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영호남 문제는 아크로의 뜨거운 감자로군요. 매번 수많은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주렁주렁 달리니 말입니다.
노무현과 친노들의 영향 탓에 민주개혁진영에서는 이 문제가 더 복잡해진 양상입니다.
아크로만 봐도 낙관과 믿음보다는 비관과 불신이 아직은 더 우세해 보입니다.

하지만 어둠이 깊어 보여도, 영호남에 상관없이 개혁진보진영이 하나되는 꿈만은 맨 첫자리에 두면 좋겠습니다. 
과거에 어떤 상처를 받았건, 경계할 건 경계하고 조심할 건 조심하더라도 
잊을 건 잊고 덮을 건 덮고 서로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차이점만이 아니라 공통점도 찾으면서 연대하고 함께 하는 길을 모색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스켑렢에서도 소개되었겠지만 '우리모두'에 실렸던 고 양신규 교수의 글을 소개합니다.
2003년 12월에 쓰인 글이군요.
긴 글 읽기 힘드신 분은 맨 아래의 "링컨의 지역주의 극복사례의 교훈"만이라도 읽으면 될 것 같습니다.



[지역주의논쟁] 미국과 남한의 지역주의: 근원과 처방 - 양신규


미국과 남한에서 벌어진 지난 몇 차례의 대선과 총선을 지켜보면 그 지역성에 있어서 놀라운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들어 지난 2000 년 고어-부시의 선거전의 결과를 보면 민주당의 고어는 동북부해안과 서부해안 그리고 북부지역을 휩쓴 반면, 부시는 남부와 중부 지역을 휩쓸어서 격렬한 지역대결양상을 보였었다. 뉴욕, 캘리포니아, 뉴잉글랜드 등의 소위 새로운 공업과 하이테크 지역 – 신경제지역이라고도 함 에서는 고어가 압도적으로 승리했고,  반면에 전통산업과 농업지역인 –구경제지역이라고도 함 - 텍사스, 사우스 캐롤라이나, 심지어는 고어의 고향 테네시와 클린튼의 고향 아칸소 등에서도 부시가 상당한 마진으로 승리했다.

내년 (2004) 부시의 재선을 가르는 선거 역시 격렬한 지역주의 대결이 될 것이고, 결국 부시의 재선 여부는 그동안 공화-민주당을 왔다갔다 한 플로리다 등 몇 개 주들(swing states)이 결정을 지을 것이다. 1994, 1998, 2002 년의 중간 의회 선거 역시 이러한 남북지역대결 양상이 뚜렷하게 보였다.  


미국과 남한의 지역주의의 특성과 전개


미국의 정치적 지역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역대결은 이미 독립 당시부터 시작된 일이고,  무려 4 년동안 남북도합 60 만명이 사망한 후에야 1865 년에 종료된 남북전쟁 역시 격렬한 지역대결이었다.  

물론 미국 정치사 200 여년 동안 매우 재밌는 현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19세기와 20세기의 지역-정당의 맞바꿔치기 현상이다.  19세기 때는 민주당이 남부지역을 대표하고, 링컨의 공화당이 북부지역을 대표해서 거의 100 여년이 지속된 반면, 20 세기에는 특히 루즈벨트의 개혁이후 북부 지역이 오히려 민주당을 지지하고, 남부지역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현상이 최근까지 벌어지고 있다.  

또 하나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지역주의가 남북대결이라고 하지만 사실 잘 보면,  뉴잉글랜드-뉴욕의 민주당지지와 텍사스-조오지아-사우스캐롤라이나의 공화당지지가 그 핵심 대결이고, 다른 주들의 지역성은 상대적으로는 덜 뚜렷하게 드러나난다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동서대결이라고 하지만 핵심적으로는 호남과 대구경북지역의 대결이고 나머지 지역들의 지역성은 상대적으로 흐릿한 것과 매우 비슷하다 하겠다.  

