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글쓰기를 중단한 이후 강준만 교수는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글쓰기 중입니다. 저도 재미있게 읽은 <한국 현대사 산책>시리즈도 그 중 하나죠. 그의 글은 읽는 데에 어려움이 없지만 그렇다고 담긴 내용이 허접하지도 않습니다. 충실하고 다양한 문헌 인용은 "이걸 강준만이 다 읽고 정리해서 인용한 건가?"하는 의문을 저절로 자아냅니다. 학자들의 논문에 한정되지 않은, 신문,잡지 등 모든 문헌을 망라한 그의 검토가 반영된 강준만의 책은 역사를 다룬 책이 아니더라도 '살아있는 지금의 역사책'입니다.

그런 강준만이 쓴 <미국사 산책>에 호기심이 가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17권이나 되는 양의 압박 때문에 결국 1권(신대륙 이주와 독립전쟁)의 극히 일부분, 13권(미국은 1당민주주의 국가인가), 14권(세계화 시대의 팍스 아메리카나), 17권(오바마의 미국)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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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한창 '미국 바로알기'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민주정부시절, '반미주의'의 확산을 우려한 보수 측의 이념공세와 더불어 보수, 진보 양쪽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 이원복도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도 출간했고, 친미와 반미의 논란 속에서 미국을 국익에 맞게 이용하자는 용미론도 나오는 등 미국담론이 큰 유행이었습니다. 제 사견으로는 그 담론이 최근에는 미국의 경제위기와 겹치면서 '중국 부상론'으로 옮아간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은 미국 바로알기의 흐름의 연장선 상에 있는 책입니다. 미국 유학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에 교환교수로 간 강준만의 미국 관련 책이기 때문에, "강준만이 이렇게 오랜만에 미국에 가기 전에 과연 미국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았을까"하는 궁금증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 그렇게 재밌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밌다"입니다. 하나의 관점에서 일관된 미국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통섭적 시각에서 어마어마한 인용을 통해 미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중요한 일들과, 해프닝에 불과하지만 그 해프닝을 들여다보면 미국사회를 읽어낼 수 있는 그런 해프닝(예를 들어 OJ심슨사건)들을 주욱 시간 순으로 풀어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 편>에서도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았었는데, 제 생각에는 지금과 가까운 시기를 다루면 다룰수록 강준만은 철저하게 더 제3자의 입장에서, 자기 주관을 최대한 숨기고 좌,우,보수,진보의 모든 관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미국사 산책>을 다 읽지 않았고, 비교적 최근의 미국 이야기가 담긴 부분만 읽어서 이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민주당 분당(열린우리당 창당) 사건 이후 강준만의 글쓰기 스타일이 중도적 입장에 서서 거의 모든 시각을 제시하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변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려웠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읽는 재미는 예상보다는 덜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어서 상당히 '유익'했습니다. 특히 유익했던 부분은 클린턴의 '지퍼게이트' 사건을 다룬 부분이었습니다.  '세계화 시대의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제목의 14권에 실린 내용인데, 단순한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의 진행과정 다룬 것을 넘어서, '지퍼게이트가 창출한 경제적 부가가치','섹스 스캔들의 산업화', '미국 내 리버럴과 보수의 문화충돌', '클린턴으로 인한 여성운동 진영의 고민', 강준만의 전공인 '스펙타클(구경거리)에 열광하는 미국 미디어와 대중' 을 폭넓게 다루어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스타 보고서'의 일부도 살짝 인용해서, 이 부분 만큼은 읽는 재미도 대단했습니다.

그밖에도 1992년과 1996년 미국 대선을 다루면서, 공화,민주 양당제에 불만을 가진, 제3의 정치세력을 갈망하는 듯해 보이는 미국 시민의 정치의식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한국 정치, 구체적으로는 지역에 기반한 보수 양당 정당체제에 불만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지식인들이 한번쯤 꼭 읽었으면 했습니다. 13권과 14권에서 다루는데, 새로운 것을 희망하는, 현실에 불만이 많은, 제3의 정치세력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언론의 장사수단이 되는지, 그의 전공을 발휘해서 다룹니다.  결국 제3의 정치세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정치인의 데마고그적 능력(선동능력)이 바탕이 된 대중동원은 1992년, 1996년 대선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미국 내에서도 평가했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사실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단지 그 시기에 양당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욕구와 대중동원능력을 지닌 선동가가 미디어가 만들어준 판에서 누린 팬텀적인 인기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식의 결론을 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안정된 양당제 하에서 발생하는 제3 세력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미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3 세력이 장기존속하지 못하고 결국 미국 시민들은 민주,공화당에게만 집권을 허락한다는 점에서 '당시'의 제3 세력의 인기나 이슈정도에 비하면 실제 사회에 남긴 역사적 의미는 미미했다는 평가는 당연한 것 같습니다. (위 두 대선에 출마해서 돌풍을 일으킨 제3 세력의 정치인 로스페로가 1996년 대선을 대비해서 만든 당의 이름이 '개혁당'이어서 강준만이 고의적으로 저런 생각이 들도록 쓴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마지막 17권은 GM의 파산, 의료보험 논란, 금융업 거품 등 '무너져가는 제국'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현재 미국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나옵니다. 가장 최근 이야기이기 때문에 뉴스든 어디서든 거의 다 대충 접해본 이야기여서 읽는 속도가 아주 빨랐습니다. 제조업 붕괴와 금융이 키운 거품, 의료보험 체계로 상징되는 공공성이 취약한 미국 사회, 관타나모 수용소로 대표되는 미국 인권 침해와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한 미국의 시련 등 오바마 시대, 오바마의 미국의 문제를 다룹니다. 그러나 강준만은 이런 사례를 들면서도 '미국 쇠락론'에는 동의하지 않더군요. 강준만은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영어와 미국 대중문화의 전세계적인 영향력이 인터넷과 만나면서 더욱 극대화되었음을 말하며 구글,아이폰,위키피디아를 사례로 들며 미국의 소프트 파워 헤게모니의 막강함을 이야기 합니다. 세계 100대 대학 중 75개 대학이 영어권 대학이고 인터넷 정보의 70%가 영어인 현실,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압도적인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게다가 거기에 아이폰, 구글, 페이스북 등이 탄생하도록 하는 미국의 창의적 정신의 토대는 단시일 내에 중국이나 그밖에 국가(인도, 러시아 등)가 따라잡기는 어렵다는 의미죠. 가용국토면적 최대의 나라, 그 어떤 강대국보다 가장 젊은 인구 분포도, 끊임없는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넘쳐나는 젊은 인구, 미국 대학에 유입되는 전 세계의 우수두뇌들도 함게 언급합니다.

