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물학,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최재천, 이토 요시아키, 박만준, 정상모, 이을상, 오용득, 강남욱, 백영제, 안호영, 조용현, 박준건 지음, ()부산민주항쟁 기념사업회 부설 민주주의사회연구소 편, 산지니, 2008

 

최재천과 이토 요시아키를 제외하면 모두 전공이 철학이다. 나는 한국의 철학자들이 사회생물학이나 진화 심리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를 하는 것에 시비를 걸 생각이 없다. 그리고 공부한 결과를 책으로 출간하려고 하는 것 역시 반대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아직 초보 딱지를 뗀 수준도 아니면서 성급하게 출간을 했다는 점이다.

 

노력은 가상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사회생물학,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에 실린 글 중 대부분은 평범한 대학생이 책 몇 권 읽고 어설프게 정리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남들에게 책이라는 형태로 보여줄 만한 수준은 못 된다.

 

우선 오용득의 글 「성의 생물학적 의미 - 문화비판의 새로운 근거」를 비판해 보겠다. 여기에 인용한 것 말고도 비판할 거리가 더 있지만 몽땅 다 비판하기는 귀찮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용득의 글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런 글을 책으로 내다니 종이가 아깝다.

 

물론 이 책에 실린 여러 글의 수준에 편차가 있으며 모든 글이 오용득의 글만큼 한심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전혀 아니다. 별로 팔리지도 않는 책이며 대체로 수준이 낮기 때문에 앞으로 이 책에 실린 다른 글을 내가 비판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성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들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많은 참고자료들이 있지만, 특히 이인식(2002, 15이하), Ridley(2002, 46이하)에 잘 소개되어 있다. (203, 3)

 

나는 『이인식의 성과학탐사』를 읽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인식이 어떤 인간인지는 대충 안다.

 

이인식의 멋진 과학」인가, 이인식의 멋진 표절」인가?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C80/21

 

상습 표절로 먹고 사는 사람이 훌륭한 책을 썼을 것 같지 않다. 나중에 기분이 내킨다면 『이인식의 성과학탐사』도 한 번 비판해 보겠다.

 

 

 

 

 

이처럼 개체의 수량보다 질을 더 중시하는 것을 더 진화한 것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생물의 생존환경이 지구라는 공간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는 생물의 지나친 성장이 오히려 그것의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은 하나의 생물 개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생물의 종 전체에도 해당한다. 말하자면 하나의 생물 종에 속하는 개체 수가 너무 많아지는 것이 반드시 종의 생존에 유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모든 생물은 그 총 질량 혹은 총 개체의 수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어미가 최적의 수만큼만 새끼를 낳음으로써 종의 전체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경우가 있다(Dawkins, 1993, 167). 왜냐하면 새끼를 무작정 많이 낳는 것보다 어미가 양육할 수 있는 최적의 수만큼만 낳는 것이 유전자의 보전을 위해서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204)

 

그러나 이와 같은 동종 내 개체들 사이의 생존경쟁은 생물 종의 총 질량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생물 종과 해야만 하는 생존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유성생식이 무성생식보다 더 진화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05)

 

따라서 생존경쟁의 한 부분으로서 이루어지는 짝짓기는 하나의 생물 종 전체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서 동종 내 개체들을 서로 경쟁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205~206)

 

말하자면 경쟁에서 승리하는 하나의 정자만 난자와 수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복 짝짓기는 개체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종 전체의 생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생식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206)

 

더 진화한 것더 진화된 형태는 라마르크를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다. 정확히 무슨 뜻으로 이런 구절을 썼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

 

여기에 인용된 구절들에서 오용득종을 위해서를 끌어들이는 최악의 집단선택론을 펴고 있다. 그러면서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집단 선택론을 비판하는 도킨스를 인용하고 있으니 정말 안습이다. 집단 선택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음 글과 『이기적 유전자』를 참고하라. 더 깊이 파고 들고 싶다면 조지 윌리엄스의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 A Critique of Some Current Evolutionary Thought』를 보라.

