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는 헌법 제21조 1항에 규정된 언론출판의 자유에 의하여 보장됩니다. 표현의 자유는 전통적으로 사상 또는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할 발표의 자유와 함께 그것을 전파할 자유로서 양심의 자유와 함께 정신적 기본권의 핵심입니다. 인간 개인의 존엄성으로부터 출발한 근대 자유주의 헌법이론의 핵심은 역시 자유권적 기본권이고, 그 중에서도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본래 개인을 단위에 놓고 생각됐지만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사실상 언론기관의 자유를 보호하는 기능을 합니다. 헌재가 신문법 케이스에서 일간신문사 지배주주의 뉴스통신사 또는 다른 일간신문사 주식,지분의 소유,취득을 제한하는 규정과 1개 일간신문사의 시장점유율 30%, 3개 일간신문사의 시장점유율 60% 이상인 자를 시장지배적사업자로 추정하는 규정에 대하여 신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각각 헌법불합치결정과 위헌결정을 내린 것과 같이 언론기관의 소유와 경영도 언론의 자유로 보호합니다. 여론정치에 의한 현대 민주정치에 있어서 언론기관의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의지가 나타난 케이스죠.

물론 저 사건은 '신문'사들이 제기한 소송이었습니다. KBS와 같은 방송사는 신문사와 다르게 법적으로 더 많은 규제를 받죠. 헌법도 제21조 제3항에서 "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여, 신문관련법에 대하여는 '기능보장', 방송관련법에 대해서는 '시설기준'에 대한 규정을 요구합니다. 국민에 대한 방송의 신문보다 큰 영향력과 공공성, 전파 공공성 논리에 기초해서 함부로 방송사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의도죠. 하지만 그럼에도 방송사도 언론사이니만큼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향유합니다. 국가의 직간접적인 지원과 규율을 받는 공영방송사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바로 그러한 공영방송사인 KBS가 이번에 '도청 의혹 사건'에 휘말렸습니다. 그것도 제1야당 민주당의 대표실에서 있었던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를 도청했다는 의혹입니다. 더 큰 문제는 KBS가 공익을 위해 은폐된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목적으로 도청을 했다는 의혹이 아니라, '수신료 인상'이라는 자사의 이익을 위하여 이해관계인의 당사자로서 도청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입니다.

민주당이 '수신료 1000원 인상'안에 대한 반대입장을 표시한 이후, KBS 기자들을 소위 '적극적 취재기법'을 사용하며 공세적으로 민주당 의원들을 압박했습니다. 수신료가 1000원만 인상되어도 KBS는 2000억원이라는 예산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의 명운을 걸고 KBS 입장에서는 전 사원이 뭉쳐서  이번에는 반드시 수신료 인상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지금까지 10년 넘게 수신료 인상을 요구해왔지만, 언제나 '야당'의 반대로 실패해왔기 때문에, 종편실시와 맞물린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조세와도 성격을 달리하고, 서비스의 대가로 지불하는 수수료의 성격도 아닌 특별부담금 형태의 수신료는 공영방송의 존립과 방송의 공공성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기업의 광고로 인한 외부적 압력에 맞서 방송의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는 수신료를 어느 정도 인상해서 KBS 2채널에서도 광고를 하지 않도록 하는 방향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이번 도청 의혹이 사실이라면, KBS는 정말 언론기관, 나아가 공영방송으로서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명목삼아 참여정부의 '취재선진화방안'에 대해서 언론 자유의 투사인양 반대하고(개인적으로 참여정부의 저 방안에 저도 반대하지만), 정치권의 보도 논조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을 고양시키는 차원에서의 언론의 자유를 외치더니, 자사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서 문제의식 없이 제1야당의 대표실을 도청하고, 또 그 결과물인 녹취록을 자사의 이익에 도움되는 한나라당 정치인에게 전달한 것은 언론윤리를 넘어 법적으로도 아주 큰 문제가 되는 엄청난 짓입니다. 성공적인 대 소련정책으로 외교적 업적을 남긴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사임케 한 것이 바로 도청이었음을, 그리고 그 사건을 파헤친 장본인이 언론사, 기자였음을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알고 있을 언론기관, 공영방송의 기자가 도청의 주체가 되어서 제1야당 대표실을 도청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본래 인격발현과 개성신장의 효과를 가지는 사상이나 지식에 관한 정치적, 시민적 표현행위를 보호하던 표현의 자유는 이제 그것을 넘어서, 상업광고, 게임, 심지어 음란물에 있어서의 표현까지도 보호하는(보호의 정도는 다르지만) 현대 민주국가의 핵심 기본권입니다. 상업광고, 음란물의 표현도 표현의 자유의 보호영역에 포함되지만,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시민적 표현행위를 그 보호대상으로 합니다. 국가와 시민사회 중간에서 시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 조직, 표현하는데에 언론기관의 역할이 막중하기 때문에 언론에 대해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와 더불어 '제4부'라고 하거나 (민주, 공화 양당제가 정착된 미국에서) '제3의 정당'이라고 하는 등 언론기관은 시민사회 영역에서 정당의 역할을 하며, 국가기관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언론기관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이만한 영향력을 가지는 까닭과 그것을 헌법차원에서 보호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죠. 시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이 곧 국가의 의사 형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매개, 창출하는 언론기관은 당연히 중요하고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언론기관이, 헌법이 제도적으로 보장한 시민사회와 국가 사이의 제도적 매개체인 정당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도청이라는 수단을 사용해서 개입했다는 의혹은 지금까지 언론기관의 자유를 보장해온 이유, 명분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설령 도청을 하지 않았고 KBS의 주장대로 '벽치기'를 통해 몰래 듣고 받아 적은 녹취록이 어쩌다가 한나라당에 흘러간 것이라도, (법적 처벌은 안받겠지만) 자사의 이익을 위해 제1야당에게 일반 사기업이 하듯 정치적 압박을 가하고, "다음 총선 때 두고 보자"라는 정치적 협박을 하고, 민주당의 카운터파트인 한나라당에게 민주당 측 회의내용을 넘겨서 한나라당이 전략을 짜는데에 도움을 준 행위는 여전히 큰 문제로 남습니다.


지금까지 언론개혁은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신문시장구조개선이 그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언론개혁운동이 활발해진 시기가 민주정부 시기이다 보니, 정권 입맛에 맞는, 그리고 진보개혁세력의 입맛에 맞는 방송을 해온 방송사에 대해선 재벌신문사와 대비되어 오히려 '우리편'이라는 생각으로 큰 관심을 쏟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땡전뉴스를 하던 방송사의 성질, 언론기관으로서의 책임의식 따위는 결여된, 일반 사기업과 다를 게 없는 자사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기회주의적인 성질은 민주정부10년 동안에도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방송사와 방송기자들의 책임의식, 윤리의식 결여, 몰가치적인 자사이기주의는 어떤 제도개혁을 통해서 타파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죠. 정권이 바뀌면 그 정권의 입맛에 맞는 내용을 방송하고, 그런 태도를 취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