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한나라당을 떠나, 엠비 왈, “동토의 시베리아 벌판과도 같다”는 민주당의 문을 노크하던 때만 해도 그가 완전히 한나라당을 하직하고, 진정한 민주당원이 되기로 작정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욕심이 과하다면, 언젠가는 민주당의 영과 혼이 체질화되어 모범적인 민주당원으로 거듭나게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에 관한 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나 여러분의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학창시절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의 선봉에 섰었다는 사실도 큰 작용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YS의 내미는 손을 잡고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행을 택했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한 감이 있었다. 거기에서 보낸 무려 14년이라는 세월, 그의 정치적 이력 중 거의 전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수였던 것이다.

한나라당이라는 당은 참으로 묘한 당이다. 멀쩡하던 사람도 일단 한나라당에만 들어가고 나면 머리가 이상하게 바뀌어 버린다. 모든 물질들을 용해시켜 버리는 도가니처럼 그렇게 한나라당은 당원들의 머리를 한결같이 이상한 구조로 바꾸어 버린다.

이재오, 김문수, 원희룡 등이 모두 운동권 출신이지만 현재의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과거의 모습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아니, 이재오, 김문수의 경우 오히려 성골 출신 한나라당 당원들보다 훨씬 더 한나라당스럽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민중당 출신으로 치열한 민주화운동, 노동 운동을 했던 전력이 있으나, 현재의 그들은 완전히 변절을 했다. 입을 열 때마다, ‘기득권 도와주기 정책, 대북 적대정책’을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다.

민주당원이 된 손학규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14년이라는 세월은 그를 가장 한나라당스런 인물로 변모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는 경기 광명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한나라당의 입인 대변인을 거쳐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한 후,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는 등 한 마디로 승승장구했다. 그런 위치와 역할에서 손학규는 바로 한나라당이었고, 한나라당은 바로 손학규였다고 말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가 한나라당식이 되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자 대통령 경선에 도전장을 내었으나 그는 결코 한나라당의 성골 출신이 아니었다. 한나라당의 성골은 출신지가 우선 영남이어야 한다. 경기 시흥 출신인 그는 도저히 오르지 않는 지지율에 절망하고 있었고, 이를 감지하고 있던 동교동계의 막후교섭으로 민주당에 입당하게 되었다.

동교동계는 DJ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들이었으나, 이들의 정치적 역할의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DJ는 “동교동계는 순장하라!”고 명하였으며, 노무현 참여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그들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아예 상실된 상태였다. 그러한 처지에 있던 동교동계가 손학규씨를 새로운 희망으로 택하여 권토중래를 노린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손학규씨의 영입에 DJ의 복심이 깔려 있었다는 징후는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으며, 동교동계가 스스로의 살 길을 찾아 임의적으로 그를 옹립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2007 대선경선 당시 동교동계였던 전남 도지사 박준영씨와 광주 시장 박광태씨가 손학규 후보를 지지했었고, 손 후보 캠프를 총괄하던 상황실장을 동교동계의 막내인 설훈 전 의원이 맡았던 것도 손학규씨와 동교동계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짐작하게 한다.

손학규씨는 민주당에 입당한 이후 민주당원으로서 민주당의 정강정책 및 당헌당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얼핏 보아서 그는 진정한 민주당원이 된 듯 보였다. 그는 2007 대선경선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뜻하지 않게 패한 후 2007 대선에 올인한 정동영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틈을 타 당 대표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의 정동영 죽이기가 시작되고, 그와 더불어 그의 체질이 되다시피 한 한나라당의 색깔을 민주당에 덧칠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DJ 이래로 민주당의 고유한 색깔인 노란색을 한나라당의 파란색이 연상되는 연두색으로 바꾼 것도 그였다.

그와 참모들이 만든 당헌, 당규도 한나라당식으로 바뀌었다. 민주적인 상향식 공천 방식이 사라지고, 당 대표의 조정을 받는 공천심사위원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공천을 결정했다. 조직강화특위라는 것을 두어 재보선의 공천도 당 대표의 마음대로 전횡할 수 있게 했다. 당의 가장 기초조직인 지역위원회를 구성하는 대의원들을 지역에서 공천을 받은 지역 위원장이 거의 전권으로 임명할 수 있게 했으며, 그 대의원들이 차기 지역 위원장을 임명하도록 하는 한나라당의 당헌 당규보다 한층 더 독재적으로 발전한 기형적인 당헌 당규를 만든 것도 바로 손학규 대표 시절이었다. 손 대표의 대표직을 이은 정세균 대표는 이 독재적 당헌, 당규를 훨씬 더 세련(?)되게 만들고, 이를 이용하여 전국에 자기 조직을 심는데 주력했으니, 손 대표로서는 뼈아픈 대목일 것이다.

