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옥에 관련된 이야기나 영화를 좋아한다. 가장 처음 읽은 감옥 관련 책은 겉표지가 날아가 버린 어떤 종이뭉치였는데, 교도관이 쓴 것으로 기억이 된다. 기억나는 것으로는 창비에서 나온 <까치방>, 그 다음 <빨치산 철장수첩>,<그린 마일>. 그린 마일도 감옥이야기에 포함이 되려나 모르겠네. 가장 감동을 받은 감옥서적으로는 율리우스 푸치크의 <교수대로부터의 리포트>가 있다. 쇼생크 탈출과 같은 영화도 감옥에 관련된 것이라면 꼭 구해다 본다. 한편 어떤 감옥 영화는 진짜 어이가 없다. 이 감옥이라는 것이 한정된 공간이다 보니 배우 몇 명 쓰고 무대만 적절히 꾸미면 그냥 날로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옥영화는 항상 집중이 잘 된다. 
    
    

나는 감옥 근처에도 가보질 못했다. 학생시절에 딱 한번 끌려갈 뻔 했었는데,  당시 그 기억은 이후 나의 행동을 많이 규정했다. 이 책의 저자는 그야말로 열혈 386 운동권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나의 친구 중에도 빵잽이들이 더러 있다. 그들과 모의를 한 적도 있지만 나는 중간에 빠져 나오고 만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 빵잽이들에 대하여 나는 항상 부채의식을 느낀다. 그들이 가진 현찰(나는 그들의 수감을 이렇게 부르곤 했다.)이 부러웠지만 그런 현찰은 나에게 너무 무섭고 무거운 것이었다. 현찰을 가진 사람, 수표 어음을 가진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겨우 쿠푼 몇 장, 그것도 가게 앞에 쭉 쌓아놓고 아무나 가져가는 그런 싸구려, 액면은 다소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통용이 거의 되지 않는 쿠폰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세월이 한참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런 운동권, 특히 빵을 살고나온 친구들에 대한 부체의식은 이후 나를 그나마 지탱해주고 나름 사회적 이슈에 꼼지락거리게 해주는 최소한의 비상용 배터리 정도로 작용했지 싶다. 세월이 한참 지나 한창때 빵을 살고나온 당시 운동권 친구들을 만나면 어떤 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적 질서를 잘 이해하고, 잘 활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몇 몇은 세속적으로 꽤 성공한 사업가가 되기도 했는데 그런 그들을 볼 때 나는 너무 기분이 좋다. 약간의 빚을 깎아주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들이 내가 가진 생각을 들으면 그야말로 대학 1,2학년 때의 초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놀리기도 하는데 나는 그 놀림이 그다지 나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뭐 억지로 비유를 한다면 이런 이야기 같다. 아가씨를 안고 냇가를 건너간 스님은 이후 그 아가씨 생각을 잊고 사는데, 그 장면을 보고 같이 냇가를 지난 사람은 계속 그 아가씨 생각을 “안고”갔다는 우화 비슷하게. 아물지 못한 청춘의 상처는 항상 나를 괴롭히고 있지만, 그것은 나의 세속 수양생활에 항상 좋은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보왕삼매경에서 말하듯... 병으로 양약을 삼는 셈이라고 할까..
           

이 책은 일단 매우 재미있다. 몇 전직 운동권들이 쓴 회고록에서 보이는 설교 투나 강론 투의 주장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어떤 감옥 수기를 보면 이 글이 수감자가 쓴 것인지, 교도관이 쓴 것인지 알기 힘든 경우도 있다. 모든수감자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감옥수기는 조금 지겹고 이상하다. 왜냐하면 실제 그렇게 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그건 일종의 허위의식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수감자를 자신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정리하고 뭔가 거룩한 Theorem을 만들려고 무지 애를 쓰는 글보다 나는 이런 솔직하고 있는그대로의 다큐성 글이 좋다. 책의 저자는 그야말로 빵에서 다른 수감자들과 같이 녹아들지만, 그 안에서도 끊임없이 빵투를 벌이고 고민을 한다. 이게 그의 감방 생활에 잘 녹아있어, 정말 리얼리즘이 느껴진다. 리얼에 당할 자는없다.  설득에 최고의무기다.유명한 목사의 거룩한 설교보다 10분의 간증이 훨씬 빤치가 쎄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심심한 수감자들끼리 내기를 잘 하는데, (당연히 그러하겠지.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상상력 밖에 없으니까.) 한번은 지하철에 문에 몇 개 인가로 “심리”가 붙었다. “심리”란 수감자들끼리의 논쟁을 법조식으로 미화해서 쓰는 용어라고 한다. 여기에 얼마나 몰두를 했는가하면 저자는 면회 온 아내에게 꼭 이것을 알아달라고 했다니, 우습기도 하고 참 슬프기도 한다. 어떤 수감자들은 그림으로 그린 화투 놀이에 빠져서 면회신청자에게 “그런 사람 없다”라고 교도관에게 말한 뒤 계속 섰다판을 벌렸다고 한다. 수감된 잡범들과 같이 녹아내린 빵생활을 이렇게 재미있게 말해준  운동권 수감자를 보지 못한 것 같다. 
       

