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댓글들의 답까지 해서, 

이 한꼭지의 글을 더 보태어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계속 제가 호남차별이 없다! 그리고 영남인들은 가해자가 아니다! 를 말한다고 하시는데, 

그런 차원의 의미가 아니고 말하자면.. 제 얘기의 본뜻은 이런 겁니다..


어떤 학급에서 학생 한명이 왕따를 당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걔를 왕따시키자고 주도한 애는 몇명 안되요..

보통 반에서 주먹깨나 쓰는 나쁜 새퀴들이 그런 짓을 하죠..

근데요, 시간이 지날 수록 평범한 애들이 하나씩 그 왕따에 가담을 해요..

그 나쁜 새퀴에게 안찍힐려는 마음에서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 

가담을 하게 되는 거죠..

처음에는 양심에 거리낌도 있지만, 점차 무감각해 지게 되고..

심지어 왕따를 주도한 그 나쁜 새퀴보다 더 악랄하게 괴롭히는 놈들도 나오게 되죠..

그렇지 않더라도 뭔가 왕따당하는 놈이 나빠서 그런거다..

는 이유를 각자가 찾아내면서 자기 행동을 합리화 시키는 쪽으로 변해들 가죠..

그렇게 양심의 부담을 덜면서 왕따당하는 애를 희생양으로 삼고,

동시에 나머지는 똘똘 뭉치게 되는 게 왕따의 일반적인 패턴이죠..

근데요, 처음 왕따를 주도한 애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요..

가령 왕따를 주도한 애가 동네에서 크게 떡집을 하는데,

왕따당하는 애의 집에서 그 바로 옆집에 떡집을 냈다고 하죠..

그래서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작정하고" 왕따를 시작한 거죠..

근데 왕따에 가담한 애들은 뚜렷한 이유가 없어요..

그냥 왕따 안시키면 자기도 당할 거 같아서..

왕따 주도한 애에게 잘보이고 싶어서..

왕따 시키는 게 처음에는 미안했는데 그게 점점 재밌어져서..

그러다가 왠지 걔가 왕따당해도 싼 놈이라 믿게 되버려서..

그렇게 "작정한 것도 아니고" "뚜렷한 이유도 없는데" 

그 분위기에 휩쓸려 왕따에 서서히 가담하게들 되는 거죠.

자기 기분이 별로인 날에는 괜히 왕따에 직접 나서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한마디씩 거드는 수준으로만 소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죠..

심지어 기분 좋은 날에는 그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걔를 매점에 데리고 가서 위로의 빵을 사주기도 하죠..

근데 왕따당하는 애에게는 그게 악어의 눈물이 아닌, 

자기 편들어 주는 너무나도 고마운 기억이 되버리고 말죠..

일종의 스톡홀름 컴플렉스라고 할까나..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 거드는 애들은 죄책감이 서서히 사라져 가죠..

심지어 자신은 반평균에 비해 착한 놈이라고 믿어버리는 놈도 나오지요..

그렇게 반의 분위기는 미묘하게 돌아가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 역시 왕따현장의 일반적인 패턴이라는 거구요..


자, 이제 왕따없는 세상에서 살던 한 학생이 그 학급에 전학을 왔어요..

근데 교실 돌아가는 꼴이 너무도 우스운 거예요.

그 모습이 하도 기가 차서 작정하고 이 문제를 뜯어 고치기로 결심을 하죠..

그래서 하루는 교탁 앞에 서서 준엄한 얼굴로 학급을 향해 외칩니다..

이 더러운 인종주의자 개새퀴들아!! 

자, 이때 과연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인종주의자임을 시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답은 "그 학급의 분위기가 실제로 어떠하냐"에 달려 있을 겁니다..

만약 왕따의 도가 지나쳐 매일 왕따남에게 물리적인 폭행과 구타가 가해지고 있다면..

얘기는 훨씬 쉬워 집니다..

맞어, 이건 뭔가 아니지..이런 분위기 정말 싫어, 나도 이러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문제는 왕따를 주도한 저놈이야, 저놈을 조져야 해!!

학급에서는 이런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때도 자기 잘못은 덮고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책임전가들을 하지요^^) 

과반수 이상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불씨가 던져진 거고,

거기에 누가 먼저 나서 기름만 부어주면 상황은 반전이 되는 겁니다..

반분위기가 이런 수준이면 정의감을 앞세운 전학생의 그 인종주의자 드립은

이 문제를 타계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한 수가 되는 거지요.. 

