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이상인 분들 대부분은 '국민학교' 운동장, 포장안된 동네 큰길이나 공터, 뒷산이나 한 두시간 걸어 갈수 있는 나즈막한 산과 하천, 골목길, 철교, 강변에서 또래 아이들과 구슬치기, 딱지치기, 나무칼싸움, 축구나 야구(신문지로 접은 글러브!), 땅따먹기, 술래잡기, 오징어가이샹, 자치기, 굴렁쇠 굴리기, 줄넘기, 고무줄총이나 화약총이나 활만들어 쏘기, 오재미, 부엌칼과 판자로 외날썰매 만들어타기, 눈싸움, 비석치기, 종이접기, 연날리기, 말뚝박기, 소꼽놀이, 기마전, 재기차기, 얼음뗏목타기, 바람개비 돌리기, 수박서리, 개구리나 메뚜기 잡아먹기, 쥐불놀이, 해뜨기 전 서낭당이나 공동묘지 다녀오기 따위를 하며 놀았던 기억들을 갖고 계실거에요.

지금 아이들은 또래끼리 바깥에 모여 자기들이 스스로 창안하거나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온몸으로 움직여 하는 놀이는 거의 안하고 있고 집안에서 혼자 돈주고 산 장난감이나 모니터를 상대로 몸은 별로 움직이지 않고 마음만 흥분하는 놀이들을 하고 있지요. 물론 그 장난감이나 게임들은 어른들이 돈벌려고 만든 것들이구요. 아마 90년대말 이후로는 아이들이 여럿이 어울려 바깥에서 뛰어 노는 것은 학교운동장에서 어른들의 감독하에 하는게 고작일거에요.

아이들의 놀이에서 집단적 어울림이, 생생한 자연세계가, 아이들 스스스로 하는 창안이, 신체적 움직임이 사라진 이 현상, 아이들이 어른들이 돈벌려고 만든, 어른들 사회의 감수성과 논리가 그대로 묻어난 장난감과 게임들 사이에 뿔뿔이 흩어져 수동적으로 손가락질과 눈길로만 즐거움을 느끼는 이 현실은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들이라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한국만큼 전면화된 곳이 있을까 싶어요. 과도한 도시화,안그래도 좁은 땅덩어리이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자연스럽게 접할수 있는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 개발, 초등학생때부터 내몰려야하는 입시경쟁, 앞섰다는 정보통신화의 결합은 한국의 아이들로부터 진작부터 잘살게 된 나라들이나 땅덩이 큰 나라들의 아이들은 아직 약간은 누리고 있는, 자연을 가까이 하는 가운데서의 또래들끼리의 다소간 공동체적이고 자유로우며 창의적인 어울림과 놀이의 시간들을 완전히 박탈하고 있는듯 해요.

저는 이런 사태가 한국의 현재와 미래에 상당한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가져오고 있다고 믿어요. 독일에서 아이들 둘을 낳고 키우며 10년 이상 살다 귀국한 선배한테 아이들이 한국생활을 힘들어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유인즉슨 선생님들도 '칭찬'을 잘 해주지 않는 등 상냥함이나 따뜻함이 부족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너무 공격적이고 이기적이라는 거였어요. 특히 아이들이 쉽게 소리를 질러대는데 놀랐다고 해요. 아이가 1년간 미국령의, 한국보다는 물질적 생활의 수준이 다소간 떨어지는, 어느 섬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한 동료가 아이한테 들었다며 전해주는 얘기도 그리 다르지 않았어요. 선생님한테 버릇없이 대들거나 그러지 않아야 될 시간에 시끌벅적거리는 아이들을 못보았던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다들 너무나 착하고 다정다감하게 대해 주어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제 자신도, 어느덧 가까운 교외나 호수공원으로 자전거를 달리는 따위의, '밖'에서의 최소한의 몸놀림 내지는 놀이도 끊어버리고 '기계적'으로 공부하고 남는 쥐꼬리만한 시간을 온통 TV, '양산형' 판타지, 그리고, 명절날 외할아버지댁에 와서도 PC 앞으로 달려갈 정도로, 죽여대고 이기는게 다인 게임들에만 매달리는 조카들을 두고 있어요. 아마 '내 조카들은 그렇지 않은데'라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은 소수에 불과할거에요. 제 자신의 직업적? 체험에서도 저는 그 '부정적 결과'를 실감하고 있는데, 주관적 느낌을 일반화한다는 혐의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저는 감히 대학생들 사이에서 '샤프함이나 창의력이나 스케일 큰 열정'을 가진 이들이 지난 10여년간 '일관되게' 줄어왔다고 믿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이전 세대보다 재미있고 풍부하게 공부하기 좋은 환경에서 자랐고 논술훈련까지 해서 지성면에서나 감수성면에서나 이념 면에서 당연히 이전 세대를 능가해야 할 이들인데 그러기는 커녕 더 떨어진다는 거에요.

아이들에게 신체적 존재로서의 생명의 총체적 활기를, 경쟁에서 이기는 것의 쾌락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속깊은 뜻을 자연스럽고 여유있게 체득할 시간을 '충분하게' 주지 않는 작금의 한국 현실은 '대한민국'을 끝내 도달하지 못할 이상으로, 한국을 영원한 중진국으로 머무르게 할게 틀림없을 거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