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급하게 갈겨쓰는 글이라 구멍이 숭숭 나있는 글이 될 겁니다. 

 위안부의 강제성에 관해 한일양국정부, 그리고 양구 국민들 간에 논란이 있어왔고 지금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고노담화의 재검토 소동을 둘러싸고 이 강제성 문제가 다시 한번 소환되기도 했었고. 

 우선 제가 아는 범위에서 (고로 오류가 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만...) 이 강제성에 관해 지금까지 정리된 바는 이렇습니다.

 조선인 위안부 대다수(적어도  상당수)는 중개업자의 사기, 즉 간호사 등의 일을 하게 된다는 사탕발림 거짓말에 속아 모집된 사람들입니다. 싱가폴이니 중국이니 하는 해외에서 몇 년만 고생하면 손에 목돈을 쥔다는 거짓말에 속아 위안부가 된 사람들이죠. 그리고 사실상의 강압에 의한 경우도 (예를 들어, 집에 큰 빚이 있었던 경우라든지), 직접 데려간 사람들은 대부분 모집업자였습니다. 

 즉, 마을 이장이나 일본 경찰, 군인들이 어느날 마을에 들이닥쳐 정신대 모집한다는 (정신대란 일제의 강제노동공출제도였죠) 구라로 처녀들을 '연행'해간다든지 하는 경우는 꽤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거의 대부분은 업자에게 '속아'넘어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업자들 중에는 조선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이들 사기꾼투성이였던 매춘업 중개업자들을 선정하고, 속아넘어간 처녀들의 운송, 위안소의 축조, 위안소운영지침 (심지어 요금수준 및 위안부 외출가능통제지역선정 등 극히 세부적인 사항까지) 꼼꼼하게 규정하는 등 폭넓게 관여한 '주체'가 바로 일본군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고노담화에 나오는 말이 이겁니다.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영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하였다.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 경우에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하였다는 것이 명확하게 되었다. 또한, 위안서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태 하에서의 참혹한 것이었다. 


 
 이게 93년에 발표된 담화니 꽤 예전에 발표된 문건이고, 따라서 그 이후 연구도 많이 진척되었지만 (제가 아는 한) 고노담화의 이 내용을 뒤엎는 연구는 아직 없은 걸로 압니다. 생각하면 약간 놀랍기도 합니다. 이후 20년 이상 국내외에서 위안부관련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아직까지는 이 내용이 정확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강제성과 관련된 일본정부-일본군의 책임문제를 말할 때, "광의의 강제성"이란 용어가 쓰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어정쩡한 용어가 나온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어요. 

 위안부 문제가 터져나왔던 초창기,  "마을이장 등 말단국가공무원 및 일본헌병, 군인들이 어느날 들이닥쳐 마구잡이로 처녀들을 강제로 연행해갔다"라는 <좁은 의미에서의 강제연행>이 위안부 조달의 일반적인 경우였다 오해가 널리 퍼졌었다는 거죠. 그럼 이 오해는 어떻게 해서 퍼진건가?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게, 요시다 세이지라는 일본인이 80년대초 및 90년대 초에 저서 및 인터뷰 등에서 자시이 과거 제주도 같은 곳에서 수백 명의 조선처녀를 위안부로 납치하는 등 인간사냥을 했었다는 <날조 참회록>을 발표했던 일입니다. 근데 사실 이게 책 팔아먹으려고 지어낸 날조였음이 훗날 밝혀집니다. 물론 현재 이 요시다 세이지의 날조 증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연구자는 없죠. 일본 우파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리고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게 한국, 일본을 막론하고 이 위안부 문제를 파혜치고 알린 언론(일본의 아사히 신문이라든지) 한국의 정대협 등이 초창기에 이 날조참회록을 진짜일 줄 알고 사방팔방 떠들고 다녔던 겁니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어느 날 일본군이 마을에 들이닥쳐 조선처녀들을 마구잡이로, 강제로 연행해갔다>라는 위안부 모집에 관련된 이 이야기는, 분명 날조된 신화입니다. 

 그런데 이걸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90년대 초에 아사히신문이나 정대협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댔다는 거죠. 물론 얼마 지나지않아 이게 순개구라였음이 폭로되었고. 

 완전히 체면 구겼죠. 일본우파들은 신이 났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온게 결국 <광의의 강제성>이란 용업니다. 