유태인의 차별, 흑인의 차별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근데 반 분위기가 그정도 까지 막장스럽지 않았다면 어땠을 까요?

얘기는 훨씬 더 복잡해 집니다..

그 인종주의자 드립으로 양심에 화인을 맞아 그 말에 공감하게 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할테니까요..

학생들은 제각각 자기방어 모드로 돌입하여 자기가 왕따시킨 기억보다는,

자기가 그 왕따남을 매점에 데리고 가 빵한조각 사준 일, 

그래서 걔가 눈물을 흘리며 자기에게 고마워 하던 기억부터 찾아내겠지요..

그 기억으로 스스로의 양심을 지켜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종주의자 드립이 자신에게는 너무나 부당하다며 억울한 생각을 하게 되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인종주의자 드립"만"으로는 목표한 효과를 내기가 힘듭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당근"이지요.

만약 그 당근없이 채찍(=인종주의자 드립)만 휘두르게 되면 

반감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 왕따를 근절하기 위한 학급의 공감대를 이루는 일이 어렵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종주의자 드립이 무용한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그에 해당하는 가해의 현실이 있는 만큼, 효과적인 무기인 것은 맞지요..

그 드립을 치는 횟수 조절만 잘하면 양심을 찔려 자신을 돌이키게 되는 이들도 꽤나 많이 생겨날테니까요..

60년부터-Dj집권 전까지의 호남의 케이스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흘러..

이제 그 학급의 일은 역사의 현재에서 밀려났습니다.

과거의 페이지속으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는 중이지요..

그래서 그 학급에 새로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그 일화가 하나의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전설의 힘은 현재에까지 작용하는 것이어서,

그때의 상처를 별생각없이 들추어내며 말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헌데 얘들은 그 가해의 현장에 있지 않은 후세대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편견을 상황에 따라 무감각하게 들추어내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애들의 숫자도 극히 미미하지요..

자, 이러한 상황에서 

이 더러운 인종주의자 개새퀴들아!! 

라는 말이 과연 어떠한 즉각적인 효과를 내게 될 것인지, 

그것을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자는 게 제 얘기의 요지였습니다..

이 말이 그렇게나 이해가 안가는 것인가요?ㅡ.ㅡ;;

현시점에서는 채찍(=인종주의자 드립)도 물론 필요하지만
(=과거 차별의 뼈아픈 순간을 날 것 그대로 현실로 소환해 내는 극악한 홍어주어자들을 상대할 때)

그보다는 당근이 효과적인 순간들(=그렇지 않은 평범한 영남인 다수를 상대할 때, 곧 홍어드립을 치고 나서 그것을 곧바로 사과할 수 있는 이들을 상대로 할 때)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님들이 인정을 해야지만,

오늘날 이 문제에 접근하는 길이 비로소 열리게 될 것이라는 제 생각을 말한 것이었지요..

물론 님들에게는 과거의 기억이 너무 아파서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반절이나마 님들이 양보를 해주셔야 한다는 게 제 주문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그 평범한 영남인들의 의식에서 부터 과거의 차별이 그 학급의 "전설"이 아닌, 

"가장 부끄러운 그 학급의 치부"였구나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야..

홍어를 입에 달고 사는 진짜로 나쁜 놈들이 설 땅이 현저하게 줄어든다고 한 거였지요..

제 얘기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곧 님들이 자꾸 기동전만이 유일한 전략인 것 처럼 말씀을 하시길래, 

저는 진지전이 더 우월한 전략일 수 있음을 강조해서 말한 것이지요..

과거에는 몰라도 적어도 오늘의 시점에서는 그렇다라는 얘기..


근데 이점을 도무지 이해를 못하시길래..

영남인 "모두"가 왜 "단순하게" "가해자"일 수가 없는 것인지의

새로운 논점을 끌고와 제 얘기를 다른 측면에서 보강해서 말했던 것 뿐입니다..

좀 더 단호한 어조로..

그때문에 역효과는 더 심해졌지만, 그렇다고 제 논점을 양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상대의 얘기를 상대의 발화 맥락을 따라 끝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가 

님들에게는 너무 부족한 거 같아 그게 너무 아쉬울 뿐이지요..


또 제법 긴 논쟁 끝에 님들께 받은 제 인상을 요약해 보면..

님들은 피해자의 심정은 잘 알지만, 가해자의 심정은 너무 모르고 있고..

영패주의를 고발하는 정치지형의 문제에는 밝아도, 

그 내부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그것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사람입니다. 사람..

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얻어내는 가에 따라 천하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지고의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지역차별 문제를 새롭게 고민해 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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