 

집단 선택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222

 

 

 

 

 

자식을 낳기 위해서 남자들은 서로 경쟁할 이유가 있지만 여자들은 다른 여자들과 경쟁할 이유가 거의 없다. 여자들은 가임기간 중 각자 하나씩의 난자만 가지고 있고, 남자들은 언제나 수억 개의 정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남자들은 한 여자의 단 하나뿐인 난자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해야 하지만, 여자들은 한 남자의 정자를 서로 나누어 가져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자들은 서로 경쟁하지만 여자들은 서로 경쟁하는 남자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212)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한 남자를 차지하기 위한 여자들의 경쟁은 일부일처제라는 제도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한 남자로 하여금 그의 배우자 한 사람과만 성교하도록 제한하는 일부일처제 하에서는 둘 이상의 여자들이 한 남자의 정자를 나누어 가질 수 없으므로 여자들은 강한 정자를 가진 한 남자를 두고 서로 경쟁할 수 있는 것이다. (212, 6)

 

남자들의 정자가 엄청나게 많으니까 여자는 다른 여자와 경쟁할 이유가 거의 없다고? 그렇다면 여자들이 질투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질투는 남자의 질투 못지 않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한 적응론적 이유가 있다. 한 남자의 정자는 주변의 모든 여자들을 임신시키고도 남을 만큼 풍부하다. 하지만 남자의 자식 돌보기 행동의 경우에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임신을 위해서는 남자에게 그리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은 반면 자식을 키우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자식 돌보기와 관련된 남자의 이런 시간과 에너지를 두고 서로 경쟁한다. 그리고 그런 경쟁의 결과 여자의 질투가 진화했다고 보는 것이 진화 심리학계의 정설이다.

 

오용득은 일부일처제 하에서는 한 남자의 정자를 나누어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여자들이 서로 경쟁한다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자들이 얻기 힘든 것은 남자의 정자가 아니라 자식 돌보기와 관련된 노력이다.

 

 

 

 

 

배란기를 가임기라고 하면, 여자는 생물학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기간 동안 가능한 한 많은 남자들을 상대로 많은 횟수의 성교를 해야 할 것이다. (218)

 

가능한 한 많은 남자들과 성교를 한 여자와 좋은 유전자를 가진 남자들하고만 성교를 한 여자의 자식 중에 누가 더 잘 번식할까? 가능한 한 많은 남자들과 성교를 하면 나쁜 유전자로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가능한 한 많은 남자와 성교를 하는 것이 여자에게 유리하다면 여자는 남자의 성교 요구를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강간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여자가 항상 OK라면 남자는 여자를 강간할 필요가 없다.

 

 

 

 

 

즉 여자들이 배란을 숨긴 채 여러 남자와 성교할 경우 이 여자와 성교한 남자들은 모두 이 여자가 낳은 아기의 아비가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여 이 아이를 살해하지 않을 것이다. (220)

 

자신과 성교를 했다고 그 여자의 자식이 자신의 자식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남자가 바보인가? 그런 바보 같은 착각을 하는 남자가 있다면 자연 선택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자신과 성교를 한 여자의 자식이 나의 자식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나의 자식임에 분명하다고 착각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 남자들의 경우 가능한 한 많은 여자들에게 자신의 정자를 주입하기만 하는 이른바 복권추첨식 생식 전략을 버리고 한두 명의 여자를 통해 확실하게 자신의 정자로부터 비롯된 자식을 낳아 안전하고 강하게 양육하는 이른바 경마식 생식전략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나아가 남자들이 경마식 생식전략을 쓰게 되면서 여자들의 성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221)

 

남자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돌보는 전략을 경마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 경마식은 질 내에서 정자들이 경주마처럼 난자에 빨리 도착하려고 경쟁하는 것을 말하는데 결혼은 그런 식의 경쟁과 많이 다르다.

 

그리고 남자들이 결혼 전략을 쓴 이후로 여자들의 성을 통제하기 시작했다고 단정하기도 힘들다. 결혼과는 정말 거리가 먼 침팬지 사회의 수컷들도 암컷의 성을 통제한다. 으뜸 수컷은 암컷이 다른 수컷과 교미하는 것을 보면 가만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리 내의 암컷을 몽땅 임신시키면 유리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수컷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자신이 최대한 많은 암컷들을 임신시키는 것이 유리하다.

 

 

 

 

 

여자의 성에 대한 통제는 남자들 사이의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남자들이 모든 다른 남자들을 적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남자들은 짝짓기와 관련하여 각각의 권리를 서로 인정하는 인위적인 규칙을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원시적인 결혼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 인간의 성이 자연성으로부터 벗어나 문화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이다. (221~222)

 

마치 남자들이 어느 날 회의를 해서 결혼 제도를 만들기라도 한 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인위적인 규칙이라는 구절에 주목하자. 하지만 사랑 기제, 질투 기제 등을 고려해 볼 때 인간의 결혼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듯하다.

 

 

 

2011-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