강당에 전직원을 모아놓고 ‘특별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대개는 '4대강이 환경에 미치는 이익'. '현정부의 외교적 성과 및 그 전망' 식으로 제목만 들어도 한숨이 절로 나는 수준의 강연이 대부분이었는데 (물론 공식적으로 낮잠이 허용되는 시간인 만큼 참가를 싫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 어느 날 강연 제목이 '공무원이 언론 및 기자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었다. 이건 약간 흥미를 끌만한 주제인지라 그때만큼은 어느 정도 기대를 갖고 강당으로 들어갔다. 강사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무슨 전직 기자 출신으로 고위공무원에 특채된 사람이었던 듯 한데... 아무튼 기대와 어긋나게도 강의 내용은 대부분 일반적인 홍보학 원론을 지루하게 나열하고 있어서 얼마 안 되어 다시 이를 수면 보충시간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무슨 일로 잠이 깨었을 때 들리는 소리가 이거였다. "그러니까 기사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억울하게 느껴지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기자들과 싸우려 들면 안됩니다. 술도 사주고 달래가면서 사실관계만 잘 얘기하세요. 물론 그렇다고 바로 정정기사가 나갈 거라고 기대하진 마세요. 하지만 기자들도 사람이니까 미안한 마음은 속으로 갖게 될 겁니다. 그러면 곧 먼저 기사를 보충할 만큼 여러분에게 유리한 기사가 다시 나오게 됩니다." 순간 잠이 확 달아나며 아니 이 XX가 미쳤나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기자는 운동경기에서 심판이라 이거지? 내가 알기로 심판의 판정은 한번 내려지면 절대 번복될 수 없기 때문에 스트라이크를 볼이라고 판정하는 등 한 쪽 팀에 유리하게 오심을 내린 ‘양심적인’ 심판들은 다음 번엔 이를 보충하기 위해 반대쪽 팀에 유리하도록 고의적인 오심을 다시 한다더군...

전에 진중권이 "호남 전체에 민노당원이 300명 밖에 안된다. 이건 정신병 수준이다"라는 말을 해서 엄청나게 욕을 먹은 적이 있다. 호남과 영남은 기업이나 노동자 수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점은 제쳐두고... 우선 문제는 당시에 호남 민노당원이 300명이란 말 자체가 전혀 근거없는 유언비어라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공식 통계를 들이대며 그 말이 틀렸다는 사실을 수십 차례나 확실히 보여주었는데도 그는 계속 빈정거리거나 욕설로 넘어가며 끝내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 내가 관심법은 없다만 진중권의 속마음이 다음과 같았을 것이라는 것은 거의 장담할 수 있다. 그는 그 전까지 사회의 기득권 세력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발언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영남 세력의 비판이 주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인기를 얻고 나서 보니 자신의 지지세력이 호남인들이 주류가 되는 사태가 그에게는 부담이 되어 왔다. 누구나 웬만큼 높은 지위에 오른 다음엔 자신이 모든 세력에게 공정하다는 소리까지 듣고 싶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자신이 호남인도 욕할 수 있다는 걸 보이기 위해 어디서 주워들은 소리를 가지고 호남을 깠다. 그런데 그게 엉뚱하게 틀린 자료였다. 그 때문에 난리가 나고 욕이 들어온다. 이제 자존심 문제도 있고 화가 난다. '아니, 틀린 말 좀 할 수도 있는 거지. 내가 지금까지 지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싸워줬는데 그건 생각도 안 하고 말 한마디 때문에 이렇게까지 나를 적대시하다니... 이 문제만 그냥 넘어가면 내가 어련히 알아서 나중에 저희들에게 좋은 소리도 해줬을 텐데 말야. 가만있자. 지금까지 영남인들은 내가 아무리 욕해도 별 반응 없었는데 호남인들은 내 말한마디 때문에 저렇게 X랄한단 말야. 이거 아무래도 저쪽 종자들은 근본적으로인성이 틀려먹은 거 아냐?'

우석훈이 "민주당 대표가 호남 출신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란 소리를 했는지 아닌지, 그리고 했다면 어떤 의도로 그런 소릴 했는지 나는 모르겠다. 어쩌면 위에 진중권이 한 말과 비슷한 배경이 있었는지도 모르지. 자, 박노자 우석훈 진중권 등이 반호남적 발언을 했다 치자. 위의 내 해석이 맞다면 이건 그들이 근본적으로 ‘호남적대적 성향’을 가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 게시판에 그들이 호남적대적 성향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나?) 하지만 당하는 호남인의 입장에선 그들의 무슨 생각으로 반호남적 발언을 했는지는 알 바가 아니다. 중요한 건 반호남적 발언을 했는지, 했더라도 사실에 근거해서 했는지 그것이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발언이면 100번의 영남 비판 (립서비스이건 아니건)에 이어서 딱 한번 나온 말이라 할지라도 그 한번은 너무 많은 것이다.

모르겠다... 전에 한윤형은 강준만과 진중권을 비교하면서 일단 자기 편이라고 간주하면 그의 모든 발언을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하다가 적으로 간주한 후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까기 시작하는 입장 (강준만)과 적이건 자기 편이건 자신이 보기에 조금이라도 틀린 소리를 하면 온갖 방법을 써가면서 가차없이 조롱해대는 입장 (진중권)을 비교분석한 적이 있었다. 이 두 자연인이 정말 이런 입장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위에 쓴 진중권의 속마음에 대한 내 해석은 그에 대한 한윤형의 분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