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정당 성공의 조건(1)-참여를 버려야 한다-

 

이 얘기는 국민참여정당 창당제안모임(handypia.org)-이하 신당-에 좀 불편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신당의 성공의 조건 중의 하나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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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밝혀 둘 것이 있다.


첫째, 나는 신당이 민주세력의 분열을 의미한다는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문제는 민주, 진보, 개혁을 팔고 있는 가게들이 하나 같이 손님이 적어서, 이들을 다 합쳐도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보수 가게에 한참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손님이 적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가게들이 국민의 요구, 불만, 고통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고, 또 제대로 반응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얼마 되지도 않는 기득권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고, 기존 손님으로부터 더 돈독한 사랑을 받는 새로운 정치 가게 출현의 당위성은 명명백백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신당이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상품을 준비하지도, 팔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유력한 경쟁 정당이나 작지만 기세가 좋은 괜찮은 정당 없이는 민주당의 환골탈태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셋째, (몽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명망가 없어도 얼마든지 괜찮은 당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넷째, 국민과 당 사이에 있는 문턱을 낮추고, 당의 반응성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섯째, 발달된 정보통신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여(핸드폰, 당 홈페이지, 이메일, 블로그 등) 당원의 교양 수준을 높이고,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대중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것은 현대 정치조직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신당은 민주당의 인터넷 관련 활동을 강화하는데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여섯째, 새로운 정치와 정당을 하겠다는 삼십 대와 사십 대의 씨가 마른 상황에서는 신당 참여자들은 작지만 너무나 소중한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가난하기 짝이 없는 진보 집안이 가진 소중한 자산인 만큼 반드시 작은 성취의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글의 요지도 먼저 밝히겠다.


첫째, 신당의 대표 상품인 참여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에 국민의 요구, 불만, 고통에 제대로 반응하는 가치와 비전을 앞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국가, 어떤 사회를 만들지(비전)가 앞에 오고 참여는 뒤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는 결코 당의 간판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지방분권형 지배구조, 기간 당원 중심 시스템, 독특한 문화 등을 국민이 요구하는 가치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경영 실력(경륜)을 중시하는 리더십, 시스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이 얘기는 다음 편에서 하려고 한다)

 

현재 신당의 핵심 가치와 시스템과 문화로 보면 신당은 (한국 정치 지형으로 보면) 거대한 궁궐이 생길 자리에 세 칸짜리 오두막을 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야 어차피 한 칸도 안 되는 오두막이지만 문제는 이대로 가면 미래에도 세 칸 오두막을 넘어서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신당은 큰 강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지하수를 뽑아 올리는 마중 물이 되기는커녕, 분출하려는 지하수를 틀어막는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민주당 등 경쟁 정당에 대한 고마운 예방 주사로 기능할 수가 있다. 한국 정치가 발전하려면 민주당을 사경을 헤맬 정도로 타격을 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물론 신당이 세 칸짜리 오두막으로 설계된 것은 도덕성과 전문성(국가경영 능력)을 겸비한, 새로운 정치를 구현할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냥 손가락질만 할 수가 없다. 물론 이는 신당 추진 세력이 중시하는 가치와 창당 방식의 후진성에 더 큰 책임이 있다.

 

국민이 주인인가? 당원이 주인인가?


국민참여정당 창당제안모임(handypia.org)의 대표 상품이자 최고 핵심가치는 국민참여이다. “누구나 쉽게 (신당에)참여할 수 있고 누구나 당에 발언할 수 있고 당원이 중요한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신당에 대한 가상 ‘10문 10답’의 첫 번째 질문이 “다른 정당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인가?”인데, 그 답이 “국민이 주인인 정당”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정당은 국민이 참여하기 어렵고 의견은 묻지 않고 동원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정치지도자들의 권력게임이 중심인 정당입니다. 우리가 제안 하는 정당은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고 누구나 당에 발언할 수 있고 당원이 중요한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정당입니다. 근본이 다른 정당입니다.”(10문 10답)

 

