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인물]
- 맛의 고장 전북 순창에서 남북 평화공존의 해법을 제시한 정동영
강재현 칼럼리스트, film200@naver.com
 

615 정삼회담 11주기 행사를 마친 정동영이 그 다음날 행선지로 선택한 지역은 다름 아닌 자신의 고향이었다.서울에서 아주 먼 산골지역인 순창군 구림면 율복리 통안마을이 민주당 최고위원 정동영의 출생지다. 이 지역은 한반도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동서로 뻗어 있는 노령산맥의 정중앙에 위치했기에 참으로 사연많고, 눈물의 역사가 고스란히 간작되어 있는 현대판 역사박물관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기도 하다. 625 전쟁 당시에 빨치산과 국군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지리산 일대와 거리적으로 가깝고, 무고한 양민들이 무참히 학살당한 지역이 바로 순창군 구림면 일대이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6월 16일 저녁 7시에 개최한 순창군 주민 자치대학 강연회에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이 순창의 눈물과 아픔 그리고 역사의 현장이었다. 정동영은 자신이 어릴적에 친구의 옆마을에 놀러가면, 아버지가 있는 집안이 한명도 없었다는 것에 무척 의아스럽고 궁금했었다고 술회했다.



" 통안마을 근처의 다른 부락에 가면 아버지는 한명도 없고, 전부 편모 슬하의 아이들만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625전쟁 당시에 구림면의 상당수의 마을들이 국군이나 공산군(빨치산부대)에 의해서 양민학살을 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아버지가 면장 일을 하셔서 어릴적에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얼마 안가서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셨기때문에 저 역시 아버지있는 집안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실제로 순창군 구림면 일대에는 한명이 제사일이면 그 마을 일대도 제사일이 겹쳐있다. 그것이 바로 민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의 눈물의 유산인 것이다. 한국 속담에는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곳 순창일대는 남과 북의 동족들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양민을 학살했던 가슴 아픈 땅이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이날 강연회에서 힘차게 강조한 내용의 핵심포인트는 항구적인 남북 평화체제 건설이었다. 현재의 이념대립과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뛰어넘는 유일한 해법은 정전체제를 종전체체로 바꾸고 남과 북의 형제들이 서로간의 무한 신뢰를 구축하면서 평화체제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정동영의원은 모두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던 개성공단을 통일부장관에 취임하자마자 역점사업으로 확정하고 청와대와 북한 평양, 미국 워싱턴 국방부를 방문했고 럼즈펠드국방장관을 논리적으로 설득시켜 마침내 한민족 평화공동체의 첫 작품인 개성공단이 착공되었다.

정동영의 결단력있는 추진력이 힘을 발휘하면서 모두가 꿈이라고 포기했던 개성공단이 그렇게 만들어졌던 것이다.
정동영 통일부장관 겸 NSC의장은 북한 평양의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몇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개성공단 허가를 받아냈다. 휴전선 인근지역인 개성의 2천만평 광활한 땅이 남과 북의 경제적 평화 안전지대로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정동영은 그 당시를 회고하면서 감격에 찼는지 목에 힘을 주면서 연설을 이어갔다.


" 제가 2001년, 그러니까 정계에 입문한지 6년째가 되는 해에 정풍운동을 벌였습니다. 당시에 청와대의 동교동계는 그야말로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저는 그러한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정권을 좌지우지해서는 정권재창출이 어렵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김대중대통령님의 미움과 오해를 받으면서도 꿋꿋히 정풍운동을 벌여나갔던 것입니다.


제가 참여정부에서 통일부장관을 역임하면서 개성공단을 현실화시킨 첫번째 상품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냄비였습니다. 개성공단 1단계사업인 30만평에 130여개 기업들이 입주했는데 그곳에서 가장 먼저 나온 제품이 냄비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 냄비를 직접 가져와서 가장 먼저 누구를 찾아간 줄 아는 분, 여기에 계십니까? 김대중대통령님이었습니다. 약 4년 가까이 김대통령님에게 오해를 받고 혼이 났던 정동영이가
현직대통령인 노무현을 찾아가지 않고, 김대중대통령님을 먼저 찾아가서 그 양은냄비를 선물로 드린 이유는 제가 김대중대통령님의 햇볕정책을 고스란히 계승발전시키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창군 주민회관을 가득 메운 수백명 청충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지금은 작고하신 김대중대통령님도 2005년에 그 냄비를 받으면서 무척 기뻐하셨고, 이 정동영를 다시 품안에 받아주셨습니다. 김대통령님은 대한민국 건국이래로 가장 뛰어나신 정치거인이셨습니다"







백두산부터 내려오는 한반도의 산맥줄기가 백두대간의 태백산맥을 거치면 광주산맥과 차령산맥 그리고 노령산맥으로 나뉘어진다. 정동영의원의 선산과 부모 묘소는 노령산맥의 거의 정중앙인 순창군 구림면 율복리 통안마을이다. 앞에는 호숫가가 위치하고 뒤로는 선산이 있는데 8부능선 위치에 있으며, 산 정상부근에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부모님의 묘소가 있다. 노령산맥의 산자락이 아주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곳이다.