어쨋든 미국 최근 선거의 이런 지역편중 결과는 남한의 1997 년, 김대중-이회창의 대결, 2002 년 노무현-이회창의 대결과 너무나 흡사하다. 미국 정치가 지난 200 년 동안 지역대결양상을 보이듯이, 남한에서도 1970 년대 이후 지난 30 여년 동안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영호남 지역주의, 혹은 동서대결이라 하지만  남한의 지역주의는 조금 자세히 보면 이것은 호남과 대구경북지역의 대결을 핵심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0 년대 이후 호남은 일관되게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반독재민주주의 세력을 지지했고, 대구경북은 일관되게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회창으로 이어지는 독재와 수구세력을 대변했다.  

다른 지역들을 보면, 1970-1987 년까지는 서울경기, 부산경남이 대체로 호남과 함께 반독재민주주의를 대변해왔고, 충청지역은 1980 년 신군부와 김종필의 갈림 이후 대체로 개혁세력의 진영에 섰으며, 반대로 1990 년까지 김영삼을 중심으로 개혁진영에 있었던 부산경남은 1990 년 삼당합당이후 수구세력에 가담했다.  서울경기지역은 삼당합당후 역시 부산경남과 함께 우왕좌왕했으나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는 확고하게 개혁진영의 편에 섰다. 부산-경남이 수구세력의 자기장으로 떨어진 것과는 반대의 현상이다.

전체적으로 개혁세력이 강한 지역을 보면 호남이 핵이 되고, 서울경기지역이 대체로 같이 했으며,  때로는 부산경남과 충청지역이 가담하는 서남부지역이 된다. 반대로 대구경북을 핵으로 하는 동부지역이 주로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회창으로 이어지는 보수세력을 지지했다.


미국과 남한의 지역주의의 정치경제적 배경과 이념


한미간의 이런 현상적 유사성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안에는 정치경제적 배경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19 세기 미국의 남북대결은 농업중심의 남부와 산업혁명기에 들어간 공업중심의 북부의 대결이고, 20 세기 미국의 남북대결 역시 앞에서 말했듯이 신산업과 하이테크산업중심의 북부와,  농업과 전통공업 중심의 남부의 대결이었다.

남한의 지역주의대결 역시 박정희가 건설한 영남패권의 관치재벌경제의 혜택을 받은 지역적 인적구성의 핵심인 대구-경북과 그 과정에서 소외되어  온 농민, 노동자, 도시서민, 중소자본가, 지식노동자 등을 가장 많이 배출한 호남의 대결을 핵으로 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물론 개혁세력의 실질적 리더쉽은 지식노동자들과 중소자본가들이 형성하게 되는데, 특히 1997 년 이후 김대중 디제이노믹스의 개혁에 힘입어서 중소자본가들과 지식노동자들은 정보기술산업과 서비스산업을 필두로하는 새로운 산업의 주역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소자본과 벤처기업가 그리고 지식노동자군의 목소리가 매우 커지게 되는데, 노무현은 특히 새로운 지식노동자군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이 되는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북부가 인류평등과 노예해방을 이념으로 선택했듯이, 호남을 중심으로 전지역에서 배출된 영남패권의 관치재벌경제의 피해자들과  새로운 중소자본가-지식노동자집단은 한반도평화, 반독재민주주의, 그리고 재벌지배가 사라진 시장경제질서를 이념으로 선택한다.

김대중의 대북평화노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병행발전론은 정확히 이들의 요구를 담아내는 것이었고, 노무현의 노선은 이를 계승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현재 미국과 남한의 지역대결 정치 양상은 그 표면적 유사성의 이면에 훨씬 더 강력한 정치경제적 배경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부시의 공화당이 주로 남부지역에서  전통적 에너지-철강-농업 등 전통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반면, 민주당은 하이테크산업과 새로운 공업 서비스업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남한의 경우에는  한나라당은 전통적 대규모기업집단 위주의 관치재벌경제체제를 대변하고,  민주당과 열우당등 개혁세력은 정보기술산업과 벤처형 중소기업 그리고 지식노동자군을 대변하는 것과 매우 흡사한 것이다.

