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이분법: 인간은 쾌락을 위해, 동물은 종족 보존을 위해

 

동물은 오직 종족 보존을 위해 성교를 한다라는 명제에는 세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species preservation instinct를 보통 종족 보존 본능이라고 번역하는데 종 보존 본능이 엄밀한 번역이다. 종족은 보통 race를 번역할 때는 쓰는 단어다. 지금이라도 정확한 표현인 종 보존 본능이라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종 보존 본능은 진화할 수 없다. 종 보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도록 하는 유전자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다음 글을 참조하라.

 

집단 선택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222

 

개체의 차원에서 보면, 성교는 개체의 포괄 적합도에 도움이 된다. 종의 차원에서 보면, 성교는 종 보존에 도움이 된다. 이 두 가지는 성교의 효과다. 하지만 효과와 기능을 구분해야 한다. 어떤 효과가 자연 선택에서 원인의 역할을 할 때 진화 생물학적 의미의 기능으로 인정 받는다. 진화 생물학의 기능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기능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243

 

동물은 자식을 낳기 위해 성교를 한다. 하지만 종 보존을 위해 자식을 낳는 것이 아니라 같은 종의 다른 동물에 비해 더 많은 자손을 남기기 위해 자식을 낳는 것이다. (의인화를 하자면) 자연 선택은 종이 멸종하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자연 선택에서는 어떤 개체가 같은 종에 속하는 다른 개체에 비해 더 잘 번식하면 그만이다. 또는 어떤 유전자가 같은 유전자 풀(gene pool)에 속하는 다른 유전자에 비해 더 잘 복제되면 그만이다. 예컨대 유아살해가 종 보존에 해롭다 하더라도 개체 또는 유전자에게 이득이면 유아살해 경향이 진화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유아살해를 하는 종들이 많이 보고되었다.

 

셋째, 동물은 오직 자식을 낳기 위해 성교를 한다라고 바꾸어 봐도 문제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성교의 궁극 원인에 대한 가설들>을 보라.

 

 

 

이제 인간은 쾌락을 위해, 동물은 자식을 낳기 위해 성교를 한다고 보는 이분법에 대해 살펴보자. 이런 비교 자체에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쾌락을 위해는 근접 원인에 대한 설명인 반면 자식을 낳기 위해는 궁극 원인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근접 원인을 동물의 근접 원인과 비교하든가, 인간의 궁극 원인을 동물의 궁극 원인과 비교해야 한다. 근접 원인과 궁극 원인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궁극 원인 --- 진화 심리학 첫걸음마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210

 

이 이분법을 궁극 원인의 측면에서 재구성해 보자. 그러면 동물은 오직 자식을 낳기 위해 성교를 하고, 인간은 자식 낳기 말고 다른 이유 때문에 성교를 한다가 된다. 그래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동물이 오직 자식을 낳기 위해서만 성교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 유생 생식인가?

 

인간과 동물이 왜 성교를 하는가?라는 질문을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왜 압도 다수의 다세포 동물들이 무성 생식을 하지 않고 유성 생식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르게 된다. 이 질문은 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을 매혹했으며 수 많은 가설들이 나왔다.

 

얼핏 생각해 보면 유성 생식은 미스터리다. 왜 무성 생식이라는 편리한 방법이 아니라 유성 생식이라는 번거로운 방법이 더 많이 나타나는 것일까? 유성 생식을 하려면 짝을 찾아서 성교를 해야 하지만 무성 생식의 경우에는 그냥 자식을 만들어내면 된다. 게다가 유성 생식을 하게 되면 자신의 유전자들 중 절반만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다. 돌연변이라는 요인을 무시한다면 무성 생식의 경우에는 자신의 유전자들을 몽땅 자식에게 물려준다.

 

이 미스터리와 관련된 가설들 중 아마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Hamilton의 가설인 것 같다. 그에 따르면 유전자들을 뒤섞어서 기생 생물을 더 잘 물리치기 위해 절대 다수의 동물들이 유성 생식을 한다. 앞으로 Hamilton의 논문을 세 편 정도 번역할 생각인데 아래 논문도 그 중 하나다.