이런 문제의식은 도메인(handypia.org)에도 반영되어 있다. 도메인에 압축된 메시지를 풀면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는 ‘핸드폰으로 쉽게 참여해서 만들어 나가는 좋은 세상’ 일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이 있다. ‘국민이 주인인 정당’이라는 구호이다. 낯선 듯, 낯익은 듯한 이 구호는 일반적으로 ‘국민을 주인으로 섬긴다’거나 ‘국민의 뜻을 잘 반영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신당에서는 ‘국민의 정당 참여, 발언, 직접 결정을 용이하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즉 국민과 정당 사이에 있는 문턱도 낮추고, 당원과 지도부 사이에 있는 문턱도 낮췄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런데 결론만 먼저 말하면 이 문턱은 결코 낮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국민이 주인이다’는 말을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고, 국민의 뜻을 잘 헤아린다’는 의미로 사용할 때는 정당과 국민의 관계는 기업과 고객의 관계처럼 분리되어 있다. 그런데 신당이 ‘국민이 주인이다’는 말을 할 때는 국민과 정당이 뚜렷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다. 구분을 거부하려는 뉘앙스가 강하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고 누구나 당에 발언할 수 있고 당원이 중요한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국민과 당원이 분리 되어, 국민을 대상화하는 전자가 국민과 당원의 일체형(?)을 지향하는 신당 보다 국민의 뜻을 잘 받들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실제는 정 반대다. 국민을 주인(왕)으로 모시고, 당원을 주인(왕)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일개 도구 내지 종으로 생각해야 위력적인 정당이 되고 나아가 집권을 넘볼 수 있다. 충직하고 유능한 종은 주인(왕)을 감동시키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연구한다. 마치 기업이 고객을 감동시키기 위해 시장(소비자/경쟁자)을 조사하고, 기술을 개발을 하고, 서비스 품질을 혁신하고, 조직과 리더십을 혁신하는 것처럼…… 실제 비즈니스의 상식은 돈을 쫓으면 돈이 달아나고, 고객의 마음을 쫓으면 돈이 절로 굴러온다는 것이다. 정치라고 다를까? 권력을 쫓으면 권력이 달아나고 국민의 마음, 즉 시대정신을 충직하게 쫓으면 권력이 굴러오는 법이다. 이는 바보 노무현이 증명한 것이다.

 

당원은 특별한 사람만이 될 수 밖에 없다.


정당의 사전적 정의는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권 획득을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한 집단”이다. 정치적 견해는 철학, 가치, 비전, 정책의 총체(이념)를 말한다. 당연히 정치적 견해는 천차만별이다. 좌파도 있고, 우파도 있다. 온건파(유연파)도 있고 강경파(원칙파)도 있다. 정치적 견해가 뚜렷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정치적 견해가 뚜렷하고, 이를 대변하는 정당이 있다 할지라도 직업/직장 생활에 여념이 없는 사람이 당원이 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다. 아무리 정당의 문턱을 낮추어도 정당에는 참여하지 않고 얼마든지 지지, 성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용케 정당에 참여하여 정해진 의무를 이행했다 할지라도 권리(발언, 중요 결정 참여)를 행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사리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사안에 따라서 느낀 대로 발언하고 행동해도 되는 일도 있지만, 조사.연구 없이 발언하고 행동해서는 안 되는 일도 많다는 것을 안다. 요컨대 발언권과 결정권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이를 함부로 행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 정당이 받아 안아 연구하고, 결정할 사안은 생업에 바쁜 사람들이 관여하기에는 너무 복잡미묘한 사안이 많다. 전당원 토론과 투표에 많은 것을 내릴래야 내릴 수가 없다는 얘기다. 이는 오롯이 최고지도부의 결정에 맡겨질 수 밖에 없고, 맡겨져야 한다.

 

이처럼 뻔한 얘기를 길게 한 것은 신당이 정당의 문턱을 아무리 낮추고, 또 인터넷과 핸드폰을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한다 할지라도, 구조적으로 소정의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는 당원들은 지극히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민참여정당은 제안문의 조직노선대로 가면 결국 소정의 권리와 의무를 이행한 특별한 (기간)당원들의 당이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참여정당을 표방하고 실제로는 기간당원들의 당이라고 해도 그 누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도구적 유용성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민심을 잘 반영하여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잘 실현하기만 하면, 당의 주인이 누구건 상관이 없다. 김대중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1인 보스가 주인이건, 소수의 정치인의 과두지배체제건, 기간당원이 주인이건, 몇 개의 지방정치조직의 지도자들이 주인이건 국민을 주인으로 잘 알아 모시는 충직한 종이 되면 그 당은 성공하게 되어 있다. 