또한 미국의 민주당이 국제평화주의를 대변하고, 공화당이 일방주의를 대변하듯이; 남한의 민주당+열우당이 대북화해정책을 대변하고, 한나라당이 대북대결정책을 대변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정보기술산업을 중심으로하는 신경제산업은 안정되고 열린 세계 시장을 전제로 하는 것인 반면, 남한의 관치재벌경제시대의 기업이나 미국의 전통공업들은 주로 수입규제, 수출지원등 을 바라는 것이고, 그것이 국제주의-평화주의와 일방주의-대결주의의 차이로 현상하는 것이다.


19세기 미국, 링컨의 지역주의 극복사례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미국의 19세기 지역주의가 어떠한 형식으로 전개되고 극복이 되었는가하는 것이다. 20 세기 지역주의 사례는 다음으로 미룬다.  

경제적토대에 근거한 지역주의는 결코 감상적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미국의 19세기의 경우에는  경제적 토대의 차이에 근거한 지역주의가 극단적으로 전쟁으로 까지 발전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한국 전쟁 역시 경제적 토대에 대한 이해의 차이 -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대결이었다.)  역사를 읽어보자.

노무현이 스스로를 링컨으로 비유했는데, 독학으로 성장한 법률가라는 점 말고도 그 비유는 여러가지로 적절하다 하겠고, 특히 지역주의해결을 스스로도 중요한 사명의 하나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 싯점에서 링컨이 어떤 식으로 지역주의를 극복했느냐를 살펴보는 것은 남한지역주의 극복을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생각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본다.

독립당시부터 미국에서 흑인노예문제는 매우 첨예한 남북대립을 낳은 문제다. 뉴잉글랜드의 매사추세츠는 이미 독립혁명 무렵 노예해방 (Abolition) 을 이룬 매우 선진적인 지역이며, 독립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1777- 1804 년에 걸쳐) 메릴랜드 북부지역의 주들은 전부 노예해방을 달성하는데에 성공한다.  

뉴잉글랜드 지역은 미국 혁명의 사상적 전투적 출발점이 되었고, 그 후 뉴욕지역과 함께 200 여년에 걸쳐서 노예해방, 산업혁명과 공화당혁명, 진보주의운동과 뉴딜, 그리고 클린튼의 신뉴딜연합등 소위 진보적 양키 지역주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다.

북부의 노예해방은 미국 혁명이념인 만민평등사상에 비추어서 너무나 당연한  진보적인 역사의 귀결이었는데, 반면에 남부는 흑인노예노동에 의존하여 대농업을 유지하고 있었던 대농장주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바람에 미국혁명의 이상보다 소수의 경제적 이익을 쫓은 것이다.

미국 건국영웅들은 북부출신들은 물론이고, 토머스 제퍼슨을 제외하고는 조지 워싱턴 등 남부출신들도 거의 모두 개인적으로는 노예를 해방시켰었고, 토머스 제퍼슨도 결국 시간문제지 노예제도는 죽어가는 제도라고 파악했었다.  

그런데 역사는 독립당시의 대부분의 건국영웅들의 희망적인 예상과는 반대로 전개되었다. 독립후 남부 대농장주들이 흑인노예노동에 기반해서 경제력을  키워나갔고, 영화 바람과함께 사라지다에서 보여지는 나름대로의 귀족적 문화도 만들어나가녀서, 나아가서 경제력을 기반으로 점차 연방 의회, 연방 행정, 연방 사법 권력을 서서히 장악해 나가면서 문제가 복잡해 진다.  

