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이 또 한바탕 했습니다. 요즘 가장 핫한 임재범의 퍼포먼스를 대상으로 '후진 미감'이라고 독설을 날렸습니다. 임재범의 나찌 퍼포먼스는 그의 노래 '패러돔(paradom, 역설의 왕국이라는 뜻)'이라는 반전반핵평화를 주제로 한 노래의 시작 전에 행해졌다고 합니다. '역설의 왕국'이라는 곡명과 반전반핵평화라는 주제에 어울리도록 역설적으로 전체주의, 인종학살, 전쟁범죄의 상징인 나찌의 군복을 입었다가 "히틀러 이스 데드, 하일 프리덤"이라는 대사를 말하고 군복을 벗고 '패러돔'을 불렀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찌시대의 영화, 음악, 미술 같은 예술에 고전주의적인 요소가 발견되고 특히 나찌의 군복은 군복 중에서도 가장 멋있(?)다고 알고 있는데, 아마도 임재범은 자신의 노래의 제목과 주제에 나찌가 가지는 상징과, 나찌 군복의 영웅주의적, 고전주의적 아름다룸(?)이 가장 잘 어울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그런 퍼포먼스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락 공연에서 이런 퍼포먼스는 진부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7~80년대 무거운 주제를 다루던 시기에 유행하던 것을 2011년에 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반전과 나찌군복이라는 소재는 그야말로 클리셰라고 하더라고요.

진중권의 트위터 내용인 "임재범은 문제가 될 걸 알았겠지요. 그래서 윤리적 논란을 피해갈 명분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런 촌스런 도덕적 변명까지 내세워가면서까지 굳이 그런 짓을 하고 싶어하는 그 미감이 후진 거죠"를 보면 진중권이 임재범의 의도나 공연의 맥락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비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미감이 후지다"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비평입니다.

이런 진중권의 비평에 대해 작곡가 김형석은 "개인감정(스킨헤드 등에 대한 공포)을 전체에 대입하지 마라"며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라고 반박했습니다. 진중권은 자신의 신념에 비추어 마음에 들지 않는 사회현실을 비판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으면서 왜 예술가의 퍼포먼스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느냐는 의미겠죠. 엄밀하게 보자면 임재범의 예술가로서의 공연이 문제된 것이므로 언론출판의 자유 영역의 표현의 자유보다는 학문예술의 자유에 있는 예술의 자유를 김형석이 들고 나오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고, 또 원칙적으로 자유권과 같은 기본권은 국가 대 사인의 관계에서 문제되는 것이고 진중권이 임재범의 예술창작, 예술표현에 있어서의 결정권 등을 제한,침해한 것이 아니고 그저 미학적으로 후지다는 비난,비평에 불과하기 때문에 김형석은 진중권에게 제대로 반박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법적인 이야기를 떠나서, 진중권 비평의 미학적 효용(?)과 사회적 영향력의 시각에서 보면 '표현의 자유'를 들며 진중권에게 항변하는 작곡가 김형석의 입장이 이해가 됩니다. 지금까지 진중권이 평론가로서 한 대중적으로 알려진 예술비평은 심형래의 디워, 라스트 갓파더 그리고 임재범의 퍼포먼스가 전부입니다. 진중권은 예술비평에 대해서 "평론가라는 건 예술 커뮤니케이션에서 피드백 시스템으로, 잘못했을 때 지적해서 다음 제작할 때 제대로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했고 "가장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꼼꼼하게 지적하는 비평이 작가에 대한 최대한 예의라 생각한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진중권이 자신의 전공을 살린 예술비평에서, 과연 자신이 말한 예술비평의 기능을 하는 비평을 한 적이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별로 그런 적이 없습니다.

물론 영화잡지에 '아바타'에 대한 비평도 하는 등 정제된 언어로 진짜 비평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런 진중권의 활동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릅니다. 대중들이 아는 진중권의 비평은 심형래, 임재범에 대한 것이 전부인데, 이처럼 대중적인,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비평에 있어서 진중권의 그것은 전혀 '예술비평'이 아닙니다.