 

Sexual reproduction as an adaptation to resist parasites(1990), William D Hamilton, Robert Axelrod, Reiko Tanese

 

매트 리들리는 유성 생식에 대한 온갖 가설들을 쉽게 풀어 썼다.

 

『붉은 여왕 - 인간의 성과 진화에 숨겨진 비밀』, 매트 리들리 지음, 김윤택 옮김, 최재천 감수, 2006(2, 완전 개정판)

The Red Queen: Sex and the Evolution of Human Nature, Matt Ridley, Harper Perennial, 2003(초판: 1993)

 

하지만 한국어판의 번역에는 심각한 문제가 많다.

 

『붉은 여왕(김윤택 번역, 최재천 감수)』 번역 비판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2Xi/39

 

백과 사전에서 유성 생식의 진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볼 수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Evolution_of_sexual_reproduction

 

이 글에서는 왜 유성 생식을 하는지는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 동물이 유생 생식을 한다는 사실은 그냥 전제하고 넘어가겠다.

 

 

 

 

 

성교의 근접 원인

 

동물과 인간이 성교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성충동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성교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성적 쾌감 때문이다. 동물은 쾌감을 느끼는 일을 또 하려는 경향이 있다. 침팬지가 성적 쾌감을 느낀다는 것을 암시하는 관찰이 있었다. 아직 동물의 성적 쾌감에 대한 연구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영장류 중에는 성적 쾌감을 느끼는 종이 많을 것 같다.

 

인간의 경우 돈을 벌기 위해 성교를 하기도 한다. 근접 원인의 수준에서 좀 더 명확히 표현하자면, 돈에 대한 욕망이 있고 많은 남자가 성교의 대가로 돈을 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여자 성판매자는 성교를 한다.

 

인간의 경우 에이즈를 옮겨서 복수를 하는 것과 같은 아주 특이한 이유도 있다.

 

강간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발적인 행동이 아니다. 따라서 성교를 하는 이유에 포함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근접 원인에 대한 설명이 옳다 하더라도 그것은 온전한 설명이 아니다. 왜냐하면 왜 동물에게는 성 충동이 있을까?, 왜 인간에게는 성적 쾌감이 있을까?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궁극 원인과 관련되어 있다.

 

 

 

 

 

성교의 궁극 원인에 대한 가설들

 

첫째, 수컷은 성교를 통해 암컷을 임신시킬 수 있다.

 

둘째, 암컷은 성교를 통해 임신할 수 있다.

 

셋째, 열등한 수컷과 결혼한 암컷은 우월한 수컷과 바람을 피움으로써 좋은 유전자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을 비롯한 온갖 종의 암컷이 바람을 피울 때에는 대체로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법한 수컷을 선택한다.

 

넷째, 포유류처럼 임신과 수유를 암컷이 도맡아 하는 경우 수컷은 여러 암컷과 성교를 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반면 암컷은 아무리 많은 수컷과 성교를 해도 낳아서 기를 수 있는 자식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수컷이 더 성교를 하려고 덤비는 경향이 있다. 이럴 때 암컷은 성교를 대가로 자원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의 경우 돈을 받고 성교를 하는 경우가 있고, 동물의 경우 음식을 받고 성교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선택압(selection pressure) 때문에 자원과 성교를 교환하는 것과 관련된 심리 기제가 암컷에게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기제가 실제로 있다면 매춘 기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인간의 매춘 기제에 대한 연구가 발표된다면 강간에 대한 진화 심리학 연구를 뛰어넘을 정도로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엄청나게 욕을 먹을 것 같다. 나는 아직 인간의 매춘 기제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본 적이 없다.

 

곤충 중에는 그런 심리 기제가 진화한 것으로 보이는 종이 있다. 그런 종에서 암컷은 수컷이 먹을 것을 선물로 주지 않으면 성교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 보통 그것을 결혼 선물이라고 부르는데 오히려 화대가 더 정확한 용어인 것 같다. 선물을 주고 한 번 성교를 한 후 헤어지는데 무슨 결혼인가?

