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 등록금 문제가 대학생들의 최대현안, 가장 큰 고민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학 등록금이 대부분의 대학생들과 그들의 가정에 큰 부담을 지우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대학 등록금 문제는 대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의제라거나 학생 공동체나 학내정치의 복원의 씨앗이 되기는 어렵지만 전체 사회의 문제로서 충분한 논쟁거리라고 생각한다.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여주겠다는 현 정부의 공약은 당장은 모르겠지만, 정부가 의지를 가진다면 가능하다고도 한다. 물론 그 재정을 마련하기 위하여 재정조정이 필요할 것이고 조세부담이 약간 늘어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대학 등록금 상한선을 주장하는 것, 5%나 10%정도의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는 것과 등록금 '반값'을 내려달라는 주장은 질적으로 다른 주장으로 들린다. 한 학기 4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이 단숨에 200만원대로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등록금은 현재 대학에 다니는 2,150,290명(전문대 제외, 2009년 기준)과 그들의 가족의 공통된 문제이고 상당한 부담이기 때문에 "등록금을 내리자"는 주장에 섣부른 반대주장을 펴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대학 등록금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등록금 인하를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보수진영도 재정문제를 거론하며 외각에서 공격하는 정도다.

그런데 논쟁이 깊어지면서 이런 주장도 많은 인기를 끌게 되었다.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정태인의 <‘반값 등록금’에 반대한다>는 글에서 나타난 주장이 바로 그렇다.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1549#
 사회적 합의에 이른 “반값 등록금”에 나는 반대한다. 우리가 지금 복지를 확대해야 하는 이유는 양극화 때문이다. 양극화로 인한 피해는 당장의 경제적 효율성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어떤 정책이 아무리 복지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더라도 양극화를 촉진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면 그 정책은 올바른 정책이 아니다.

대학 등록금이 바로 그렇다. 현재도 대학 입시경쟁은 과잉이다. 그런데 대학 다니는 비용을 낮춰 준다면 대학에 가려는 사람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입시 경쟁은 더 격화될 것이다.
 

 똑같이 교육 비용을 줄이는 일이라면 현재 20조원을 훌쩍 넘어선 사교육을 중지시키는 것이 백배, 천배 낫다. 민주노동당의 7조원도 매년 사교육비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으며 교육기회의 평등이라는 점에서도 훨씬 정의롭다.

당장 아이들의 고통은 어찌 할 것인가? 차라리 아르바이트 최저 임금을 대폭 올리는 것이 낫다. 대학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 등 자산을 처분해서 등록금을 낮추도록 유도 할 수도 있다. 만일 거부한다면 정부의 지원을 줄이는 추가 제재도 가능하다.

대학에 대한 예산은 각 지방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대학의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 일류대학을 향한 과잉 경쟁은 무엇보다도 심각한 임금격차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격차를 어떻게든 줄이는 것이 대학 등록금 인상을 막는 가장 근본적 처방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기업의 횡포를 막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정태인은 현재의 등록금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학력(혹은 학벌)격차에 따른 임금격차'에 있다고 본다. 임금격차때문에 '일류대학을 향한 과잉 경쟁'이 이루어지고 이것 때문에 등록금 문제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등록금이 인하된다면 과잉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기 때문에 등록금 인하, 반값 등록금보다는 차라리 '아르바이트 최저 임금의 대폭 증가'나 '지방 중소기업 생산성을 높이는 대학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지원'을 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대학에 가는 것이 문제"라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이런 생각은 "너도 나도 대학에 가려하기 때문에 수준 이하의 대학(교육수준, 재정수준 모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수준 이하의 대학에서 수준 이하의 대졸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수준 이하인 대졸자들은 자기들이 수준 이하인지 잘 모르거나 잘 알면서도 대학 졸업하는 데 들인 비용이 아까워서 직업, 직장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진 것이 청년 실업의 한 요인이라고도 한다.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 카이스트, 포항공대, 지방 소재 의과대학, 지방 명문 국립대(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등)를 뺀 나머지 대학들, 그러니까 지방 4년제 사립대학들의 교육, 재정수준이 형편없고, 거기서 배출되는 대졸자들의 수준이 과거의 대졸자들의 수준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된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정태인처럼 '과잉 경쟁'을 문제삼는 사람들이 보기에 이들이 바로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데 대학에 간 사람'들일 것이고 사회구조의 문제로 인한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오늘의 대학 등록금 문제, 고등교육(대학교육)의 문제, 더 나아가서 양극화, 복지문제의 장본인이자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의 걸림돌인 것이다.

현재 대학 진학률이 상당히 높은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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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고등학교 학생의 상급학교진학률은 80%를 넘어서고 이는 외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대학 진학률이 우리보다 높은 나라도 존재한다지만 선진국들은대체로 40~50%정도라고 한다. 예전처럼 대학생들이 '지성인'으로 여겨지지 않고 대학도 '학문의 전당'은 아니지만 분명히 80%의 대학 진학률은 대학과 대학생의 질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이다. 100명중에 80등도 대학에 가기 때문에 대학(생)수준의 하향 평준화는 필연이다.