제 3기 당 대표에 턱걸이로 당선된 후 손 대표의 민주당을 한나라당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훨씬 더 대담해졌다. 이는 아마 ‘강남보다 더 당선되기가 힘들어서 야당의 무덤이라 불리던’ 분당 선거에서 낙승한데 따른 현상으로 보인다.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분당에서 민주당의 대표 자격으로 출마한다는 것은 정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밑질 게 전혀 없는 장사였다. 지면 민주당을 위해 장렬히 산화했다고 칭찬을 받을 것이며, 이기면 일시에 전국적인 관심을 촉발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격을 담보하게 해줄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승리했다.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이제 거의 대세로 굳어져 갈 기세를 탔는데, 하지만 그는 실족에 실족을 거듭하고 말았다. 그와 참모들의 분당 승리에 대한 분석이 틀렸던 것이다. 그가 한나라당 출신이기에 그의 주위에도 당연히 그와 같은 성향의 인물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한나라당 식으로 승리원인을 분석했고 한나라당 식으로 다가 올 대선 플랜을 기획했다.

그들이 분석한 분당 승리 원인은 이렇다.

첫째, 손학규씨가 한나라당 출신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분당 유권자들의 거부감이 덜했다.

둘째, 한나라당 공약보다 더 기득권층을 배려하는 공약, ‘재건축 기간 동안은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는 등의 공약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였다.

다른 원인들은 이미 여러분이 다 아는 사실이라 열거하지 않겠다. 하지만 열거하지 않은 원인들을 무시하고 상기한 두 개의 원인들을 승리의 주원인으로 판단한 데서부터 손학규 진영의 발걸음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4.27 재보선에서 야권이 거둔 승리 중 가장 놀라운 승리는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최문순 후보가 승리한 것이었다. 강원도는 휴전선과 맞닿아 있어서 영남 보다 더 반공의식이 투철하고, 영남보다 더 보수 지향적이어서 예로부터 ‘감자바위’라고 불릴 정도이다.

그런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전혀 유명하지 않은 언론인 출신 후보가 절대약세라는 평가를 무색하게 만드는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은 정말로 깜짝 놀랄 일이다. 진보성향이 강한 최문순 후보가 한나라당적인 공약을 했기에 당선이 되었는가? 아니다. 그는 진보적인 공약으로 일관했다. 당선된 후에도 도립 대학교를 점진적인 무상교육 체계로 바꿔 나가겠다는 선언을 해서 온 국민을 놀라게 하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미래 교육의 지표를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진보적인 정치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 손 대표가 분당에서 당선된 것은 엠비 그 인물 자체, 그리고 그의 부자만을 위한 정책, 국민들을 전쟁 위험 속으로 떠 밀어 벌벌 떨게 하는 대북강경정책을 비롯한 거의 모든 정책들에 반대한다는 분당 보수 엘리트들(소위 강남 좌파)의 현명한 메시지였는데, 이를 거꾸로 해석한 손학규씨와 그 참모들이 그 이후 헛발질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다. 손학규씨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서 그의 체질과는 맞지 않아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는 민주당이란 옷과 색깔을 버리고, 그에게는 너무나 편하고 익숙한 한나라당의 옷과 색깔을 택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에게도 편하고, 그 길이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길이라고 판단이 되니 그 보다 더 훌륭한 선거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이제 그의 변신 과정을 살펴보자.

1. 민생진보는 보편적 복지가 아니다!

그의 변신은 다음 대선의 최대 이쓔가 될 복지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가진 자를 위한 정치가 체질화된 한나라당의 정책으로 보건데 그에게 복지란 너무나 낯선 주제였다. 과거 군사 독재 정권 이래 복지란 우리 국민에게 너무나도 먼 세상의 이야기, 유럽이란 천국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국민 모두가 다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 이제 우리 노동자, 농, 어, 축산민들의 흘린 땀으로 이룬 성장의 과실을 우리에게도 나눠 달라”는 주장은 아예 공산당 빨갱이나 하는 주장으로 간주되어 나라님이 두려운 국민들은 ‘평등’의 ‘평’자도 입에 담기를 꺼려했다.

