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잠깐 짬내 쓰다가 바빠서 비밀 글로 돌렸는데 수 많은 분들이(무려 두분 ^^ V) 잔뜩 기대하고 있어 부담이 팍팍 되고 있습니다. 사실 다 아는 이야기라서.

아무튼, 요즘 유시민 좀 안스럽습니다. 올해초던가, 이정희에게 정치는 뱀처럼 교활할 필요가 있다고 훈계할 때까지 그는 좋았을 겁니다. 폼 났죠. 그리고 고래를 잡는 새우의 꿈도 꿨겠죠. 

요즘에야 밝혀졌지만 그 직후부터 국참당 핵심과 이정희 측이 빈번히 만남을 갖기 시작했습니다..(당원이 주인인 당에서 그래도 되냐고 화낼 분 있겠지만 잠시 참읍시다. 그리고 솔직히 아이큐 세자리인 분중에서 그렇게 믿고 있던 사람도 없잖아요? ^&^)  당시 양 측의 꿍꿍이도 이제 알 사람 다 압니다. 간단히 말해 민노당은 리버럴(?) 진영으로의 지지 확대를 위해 당시 야권의 유력주자인 유시민의 대중적 인기가 필요했고 반면 유시민으로선 민주당과의 단일화 딜을 위해 진보진영의 조직력과 세가 필요했죠.

좋게 말해 이렇고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민노당은 2012 대선 이후 국가 운영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리고 유시민은 대권 단일화에서의 승리를 위해서였죠. 이를 위해 딴에는 치밀한 전략을 구사합니다. 가령 김해을 단일화가 그렇습니다. 기어이 김경수 주저앉히고 민주당과의 여론조사 단일화를 고집한 것, 그건 이후 대권 단일화에서의 전례를 남기기 위해 그랬을 겁니다. 여론조사로 갈 경우 영남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면 충분히 대선 후보 단일화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봤겠죠. 물론 여론조사에서 유시민을 찍은 사람이 막상 대선에선 돌아설 가능성이 높지만...그건 추후 문제.

많은 사람이 오늘자 중앙일보 인터뷰에 실린 유시민의 '불출마 할 수도 있다'란 구절에 주목했지만 인터뷰 해설 기사에도 재밌는 구절이 나옵니다.

"유시민 대표는 내년 대선에서 현실적으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가장 센 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모든 선거는 보수당 후보가 이길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야권이 잘 연합하고 좋은 후보를 세워 꼭 이겨야 한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굉장히 위험한 정치인이다.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다."

여러분은 유시민이 이제 철들었나 할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중앙일보 박신홍 기자도 그 점을 의아해합니다.

"유 대표는 그동안 박 전 대표를 비판하지 않았다. 지난 2월 인터뷰 때도 ‘박근혜식 복지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맘먹기에 따라서는 보수도 착한 일을 할 수 있다”며 긍정 평가했다. <중앙SUNDAY 2월 13일자 8면>"

모두 기억나실 겁니다. 복지 문제 놓고 민주당안과 박근혜안이 충돌했을 때 그가 처음에 어떻게 나왔는지. 그런데 그가 왜 달라졌을까요?

분기점은 4.27. 재보궐 선거입니다. 만약 국민참여당이 김해을에 이기고 민주당이 강원도 및 분당에서 졌을 경우를 상상해봅시다. 그 경우 그는 그 여세를 몰아 맹렬히 민주당을 공격하는 한편으로 자신을 중심으로 통합하도록 민노당을 압박했을 겁니다. 지금이야 그 그림이 공상처럼 느껴지지만 4.26.까지 충분히 가능성이 있던 시나리오입니다. 

4.27. 전까지 그에게 중요했던건 자신을 중심으로한 야권의 재편이었죠. 민노당과의 통합 논의도 - 유시민 본인에겐- 원모심려였던 겁니다. 야권의 연대를 통한 정권교체는 야권 재편이 이뤄진 뒤에야 고려할 부분이었죠. 그러므로 그는 박근혜 비판을 자제했던 겁니다. 괜히 박근혜를 비판했다 영남 유권자의 반발을 불러올 필요가 없었죠.

그런데 4.27. 당일 모든게 틀어졌습니다. 그 전날까지 그의 꿈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고래를 잡아먹은 새우통령였지만 4.27. 밤부터 정치인으로서의 생존을 걱정해야할 처지로 몰락했죠. 다음날 들러달라는 권양숙 여사의 권유도 뿌리치고 한동안 칩거해야할만큼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민노당과의 단일화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되죠. 즉, 보궐 선거전까지 민노당과의 단일화는 야권 단일후보 쟁취용이었다면 그 후부터는 탈출구로 떠오르게 됩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전엔 옵션이었다면 이젠 필수가 되었죠.

