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10년 전 영화화 된 엑스맨 시리즈의 프리퀼인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봤다. 내가 좋아하는 히어로물의 정점을 찍는 엑스맨 시리즈라 매우 기대했는데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블록버스터'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예술영화'라고 불리는 영화의 제작보다 보다 많은 자본을 투입해서 헐리우드의 대중적 영화문법 형식을 지키면서 살짝 변형시키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더 고차원적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그런 내 입맛에 딱 맞는 영화였다. 교양 강의에서 유럽과 미국의 연기론에 차이가 많고 미국식 연기론이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유럽식 연기론은 리얼이 아닌 보다 연극적인, 연기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미국 대중문화를 많이 접했기 때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떤 감정의 선을 따라서 긴 호흡으로 건조하게(내가 느끼기에) 만들어지거나 기존 영화문법에 (지나치게) 도전하거나 알기 어려운 철학적 메시지를 (지나치게) 내재시킨 유럽식 영화는 확실히 뭔가 아우라가 풍겨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솔직히 대충 아무렇게나 이상하게 찍어놓고 '부르카임 데르메흐케스트'(ㅋㅋ)같은 이름을 가진 불가리아 출신의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면 유럽의 예술영화가 되는 것 같아서...

고건 고렇고...엑스맨을 보고 삘 받아서 히어로 영화를 다운받아서 또 봤는데...엑스맨은 돌연변이들의 이야기니까 논외로 치고, 일반 인간들이 나오는 히어로물의 특징중의 하나는 "무능한 공권력(국가, 정부)"와 이를 대신하는 "정의로운 유능한 히어로"다. 최근에는 한없이 정의롭고 착한 히어로보다는 일반인들과 다른 운명, 삶을 사는 자신에 대해 고뇌하고 방황하는 히어로가 많이 등장하지만 우쨌든 기본적으로 히어로들은 혼자 혹은 조력자 몇명과 함께 사적으로 정의를 행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그니까 문명화됐다는 사회에는 법체계가 작동한다. 법에는 민법 상법 헌법 사회보장법 저작권법...이런 법들이 많은데 사실 법의 가장 큰 특징을 보여주는 법은 형법이다. 법 하면 떠오르는 건 처벌, 형벌, 감옥, 경찰, 검사, 범죄...뭐 이런 게 제일 먼저다. 이처럼 법익을 침해하고 사회윤리적 행위가치를 어긴 그런 일탈행위(자) 중 일부 심한 것에 가벌성을 부여하는 형법이야말로 '강제력'을 특징으로 하는 법의 단면을 제일 잘 드러내는 것 같다.

이런 형법은 공법...국가가 집행하는 법이다. '가벌'할만한 일탈행위를 저지른 행위자에 대해 국가만 처벌하겠다는...그런 선언을 한 법인 셈이다. 아주 엄격하다. 형법전에 규정된 형벌만 집행가능하다. 아무리 나쁜행위라도 법률에 범죄라고 안적혀 있으면 그건 범죄가 아니다. 처벌도 못한다. 게다가 소송법상 원칙에 어긋나게 수사하거나 재판에서 삑사리나면 실체법상 법죄라도 법원은 유죄인정을 하지 않는다. 이처럼 '가벌'은 매우 매우 엄격한 요건 하에 오직 국가만이 행할 수 있다. 이걸 어기는 건 오히려 또 '가벌'할만한 그런 범죄가 되어버린다. 철저하게 가벌적 일탈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만 벌을 가할 수 있고 절대로 일반인들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거다.


그런데 사실 요런 근대적 법체계에 대해 많은 불만이 항상 있어왔다. 한마디로 현대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힘있는 놈과 힘없는 놈에게 이런 법체계가 공정하게 작동되지 않는다는 거...자본주의 사회에서 힘=돈이기에 결국 돈의 뜻이 법의 뜻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거기다가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범죄가 인정되고 형집행이 이루어지기 때메 분명 정황상 아주 나쁜 짓을 한 게 맞는 놈이 무죄로 풀려나는 일도 있다. 법적인 유죄를 확정짓는 데에는 증거가 부족하지만, 누가봐도 저새끼가 나쁜 짓 한 게 분명한 경우가 분명 많다는 거다. 그리고 '복수'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보장적 목적이 강조(모두의 인권보호, 하지만 현실에선 범죄자의 인권만 보호되는 것처럼 보임)되는 모습, 범죄자의 사회복귀와 교화가 강조되는 근현대의 형법체계는 복수나 보복의 감정같은 인류보편의 감정을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강한 형벌이 법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 안됐다는 이유로 형벌의 강도는 점점 약해지고 범죄의 사회구조적인 요인을 강조하는 범죄학의 이론의 득세는 점점 형벌이 가지는 복수나 보복의 의미를 사라지게 한다. 물론 요즘에는 범죄자 개인이 졸라 또라이라는 '사이코패스'이론도 엄청 유행하는데...사실 이것도 복수같은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지않나 싶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여튼 영화 속 히어로들은 저런 법의 빈 공간에서 활동한다. 사실 빈 공간은 아니고..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거다. 정당방위, 긴급피난으로 위법성이 조각될 수도 있는데...히어로들은 긴급한 상황에서만 나쁜놈을 때려잡는 게 아니고 결국에는 나쁜놈한테 쳐들어가서 다 죽여버리는 행위를 하기 때메...그리고 정당방위나 긴급피난, 정당행위같은 위법성조각행위를 한다는 의사없이 오히려 그런 정당화 상황 하에서 적당한 정도를 넘어서 과하게 나쁜놈들을 처단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히어로들은 무법자들이고 얘들도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히어로물에서 경찰과 언론에서 이들을 나쁜놈들이라고 잡아야한다고 하는 모습도 많이 나온다.