우리의 역사가 이랬다. 5.16 쿠데타가 성공하여 군사독재정권을 수립한 당시의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참으로 처참했다. 6.25 동족상잔의 비극은 온 국토를 찢어진 넝마상태로 만들어 놓았으며, 국가의 모든 공장시설들 중 온전한 것은 거의 없었다. 가을에 수확한 벼를 비롯한 먹을거리가 거의 다 떨어지고 보리가 익을 무렵인 초여름이 되면, 저수지 시설도 열악한 가운데 심한 가뭄이 들곤 했다. 우리의 형제, 부모들은 그야말로 초(풀)근(뿌리)목(나무)피(껍질)로 연명하다 변비가 심해졌고, 심하면 부황에 걸려 얼굴이 누렇게 떠서 죽어가곤 했다.

4.19로 정권을 잡은 후 그들이 일으킨 5.16 쿠데타로 패망한 장면 민주당 정권이 입안해 놓은 국가 경제개발계획 모델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거의 그대로 채택하여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고, 그에 따라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무수한 공장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우수한 두뇌와 솜씨를 가진 값싼 임금의 노동자들 덕택으로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이전에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노동자들에게 공장에서 지급되는 임금은 외국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지만, 마치 구세주와 다를 게 없었다. 굶어 죽는 것 보다는 힘들더라도 사는 게 좋았다. 안 죽고 살게 해 준 박정희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런 상황은 군사독재 정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인권을 경시하게 하였고, 복지를 무시하게 하였다.

그저 먹고 살게 해 준데 감지덕지하는 낮은 교육수준의 국민들에게 인권이니, 복지니 하는 것들은 빨갱이들이나 읊조리는 반국가적인 단어들이 되었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의 인권과 복지를 무시하고, 민주열사들을 가차 없이 사형시켜 버린 박정희를 지금도 국민들 다수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손을 꼽고 있다. 국민들의 어리석음이 가여울 따름이고, 그러한 국민들을 위해 몸을 바치고, 청춘을 바치다가, 사회의 암흑지대에 살면서 원통하게 돌아가신 선각자들과, 목숨까지 바쳐 투쟁하셨던 민주, 노동 열사들에게 부끄러울 일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손학규씨는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을 했으니 참으로 깨어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단 군사독재의 후예, 하수인, 부역자들이 우굴우굴거리는 한나라당에 들어가자 그의 순수했던 영혼은 이재오, 김문수의 그것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분명히 민주당의 강령·정강정책 전문을 읽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손학규씨와 그의 참모들이 참고하도록 이를 첨부한다.

민주당의 강령·정강정책 전문에 따르면 분명히 보편적 복지가 민주당의 나아 갈 복지의 목표라고 명시되어 있다. 보편적 복지라는 말은 가벼운 말이 아니다. 이 말이 전문에 삽입됨과 동시에 ‘민주당은 북유럽식 복지모델을 복지정책 모델로 설정한다’고 선언한 셈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를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모범이 되어야 할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민생진보라는 가짜 진보, 얼토당토 않는 복지를 들고 나와 당원들과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민주당의 강령·정강정책을 솔선수범해야 할 당의 대표가 한나라당식인 민생진보를 표방하다니 놀랄 일이다. 민생진보란 박근혜씨의 ‘가슴이 따뜻한 진보’와 다를 것이 없다. 아니 이를 모방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회의 약자들을 강자의 자비심으로 도와주자는 개념이 민생진보이며 가슴이 따뜻한 진보이다. 그저 국가가 빈민을 구제하는 수준이다. 구제를 받은 사회적 약자들은 임금이 내려 준 곡물을 받듯이 황송하게 받아야 한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는, 국민이 복지혜택을 받는 것을 국민이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 규정한다. 국민의 권리로 받는 복지에 대해서 국민은 국가에게나, 집권당에게 감사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저 ‘국민으로서 국민의 권리를 당연히 찾아가는 복지’가 바로 보편적 복지이기 때문이다.

그 복지의 대상이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임이 될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초등학교 의무교육이 보편적 복지의 가장 이해하기 쉬운 본보기인데, 이건희 회장의 손자라고 해서 초등학교 등록금을 받는가?

요즘 대학 반값등록금이 첨예한 이쓔가 되고 있다.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설움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필자도 돈이 없어 대학을 중퇴한 적이 있다. 7남매 중 정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나뿐이다. 그것도 다행히 장학혜택을 받아 가능했다.