이 당시의 남부의 대농장주들을 남한의 현실과 대치해 보면 재벌들과 비유할 수 있겠다.  남부노예농장주들이 흑인노예노동이라는 부도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기반으로 의회, 행정, 사법 권력을 하나하나 장악해 나갔듯이, 남한에서도 주로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재벌들이 부도덕한 방법으로 경제력을 키우고 차츰 자신들을 대변하는 인물들을 의회, 행정부, 언론, 학계 등 사회각계에 진출시켜서 점차 사회의 반동화를 꾀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하겠다. 물론 남한에서는 박정희시대부터 국가기구가 역으로 재벌과 고급관료 땅투기군 등 영남패권세력들을 키워나갔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권력이 성장한 남부의 대농장주들은 점점 대담해지면서 심지어 독립 당시에서부터 금지시켰던 아프리카로부터의 노예수입을 다시 허용할 것을 요구하고, 나아가 멕시코 전쟁이후 새로 획득한 남서부영토에도 노예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것도 남한의 재벌들이 점차로 은행, 언론, 재무 통상부 국가 권력등을 장악해나가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경제적 환경을 구축해 온 것과 매우 비슷하다 하겠다.

1850 년에는 의회권력을 획득한 남부지역 출신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도망노예사냥법 – 노예가 북부로 탈출하면 북부주에서 도망노예를 체포 송환해야 하는 연방법 - 을 통과시키는 데, 이 사건은 양키 노예해방주의자들을 분노하게 하고 단결시킨 중요한 사건이다. 이무렵 1852 년에 출판된 해리엇 스토우의 “Uncle Tom’s Cabin” 은 이 시기의 시대상을 그린 대작으로 백만권이 팔리면서 북서부의 노예해방주의자들을 양산하고 단결시킨 중요한 문학작품이다.

공화당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노예 해방운동의 열기 속에서 북부의 노예해방론자들이 그동안 노예해방측에 섰던 휘그당의 전통을 기반으로 창당한 당으로,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북부 자본가와 서부의 백인 소농, 그리고 북부 자유노동자층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었다.  공화당은 노예해방이념이외에도, 북부 자본가, 서부 소농, 그리고 자유노동자층에 대한 올바른 정책개발을 통하여 서서히 점차 강력해지는 북서부 연합을 구축한다.  이것은 김대중-노무현의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독재에 반대운동을 해오던  민주당을 계승발전 시키면서 평민당-국민회의-새천년 민주당 등으로 발전하면서 반독재세력 만이 아니라 재벌독재에 염증을 느끼는 중소자본가, 지식노동자층, 도시서민의 연합을 구축해나가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링컨은 남북대결에서 우왕좌왕하던 캔터키 주 출신이다. 이것도 노무현대통령이 반독재민주화의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던 부산경남 출신인 것과 매우 흡사하다 하겠다.  링컨은 일리노이주의 주의원부터 정치를 시작하며 서서히 노예해방론자가 되어가는데 이것도 노무현대통령이 처음부터 반독재투쟁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변론활동을 통해 점차적으로 반독재민주화운동의 길로 들어서는 것과 비슷하다. 노예해방론자들의 후원을 받으며 본격적인 정치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 연방하원의원에 출마해서 바로 당선되는 것 (1847-1849), 그 후로 는 10 여년을 지속적으로 낙선하면서 야인생활을 하는 것도 역시 비슷하다.

링컨을 전국적 인물로 키운 것은 일리노이 상원의원 선거인데 (1858), 비록 이 선거에서는 패하기는 했지만, “한 집안이 서로 싸우는 한 그 집안은 바로 설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나라의 반은 노예고 반은 자유라면  그 정부 역시 제대로 설 수 없는 것이다,” 라고 열변을 토한 유명한 “House Divided” 라는 연설로 링컨은 전국적 인물이 된다. 노무현이 5공청문회와 적진에서의 지속된 낙선으로 오히려 전국적 정치인으로 부상하는 점도 이와 대비할 수 있겠다.

1849 년에 하원선거에서도 떨어지고, 1858 년에는 상원에서도 떨어진 링컨이 2 년만 (1860) 에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적 역시, 노무현이 1992년부터 계속 떨어지고, 마지막으로 2000 년에 부산의 국회의원선거에서 떨어졌는데도 그 후 2 년 후 2002 년에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 또한 이 두 사람의 인생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하겠다.