그러므로 4.27. 이후 유시민이 코믹스러울 만큼 민노당과의 단일화에 조급해하는 것도 이해못할 것만은 아닙니다. 지자체 선거 이후에도 나타났지만 하루가 다르게 국참당 기층 조직은 붕괴하고 있고 손학규와 뒤바뀐 여론조사 지지율은 서서히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득표력의 한계를 드러냈기에 매스컴의 주목도도 현저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사 여부를 떠나 민노당과의 단일화 논의를 통해 유시민이 성공을 거둔 부분도 있습니다. (애시당초 그럴 당이긴 하지만)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은 쑥 들어갔죠. 거기에 어느 정도  이슈 전환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신당 창당에 성공한다면 다시 한번 대권 주자로 부각될 기회를 잡을 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지금까지 대한민국(어쩌면 대부분의 정치선진국도 포함해서) 역사상 누구도 그렇게 이념, 사상이 다른 당들이 그저 권력을 나눠먹기 위해 합당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거든요. 심지어 유시민과 진중권등이 허구헌날 '같은 지역주의 보수 정당'이라 비꼬던 국민회의,자민련도 연대만 했지, 합당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유시민이 빠뜨린 부분이 있죠. 그건 합당엔 상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생각 못한 부분이 있죠. 그건 그가 합당하려는 진보 진영 정치인들이 사실 박정희 시대부터 나름대로 정치 권력 투쟁엔 역전의 경력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심상정은 정말 미스터리합니다.) 더욱 중요하게는 그가 합당을 제의했던 시점과 지금은 전혀 다른 국면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주도권은 완전히 민노당으로 넘어갔습니다. 아닌 말로 민노당은 국참당과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입니다. 반면 하루가 다르게 하부 조직이 빠르게 붕괴중일 뿐더러 놀랍게도(?) 당내에 자신을 반발하는 흐름까지 목격하고 있는 유시민으로선 초조하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유시민은 '2년하면 견적 다 나온다. 독자 노선은 이미 아니라고 판정났다'고 발언까지 한 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정말 유시민의 입은 어찌 저렇게 가벼울 수 있는지 정말 경탄(?)스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합당까지 틀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스스로 '이미 틀렸다고 견적 나온' 국참당의 독자 노선을 지도해야하는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상태에 빠질 뿐더러 당내에선 도대체 아무 성과없이 당만 표류시켰다는 반발이 거세질 겁니다. 유시민이 나서서 될 일이 없다는 걸 목격한 매스컴 및 국민들 사이에선 무관심이 더 커지겠죠.

즉, 이제 죽으나 사나 합당에 목숨걸어야할 처지입니다. 합당 이후에 어찌될까는 두번째 문제죠.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합당은 상대가 있는 문제입니다. 간단히 말해 '딜'입니다. 그리고 딜에선 당연히 자신의 최대 이익을 확보하려 덤비기 마련입니다.

우선 유시민의 발톱을 제거해야죠. 진보 진영도 바보가 아닙니다. 그들은 개혁당과 열우당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잘 압니다. 그러므로 합당 이전에 유시민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필요가 있죠. 다시 한번 말해 만약 4.27. 재보궐 선거가 국참당의 승리로 끝났으면 진보진영에서도 감히 발톱을 뽑을 생각도 못했겠지만(그 경우 유시민이 튕겼을 겁니다) 이젠 사정이 다릅니다. 

조금 엉뚱한 이야기를 해보죠. 왜 이재오와 김문수는 종종 꼴통스런 발언을 할까요? 그건 자신의 변신을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입증하기 위함입니다. (대중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구체적인 정책 집행에선 발언과 다르다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가령 이재오도 국민의 정부 시절 의료보험 재정 단일화 문제를 합리적으로 처리했다더군요.) 

이제 그 풍경은 - 비록 그 강도는 약하지만- 똑같이 유시민에게 재현되고 있습니다. 물론 유시민이라고 배알이 꼴리지 않을 리 없겠지요.  '한미 FTA를 성찰하라는 요구는 양심 사상의 자유 침해'라는 희대의 명발언도 그래서 튀어나왔겠지요.

그러자 진보진영에서 바로 맞받아쳤죠. 도대체 저렇게 말하는 사람과 당을 어떻게 믿느냐.

결국 유시민은 농민단체에 가서 사과하고 맙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147986

그런데 표현이 참 묘합니다.
 
"참여정부에서 좀 다르게 했더라면 하는 부분은 갚아야 할 빚"이라며 "아직도 원망 대상이 된 정책적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정책 오류를 말하기 전에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겠다"고 말했다.

