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을 하면 안된다'가 먼저 정의로 확립된게 아니란 겁니다. 이 명제의 정의 규정 이전에 살인이란 현상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이 개별적 살인에 대해 당연히 자력구제에서 대항하는 행위가 있게 마련이죠. 이 경우에 부당한 살인에 대항하는 행위가 나중에 사회적 컨센서스 과정에서 정의 즉 '옳음'을 구성하고 이에 대응했던 살인은 이제 '옳치 않음' 즉 부정의로 자리매김 되는거죠.

그래서 원래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정당방위가 이런 류의 권리침해에서 최초의 '정의' 입니다.(분배문제는 논외로 하고) 이에 상관태로 그다음에 정당방위를 유발하는 행위가 부정의죠.눈에는 눈에서 나중의 눈이 원래 정의인거고,  이에 대해 정당화의 이유없이 행하는 선행 행위가  부정의이게 된거죠.  그런데 이 개념이 이제 도치되어 정당방위보다 살인 자체가 즉자적으로  먼저 부정의고 그에대한 정당방위는 살인처럼 위법함에도 그 위법성을 조각하는 것처럼 구성되게 된 겁니다.  즉 나중에 법적 체계의 구성이 그렇게 된거지, 최초로 돌아가면 상황은 다르다는거죠.

그런 맥락에서 건대 이용성의 행위에 대한 신상털기는  지금 여기 몇분들이 주장하는 위법적 차원의 문제와는 그 지위를  달리한다고 봐야합니다.  건대생의 자연법에 반하는 행위( 신상털기의 위법을 주장 하는 분들은 이 위법규정에 동의하지 않겠지만)를 장래의 미래에도 저지시킬 효과적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실정법 체계상의 처벌 규정도 없는 상태에서 장래의 계속되는 일탈을 교정할 수단은 실상 자력구제밖에 없습니다.  이는 사적인 복수가 아닙니다. 사적인 복수란 과거에 행해진 범죄에 대한, 그리고 장래에는 다시 발생할 개연성이 없는 지난 일탈을 사적으로 처벌하는게 사적 복수입니다.  그러나 건대생의 일탈은 장래에 계속될 개연성이 거의 확실한 일탈이고 이는 저지되어야만 하는 행위입니다. 여기에 대한 자력구제로서 신상털기가 발생합니다.

그러면 이 신상털기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요? 신상털기 자체만 놓고 보면 위법한게 맞습니다. 이용성이 아무 짓도 안했는데 그의 신상을 공개하였다면 당연히 그 신상 털기는 위법으로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사태는 그렇게 단순한게 아닙니다. 이 신상털기는 이용성이 먼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악의적 일탈을 일삼고 이를 멈추지 않을 듯이 보였고 또 사회적으로 이를 제어시킬 수단도 없기 때문에 발생한 자력구제 수단으로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경우에 신상털기는 원초적인 법정신의 구현으로 봐야 합니다.

살인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발생한 살인은 죄가 아닙니다. 폭행에 대한 대응 과정의 폭행도 죄가 아니죠. 이것들은 원래 정의라고 불립니다. 이런 맥락에서 신상털기를 봅시다. 그러면 신상털기는 이용성의 행위와 불가분의 일체를 이루면서 정의가 됩니다.  칸트나 쇼펜하우어, 혹은 포이에르바하의 생각을 접하신 분이라면 누구나 다 저와같은 논리에 찬성할겁니다.

그러니 그래도  이번 건대생에 대한 신상털기가 여전히 위법이라고 믿고 싶으신 분들은  일단 법학개론 통독하시고 법철학을 공부하시는게 좋겠습니다.  열심히 하시면 반대 논거도 구할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