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개고기를 절대 먹지 않는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먹어서는 안 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개고기를 먹지 말라는 도덕 규범이다.

 

개고기를 먹지 말라를 도덕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그 규칙을 지키기를 바란다. 이것이 도덕 규범과 단순한 취향 사이의 차이다.

 

한국에는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 사람들이 개고기 금지론자에게 왜 먹으면 안 되는지 이유를 대라고 따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보통 개고기 금지론자들은 나름대로 이유를 댄다. 하지만 그 이유라는 것이 대체로 설득력이 없다. 특히 개고기 먹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면서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잘 먹는 사람들이 개고기 금지론을 펼 때에는 논리가 차마 지켜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그들의 안쓰러운 논리는 조롱거리가 된다. 더 나아가 그런 논리를 펴는 사람 자체가 바보 취급을 받는다.

 

 

 

현대 산업국에서는 사람을 먹지 말라가 보편적인 규범으로 통한다. 만약 식인종이 왜 사람을 먹어서는 안 되는지 이유를 대라고 따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제로 이런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대 산업국에 사는 사람들이 식인종을 만날 일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분이 식인종을 만났다고 하자. 식인종이 아니라고 해도 좋다. 자기 부족 사람이 아니라면 거리낌 없이 죽이는 원시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에게 여러분은 어떤 논리를 댈 것인가?

 

내가 보기에는 개고기 금지론자 만큼이나 식인 금지론자도 설득력 있는 논리를 댈 수 없다. 결국 인간의 목숨은 모두 소중하다고 우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 개의 목숨을 모두 소중하다고 우긴다면 하자. 논리적 설득력의 관점에서 볼 때 둘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

 

 

 

도덕 철학에는 두 가지 전통이 있다. 하나는 흄의 전통으로 근본적인 수준에서 규범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다른 하나는 칸트의 전통으로 근본적인 수준에서도 규범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는 칸트는 심각한 착각에 빠져 있다.

 

도덕 규범 논쟁에서는 결국 그냥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수준에 부닥치게 마련이다. 강간이 왜 나쁜데?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사람은 강간은 그냥 나빠라고 답할 것이며 어떤 사람은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니까라고 답할 것이다. 고통을 주는 것이 왜 나쁜데?라고 물으면 결국 그냥 나빠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신이 고통을 주는 것을 금지했으니까라고 답한다고 해도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 사람에게는 왜 신의 말을 따라야 하는데?라고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냥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규범 정당화에서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개고기 금지론자들만이 아니다. 어떤 규범도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정당화할 수 없다. 따라서 그런 무능력은 모든 사람이 보일 수밖에 없다. 다만 논쟁을 벌일 필요가 있느냐 여부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선천적 인간 본성에 포함되는 규범을 본성 규범이라고 부르자. 그리고 문화권에 따라 다른 규범을 문화 규범이라고 부르자.

 

본성 규범의 경우에는 논쟁을 벌일 필요가 사실상 없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이기 때문에 극히 특이한 사람들(정신병자, 뇌 손상 환자, 정신병질자psychopath)을 제외하면 규범에 대한 입장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내 추측으로는 내집단 사람을 강간하지 말라, 내집단 사람을 살인하지 말라, 근친상간 하지 말라와 같은 규범은 본성 규범이다. 이런 경우에도 예컨대 왜 근친상간을 하면 안 되는데?라고 물으면 개고기 금지론자 만큼이나 안쓰러운 논리를 펴는 경우가 많다. 안쓰러운 논리를 펴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정당화를 포기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이 바보 취급을 받지 않는 이유는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그 규범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규범을 모두가 받아들이면 논쟁을 할 필요도 없고, 논쟁을 안 하면 바보 같은 논리를 펼 이유도 없다.

 

문화 규범의 경우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문화권이 다르거나 자란 환경이 다르거나 하면 서로 다른 규범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때 같은 문화권에서 사실상 모든 사람이 어떤 규범에 동의하는 경우도 있고, 같은 문화권에서도 두 규범이 팽팽히 맞서는 경우도 있다. 개고기를 먹지 말라는 문화 규범임이 분명하다. 내가 보기에는 식인하지 말라(어떤 사람도, 심지어 우리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도 먹어서는 안 된다)라는 규범 역시 문화 규범이다.

 

한국의 경우 식인하지 말라라는 규범에는 사실상 모두가 동의하는 반면 개고기를 먹지 말라라는 규범에는 일부만 동의한다. 그렇다고 식인하지 말라개고기를 먹지 말라와는 달리 정당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식인하지 말라라는 규범을 주장하는 사람이 개고기를 먹지 말라를 주장하는 사람보다 덜 바보 같아 보이는 이유는 단지 사실상 모든 한국 사람들이 그 규범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모두가 동의한다면 논쟁을 벌일 일이 없다. 논쟁을 벌일 일이 없으면 바보 같은 논리를 펼 일도 없다.

 

만약 식인종과 논쟁을 벌이게 된다면 식인하지 말라는 규범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바보 같은 논리를 펴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이 개고기 반대론자를 조롱하듯이 식인종은 식인 반대론자의 어설픈 논리를 지적하면서 조롱할 것이다.

 

 

 

2011-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