 

 

 

 

 


이 날의 더위는 삼복더위와 맞먹을 정도로 푹푹 찌는 여름날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동엽위원장과 필자는 정동영최고위원의 선산에 갔고, 8부능선의 정의원 부모님 묘소에 절을 올렸다. 정성스럽게 풀을 뽑으면서 벌초를 직접 하시는 문동엽위원장의 그 정성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면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예순살이 넘은 문위원장은 정동영최고위원이 김대중선생의 맥을 잇는 호남과 민주세력의 적통자이므로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으면서 16년째 DY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문위원장은 전북 익산시의 토박이 출신으로 선거조직의 귀재로서 잔뼈가 굵은 분이다. 그래서 문동엽위원장은 <문박사>라는 호칭을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직접 붙여준 것이다.

 

 

 

 

 

 


노령산맥의 기운을 타고 세상을 바꾸고자했던 전북출신의 혁명가는 정여립이었다. 정여립은 조선왕조 2백년에 혜성처럼 등장한 호남의 천재적인 인물로서 그의 현재 출생지는 전북 김제시다.
정여립은 대동계를 조직하고 신분 차별없는 근대적인 조선을 건설하려고했으나 당시에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양반 사대부들의 집중적인 공격과 선조임금의 왕권 수호 의지때문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정감록>의 주인공으로 의심받았던 정여립의 당시 상황을 고려해볼때, 정여립의 조선의 근대화는 서양 근대사상의 아버지라고 칭송받는 <루소>보다도 훨씬 빠른 세계사적인 의미가 큰 것이었다. 다만, 풍운아 정여립의 <왕조 타도>는 끝내 비극적인 죽음으로 결말이 났고, 정여립의 죽음 이후에 호남세력은 또다시 길고 긴 암흑의 시대를 인내해야만 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위대한 김대중대통령을 만든 사람은 신안군 하의도 섬마을의 어머니였고, DJ 정치지분의 40 퍼센트를 만든 사람은  서울 토박이 출신의 여성 엘리트였던 이희호여사라고 말이다.
그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김대중선생이 목포상고로 유학길에 갈수 있었던 이유도 학업에 매진하기 위한 김대중선생 어머니의 극진한 자식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선생이 수차례 국회위원 선거에서 낙방하고 재산을 모두 잃고 힘들어 할 당시에 재혼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이희호여사는 김대중이라는 한명의 정치인을 대한민국 역사의 한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정치거인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인생에는 두 갈래가 존재한다. 부부 일심동체의 동행이 있고, 자아실현의 목적달성을 위한 한 인간의 정치사회적인 동행이 있다. 김대중선생과 이희호 여사는 부부로서의 동행과 이 나라의 민족과 국가 장래를 위한 정치적 동행이 함께 존재했던 위대한 선각자들이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자신의 산골동네인 순창에서 강연회를 한것도 김대중-이희호의 동행과 같은 선상에서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호남의 맥과 혼을 이을 후계자가 정동영이기 때문에 그렇다.
자신의 뿌리와 전통을 잊지 않고 소중히 계승발전시키는 자는 언젠가는 자신의 웅대한 꿈을 실현할수 있기에, 정동영은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가 아니라 한적한 두메산골 마을인 순창에서 그 첫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평화와 복지는 양면의 동전으로서 정동영이 어깨에 지고 가야 할 정치적 운명과도 같은 것들이다.



2시간이 넘는 강연회는 지루할 틈을 주지않고 아주 성황리에 끝마쳤다. 질문을 받는 코너에서 순창군민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이렇게 질문했다.


"정동영님, 내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질문에 정동영 최고위원은 입가에 미소를 띄우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 모인 많은 사람들이 정동영이가 내년 대선에 출마하라고 말씀하시면 내년 대통령에 도전할 것이고, 대통령 하지말라고 말씀하시면 내년 대통령에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청중들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정동영의원은 시종일관 여유로움이 있었다. 자신의 고향에서 남북 평화통일의 웅장한 밑그림을 그리고 내적으로는 대한민국의 복지혁명을 완성해낼 체력과 기반을 충분하게 길러내겠다는 힘찬 각오를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정동영은 김대중정신을 복원, 계승할 유일한 야권 리더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