 그리고나서 좀 더 파서 까봤더니 사태가 대략 이러했다는 거죠. 


  일본군이 중개업자들을 선정해 위안부 모집을 요청했고, 일단 드러난 문서상으로 보면 적어도 그 당시의  기준으로 "합법적 방법"으로 여자들을 모집할 것을 요청했으며 (신문광고 등의 방식으로. 실제 그런 광고자료들이 있습니다. 위안부대모집! 이런 광고), 그런데 이 모집업자들 중에 적지않은 놈들이 사기, 강박 등 불법적 방식으로 빈농의 처녀들을 속여넘겨 위안소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거기서 세세한 관리지침 및 통제를 일본군이 하는 가운데 실제 실행은 업자가 하는 방식의, <강요된 강제매춘>생활이 시작되었더라. 물론 그 생활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지옥같은 생활>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 일본군이 (그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급료는 또 꼬박꼬박 지불을 했음. 그리고 위안부들도 이걸 챙겨 받았고 (다만 일본군 패전 이후 모조리 휴지조각이 경우도 엄청 많음). 
 
 
일반적이랄까, 보통의 경우가 대개 이런 식이었는데, 전 이를 굳이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역시 영어권에서 쓰는 성노예(Sex slave)라는 용어로 규정하는게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그나마 종군위안부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용어라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태가, "일본군이 어느날 들이닥쳐 직접 물리적 폭력을 동원해 처녀들을 연행해가서는 '무상으로' 땡전 한 푼 안 주고 성노예로 부려먹었다'라는, 한국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가장 깔끔한 구도와는 어긋난다는데 있죠. (사기친 모집업자나 위안소 운영자 중에는 조선인들이 다수 있었다는 것도 그렇고)

 더 큰 문제는 한국사람들 중 적지않은 사람들이 위안부 충원에 관해 이런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거 엄밀하게 말하면 요시다 세이지의 날조 및 위안부문제초창기 이 날조를 신나게 퍼뜨린 아사히 신문 및 정대협 등, 위안부 문제 제기 세력의 과오/착오에 의해 고착된, 적지않은 한국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라는 겁니다. 또한 이 사람들은 그 오해를 바탕으로 고노담화를 이해하고 있고. 

 사태가 더 꼴때리는 건, 일본우파들이 이를 이용해먹는다는 겁니다. 

 대략 이런 식입니다. 

 "저런 식의 강제연행이 있었다는 건 요시다 세이지의 날조였음이 이미 오래 전에 밝혀졌는데도, 한국측은 아직까지도 이를 사실인 것마냥 날조해 거짓 선동으로 일본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우고 있다. 일본은 그 당시에는 합법이었던 공창제도를 운영하려는 것 뿐이었고, 상당한 액수의 고임금도 꼬박꼬박 지불했으며, 사기/강박으로 끌려온 그 여자들은 일본군이 아닌 (조선인 다수 포함된) 악덕 모집업자에게 당한 피해자일 뿐이다. 실제 나중에 발굴된 그 당시의 문서를 봐도, 일본군은 이들 악질 업자를 단속한다는 공문을 발표했지, 역사날조 한국인들의 거짓말처럼 일본군이 조선에 대해 엄청난 악의를 가지고서 조선여자들을 강제연행하거나 속여서 데려오거나 업자들에게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이건 반일 비지니스일 뿐, 그 밖의 뭣도 아무 것도 아니다! "

 그리고 정대협 측도 참 골 때렸던게, (박유하에 따르면 2012년 7월 기준으로) 홈페이지에 위안부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제2차대전 이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정부에 의해서 강제로 연행, 납치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해야만 했던 여성들"   

 이건 사정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누가 읽어도, 협의의 강제연행, 즉 요시다 세이지가 날조했던 식의 "일본군인, 헌병, 마을 이장 등이 마을에 들이닥쳐 강제로 여성들을 연행해간 인간사냥" 이야기를 연상시키죠. 거의 10이면 10 그렇게 이해할 겁니다. 

 따라서, 2012년 7월 당시까지도 정대협은 이 부분에 관해서만큼은 "역사날조"를 했던게 맞습니다.  참으로 쌔근하고 센세이셔널한 위안부 강제동원 서사입니다만, 적어도 전형,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새빨간 날조를 한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자기가 자기 발등에 도끼를 찍은 셈인데... 구라나 치고 있다가 일본우파에게 트집잡기 딱 좋은 꼬투리를 제공해줬으니까요. 그렇다고자업자득이라고 정대협만 비웃고 조롱하고 끝날 수도 없는데, 저걸로 정대협만 피를 본 게 아니라, 한국국민 전체가 피해를 본 셈이니...  생각하면 진짜 골 때리죠. 