링컨은 1860 년 16 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이 극렬후보와 중도후보로 분열하는 바람에 어부지를 얻어 당선되는데,  물론 양키지역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그리고 서부에서 우세를 얻어서 당선되고, 남부는 민주당의 극렬후보가 휩쓴다.  호남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충청-서울경기에서 우세를 보여 당선되는 노무현과 이 점도 매우 닮아있다고 하겠다.

링컨을 남부의 대농장주들은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즉각 독립운동에 들어서는데, 이것 역시 조갑제 등 조선일보와 일부 관치재벌세력들이 노무현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쿠데타를 선동한다거나 기회만 있으면 까내리려 하는 것과 또한 매우 닮았다. 당시 남부에서는 양키 고우 홈을 외치며 링컨을 양키들의 대표이지 미국의 대표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이것 역시 노무현을 호남의 대표이지 대한민국의 대표가 아니라고 여기는 일부 영남패권주의세력과 매우 닮았다.

링컨의 당선으로 노예제도의 근원에 위기를 느낀 남부의 여러 주들이 독립을 결행한 것은 몇가지 판단 착오때문이었는데, 가장 큰 판단착오는 독립을 선언하면 링컨이 감히 전쟁으로 제압하지 못하리라는 것이었고, 전쟁을 일으킨다 해도 일정기간만 버티면 북부가 제풀에 지쳐서 독립을 인정하리라는 것이었다. 이는 빈 라덴, 탈레반, 그리고 후세인이 게릴라전으로 미군들을 조금 괴롭히면  미군이 제풀에 지쳐서 철수하리라고 생각하고 미군에게 개긴것과 같은 철학인데 미국을 전혀 잘못 이해한 것이다.

링컨은 북부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하고 캘리포니아등 서부해안을 포함한 중서부와 동맹을 맺은 다음 남부의 분열주의자들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무려 4 년 동안 당시 북서부 인구 1천 3 백만의 인구의 15% 가 넘는 2 백만명을 징집하는 대규모 장기전을 펼쳐서 결국 남부를 제압한다. 이 때 북군은 36 만명 남군은 25 만 명 등 도합 60 여만명 이상이 전투와 질병으로 죽어야 했다.

최근 영화 뉴욕의 갱들에서 볼 수 있는 뉴욕의 징집거부 폭동은, 이 때의 징집이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당시에 뉴욕에 밀집해서 살고 있던 막 이민을 온 아일랜드, 독일계등 유럽출신의 백인인들은 왜 자신들이 남부의 흑인들을 위해 싸워야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징집거부 폭동을 일으킨다. 이 폭동은 하도 심각해서 결국 연방해군이 폭동지역에 무차별 함포사격을 하는 대학살 끝에 진압이 된다.

결국 남북전쟁중인 1863 년에 흑인노예해방령을 선포하고, 전쟁후에는 헌법에 수정조항 14, 15 를 추가해서 흑인에게서 투표권을 부여하게까지 된다. 전쟁후에는 공화당이 19세기 후반 전체를 지배하면서 미국의 산업혁명과 이차산업혁명을 선도한다. 공화당의 이상주의자들은 Great Nation on Earth 의 꿈을 꾸면서 미국 영토의 확장과 국력신장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링컨을 첫 대통령으로 뽑은 공화당의 지배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격화되고 그 모순 해결을 위한 진보운동 (progressive movement) 가 일어나기 까지 50 여년간 지속된다.  결국 20 세기에 들어서야  민주당의 윌슨과 루즈벨트가 이러한 새로운 요구를 대변하는 뉴욕-뉴잉글랜드의 새로운 진보적 흐름을 엮어내서 노동계급-농민-흑인의 소위 뉴딜연합을 이끌어내어 20 세기 민주당 재탄생을 이루어 내며,  20 세기 진보운동의 역할을 공화당으로부터 빼앗기 까지 공화당이 미국역사의 진보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링컨의 지역주의 극복사례의 교훈


