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마움을 모르는…
[김대중을 생각한다]<31> 미국과 김대중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10617174932&Section=01&page=3

브루스 커밍스 박사의 고 김대중 론이네요.

여기 글을 보면서 한국에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것이 기적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공화당 뿐만 아니라 나름데로 인권을 추구했던 민주당 마저 한국의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에 부정적이었고 나아가 남한의 독재정부 즉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지지했 왔음을 알 수 있으니깐요.

결국 남한의 민주주의가 그것도 정권교체 형태로 이루어진 것은 참으로 기적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그러한 민주주의를 이루어 내는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주역은 역시 호남인들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물론 많은 학생과 지식인 그리고 정치인들의 희생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지지해준것은 대부분의 호남인들과 서울과 수도권의 깨어있는 시민 그리고 소수의 충청과 경상남도의 시민들 이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탄압과 멸시 조롱 왕따와 같은 실질적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그들은 민주주의를 지지했고 결국 이루어내었으니깐요. 그러한 호남이야말로 지역주의의 최대 피해자임에도 오히려 지역주의의 본질인 거처럼 다루어지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입니다.(이 부분은 건대학생의 3종세트 드립을 보면서 다시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네요.)

동시에 마키아벨리에게 충고를 해줄 정도의 탁월한 정치감각을 지녔던 김대중은 그의  민주화투쟁기간 나름의 원칙과 소신을 지켰으며 나아가 집권기간을 통해 형식적 민주주의를 완성시켰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네요. 동시에 그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통로를 마련해 주기도 하였구요.

이와 관련하여 전에 적었던 글이지만 여기 올려봅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관련하여 이른바 선진화 담론을 깨부셔야 한다는 논의가 요즘 신선하더군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10503161900&section=01

["고 교수는 "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통해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며 "한국이 선진국으로 분류되는데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언급하고 가야 한다"며 한국이 이미 선진국 반열에 진입했음을 증명하는 근거도 제시했다.

고 교수는 "국제 기구에서는 명시적인 선진국 기준을 설정하고 있지 않지만 통상 IMF의 '선진경제국가' 29개국 포함 여부, 30개국으로 이뤄진 OECD 가입 여부, 국민소득2만 달러 기준 충족, UNDP가 발표하고 있는 인간개발지수(HDI) 0.8 이상인 고(高)HDI 국가에 해당하느냐 여부 등 4대 조건을 충족하면 선진국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한국이 이를 모두 충족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사실 형식적 민주주의가 이미 완숙한 단계는 이미 선진국의 초입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그런데 윤여준이 위에서 언급한 내용중에 이 선진화 담론을 깨기 가장 좋은게 바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즉 실질적 민주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윤여준은 DJ를 경세가(statesman)가 아닌 정치꾼(politician)으로 폄하했는데 제가 저번에 쓴 형식적 실질적 민주주의론을 보면 DJ야 말로 경세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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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적 민주주와 실질적 민주주의의 개념과 관련하여 제 의견을 말씀 드리자면, 실질적 민주주의는 인간다운생활을 할 권리, 노동권등의 보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자유권의 실질화와 관련된 개념으로 사회민주적 기본질서라고도 합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형식적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의 일부 개념으로써 선거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형식적 민주주의 즉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절차적 민주주의외에 나머지 즉 기본권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 사법권의 독립등을 포합하는 개념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기본권 존중과 권력분립 시장경제 측면에서 3.4,5공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시절이었습니다. 기본권 위에 절대권력, 권력독점, 중상주의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져. 의회제도만 겨우 형식적으로 유지 되었고 그것조차도 4, 5공때는 파괴되었습니다.(4공때는 철저히 5공때는 일정부분)

즉 자유민주주의의 여러 요소중에 절차적 민주주의는 87년도를 기점으로 이른바 직선제개헌을 거치면서 회복되기 시작했고 나아가 김영삼시절 군부개혁등이 추가되었으며 김대중의 정권교체로 완성되게 됩니다. 그 뒤는 확대 발전의 과정으로 보시면 될 듯 합니다. 참고로 일본의 정치가 구린이유가 정권교체가 우리보다 늦었다는 점 아니겠습니까.(그 만큼 보수성이 더 깊죠)

그리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제외한 나머지 형식적 민주주의중에 이른바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김대중 정부시절에 처음으로 이루어졌다고 봐야 할 듯 싶네요. 김영삼의 경우 그 중상주의 관치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아이엠에프 국난을 초래하였구요.

