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적제재를 놓고 무한토론이 진행중이다. 나는 나와 내 가족 그밖에 가까운 사람과 관련된 사적제재는 반대하지 못하나 일반적인 사적제재는 반대한다.  하지만 만약 내가 공적인 위치에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사적제재나 사적복수를 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한 후 그럼에도 공적영역을 신뢰해야 한다고 했을 거다. 그리고 내가 그런 위치에 있지 않는다고 할 때에도, 누군가가 사적제재를 찬성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일반적인 사적제재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이게 뭔 소리냐면나의 나의 정치적, 사회적 입장은 사적제재의 반대지만 솔직히 내가 만약 내 가족이 해코지 당했을 때 공적제재가 잘 안될 경우 사적인 복수를 절대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한다고 단언하지는 못하겠다는 의미이다. 이게 대부분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운좋게 사적제재를 가한 이후 법의 관용으로 선처받으면 다행이지만 문명화된 사회에서 공적영역을 신뢰하지 못하고 사적제재까지 해버린 마음가짐이면, 사적제재로 인한 법의 처벌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그 지경까지 누가 이르렀다면 그 정도는 다 감수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모순되어 보이지만 내 입장은 이렇다. 근대와 현대는 사적영역의 축소와 공적영역의 확대의 과정을 밟고 있다. 시민적 자유가 향유되어야 할 영역을 제외하면 공적영역이 확대되는 것이 진보적이다. 민주공화국도 공적영역의 확대를 꾀하는 체제고 공화국 구성원으로서 공공성, 덕성을 갖춘 시민이 그래서 중요한 것 아닌가. 그치만 완벽한 건 없기 때메 어쩔 수 없이 공적영역이 커버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해서 개인, 사적영역이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심지어 법 자체도 이런 점을 인식해서 공적영역의 공백상태에서 사적영역이 나서는 것을 포용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현행범 체포 등의 정당행위).

그럼에도 사적제재에 대한 이해, 정당화는 감정적, 심정적 차원이 그 한계라고 본다. 정당방위, 긴급피난 같은 긴급상황에서의 예외적 행위에 대해 법은 아주 엄격한 요건을 요구한다. 정말로 심각한 명예가 훼손 당할 위험이 있거나 당장 생명의 위협을 느끼거나 강도가 지금 막 내 돈을 빼앗아가는 정도의 상황이 아니면 쉽게 정당화사유는 인정되지 않는다, 인정되어서도 안된다.


2.
그런데 건대학생 사건만 놓고 보면, 이 토론의 핀트가 약간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건대학생의 신상공개를 놓고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를 가지고 논쟁이 많은데 법을 찾아보니 관련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어쩌고법)이 인터넷 상에서 중점적으로 규율하는 주체는 '이용자'가 아니라 게시판 관리자나 사업의 주체다. 무슨 말이냐면 인터넷의 특성인 어마어마한 전파가능성과 기록의 영구성이 갖는 부작용에 법제도가 개입, 간섭하는 것이지 표현의 자유와 충돌할 가능성이 많은 이용자의 행위에 간섭하는 것은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대학생의 이름, 학교, 학생회 간부 이력의 공개는 명예훼손보다는 사생활침해의 구성요건을 충족시킨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 같고, 이 경우 이용자의 그런 사생활 침해행위에 대한 벌칙규정은 이용자가 아니라 그 글이 올라온 사이트의 관리자나 소유자에게 적용된다.

이처럼 지금의 논쟁은 이미 뒤처진 논쟁이다. 인터넷의 장점이자 단점인 시공간을 초월하는 특성을 '통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미 법제도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의 정당성 유무를 놓고 토론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3.
그래도 사적제재를 둘러싼 논쟁은 근대 민주주의와 법체계의 빈공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기도 했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 이것의 물적 토대인 재산에 대한 사적 소유권 질서 중심의 근대 민주주의와 법체계를 바탕으로 현재의 사회질서 나아가 국제질서가 짜여져있다. 통일된 법체계가 없이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국제질서에서 근대 민주주의와 법체계의 기본이념인 자유주의, 자본주의는 서구 중심의 국제질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철저하게 기득권을 인정하는 현 체제에 대해 후발국가들은 불만이 많다. 국제경제질서를 좌지우지하는 IMF나 세계은행의 수장의 자리는 언제나 유럽과 미국이 나눠먹는 등 국제질서의 판은 시작부터 서구중심으로 돌아간다. 기축통화는 달러화고 무역, 금융의 문법은 철저하게 서구식이다. 저작권과 특허제도는 후발 산업국가의 업셋의 가능성을 매우 희박하게 한다.

이런 국제질서에 한쪽 발을 담갔지만 동시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국가가 있는데 바로 그것이 중국이다. 이미 세계최대의 시장이 되었고 WTO에도 가입했고 UN의 상임이사국이기까지 한 중국은 서구의 자국 내의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에 맞서 자신의 행위의 정당화를 위해 기존 국제질서의 바탕이 근대 민주주의, 법체계와 함께 그 기본이념인 자유주의를 공격한다. 주로 드는 공격의 방식은, 자본주의 하에서 민주주의 선거는 결국 돈이 많은 쪽이 이기는 거라는 식이다. 과문해서인지 개인의 합리성, 주체로서의 개인, 개인의 존엄의 발현으로서의 자유권, 이런 것의 논리필연인 민주주의적 선거에 대한 이론적 공격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지만 여튼간에 서구의 민주주의를 무기로 한 문제제기에 대해 중국은 반박하면서 근대 민주주의와 법체계의 빈공간, 이면에 대해 역으로 문제제기하고 중국만의 새로운 독창적인 이데올로기를 개발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중국 좌파 지식인들이 그러하다고 한다. 공산당 일당독재가 실은 '독재'라는 말에 담긴 것처럼 전제적이지는 않고 많은 위원회 등의 의견이 아래부터 위로 올라오는 형식도 갖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국가적 목표에 딴지를 집단적으로 못 걸게 하는 건 직관적으로 답답하고 후진적이다. 그래서 중국 좌파들은 일단 서구의 문제제기에 반박하긴 하지만 아직까지 명쾌한 보편적인 반박은 못하는 것 같다.

이처럼 기존 질서의 불완전성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항상 있다. 공적제재가 어려운 '성차별, 지역차별'같은 발언을 인터넷 공간에서 배설하는 행위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 기존 법체계의 빈 공간이다. 게다가 이런 발언을 하는 자에게 조금 심하게 대응하면 법 위반으로 제재를 받는 것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이것대로 문제인 것이지 이것을 이유로 사적제재가 사회적으로 그렇게 문제될 건 아니라는 입장을 자신의 사회적 , 정치적 입장으로 내세우는 것은 틀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