빈부의 세습이 교육의 양극화 세습을 낳고, 이의 세습이 신분의 세습, 다시 빈부의 세습으로 되풀이 되는 양극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무엇보다 보편적 복지의 정신을 실현하는 일이다. 대학 무상등록금제도가 정착되는 순간,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게 되고 복지국가 반열에 속하게 될 것이다. 엠비가 4대강 건설 대신 대학 무상등록금 제도를 실현시켰더라면 그의 많은 약점과 실정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길이 기억되었을 것이다.

손학규 대표가 보편적 복지를 참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엠비가 한 말의 동어반복이나 다름없이 “반값 등록금 문제를 2학기에는 해결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대신 반값 등록금 문제 해결에 정치적 생명을 걸었을 것이다. 대학 등록금 문제는 그토록 심각한 국가의 문제, 국민의 문제인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민주당 강령·정강정책에 넣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여 이를 관철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여러분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점진적인 무상 대학등록금 주장도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반값 등록금의 실현도 4대강 사업비의 4분의 1이면 가능하다. 사학재단에 의해 과다계상된 등록금을 인하하면 소요 비용은 그만큼 더 줄어들 것이다.

이처럼 손 대표는 민주당의 강령·정강정책인 보편적 복지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아마 그는 그의 민생진보 발언이 왜 해당행위가 되는지를 모르고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식 사고에 젖은 나머지 보편적 복지에 대한 감이 전혀 오지 않기 때문에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여러분에게도 보편적 복지란 개념은 무척 어려운 개념이다. 수백 년에 걸쳐 서구의 수많은 천재들이 통찰하며, 연구한 후에, 그 시행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걸쳐 정착된 보편적 복지제도, 한 나라의 통치이념의 근간을 이룰 그 이론이 그리 쉽게 이해가 될 것인가? 가만히 제 글을 음미하면서 다시 읽어 주기 바란다.

민주당의 강령·정강 정책은 이처럼 가장 선진화된 이념을 담고 있다. 민주당의 당원이라면 그 이념에 동의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당의 대표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2. 원칙 있는 포용정책이란 표현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을 부정한다는 것과 같다.

민주당의 강령·정강정책 전문을 보면 다음과 같이 대북정책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10·4 남북정상선언의 정신과 성과를 바탕으로, 남북 간 사회·경제·문화 등 제 영역의 협력으로 민족의 역량을 통합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평화통일을 이룩한다. 남과 북, 해외 동포를 포함한 8천만 한민족이 더불어 잘사는 국가건설을 지향한다.’

민주당의 전문은 이처럼,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10년의 대북정책 성과인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10·4 남북정상선언을 바탕으로 한 대북정책을 당의 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손 대표는 몇일 전 간 나오토 일본 총리를 만났을 때 “북한의 인권·핵·미사일·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북한을 적극 포용하는 원칙 있는 포용정책을 펼치겠다”고 발언함으로써 과연 그가 한나라당 대표인지 민주당 대표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정동영 의원이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간 나오토 총리를 만났을 때 말한 ‘원칙 있는 포용정책’은 10년 민주당 정부가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추진한 6.15, 9.19의 정신, 10.4 실천 정신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햇볕정책의 취지를 변형했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최고위원은 "우선 절차의 문제가 있다. 당의 중대한 노선과 정책 변경에 지도부 토론, 의원총회나 당원들의 의견 수렴 절차가 빠졌다"며 "최근 KBS 수신료 인상 덜컥 합의, 한-EU FTA 합의 처리 등은 당의 정체성에 심각한 위해를 주는 결정이었다. 이는 충분한 토론과 절차가 생략됐다는 점에서 유감스럽기 때문에 재발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 의원의 항의에 대해 손 대표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항변함으로써 그의 발언이 우발적이 아니라 평소의 소신이었음을 증명해 보였다. 일반 국민들로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발언으로 들리겠지만 이 발언은 참으로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그의 주장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현재 남북 간의 대치 냉전 국면이 계속되고 있는 주요 이유는, 이명박 정권이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에서 남북 간에 맺어진 상기의 협정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북이 인권 문제, 핵 개발 문제, 미사일 문제 등을 우선 해결해야만 북과 대화할 수 있다면서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이 고집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정책을 그대로 선전한 손 대표의 발언은 이명박 정권의 특사 자격으로나 할 수 있는 말 정도로 보인다. 이 발언 직전에 있었던 청와대 영수회담의 결과가 문제의 발언이란 형태로 나왔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그가 지적한 북한 인권 문제만 해도 그렇다. 남의 엠비 정권에서도 헌법에 보장된 집회, 시위 및 결사의 자유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가운데, 손 대표가 북의 인권을 거론하고 있는 자체가 우습다. 한진중공업 사태, 유성기업 사태 등에서는 거의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손 대표가 북의 인권을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영수회담을 그저 밥 한 끼 얻어먹기 위해서 했는가?