나아가 실질적 민주주의 측면에서 노동권의 보장,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온 시점이 김대중 정부시절이었습니다.
 
이른바 민주노총, 전교조등의 합법화, 복수노조허용등 노동권의 강화를 위한 법적 기초작업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결과 노무현정부시절 소위 민노당등의 지지율이 한때 10프로를 넘는 현상까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죠. 한마디로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한국의 주요정치세력이 김대중 정부시절을 기점으로 불법에서 합법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는 영국 헌정사에서 1871년 영국 자유당의 글래드스턴시절에 영국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 합법화 된 것과 비슷합니다. 그 결과 페이비언협회가 나오고 거시서 나온 노동대표위원회는 1906년 29명의 하원의원을 배출하는데 성공하게 되었고 그 노동자대표위원회가 이름을 바꾼 것이 지금의 노동당입니다. 영국은 30년 정도 걸렸지만 한국은 10년정도 걸린거죠.(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당시는 노동운동과 사회주의가 절정기였다면 지금은 사회주의가 한물 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결과 개인적으로 한국의 민노당이 영국의 노동당처럼  과거 사회주의운동이 활발하던 시절의 그런 대도약을 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더구나 양차세계대전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그 당시 결정적이었구요. )

그리고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등이 나오게 되었구요.

결국 역사적 흐름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대충 보이지 않나여? 결국 이제는 실질적 민주주의와 관련되어 특히 복지 노동의 문제를 누가 이니셔티브를 잡고 가느냐 하는 시점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한국의 경우는 남북문제라는 것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통일을 위한 상호협력의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즉 통일, 복지, 노동이 주요 정치의제가 되는 시기가 온 것이죠. 개인적으로 저는 이 3가지 중에서 지금은 복지의 시기라고 봅니다.(물론 경제는 항상 상수임)

각설하고 총괄적인 측면에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평가해 보자면

87년 개헌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여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한 기초가 마련되었고 김영삼 시절을 거쳐 김대중 정부때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기본권 존중, 권력분립등의 자유민주주의 요소는 김영삼정부때 기초가 마련되어 김대중 정부가 발전시키고 노무현 정부가 완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시장경제질서라는 측면을 놓고 보자면 김영삼 정부는 중상주의적 관치경제가 자유시장경제시스템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아이엠에프를 초래했던 것이고 그에 비해 김대중 정부는 오히려 아이엠에프를 잘 극복하면서 자유시장경제시스템을 정착 완성시켰다고 봅니다.(그리고 노무현 정부에 아쉬운 것은 김대중 정부가 자유시장경제시스템을 완성하면서 같이 병행해온 재벌개혁을 꾸준히 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삼성의 포로가 된 부분입니다.)

위에 설명한 것은 모두 자유민주주의 즉 형식적 민주주의와 관련된 내용이고 이른바 실질적 민주주의와 관련되어서는 김대중 정부가 그 시발점이 되었고 지금 한창 논의가 되면서 발전하는 도상에 있다고 봅니다.

p.s 참고로 사회민주적 기본질서 즉 실질적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대립된 개념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실질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는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즉 자유민주주의가 전제된 상태에서 그 자유를 실질화하는 과정이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입니다. 그러한 이해를 기반으로 했을때 비로서 자유사회주의라는 게 가능합니다.(그리고 국가주의는 독립국가와 민족국가의 문제인데 오히려 한국에서 국가주의이데올로기는 통합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기 보다는 분열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한 측면이 많습니다. 전통적으로 나치즘의도 인종주의적 분열주의로 흘러갔구요. 한국은 국가주의가 박정희에 의해 차별적 개발주의 나아가 반호남주의, 반북주의 나아가 반공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솔직히 종북도 문제지만 반북도 도찐개찐이라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1968812

