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섹스(sex)와 젠더(gender)를 구분한다. 그들은 섹스/젠더 개념쌍을 만든 것이 대단한 진전이나 되는 듯이 떠벌리고 있다. 이런 구분에 따르면 섹스는 생물학적으로 정해지지만 젠더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구성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역사는 수백만 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진행되는 진화 역사가 아니라 지난 1만 년 동안 일어난 인류의 역사다.

 

남녀의 차이 중 생물학적 차이 또는 선천적 차이도 있을 것이고, 문화적 차이 또는 후천적 차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만 이것은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뻔한 구분이며 무슨 대단한 개념 혁명이 아니다.

 

젠더 개념에 열광하는 페미니스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구분을 엉터리로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생물학적육체적과 거의 동일시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오직 육체적 차이만 생물학적 차이일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도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한다. 남자에게는 음경과 고환이 있는 반면 여자에게는 난소, 자궁, , 음핵이 있다. 남자는 평균적으로 여자에 비해 키가 크고, 근육질이다. 남자는 수염이 나는 반면 여자는 수염이 나지 않는다. 여자는 유방이 발달하고 엉덩이도 남자에 비해 더 크다. 이런 육체적 차이가 생물학적 차이 즉 선천적 차이임을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이 인정하는 것 같다. 이런 육체적 차이도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이야기하는 페미니스트도 있긴 한데 당최 뭔 소린지 모르겠다. 적어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남자에게 자궁을 가르치는 문화권에서는 남자도 자궁이 발달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 것 같다.

 

 

 

대중은 흔히 남녀의 선천적 심리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남자는 원래 늑대야라는 말이 그 중 하나다. 이 이야기를 좀 더 과학적으로 들리게 풀어 보자면 선천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성교와 관련하여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도록 생겨 먹어서, 아직 성교를 하는 관계가 아닐 때 성교를 더 원하는 쪽은 대체로 남자이며, 남자는 이럴 때 보통 성교를 아주 간절하게 원한다가 된다. 여자는 원래 겁이 많다, 남자는 원래 싸우기 좋아한다, 남자는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다, 모성 본능 등 남녀의 선천적 차이에 대한 온갖 대중적 명제들이 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것들을 섹스가 아니라 젠더라는 범주에 포함시킨다. 대중은 이런 차이가 선천적 차이라고 보는 반면 페미니스트들(진화 심리학을 받아들이는 페미니스트들은 서술의 편의상 무시하기로 하자)은 후천적 차이라고 보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느니, 역할이라느니, 학습의 산물이라느니, 사회화 때문이라느니 여러 가지 표현이 있긴 하지만 서로 비슷한 주장이다.

 

젠더 이론가들은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어떤 남녀 차이도 진화할 수 없었다고 굳게 믿는 듯하다. 그들이 이렇게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유전학, 진화 생물학, 동물학, 뇌 과학 등에 대해 지극히 무식하기 때문이다. 무식하니까 용감한 거다. 심리에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는 통뼈인가? 그런 유전자만 자연 선택의 영향을 받지 않는단 말인가? 심리는 결국 뇌의 산물이다. 따라서 뇌의 발달에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는 심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물론 뇌의 발달에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도 자연 선택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남녀의 심리적 차이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하지 말아야 할 어떤 근본적인 이유도 없다.

 

또한 온갖 종의 동물들의 암수가 서로 다른 심리를 보인다. 이런 것들도 문화적으로 구성된 역할의 차이 때문이라고 우길 셈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동물과 인간 사이에는 아주 특별한 차이가 있어서 동물의 경우에는 심리적 암수 차이가 진화할 수 있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진화할 수 없단 말인가? 페미니스트인 신이 있어서 인간 진화를 인도했다고 이야기할 셈인가?

 

6백만 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침팬지와 인간의 공동 조상의 경우 암수의 선천적 심리 차이가 있었을까? 유인원에 대한 온갖 연구들을 바탕으로 추측해 보건대 그런 차이가 있었을 것이 뻔하다. 그런데 현생 인류는 그런 차이가 없다고 젠더 이론가들은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난 6백만 년 동안 남녀의 선천적 차이가 사라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이야기다. 남녀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진화했다. 예컨대 우리의 조상들은 지난 6백만 년 동안(물론 그 이전에도) 여자가 임신을 하고 수유를 했다. 남녀의 환경이 다르다면 다른 선택압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차이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남자와 여자가 심리적 측면에서도 선천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온갖 연구들이 보여주었다. 자세한 것은 David C. Geary Male, Female: The Evolution of Human Sex Differences(2, 2010)』를 참조하라. 몇 가지만 나열해 보겠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자식을 더 사랑한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많은 상대와 성교하고 싶어한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겁이 많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육체적 싸움을 더 하려고 한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서열에 집착한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배우자가 육체적으로 바람을 피웠을 때 더 민감하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이성의 외모에 더 집착한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이성의 나이에 민감하다(속된 말로 말하자면, 영계를 좋아한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어떤 종류의 증거들 대고 있나? 이것도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인류 보편성인지 따진다. 남녀의 차이가 모든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면 선천성 가설이 힘을 얻는다. 이럴 때 젠더 이론가들은 왜 모든 문화권에서 똑 같은 역할을 부여하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골치 아픈 문제에 부닥친다.

 

둘째, 어린이 또는 아기를 관찰한다. 예컨대, 아주 어릴 때부터 남자 아이는 바비 인형보다는 장난감 차를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으며 육탄전과 비슷한 놀이를 더 즐긴다.

 

셋째, 선택압의 논리와 비교해 본다. 예컨대, 남자는 많은 상대와 성교를 하면 여자보다 더 많은 번식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모든 문화권에서 성교 여부를 두고 갈등이 벌어질 때 성교를 하고 싶어하는 쪽은 대체로 남자다.

 

 

 

젠더 이론가들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제시하는 이런 증거들을 반박해야 한다.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심리적 암수 차이가 지난 6백만 년 동안 몽땅 사라지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그럴 듯한 시나리오를 제시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둘 다 가망성 없는 과업이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다. 젠더 개념에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남녀의 선천적 차이에 대한 대중의 통찰이 대부분 옳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젠더 이론가들은 대중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농락당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대중보다 이런 면에서 우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에 농락당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젠더 이론가들이다. 그들은 백지론 이데올로기에 빠져서 과학을 무시하고 있다.

 

 

 

2011-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