북의 인권에 대해 고 DJ께서 말한 적이 있다. “지금 북의 주민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먹고 살 수 있고, 아플 때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생존권이다”라고 말이다. 북의 인권을 거론하는 것은 북의 김정일 체제를 뿌리부터 흔들어서 김정일 정권을 괴멸시키자는 기도로 밖에 볼 수가 없다. 자기의 정권을 파멸시키려는 원수와 대화할 정권이 누가 있겠는가? 따라서 국제무대에서 고립, 소외되어 있는 북을 우선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국제정치의 룰이 지배하는 대화의 장으로 일단 북을 끌어 오고 나서 핵 문제, 미사일 문제, 납치 문제 등을 국제정치의 틀 속에서 거론하자는 것이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의 일관적인 대북정책이었으며, 이의 결과물들이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9.19 협정, 10·4 남북정상선언이다.

결론적으로, 손 대표가 “북한의 인권·핵·미사일·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북한을 적극 포용하는 원칙 있는 포용정책을 펼치겠다”고 한 발언은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는 발언과 전혀 다르지 않다.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을 우선시 하면서 김정일 정권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 오는데 최선을 다한다는 민주당의 대북정책, DJ가 평생 이뤄 놓은 업적에 정면으로 도전한 손학규 대표는 마땅히 이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손 대표의 ‘원칙 있는 포용정책’이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대북정책 공약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2007년 2월 13일 미국 방문 중의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강연에서 “핵문제 해결을 대북정책의 최우선에 둘 것”이라며 “(집권하면) 원칙 있는 ‘인게이지먼트 폴리시(engagement policy·포용정책)’를 전개하려 한다”고 말한 바가 있다.

박 전대표가 말한 원칙 있는 포용정책의 핵심은 1. 북핵 문제가 먼저 해결되면 남북한 공동발전을 추구한다. 2. 무조건적 대북지원을 해선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인데, 손 대표는 이를 받아서 바로 그 다음 날인 2월 14일에 모 포럼 창립 초청특강 보도자료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발언을 거론하면서 “박 전 대표가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만약에 손 대표가 야권의 대선 후보로 선출이 될 경우, 박근혜 전 대표와 맞설 가능성이 현재로는 가장 높은데, 복지문제에서나 대북 정책면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앵무새 노릇을 한다면 어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며, 설령 승리한다할지라도, 한나라당적인 측근들이 그를 둘러싸고서 한나라당적인 정책을 수행할 것인데, 어찌 이를 진정한 정권 교체라 할 수 있겠는가? 군사독재의 뿌리인 박정희의 자식이며 기득권층의 대표인 박근혜씨는 새삼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정권이 바뀌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과 국가를 이끌어 갈 인맥, 그리고 그들의 소신에 따른 정책이 수행될 때야 비로소 정권이 진짜 바뀌는 것이다.

셋째, 그가 사용한 종북진보란 용어 때문이다.

그는 정동영 의원의 항의에 대해 “원칙 없는 포용정책은 '종북 진보'라는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함으로써 그의 대북정책이 한나라당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음을 보여 주었다.