 

단적으로 김대중은 1노 3김과 함께 1인 보스 정치의 대명사였다. 김대중이 총재로 있던 당을 사람들은 1인 사당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얼마나 격렬하게 비난했던가!! 그러나 지나고 보니 김대중당은 민주, 자유, 화해, 평화, 균형발전, 풍요를 갈구하는 국민들의 충직한 종으로서 비교적 잘 기능하였다. 반면에 열린우리당은 김대중당 보다 훨씬 민주적인 정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구로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끝내 해체, 소멸되었다. 정당은 어차피 일반 국민들과는 다른 특별한 소수가 하는 정치조직인 이상 당내 민주주의가 도구적 유용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국가의 운영 원리인 민주공화제는 국민에게 밥도 먹여주고, 자유도 준다. 하지만 기업이나 정당은 다르다. 운영원리나 조직형태는 상황(정세, 업종, 시장)이나 리더십이나 구성원(종업원, 당원)의 준비 정도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고, 취해야 한다. 기업으로 치면 종업원 지주제가 강력한 경쟁력을 담보할 수도 있고, 독재적이지만 탁월한 CEO가 강력한 경쟁력을 담보할 수도 있다.


당 지도부를 비롯하여 특별한 소수-이들이 수만 명의 기간 당원이라면 금상첨화다-가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기 위해 오랫동안 김대중, 노무현만큼 치열하게 나라를 연구하고 진정성 있게 실천해 왔다면, 이들의 경험, 지식, 지혜, 열정을 모아내는 시스템(당내 민주주의)은 엄청난 성공을 보장할 것이다. 하지만 당의 리더십과 기간당원과 시스템과 문화가 김대중, 노무현의 정신, 방법과 멀다면 당내 민주주의와 웹2.0 기술을 아무리 도입해도 결코 성공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신당이 진지하게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은 자신들이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도구(종) 역할을 얼마나 충실하게 수행해 왔고 수행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 김대중이 그렇게 칭송 받는가? 그는 청년 시절부터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다. 다방면의 전문가들과 소통했다. 1950년대 김대중이 쓴 글, 1960년대 연설문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박현채의 힘을 많이 빌렸다 하더라도 ‘대중경제론’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정치공학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을 때, 김대중은 자신의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세계와 나라를 연구하는데 썼기 때문에 군계일학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반면에 정치(전술)감각은 김대중 보다 한 수 위로 평가되는 김영삼은 왜 낮게 평가되는가? 건강은 빌릴 수 없어도 머리는 빌릴 수 있다는 신념 때문 아닌가?

 

대역죄?


국민과 당원의 일체형(?)을 지향하면, 자기도 모르게 당원이 국민의 자리에 와 버린다. 이는 참여(민주주의)를 무슨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기는 사고방식을 동반한다. 웹2.0은 더 더욱 참여를 도깨비방망이처럼 여기도록 만들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 처지, 요구, 불만, 고통 등을 헤아리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할 이유가 많이 줄어든다. 단적으로 신당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력을 보면, 민주화 투쟁(열린우리당내 민주화 투쟁 포함) 경력은 괜찮지만, 21세기 들어 국민이 당하는 고통,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특정 분야를 깊이 연구를 하거나 국민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기 위한 몸부림(시민운동 등)을 친 흔적은 그리 뚜렷하지 않다. 그러면 21세기의 김영삼이 되는 것이다.

 

신당의 정수인 창당 제안문에는 ‘국민과 당 사이의 문턱을 낮춘다’는 얘기를 비롯한 조직노선(원리)에 대한 얘기는 많아도, 정치노선에 대한 얘기는 신기할 정도로 적다. 정치노선은 국민들의 요구, 불만, 고통에 대한 응답이자, 국가 개조의 비전, 전략이다. 신당은 제안문에서 “환경 보호와 녹색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며……사회투자와 복지를 확대할 것”이며 “김대중, 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를 계승하고 한계를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간략히 언급 하였다. “보다 구체적인 정책과 노선은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겠으며, 국민의 집단지성을 자산으로 삼아 정책을 개발하고 발전시켜갈 것”이라고도 밝히고 있다.