감옥이든 지옥이든 사람이 사는 데에는 어떤 경우라도 유머와 여유가 있어야 한다. 도망갈 수 없다면 즐겨라 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 이렇게 할 수 있는 내공을 지닌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다. 심재철과 같이 홱까닥을 하거나, 불의의 무리에 동참은 하지 않더라도 과거와 단절을 한 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운동권도 많이 보았다. 저자도 그 경력으로 본다면 그렇게 골수 운동권이나 정교한 이론으로 무장한 사람은 아닌 듯하다. 아마 운이 좋았거나, 좀 더 민첩했더라면 옥살이를 면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의 친구 중에 진짜 어처구니없이 운동권이 된 사람이 있다. 이 친구는 원래는 운동이나 이런 정치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관심 있는 그야말로 physical한 운동 그 자체였다. 솟아오른 근육을 쓰다듬으면서 매우 즐거워했는데. 하루는 교문싸움이 있고 본관 집회가 있은 후, 교문이 봉쇄되었다. 우리는 각자 알라서 학교 밖으로 빠져 나갔는데, 이 친구는 그냥 뭔가를 기다리다 잔디밭에 누워서 잠을 자게 되었다. 집회가 끝나고 천연덕스럽게 잔디밭에서 자빠져 자는 학생을 곱게 볼리가 없는 시절이었으니까.  이 친구는 근처 짭새들에게 자다가 끌려가서 큰 고초를 겪었다. 협상 끝에 휴학으로 결판을 보았다. 진짜 순진한 육체적 운동권 학생을 정치적 운동권을 만든 괴이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이렇게 우연한 사건과 사고의 연속으로 삶이 결정된다. 여하간 나는 저자와 같이 이해와 아량의 폭이 넓은 사람을 좋아한다. 대학졸업이후 밖에서 만난 사람 중에 빵잽이가 몇 명 있었다. 한 인간은 어찌도 그 현찰을 자랑하는지. 토론을 할 때 조금이라도 성에 차지 않으면 난리가 나는 것이다. 아 현찰이 없는 변두리 민주시민의 설움이란... 하하..
       

운동권이든 우주인이든 노가다건, 그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도 미소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뭔가 재미있고 새롭고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주장을, 사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돌도끼가 통하지 않는 현실에서 가장 큰 무기는 설득력이다. 설득력에는 논리가 핵심이라고는 하지만, 명징한 논리는 마음의 표면을 뚫는데 성공을 할 수 있지만, 그 침투시킬 내용이 상대방의 마음에서 착근을 하고, 또 그 논리가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논리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논리>로 다른 사람을 이해시킬 수는 있지만 움직이게 하기위해서는 논리만으로는 절대 부족하다. 내가 변희재를 B급 논객(잘 봐줘서)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에게는 논리, 그것도 삶에서 나온 것이 아닌 상상 속의 조악한 주장, 외침 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희재는 이런 저자들에게 한 수 아니라 열수 쯤 배워야 할 것이다, 적어도 글쟁이로 글을 팔아서먹고 살려면, 변희재는  이 책을 통독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맨날진중달에게 당하고, 결국에는고소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건달이라면 주먹으로, 글쟁이라면 말과 글로 싸워쟈 한다. 칼을 들지말고. 변희재말고도, 우파작가들은 더 분발해야 한다. 재미있고 설득력있게 글쓰기 기대해 본다. 나를 이해시키려하지말고 움직이게 해다오.예를 들면 이승만 동상건립에 몇 만원 보태줄 수 있도록 나를 꼬셔보길 바란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유머라는 얇은 랩(wrap)을 씌워 설득력 있게 말해주는 이  이야기의 끝은 약간 슬프다. 특히 고도근시에서 이제는 거의 책을 읽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그의 삶은 고단할지라고 우리는 그의 삶의 자세에서 큰 희망을 배당 받는다.  어떤 심오한 철학책이나 강령보다 나에겐  이 책이 더 심오하게 다가온다.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후기: 출소 후 승승장구한 100억 매출의 사업이 망해버린 그 사연이 나는 더 궁금하다.

        책 앞에 쓰인 <추천의 글>은 차라리 없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좀 어울리지 않는다.

        중간 중간에 쓰인 용어해설은 좀 없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전두환 시대를 모르는

       요즘 아이들에게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지만, 글쎄 전체 분위기와는 썩 어울리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