 

다섯째, 온갖 종에서 유아살해가 보고되었다. 수컷의 입장에서 볼 때 암컷이 낳은 자식이 자신(수컷)의 유전적 자식이 아닐 때에는 그 자식을 죽이는 것이 유리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젖먹이던 자식이 없으면 암컷이 곧바로 배란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암컷이 무리 내의 모든 수컷과 성교를 한다면 수컷은 암컷의 자식을 함부로 죽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자식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침팬지 암컷은 무리 내의 사실상 모든 어른 수컷들과 성교를 하는데 유아살해를 막기 위해서 그런다는 가설이 제일 그럴 듯해 보인다.

 

여섯째, 수컷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과 성교를 한 암컷이 낳은 자식이 자신의 유전적 자식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그런 자식을 돌보는 것이 자신의 번식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암컷은 수컷의 자식 돌보기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수컷과 성교를 하도록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일곱째, 만약 아내가 남편의 성교 요구를 계속 거부한다면 남편은 더 이상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후로 태어난 자식은 자신의 자식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암컷이 부부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남편과 성교를 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비슷한 논리 때문에 암컷이 수컷을 꼬셔서 남편으로 만들기 위해 성교를 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인간처럼 결혼을 하는 종이 아니더라도 암컷이 성교를 통해 수컷을 친구로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여덟째, 인간의 경우 여자도 성적 쾌감을 느낀다. 만약 남자가 아내와 성교를 해서 여자가 성적 쾌감을 많이 느낀다면 여자가 계속 남편과 지내려고 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여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남자가 성교를 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홉째, 보노보의 경우 분위기가 험악해질 때 평화를 위해 성교를 하는 듯하다. 보노보는 동성끼리도 흔히 성교를 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다른 동물의 경우에도 자식을 낳는 것 말고도 성교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 있다. 이런 것들이 동물의 성충동, 성적 쾌감, 그리고 성교와 관련된 다른 심리 기제의 진화에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콘돔과 성교의 원인

 

어떤 수준에서 보면, 인간이 콘돔을 사용하면서 성교를 하는 것은 성교의 원인에 대한 설명과 무관하다. 콘돔을 사용하면서 성교를 한다고 해도 인간은 성충동 때문에 성교를 한다라는 설명이 그대로 적용된다. 성충동 때문에 성교를 하기는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물론 인간이 콘돔을 사용할 때에는 성교를 함에도 불구하고 임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다. 이것은 야생 동물의 성교와는 다른 결과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일 뿐이다. 결과와 원인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다른 수준에서 보면, 콘돔 사용은 성교의 원인에 대한 설명과 관련이 있다. 어떤 부부는 이제 임신을 해서 자식을 낳자고 결정한 후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교를 하기로 한다. 다른 부부는 아직은 자식을 낳을 때가 아니니까 피임을 하자고 결정한 후 콘돔을 사용하고 성교를 한다. 이 때 한 부부가 성교를 하는 이유에는 임신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반면 다른 부부가 성교를 하는 이유에는 임신 계획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성충동이나 성적 쾌감의 수준에서 보면 콘돔을 쓰든 쓰지 않든 똑 같다. 인간은 성 충동 또는 성적 쾌감 때문에 성교를 한다. 의식적 가족 계획의 수준에서 보면 자식 낳기라는 의식적 결정 때문에 콘돔 쓰지 않기라는 의식적 결정이 이루어진다. 이런 면에서 자식 낳기가 성교의 이유가 된다.

 

인간은 성충동 때문에 성교를 한다. 이것은 성충동이라는 근접 원인과 관련된 설명이다. 이런 면에서 동물과 인간은 별 차이가 없다.

 

성충동이 진화한 이유는 위에서 살펴본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이 중에는 자식 낳기도 중요한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자식을 낳으면 번식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성충동이 진화했다는 식의 설명에서 자식 낳기는 궁극 원인이다. 이런 면에서도 동물과 인간은 별 차이가 없다.

 

콘돔을 쓰지 않고 성교를 함으로써 자식을 낳기로 결정을 한 부부의 경우에 자식 낳기는 근접 원인과 관련되어 있다. 뇌 속에 있는 여러 심리 기제들이 작동하여 자식을 낳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런 의식적 결정은 다른 동물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은 것 같다.

 

자식을 낳기 위해라는 설명이 궁극 원인에 대한 설명인지 근접 원인에 대한 설명인지 분명히 해야 혼동을 줄일 수 있다.

 

 

 

이덕하

2011-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