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고양이 한 마리의 죽음을 둘러싸고 우리나라 양대 동물보호단체 ‘동물사랑실천협회’와 ‘카라(KARA· Korea Animal Rights Advocates)’간에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포격으로 주민들이 연평도를 떠난 후 방치돼 있던 한 고양이를 동물사랑실천협회가 서울로 데리고 온 후 악화된 병 때문에 그 고양이를 안락사 시켰는데, 카라측은 불필요한 구조활동을 벌여 고양이가 죽었다며 동물실천협회를 비판하면서 설전이 시작됐다고 한다. 이 일은 어느 쪽이 더 동물에 대한 사랑이 충실한 지를 겨룸으로써 동종업계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싸움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 애완동물들에 관한 일이 사회적 이슈가 자주 되고 있다. 개 식용 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논쟁의 단골 주제고, 유기애완동물, 애완동물학대, 로드킬, 애완동물 배설물, 애완동물 미용 및 수술, 애완동물에 대한 사치 및 과세, 애완동물의 구호문제까지 주제도 다양해졌다. 이런 현상을 보면 우리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것도 같고 생명에 대해 관심이 늘어 난 것도 같아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이런 현상들이 자기중심성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명칭만 해도 그렇다. 누구는 애완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도 부르는데 나에겐 위선적으로 들린다. 가족과 같은 반려동물이라면 피난할 때, 또는 휴가 갈 때 버리고 갈 수가 있을까?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애완동물은 반려동물이 아닌 갖고 놀다 싫증나면 팽개치는 장난감 같은 존재라고 생각된다. 

나도 동물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애완동물을 기르고도 싶다. 그러나 나는 섣불리 실행을 못 한다. 왜냐면 책임감 때문이다. 어느 동물을 좋아한다면, 그 동물의 행복도 생각해야한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행복이 애완동물의 희생에 기반을 둔다면 그것은 건강한 행복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또는 가두거나 묶어서 애완동물들을 기른다. 그러나 동물들은 자연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 아파트에서 사료나 많이 주고 원치도 않는 목욕을 자주 시켜주는 것으로 애완동물을 사랑한다고 착각한다면, 자기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또는 취향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애완동물들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거나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이다.


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새장에 새를 기를 것이 아니라 새가 사는 자연으로 와서 같이 살면 된다. 그게 싫으면 새의 모형을 아파트에 걸어놓고 녹음된 새소리를 들으면서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그것이 새를 가두는 학대 보다는 훨씬 건전하다.

나는 새도 좋고 나무도 좋아 산 속에서 살고 있다. 온갖 새들이 우짖으며 마당을 들락날락하니 나도 즐겁고 새들도 즐겁다 (새 때문에 땅콩 농사를 망치기도 했지만.... ^^). 좋아하는 개도 기르고 싶지만 아직 여건이 안 된다. 내가 장기간 집을 비우게 되면 그 개를 방치하게 되기 때문에, 개를 방치하지 않을 장치가 마련될 때까지 개 기르기를 보류하고 있다.

끝으로 개 식용 문제에 대해 말하면 나는 양측을 상호존중하는 입장이다. 나는 개고기를 안 먹는다. 하지만 개고기 애식가들이 나에게 그걸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는 이상 나도 그들의 취향을 존중해주고 싶다. 남에게 피해를 크게 안 입히는 한 모든 사람들의 취향은 보호돼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채식이 좋은 지 육식이 좋은 지의 논쟁이 아니라면,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일종의 권리 침해다. 음식이란 자기가 싫으면 자기만 안 먹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애완동물에게 수백만 원 짜리 침대를 사주고, 비싼 놀이방에 보내고, 비싼 미용을 해주고, 비싼 스테이크를 사주고, 죽으면 600만 원 짜리 묘지에 묻는 사람이 있더라도 비난하고 싶지 않다(속으로는 딱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똘레랑스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애완동물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집착 때문인지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