 아무튼, 그럼 2014년인 지금은 어떤가?  지금 현재 홈피에 가보면 종군위안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이 제도적으로 ‘군위안소’를 설립하여 점령지와 식민지 여성들을 동원하여 성노예로 만든 범죄를 일컫는다."    

 확실히 다르죠...? ㅎㅎㅎ.

 현재 한일 양국 정부 간에 강제성 문제로 외교문제가 있습니다만 양국 정부는 이런 등등의 사정 빤히 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다만 한국 정부는 직접 수행은 업자들이 했다 할지라도, 모집업자의 선정 및 모집업자 관리, 위안부 요청 등은 일본군이 했으며 사기/강박 등이 일어났던 사태를 공식적으로야 단속했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묵인 혹은 방관한 이상, 일본군 역시 "광의의 의미에서" 위안부 강제 동원에 참여한 셈이 되는 것이라고 나오는 거고요. 실질적인 강제동원 교사죄를 주장한다고나 할까... 저도 여기에 100% 동의하고. 

 일본정부도 물론 고노담화에서 명백하게 나오듯이 <광의의 의미에서, 일본정부의 위안부 강제동원책임>은 인정하고 있어요. 

 이렇게 되면 한일 양국 간에 강제성 문제에 관한 이견이 없는거 아니냐? 네, 양국이 모두 고도담화를 인정하는 한, 사실상 없습니다. 제가 알기론 그래요.

 다만 일본은, 65년 기본조약으로 국가배상문제는 다 종료되었으므로 <민간기금형식>으로 보상하겠다고 나온 거였죠. 한국은 그건 못 받아들이겠다고 버틴거고. 

 결국, 종군위안부에 관한 기초적인 사태랄까요 전모에 대해서, 특히 강제성 관련에 관해선 한일 양국, 고노담화에 근거해 다 동의하고 있고 인식도 같이 하고 있어요 (아베는 예외로 하고). 결국 과거 (및 지금까지) 다투는 건 보상<형식>을 둘러싼 다툼이었다는 건데... 

 그런데요 이 양국 정부가 자국 국민들을 상대로 작난질을 치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불거졌던 아베의 고노담화 재검토 소동만 해도 그래요. 한국국민들 상당수는 일본측이 고노담화를 인정한다고 하면, "그럼 일본군이 마을에 쳐들어가 인간사냥했단 걸 인정한다는 말이네? 아니 근데도 국가책임을 인정 안해? " 이렇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한국정부는 이를 <방관>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도 마찬가진게, 아베와 같이 고노담화를 재검토한다는 말을 한다는 건 결국 여지껏 일본정부도 죽 인정해왔던 <광의의 강제성>을 이제와서 새삼 재검토하겠다는 말이거든요. (광의의 강제성에 관해선 일본은 거의 승산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상당수 많은 일본인들은 이걸 오해해서, <당연히 그래야지?  지금 한국측이 요시다 세이지의 인간사냥날조, 즉 협의의 강제성을 주장하는게 바로 그 고노담화를 근거로 하는 건데...  이런 말도 안되는 역사날조를 일본이 언제까지 뒤집어 써야하나? > 이런 식으로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어요. 

 역시 일본정부도 이를 <방관>하고 있습니다. 

 고노담화가 인정하는 강제성에 관해서, 한일 양국민 상당수 모두, 요시다 세이지 식의 <협의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고 (물론 실제론 아니죠. 저 담화는 광의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담화임), 양국 정부는 이런 오해가 적잖게 국민들 간에 퍼져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두고 있어요. 

 전 위안부 문제 전반에 관해 한국정부의 입장이 대체로 옳다고 봅니다만, 이 점에 관해서 만큼은 한일양국정부 모두가 꽤나 기만적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박유하가 "제국의 위안부"에서 갖가지 망언, 삽질을 이곳 저곳 쉬지도 않고 되풀이 합니다만, 적어도 정대협의 이런 과오를 지적한 부분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박유하가 무슨 이유에서 그랬던가는 둘째 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