심형래의 디워, 라스트 갓파더에 대한 진중권의 행위는, 일단 심형래의 영화에 대한 비평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죠. "우리도 할리우드 못지않은 특수효과를 사용한 괴수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식의 애국주의와 그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반응에 대한, 예술비평으로서가 아닌 사회비평, 사회평론, 사회비판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오히려 심형래의 영화는 비평할 가치도 없다면서 쓰레기 취급을 했죠. 이런 진중권의 비평 아닌 비난에 대해서 심빠들은 (마치 황빠처럼) 진중권을 공격했지만 이미 상당히 형성된 진빠들이 그에 맞서서 '투쟁'을 벌였습니다. 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면서 이건 예술비평의 차원을 넘어선, 정치투쟁이 되어버렸죠. 피트백 과정, 작가에 대한 예의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애초에 비평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를 추종하는 세력과 '그 세력에 맞서는 합리적 지성인'을 따르는 세력 사이의 싸움이었습니다. 진중권은 이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진지한 비평은 전혀 하지 않고(어짜피 쓰레기니까 쓰레기에 어울리는 태도를 취한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자신의 독설에 대해 환호하는 대중들을 동원할 수 있는 더 자극적인, 더 지독한 단어를 골라가며 디워를 공격했죠. 이런 진중권의 행위는 라스트 갓파더에서도 그대로 이어지죠.

진중권의 이러한 예술비평을 가장한 정치행위는 예술비평의 기능, 즉 피드백 과정과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쓰레기 또는 쓰레기에 버금가는 무언가에 대해 열광하는 대중들에 대한 격렬한 혐오감정을 배설하고 그러한 자신의 감정, 의견에 동의하는 진빠를 동원해서 싸움박질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애초에 논의의 대상은 예술작품이 아니라 그걸 둘러싼 대중들의 반응, 사회적 분위기니까 말이죠.


진중권은 이번에, 또다시 별로 진지하지 않게 임재범의 퍼포먼스를 비평했죠. 이번에는 그래도 정확히 찝어서 임재범의 나찌군복 퍼포먼스를 대상으로 비평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비평의 형식을 갖춘 그런 비평이 아니라 트위터에다가 몇줄 쓴 그것이었죠. 게다가 몰취향, 후진 미감, 대중 도발, 머리 안쓰고 같은 격한 단어를 사용하면서 심형래의 영화를 비난했던 수위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비평의 수위는 넘어선, 그러니까 특히 예술가에게는 그것이 예술비평으로 생각되지 않고 마치 예전 심빠들과 정치투쟁했던 진중권이 연상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을 것입니다. 이런 정치투쟁에서 단련된 진중권과 진빠들은 비록 온라인 상에서만 그럴 뿐이지만, 엄청난 전투력을 가지고 있죠. 예술에 대한 비평, 그것을 통한 정반합적인 작가의 발전과는 거리가 먼,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고 그 과정에서 빠와 까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게 너무도 쉽게 예상되죠. 상황이 이러면 일반적인 예술가들은 당연히 창작에 있어서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국가권력에 의한 간섭은 아니지만,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서 가십적인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거친, 전혀 예술비평적이지 않은 언어들이 오가면 예술할 맛 뚝 떨어지는 거죠. 게다가 훈련된 평론가인 진중권에 맞서서 예술가 자신이 자신의 의도, 미적 취향을 진중권만큼 논리적으로 보이도록 표현하기도 어렵고, 또 만약 예술가가 그러한 행동을 하게되면 더욱 더 (예술비평과 무관한) 사회적 논란, 개싸움만 심해지죠.


결론적으로 진중권의 '대중적'인 비평은 그 내용이나 태도에 있어서 충분히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간섭합니다. 침해라고는 생각되지 않고, 국가의 간섭과는 성질을 달리하지만,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에 전혀 +가 되지 않고 예술과 거의 무관한 사회적 논란만 불러일으키면서 자신의 팬들을 동원해서 정치투쟁하는 방식의 그의 비평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몇 주 뒤에 나찌복장에 대한 진중권의 글이 나온다는데, 처음부터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정말 비평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왜 어째서 무엇을 노리고 무슨 의도로 진중권이 정치적 투쟁을 하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짧은 한 두마디의 표현과 그것을 추종하는 진빠들의 행위가 예술가(심형래도 뭐 어쨌든 예술가니까..)들의 예술활동에 해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