그치만...많은 사람들은 히어로물을 재밌어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히어로들의 영웅적 불법행위에 대해 긍정적이고 오히려 그런 히어로들을 괴롭히는 공권력에 짜증을 낸다. 국가 공권력이 해내지 못하는 악에 대한 복수를...힘이 없어서 사적인 복수를 못하는 일반인을 대신해서 히어로들이 통쾌하게 해내는 건 정말 짜릿하다. 히어로들이 사적 복수를 대신하는 과정에서 자행하는 각종 불법행위들...건물 폭파, 차량 탈취, 살인, 방화, 고문, 주거침입, 협박...이런 건 전부 무시된다. 그냥 사적인 복수를 해주는 히어로들은 영웅인거다.


건대학생의 신상털이라는 사적보복을 두고 논쟁이 많았다. 인터넷에 신상이 한번 털리면 영원히 남게 된다는 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엔 과한 논쟁 같다. 건대학생의 신상을 턴 네티즌이 히어로라는 건 아닌데 군대3년해야한다는 군3녀, 지하철에 자기 개가 똥싼거 안치우고 오히려 화낸 개똥녀, 방송에서 키작은 사람들 조롱한 루저녀의 신상을 턴 것보다는 훨씬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작용을 요번 신상털이가 해낸 것 같다. 군대 3년 해야한다고 인터뷰한 여자 신상을 모조리 털어서 개망신을 준 네티즌들이 이상하게도...여자비하, 지역비하, 빨갱이타령을 한 사람은 별로 털지 않은 거...이게 더 문제 아닌가? 군대3년 해야한다는 게 좀 빡치기는 하는데 군대 10년하라는 것도 아니고 고작 그런 말 케이블에서 했다고 그 난리를 친 네티즌들이 탱크로 전라도사람 뭉개죽이자고 글쓰고 유부녀 따먹고 싶었다고 하고 여자들 다 따먹고 싶다고 하고 이런 말 한 애는 별로 안 턴 거...요거 참 문제 아닌가 싶다.


칸트나 헤겔같은 철학자들의 법철학은 철저하게 사회적 해악을 처벌하는 입장에 있다. 헤겔은 정반합을 요기서도 써먹고, 칸트도 자유의지를 잘 써먹는다. 물론 얘들이 사적 보복을 정당화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우쨌든간에 나쁜 짓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에 서있는 거다. 사실 이건 고상한 철학적 논의 따위가 전혀 필요없는...형법학 따위가 존재하지 않던 아주 옛날의 탈리오법칙부터 전래한 인지상정이다. 사실 나쁜 짓한 놈 혼내는 데에 있어서 그 주체가 사인이든 국가든...혼나는 놈이나 혼내는 놈이나 별로 상관 안한다. 내 입장에서는 중요한 건 '복수' 그 자체지 누가 주체가 되어서 복수하는지는...안중요하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쁜놈 아무나 벌주면 사회가 무너진다고...근데 사실 이미 사회가 잘 근대화됐기때메 밸런스를 맞추려면 보복이 좀 잘 이루어질 필요가 있는 게 지금 시점인 것 같다. 건대 학생이 신상털렸다고 사회가 무너질리 없다는 말이다. 건대 학생같이 서울4년제 중위권 대학의 학생회 간부라는 놈 대가리 속에 유부녀 따먹고 전두환 만세 이런 게 들어있고 그걸 아주 당당하게 표현해도 아무런 거리낄 게 없는 사회가 더 이상한 사회 아닌가? 보편적 인권,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사생활의 자유...아 이런 거 중요한데, 이런 건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서 원래 문제되는 거고...대사인적 효력의 문제도 기본적으로 거대기업같은 그런 사인과 일반 개인의 문제에서 시작되는 거다. 어떤 놈이 개소리해서 그놈 신상 털어버린 개인, 요 둘간의 문제에 뭐 저런거 자꾸 들이밀고, 갑자기 거대담론으로 튀어버리는 건 담론의 과잉, 오류다. (유시민이 양심의 자유타령하는 것과 유사)


아무튼 건대학생문제로 지겹도록 지역문제로 또 토론도 있고 사적보복같은 것도 논의됐는데 실은 내 생각에는 인터넷 공간에 한번 남겨진 기록으로 인한 문제가 더 심각하게 논의되어야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건대학생을 걱정하는 이유도 다 인터넷때메 그런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