 

조직 노선(그것도 당 운영시스템에 국한되어 있다)에 비해 정치노선이 왜소한 것은 참여와 민주주의(국민과 당과 지도부의 생각의 일체화)와 웹2.0과 집단지성에 대한 과신 내지 착각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생각이 좀 더 나가면 민주주의를 잘 작동시켜 국민과 당원의 일체화(?)를 실현하면 당원들의 뜻이 곧 국민의 뜻이라고 간주하게 된다. 이는 국민이라는 주인의 자리에 종에 불과한 정당을 올려놓는 대역죄를 범하는 것이다. 대역죄의 후과는 북한이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완벽한 민주주의(수령, 당, 인민의 완벽한 소통)을 전제로 당과 수령의 뜻이 곧 인민의 뜻이라고 강변한다. 당과 수령은 인민의 경험, 지식, 지혜, 양심을 총화 했기에 한계는 있을지언정 오류는 없다고 강변한다. 신당에는 반면교사이다. 그리고 집단지성을 통한 정책 수립의 가능성과 한계는 민주주의 2.0, 진보주의 연구 카페, 서프라이즈 등 토론이 활발한 웹싸이트의 경험과 성과를 곱씹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역지사지로 생각하다

시민운동단체, 정치인 팬클럽, 연구소를 후원하는 사람들은 돈 낸 만큼 권능을 행사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그 가치와 비전에 공감해서 그냥 내는 것이다.   나는 정치조직이든 시민단체든 기본적으로 가치, 비전이 확고한 중심을 차지하고, 거기에 사람들이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민참여, 국민주인, 당원주인을 강조하는 신당은 소정의 의무를 다하면 당의 지분(1/N) - 결정권과 발언권-을 준다는 것을 강조한다. 물론 여기에 공감하는 ‘정치 매니아’층도 좀 있겠지만, 결코 많을 수가 없다. 입장 바꿔 생각해도 국민의 충직한 종 노릇을 잘 할 것 같은 정치인과 당에 돈을 내고 싶지, 가치, 비전은 모호하면서 나에게 결정권과 발언권을 준다는 당에는 돈을 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신당에는 생활 정치에 대해 착각하는 사람도 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아는 한 생활정치는 생활을 하면서 인터넷, 휴대폰 등을 이용하여 정당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부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자기가 발을 디디고 있는 현장 개혁 운동, 다종 다기한 시민운동, 노동조합, 생협, 연구소, 블로그 등으로 국민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잘 긁어주어 사회적 신뢰를 쌓는 것이다. 또한 건실한 생활태도로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지지와 신뢰를 받는 것이다. 한마디 하면 주변에서 먹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당 홈페이지에서 엄청난 열정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이런 진짜 생활정치를 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물론 나는 진짜 생활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신당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낮아지고 봉사하고 그래서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과 크게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 불경, 중국고전과 수많은 사람들이 체득한 삶의 지혜는  낮아지면 높아지고, 버리면 얻고, 봉사하면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신당의 철학


정당을 묶는 끈은 강령이나 정책이 아니라 철학이다. 굵직한 사고방식 내지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이 핵심은 주된 대립물을 무엇으로 설정하느냐 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참여자 중에서 그 강령과 정책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신당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대체로 노-자간 대립 혹은 미.일(제국주의)-민족(신식민지)간 대립 관계가 모순의 기본축이라는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를 주요 대립물로 보며, 노동자, 민중의 조직된 힘과 이들의 정치세력화가 한국 사회의 진보, 개혁의 관건이라는 사고방식으로 귀결된다. 물론 이들의 철학은 일조일석에 생긴 것이 아니다. 길게는 식민지 시기부터, 가깝게는 산업화의 그늘이 짙어지던 1970년대부터 수많은 투쟁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나는 특정 정당의 당원들이 공유하는 철학이 이렇듯 긴 시간을 통해서 형성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철학은 지도부와 초기 동력의 삶에 체화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철학에 입각해서 투쟁하고 좌절하고 또 절치부심하며 일어나 또 투쟁 해 본 역사가 있어야 한다.  나는 신당 참여자들에게도 이런 철학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수가 공감하는 굵직한 사고방식(공유가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정당의 명칭, 도메인, 제안문, 10문10답집에 나타나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기간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에 대한 꿈’이다. 소수의 유력 정치인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결의다. 수도권에 휘둘리지 않는 지방 분권형 정당에 대한 지방정치조직 지도자들의 꿈이다. 노무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다. 또한 노무현을 내쫒고 부정하고, 열린우리당을 파괴한 민주당에 대한 불신과 회의다. 집단 지성에 대한 믿음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국가를 어떻게 개조해 보겠다는 비전과 대안은 약하고, 실천은 너무 짧다. 당연히 정치노선과 관련해서는 친노라는 정체성 아닌 정체성 외에는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나는 친노라는 정체성이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의 정신과 방법을 잘 계승, 발전시키기만 한다면......그런데 나는 신당을 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의 성과, 한계, 오류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것만 잘 정리해도-물론 체화와 실천이 뒷받침 되어야겠지만- 큰 울림이 있는 철학이 될 것 같은데......