링컨의 지역주의 극복의 노력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이라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는 남한이나 미국처럼 경제적 이익과 관련이 되어있는 지역주의는 생각보다 강고하며 결코 감상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남서민들이 관치재벌경제와 별 상관이 없듯이, 미국 남부에서도 노예소유주는 백인의 10% 남짓밖에 되지 않았으며, 특히 대농장주는 인구의 1% 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수의 노예제 수혜세력은 경제력과 문화적 권력을 이용 주정부 권력과 심지어는 연방권력까지 장악하고 특히 남부 백인들을 강력한 노예제 이데올로기의 자기장에 가두는데에 성공한다.  

이 때 백인들이 무기로 삼은 것은 결국은 인종차별주의이다. 흑인노예가 해방되면 그들이 니네 딸들과 결혼한다고 설칠 것이고, 니네 동네로 이사온다고 설칠것이다. 그런 꼴을 보겠느냐 이런 식의 논리였고 이 논리가 많은 가난한 남부백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먹혔다.  영남패권주의자들이 호남혐오주의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연장하려고 획책하는 것과 매우 비슷한 현상이라 하겠다.

이렇게 비록 소수의 경제적 이해라고 해도 경제적 떡고물, 효과적인 선동과 결합하면 경제적 토대가 정치적 현실로 현상화하고 강고한 피지배자들의 동의를 끌어내는 강고한 정치경제체제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이다. 히틀러, 일본군국주의, 박정희의 재벌중시 파시즘도 모두 이런 범주의 정치경제체제에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감상적으로 대구-경북에서 쉽게 개혁세력이 당선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른 기대이다. 물론 부산-경남은 이미 1970-1990 년까지 20 여년 동안 민주개혁적 성향을 보였기 때문에 대구-경북보다는 쉽게 영남패권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역사에서도 보여지는 것이지만, 악성지역주의 극복은 결국 핵심적인 진보적 지역을 중심으로 넓은 연대를 통해서 극복이 될 수 밖에 없다. 링컨이 뉴욕-뉴잉글랜드를 핵심으로 하는 노예해방론을 중심으로 도시노동자, 서부농민들의 동맹을 엮어내었듯이, 남한 개혁세력역시 가장 강력한 반독재민주화운동의 기지인 호남을 더욱 튼튼히 하고 서울-경기의 민주열망과 결합하며 행정수도 이전 등 충청권개발정책 등으로 충청인들을 개혁연합에 끌어들이고, 또 나아가 부산-경남을 점차 개혁진영으로 견인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링컨의 지역주의 극복에서 배울 수 있는 둘째 교훈이라면, 정치경제적 배경에 기반한 지역주의 극복은 매우 오래걸리는 일이고, 끈기와 투지를 가지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법률적, 문화사상적 영역에서 오랜 투쟁과정을 통해서만 낡은 정치경제 시스템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치경제시스템으로 나가는 것이다. 미국은 독립전쟁때부터 시작해서 1950-60 년대의 시민권리운동까지 무려 근 200 년이 걸린 일이 남북지역대결이며, 사실 이 후유증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남한의 경우 한나라당이 대북대결, 독재와 관치재벌경제라는 수구적 정치경제시스템의 온존을 원한다면 개혁세력은 대북평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라는 진보적 정치경제시스템을 원한다.

이 정치경제 시스템간의 경쟁은 일이년으로 승부가 나는 것이 아니다. 미국처럼 이백년이나 걸리지는 않겠지만, 일이년은 아니고 수십년 계획으로 밀어붙여야 하는 일인 것이다. 끈기와 투지가 필요한 일이다.  

오늘은 주로 링컨의 지역주의 극복 사례를 살펴보았는데, 다음에는 루즈벨트가 어떻게 또 20세기의 새로운 양키지역주의인 진보운동 (progressive movement) 를 전국적 운동으로 조직해내는가를 한 번 살펴보기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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