김윤태 : 보편적 복지국가 내지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강조하고 있는데, 김대중 정부 때 생산적 복지나 노무현 정부 때 사회투자국가와는 상당히 다른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 같은데, 김대중, 노무현 정권, 민주정부 10년간 복지정책이 많이 발전했다고 하는 평가도 있다.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이상이 : 김대중 정부는 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고 난 후, 50년 만에 정권 교체를 한 정권이다. 그리고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에 따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제 받은 정권이었다. 그렇다 보니 굉장히 많은 사회적 약자, 실업자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나타나는 등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본격화됐다. 당시는 누가 대통령이 됐더라도 복지를 확충할 수밖에 없는 외부적 조건이 만들어졌던 시기였다. 한마디로 복지 수요가 폭증한 때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복지 수요의 폭증, 이에 대한 제도적 대응이 요구된 시대였다.
사실 김 전 대통령은 요구된 것보다 훨씬 잘했다고 생각한다. 저는 복지와 관련해서 가장 걸출한 대통령 한 분을 뽑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뽑을 것이다.

일단 4대 사회보험의 제도 틀을 완성했다
. 1인 이상을 고용하는 모든 사업장까지 다 포괄하도록 4대 사회보험의 적용을 확대했다. 가장 빛나는 업적 중의 하나는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출범시킨 것이다. 그 전에는 수백 개의 의료보험 조합들이 산재해 있었다. 이것을 하나로 통합해서 영국이나 스웨덴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 국가의료보장)처럼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공적의료보장제도, 즉 단일 보험자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영국의 의료보장에 버금가는 좋은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성과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복지국가로 전진해간다면 아마 국민건강보험이 하나의 전범이자 선례가 될 것이다. 굉장히 소중한 복지국가의 경험을 만들어 준 것이 국민건강보험의 출범이다. 이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 사회보험에 있어서 제도적 틀로만 보자면, 소위 유니버설 커버리지(universal coverage), 즉 모든 인구를 제도 속에 포함한다는 측면에서 보편주의를 달성했다.

국민건강보험은 그렇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복지제도나 서비스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많은 사각지대가 있다.
지금도 당장 실직했을 때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50%밖에 안 된다. 국민연금도 30%가 연금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지 않다. 사각지대가 광범위하다. 보장성 수준이나 소득 대체율도 굉장히 낮은 편이다. 그래서 보편주의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많이 부족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틀을 만든 것은 김 전 대통령의 큰 업적이다.

또 하나의 업적을 들자면, 소위 '선별적 복지'에서의 업적인데, 기존의 생활보호법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이것은 선별적 복지의 획기적인 질적 변화다. 생활보호법은 국가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시혜적 성격인데 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기초보장 수급권 개념을 넣어서, 국가 지원을 '국민의 권리'로 인정해준 것이다. 이제 생활보호 대상자가 기초보장 수급권자가 된 것이다. 일정한 조건에 달한 가난한, 어려움에 처한 국민은 국가로부터 응당 사회적 기본권을 요구할 권리를 가짐을 명시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 줬다
 

반면 남한의 경제발전은 주로 남북대결과정에서 남한의 자본주의가 이식되면서 자연스럽게 발전된 역사였고 상당부분 미국과 일본의 영향권하에 발전했다고 봅니다.

박정희 사망당시까지만 해도 남북간의 실질적인 1인당 국민소득 차이가 거의 없었음에도 박정희 사망이후 남한은 꾸준한 계속적인 성장을 보인 반면 북한은 몰락했던 이유도 사실은 자본주의 경제구조(비록 중상주의적인 면이 많았지만)와 미국과 일본의 원조 나아가 상품소비시장의 역할이 되어주었던 측면이 강하다고 보구요. 특히나 박정희 사망이후 80년대 사실상 아이엠에프와 같은 경제파국이 왔을때 차관 지원을 통해 파국을 막아주었던 것은 일본이었거든요. 그만큼 국제정치학적 고려가 한국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남한에 중화학공업이 본격 도입된 것도 오일쇼크 이후 미국과 일본이 노후시설을 이전해주면서 였구요. 사실 캐치업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냉전구도하에서 미국과 일본이 적당히 밀어준 것이죠. 분면 미국과 일본은 한국의 경제성장에 있어서 비빌 언덕이었습니다.

미국근대화론과 박정희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

그런 의미에서 독재정권시기 한국의 산업화는 냉전구도의 산물였던 반면, 한국의 민주화는 진정 한국인이 이루어낸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역사였다고 봅니다.
 
나아가  한국의 산업화도 아이엠에프 이후에야 보편적 룰안에서 창조적인 면이 가미되게 되었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