80%가 넘는 대학 진학률은 현재 교육문제의 원인이자 결과로 지목된다. 진보진영은 이런 대학 진학률을 학벌주의, 임금격차, 과잉경쟁의 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한다. 이명박같은 보수진영은 "대학 진학률 높아서 취업률이 낮다"라면서 개나 소나 대학가서 눈만 높아진 현실을 비판한다.(링크)

등록금 문제는 고등교육(대학교육)의 문제와 청년실업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함께 논의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을 막론하고 모두들(특히 진보진영은) 대학 못가면 사람대접 못받는다는 사회인식때문에 너도 나도 대학에 가려하고 그 수요를 국가가 맞추기 위해서 대학설립을 너무 쉽게 허락해줬고 그 때문에 부실대학이 양산됐고 수준 낮은 대졸자도 너무 많아졌고 그 바람에 그들이 취직도 안되고 등록금도 비싸지고 있다고 한다. 어쩌다보니 등록금 문제는 한국의 고등교육 전반의 문제로 확대됐고 그것은 더욱 커져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의 핵심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의문이 든다. 일단 실업문제가 그렇다. 우리보다 대학 진학률이 현격하게 낮은 유럽 여러 나라들은 우리보다 훨씬 먼저, 심하게 실업문제를 앓고있다. 대학 진학률이나 등록금이 우리보다 훨씬 "선진적"임에도 대졸자를 포함한 청년들의 실업문제는 우리보다 심각하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청년실업문제는 한 사회의 경제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경제가 고도화되면 자연스럽게 일하기 힘든 직종은 기피된다. 이상적인 사회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독일조차 그러하다.

그리고 한국 교육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주장이 백가쟁명이라 획일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우리나라의 교육경쟁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다. "대학생이 너무 많다"는 보수, 진보의 공통된 주장을 대체로 진보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라는 관점에서 하고 보수는 "대학교육의 질이 저질이다"라는 관점에서 한다. 때로는 보수든 진보든 두 관점을 함께 쓰기도 한다. 대학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대학교육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대학교육 본질론 식의 주장, 대학교육이 사회에서 쓸모가 없다는 주장 등 다양하게 펼쳐진다.

조선일보는 2011년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의 국가경쟁력평가를 예로 들며 대학교육만족도(기업인이 평가)가 대졸자비율에 비해 너무 떨어진다는 기사를 통해 조중동이 몇 년째 주장하는 대학 경쟁력 강화를 외쳤다. 진보진영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잘먹고 잘사는 북유럽의 사례를 들며 '교육에서의 경쟁'을 비판부터 시작해서 한국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 구조 모두를 비판한다.

그런데 IMD조사를 보면 '기업과 대학 간 지식 이전 정도(지식이전 knowledge tansfer) 지표'가 포함된 과학경쟁력 순위는 2010년 4위이고, '수준급 엔지니어의 노동시장 공급 정도 지표 Qualified engineers'가 포함된 기술경쟁력은 2010년 18위이다. 그리고 교육경쟁력 순위는 2011년 29위로 지난해에 비해 상승했다. 특히 교육경쟁력 영역에서 교육제도, 대학교육, 경영교육, 언어능력, 과학교육에 대한 순위(기업인에 대한 설문)가 작년 대비 큰폭으로 상승했고 약점으로 지적된 부문은 영어숙달도, 교사 1인당 학생수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를 지적하는 주장의 타겟이나 규모가 실제 우리 사회와 교육 현실에 대한 적실성 있는 것 같지 않다.

특히 진보진영의 주장처럼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대학을 나온 사람처럼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이 현실성을 가지려면 초중등교육만 수료했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초중등교육이 길러낼 방안도 함께 주장해야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체계적인 대안 제시를 나는 본적이 없다. 막연하게 북유럽 배관공은 대학교수보다 부자다는 일화를 들려주고 우리나라의 평생교육, 직업교육 시스템의 열악함을 지적하는 데에 그치는 것 같다. 오히려 '마이스터고교'를 통해서 대학진학을 하지 않고 바로 기업에 취직시키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즉각적인 정책이 더 와닿는다. 그리고 기업, 산업계의 입장이지만 교육경쟁력과 관련해서 교육에 대한 사회의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측면은 (반드시 대학교육은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좀 더 질 높은 교육이 필요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대학의 수를 줄이고 대학생의 수를 줄이면 교육관련한 사회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과도 배치된다. 반드시 대학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제대로 된 교육기관에 대한 사회의 수요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학과 대학생을 줄이고자 한다면 현재의 고등교육제도하에서의 교육의 질도 커버할 수 있도록 중등교육제도가 혁신되어야 한다.


과잉경쟁이 문제라는 주장은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과잉경쟁때문에 쓸데없이 사교육에 들이는 비용이 엄청나고 다른 영역에 쓰여야 할 비용이 사교육에 낭비되는 것은 문제다. 그런데 과잉경쟁이 문제고 높은 등록금을 인하하면 그 경쟁이 더 심해지니 등록금 인하를 반대하는 주장을 비롯한 현재의 대학교육에 관한 논의는 현실과 동떨어져있다. 등록금을 당장 못내고 있는 학생과 가정의 입장에선 등록금 인하하면 구조적 문제가 악화되니까 반대하는 주장은 어이가 없는 주장일 뿐일 것이다. 산업계 입장에선 OECE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초상위권인 학생들을 데려다놓고 그만큼의 좋은 인재로 키워내지 못하는 고등교육(대학교육)의 질에 불만인데 별다른 대책없이 대학을 줄이면 경쟁력있는 대학이 살아남게 된다는 주장은 초점이 빗나간 주장으로 보일 것이다.

지금의 등록금 문제를 포함한 대학교육 문제의 해법은 "해법은 이거다"라고 제시할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구조적 문제라는 이유로 근본적 원인 해결에만 골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단은 등록금 상한제, 장학제도의 확충, 대학구조조정(적립금 문제해결 방식의), 학자금 대출제도 개선을 통해서 당장의 고통을 덜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부실대학퇴출 등과 같은 대학구조조정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등교육과정만 이수하고서도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면서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한다. 고등교육의 공공성 강화와 고등교육의 구조조정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동시에 중등교육도 개편되어야 하는 고난이도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고등교육의 공공성 강화와 구조조정은 '사립대의 축소'와 '국공립대의 확대'의 과정을 밟을 것인데 이는 부실 건설사 퇴출보다도 훨씬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