소위 원칙 없는 포용정책이란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이 햇볕정책을 폄하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 북한 주민들을 살려 내기 위해서 인도적으로 지급되는 식량, 비료, 의약품들에 대해 뉴라이트로 대변되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김정일을 먹여 살려 북한정권을 연장시킨다고 비난하였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모든 지원을 끊고 북이 괴멸되기를 기다린다면, 가장 먼저 죽을 사람들은 불쌍한 북의 동포들일 것이다. 더군다나 굶다 지친 북에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죽기살기 식 정책으로 나온다면 한반도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북에 대한 식량, 비료, 의약품 지원은 인도적일 뿐 아니라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10년 동안 연평도 포격같은 준전시 상황에 처해서 국민들이 공포로 떨었던 때가 과연 있었던가?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에서 남북 간의 화해, 협력에 큰 도움이 될 정책을 수행했더라면 참으로 역사에 길이 남았을 것이다. 그리 되었다면 북의 경우에는 국민 생존권을 위협받을 정도의 국방비를 투입하지 않고 경제발전에 몰입할 수 있어서 좋고, 남에서는 연간 81조에 달하는 국방비를 절감하여 대학생 무상 등록금을 실현하고 육아 복지를 구체화시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나아가서는 노인복지에 치중하여 말 그대로 복지천국의 꿈을 이룰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이 이루지 못한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2012년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반드시 정권을 획득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진보정권이 진보정책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2012년 총선에서는 진보 진영 국회의원 후보들 중 3분 2 이상을 반드시 당선시켜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한나라당의 저항이 그야말로 사력을 다할 정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참여정부에서 그들의 저항을 목도한 바가 있다.

진보 진영이 3분의 2 이상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내기 위해서는, 야권 정당들이 각각 시대적 소명을 자각하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당리당략과 대권욕에 눈이 멀어 역사의 부르짖음을 외면한다면, 그야말로 만고의 역적이란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중차대한 의미를 갖고 있는 차기 대선에서, 야권의 유력 주자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정체성은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염려할 수준을 뛰어 넘었다고 본다. 손 대표가 개과천선하여 진정한 민주당의 정신을 계승하는 정치인이 된다면 모를까, 그가 현재의 정치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 한나라당적인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려 한다면 야권의 대선 후보 자격은 물론 민주당의 대표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집단 지도체제이다. 손 대표가 당의 강령·정강정책을 위반하는 행위, 월권행위를 하였다면 마땅히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를 논죄하여야 마땅하다. 최고위원회의가 손 대표의 반복되는 전횡과 해당행위에 대해 눈을 감고 자신들의 책무를 방기한다면, 그들 또한 손학규 대표와 같은 무리가 아니라고 어찌 항변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다 돌아가신 민주화 열사들과 민주당을 키우고, 가꾸어 온 당의 선배, 동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첨부: 민주당 강령·정강정책 전문

민주당은 항일독립운동의 애국애족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정신, 4・19혁명·광주민주화운동·6월민주항쟁으로 이어진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가치들을 계승・발전시킨다. 우리는 또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이룩한 정치사회개혁과 경제정의실현, 그리고 남북화해협력의 성과들을 계승한다.

우리 민주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이끌어 온 자랑스런 전통을 가진 정당으로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며, 민주·자유·복지·평화·환경을 당의 기본가치로 삼아 중산층과 서민의 권익을 적극 대변하는 진정한 ‘중산층·서민’의 정당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그 어떤 행위에도 반대하며, 소수의 권리를 포함한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는 자유롭고 동등한 사회를 지향한다. 또한 사회경제적 권리가 반영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확대·실현하며, 권력과 부의 독점을 배격하고 국민의 요구와 권익을 대변하는 대의정치와 책임정치를 구현한다.

우리는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10·4 남북정상선언의 정신과 성과를 바탕으로, 남북 간 사회·경제·문화 등 제 영역의 협력으로 민족의 역량을 통합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평화통일을 이룩한다. 남과 북, 해외 동포를 포함한 8천만 한민족이 더불어 잘사는 국가건설을 지향한다.

우리는 일자리 확충과 중산층의 확대를 목표로 하는 사람중심 시장경제를 구축하여,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경제활동을 보장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며, 세계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

우리는 개인과 공동체, 자율과 책임, 사익과 공익이 조화되는 바탕위에서, 시장경제를 보완하는 정부의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역할을 강화한다. 보편적 복지를 통해 국민 모두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수준을 유지・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갈수록 심화되는 경제사회적 양극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한다. 국민이 불안해하는 일자리, 교육, 의료, 주거, 노후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한다.

우리는 개인의 능력이 최대한 개발되는 교육을 실현하고, 교육의 형평성 보장과 평생학습사회를 추구한다. 아울러 과학기술·문화강국 건설에 매진하고, 국토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통해 환경과 생태계를 잘 가꾸고 보전한다.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고 책임과 권리를 공유하는 성평등 사회를 지향한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그 어떤 형태의 차별과 소외도 받지 않는 정의로운 사회, 기회의 공정성이 보장되는 공평한 사회를 지향한다. 또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구현하고 계층과 세대, 이념과 지역을 아우르는 진정한 국민통합을 실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