'정책 오류를 말하기 전에'라는 게 뭘까요? 아직 정책적으로 오류인지, 아닌지는 밝힐 수 없다는 거겠지요. 그러니까 그가 죄송한 이유는 '원망대상이 된 정책적 선택'이라는 걸겁니다. 아주 간단히 말해 '당신들이 반대하니 사과하겠다'는 거겠지요.

여러분은 저 구절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교묘한 말장난, 교언영색, 잔대가리...다 맞는 말일 겁니다. 그런데 전 제가 유시민이라도 어쩔 수 없었겠다 싶습니다. 왜냐면 대놓고 FTA가 잘못이라고 말하자니 지지기반이 완전 허물어지고(정도가 아니라 애정 정도가 강했던 이들이니 그 분노도 하늘을 찌를 겁니다) 그렇다고 사과하지 않자니 정치적으로 탈출로가 없고 서서히 감정이 누그러지길 기다리자니 시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제 유시민 식의 말장난은 누구나 다 간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통합 논의를 둘러싸고 최대한 정치적 이익을 확보하려는 진보 진영이 이런 유시민의 약점을 두고볼 리 없죠.(이건 진보진영을 비난하려는게 아닙니다. 원래 권력 투쟁이란게 그런 겁니다. 그래서 정치에서 룰과 원칙이 중요하죠. 워낙 권력 투쟁의 속성 자체가 살벌함이므로 그 두가지가 허물어지면 피가 튈 뿐더러 스스로를 망치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치적 이익은 그만두고 진보진영내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유시민의 애매모호한 포지션을 봐줄 수가 없죠.

아니나 다를까 진보 진영 곳곳에서 요구가 터집니다.

유시민의 변신은 유죄 혹은 무죄?
전농 방문 "한미FTA 잘못"…정성희 "대선 불출마 약속해야"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2856

참고로 정성희씨는 국참당과의 합당에 긍정적인 걸로 압니다. 긍정적인 분이 저럴 땐 두가지죠. 저분도 유시민을 못믿거나 아니면 불출마라도 약속해야 달래질 만큼 진보진영내에서 합당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아니나다를까 진보교연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네요.

진보교연, "국민참여당 안돼" 강경 입장
입장 변경 입증 구체적 조치 필요…"참여 동조세력과는 결별할 것"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2313

아래의 구절이 재밌습니다.

"우리 진보교연은 이런 판단에서 국민참여당이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에 진정 참여하길 원한다면, 연석회의 합의문을 받아들이고, 노무현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사과를 행하는 동시에, ‘유시민의 차기대선 후보 출마 포기와 백의종군 선언’과 같은, 입장 변경의 진정성을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국민참여당 당원들은 유시민과 결별하고 개인 자격으로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에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

진보교연이 진보 진영내 얼마만큼 영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저렇게 반발하는 걸 보니 어느 정도 합당이 기정사실화되고 있지 않나란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말이죠. 합당한다 한들 유시민의 근본 딜레마가 해소될 수 있을까요? 진보에 고개를 숙일 수록 기존 지지층은 떨어져나가고(어쩌면 더 격렬한 안티층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요즘 아크로보다 서프가 더 유시민 비판에 열을 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진보진영과 각을 세우자니 미래가 없고.

어쩌면 유시민의 해답은 김문수와 이재오에게 있을 지도 모릅니다. 김문수와 이재오는 자신들의 사상 전향을 입증하기 위해 말로는 오버했습니다. 그리고 행동은 밑바닥부터 기기였죠. 지금도 두 사람의 성실성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리고 그 둘은 자신들의 과거 동지나 지지층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 두 사람은 진보에서 보수로 변신했지만 유시민은 이제 보수에서 진보로 변신해야 합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그 두사람 못지 않게 말로 오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두사람만큼 성실하게 밑바닥부터 길 수 있을까요?

그래서, 결국 유시민은 제가 말한대로 정해진 경로를 가고 있는 중입니다. '올드 보이'의 최민식이 스스로를 지키고 우진을 보복하기 위해 선택한 최선의 수들이 결국 스스로를 파괴시킨 것처럼 말입니다.

ps -1. 원래 5줄로 끝내려던게 이렇게 길어진 건 어디까지나 열렬한 저의 두 팬들 때문입니다. 팬 두분은 언제 기회되면 저에게 맥주와 치킨을 사셔야 합니다. 이건 운명이예요.^ ^

2. 그나저나 아크로 여러분, 그러는 거 아닙니다. 오늘 제가 검색해보니 유시민이 제목으로 들어간 글에 붙은 댓글은 최근들어 다섯을 넘기기 어렵더군요. 미운 정도 정이고 그 동안 유시민이 아크로 장사에 기여한 바(?)가 어딘데 4.27 이후 유시민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고해서 아크로 분들까지 이렇게 유시민을 철저히 무시하고... 정말 그러는 거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