이러한 강준만의 미국에 대한 시각은 17권 '맺음말'에서도 유지됩니다. 미 '제국' 탄생의 원동력으로 '국토의 축복', '선민의식', '아메리칸 드림'을 들며 현재의 미국이 곧 붕괴하거나 급속히 약해질 것이라는 (희망섞인)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 태도를 분명히 합니다. 강준만의 이러한 미국 '찬양'스러운 태도는, '한국을 닮은 미국(강준만의 표현, 미국을 닮은 한국이라고 하지 않겠다고 함)'을 있는 그대로 보면,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것이고, '미국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를 알기 위해 미국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는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서 연유합니다. 그의 이런 시각을 따른다면, 미국을 찬양한 것처럼 보이는 건,  "어느 한 권력체가 전 세계를 그토록 압도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지배한 것은 유사 이래 처음이다"(촘스키), "초강대국(super power)이란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초초강대국(hyper power)이다"(프랑스 외무장관을 지낸 웨베르 베드린), "미국이라는 하이퍼 파워에 견주면 러시아 같은 옛 슈퍼파워조차도 하이포(hypo; 하위)파워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은유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제국적 공화국이, 제국의 메트로 폴리스가 되었다"(고종석)라는 표현들처럼 있는 그대로 봐도 실제로 그만큼 미국이 대단한 나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미국이 한국과 닮았다고 하며, 압축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이 그 닮은 점이라고 합니다. 한국이 미국과 저런 점이 닮았으므로 우리도 곧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고,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성공적으로 밟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 서유럽과 비교해서 상당히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을 밟은 미국과 유사한 '미국형 사회'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미국이 국제사회와 더불어 한반도가 속한 동북아 질서의 룰메이커이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을 바로 알고, 한미관계를 제대로 보기 위한 이야기를 합니다. 정치적 글쓰기를 중단한 이후 <각개약진 공화국> 등을 비롯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많은 책에서 그는 승자독식, 각개약진, 평등주의를 한국사회의 특징으로 들며, 이는 초고속의 압축성장과정의 필연적인 부산물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에 대한 긍정, 부정을 하지 않고, 압축성장과 그로인해 파생된 한국사회의 특징이 지금의 경제적 부를 가능케함과 동시에 지독한 경쟁, 여유없는 삶, 공동체의 붕괴를 낳았다고 하죠. 그는 강남, 명문대(서울대)에 대한 한국사회의 집착도 그런 측면에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1극에 소용돌이처럼 몰려가는 한국사회의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역동성과 급속한 성장, 다른 편으론 성공에 대한 열망과 함께 극심한 경쟁, 과도한 개인주의와 가족주의, 연고주의를 '각개약진'이라는 표현을 쓰며 발견해 냅니다. 이념과 계급에 기반한 진성당원제를 채택한 정당이 한국사회에 뿌리내리기 어려운 이유도 이러한 '각개약진'에서 찾을 정도로 강준만은 한국사회의 모습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을 이미 내린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중도주의자'로 규정하며 자신의 급진적(으로 보이는) 글쓰기보다는 중간영역에서 진보적인 내용을 더 많은 대중들에게 알리고 소통하는 글쓰기를 하겠다는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은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실은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풀어낸 강준만의 '시사적 글쓰기'입니다. 한 때 같은 편이었던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고 상처를 입은 후, '시사적 글쓰기'를 그만 뒀다고 하지만 그는 역사와 사회를 산책하며 꾸준히 시사적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외국 이론에 집착해서 우리나라 사례를 거기에 끼워맞추거나 첨단 이론을 개발해서 명성을 얻기 위한 시도를 지양하고 지금 일어나는 구체적인 우리의 사건들과 그것이 발생하는 여기와 여기를 둘러싼 세계의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에서 소개하며 정리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코멘트도 곁들이는 그의 글쓰기는 실은 그 어떤 글쓰기보다도 시사적입니다. 이제는 언론학자보다는 한국 전문가, 한국학자로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리는 강준만의 다음 글쓰기가 벌써 기다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