 

친노정당? 국민참여정당?


솔직히 신당은 친노정당이어서, 아니면 유력한 대권주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지지할 사람은 많아도 국민참여정당이어서, 혹은 지방분권형 정당이어서, 녹색복지국가 비전에 공감해서 지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국민참여는 사실 기간당원의 권리를 크게 보장하는 것이라서 아는 사람만 아는 가치고, 녹색복지국가는 그것을 내걸고 오랫동안 뭔가 치열하게 실천한 것이 없어서 감동이 없어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신당을 친노정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본질을 정확히 짚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너무 영광스럽고, 과분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노무현의 합리적 핵심은 참여가 아니라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충직한 종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시대정신을 온 몸과 마음을 바쳐 구현하려고 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도덕성, 희생정신, 책임정신, 진정성, 새로운 진보의 길을 찾으려는 치열한 노력 등이 그 발로이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지만 민주주의 2.0을 만든 것도, 진보주의 연구 까페를 만든 것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데 신당은 노무현 정신에서 솔직히 너무 멀어 보인다. 참여정부에서 어떤 직책을 맡았다는 것 외에 노무현의 정신이나 합리적 핵심을 어떻게 구현해 왔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모르지만 여태까지 만들어낸 지적 성과물, 조직적 성과물, 실천적 성과물이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신당의 주요 지도자가 신당이 ‘친노정당’임을 부인한 것은 더 광범위한 참여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안으로 붙잡은 ‘국민참여정당’은 친노 보다 훨씬 협소한 가치이다.  그래서 차라리 ‘친노정당’이라고 자칭 하라는 것이 아니다.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또 자신들의 삶이 증거하는 가치, 비전을 내세워라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이 명칭과 구호만 살짝 바꾸면 신당은 성공한다는 말이 아님은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만행으로부터 자신의 존재 이유 내지 특장점을 넘치도록 찾는다. 마찬가지로 민노당, 진보신당, 민주당의 후진성과 졸렬한 행태로부터 신당의 존재 이유를 넘치도록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양당 구도를 뒤흔들수 있는 위력적인 정당으로 성장하려면 민주당에 비해 약간의 비교 우위(당원의 권리 강화 등)를 갖춘 정도로는 택도 없다. 국민의 요구, 불만, 고통에 반응하는 철학, 가치, 비전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양당구도를 뒤흔들 크고 강력한 정당은 거대한 강과 같아서 이 골짜기 저골짜기에서 발원하는 수많은 지류가 모여들어야 한다. 나는 신당은 그런 거대한 강에 도달하는 지류가 되었으면 한다. 수량이 많고, 유속이 좋으면 그 강의 주류가 될 것이다. 수량과 유속은 국민적 지지와 성원이 결정할 수 밖에 없다. 단적으로 유력 정치인은 혼자지만 엄청난 수량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가치나 시스템이나 리더십 측면에서 세 칸 오두막 구조를 고치지 않는 한 신당은 자칫하면 강에 도달하지 못하고 증발해 버릴 수도 있고, 엉뚱한 곳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회디자인연구소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나는 국민을 주인으로 잘 섬겨서 노무현, 김대중처럼 이쁨을 받는 사람이나 세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들을 섬길 용의가 있다. 하지만 국민을 주인으로 섬길 준비를 각고의 노력으로 하지 않는 정당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다.(계속)

 

사족 하나, 사회디자인연구소는 그 동안 진보의 혁신을 위한 철학, 가치, 비전, 주요 정책들을 생산햇다. 통계 중시, 실사구시 중시, 사상이념의 토착화 등을 부르짖었다. 당연히 이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대를 주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공간/공공 디자인과 일자리/산업관련 정책 디자인 컨텐츠를 강화하기로 하였다. 2010 지자체 선거와 2012년 대회전에 쓸 무기도 마련하고, 진보가 국가경영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런 정치평론글, 그것도 비판 글은 가급적 안쓰기로 하였으나 피할 수 없는 정치평론이라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