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카이넷에서 레드문님과 지금은 아크로에 없는 상록수님께서 금란교회 김홍도 발언을 두고 '개신교의 호남차별'이라는 주장을 하셨고 흐강님은 깜찍하게도 '김홍도는 사이비'라고 쉴드를 치시는데 그 것은 개신교의 대한민국 학살사를 몰라서 하는 주장입니다.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에서 목사들이 '빨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실에 주목해보신 적 있나요? 김홍도의 발언은 호남차별로 보이지만 그 발언의 내막은 바로 한국의 잔혹한 개신교의 대한민국 학살사입니다. 학살의 주체는 서북청년단, 학살 당한 사람들은 빨갱이 그리고 DJ는 그 빨갱이의 수괴.


제가 예전에 한국의 메가처치를 창설한 목사들의 족보를 추적 중이라고 했고 그 추적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만 예전에 써놓았던 글 중 일부가 남아 있어 그 글에 그동안 추가로 확인한 사실을 추가하여 글을 올립니다.


2. 호남분들 중 연세가 드신 분들은 기억하실겁니다. 518학살 후 2개월여 후 1980년 8월 6일 전두환의 5.18 진압의 공로로 대장으로 진급하는 날, 23명의 개신교 종교 지도자는 전두환의 대장 진급을 축하하기 위하여 조찬기도회를 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1996년 5월 18일, 전남대와 조선대에 다음과 같은 쪽지가 배포되어 젊은 크리스천들을 당혹케 합니다.


『이 글을 쓰게 됨은 누구를 비방하고 비난하고자 함이 절대 아니라 다만 사건의 진실을 학우 여러분에게 알리고자 함에 있으니 오해 없기를 바라며, 두서없는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80년 5월 피맺힌 열사들의 호소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군부 독재 타도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삼엄한 계엄 하에서 참 민주주의가 무엇이며, 올바른 시민 정신의(중략) 현재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정의의 심판대 앞에서는 등 정국의 과거 청산과 맞물려 있는 이때에, 12·12와 5·17을 통해 정군 찬탈을 위한 공작을 마무리해가던 그 신군부 세력을 위해, 80년 8월 6일의 '조찬 기도회'로 그들의 비열한 행위를 정당화하는데 협조해 준 일부 몰각한 교계(敎界)의 지도자들 또한 역사의 심판대에서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또 이 목회자들을 존경(尊敬)하는 대학생 선교회(C.C.C)에 몸담고 있는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비통(悲痛)한 마음으로,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자 한다. 지난 80년 8월 6일 전두환씨가 5·18의 공로로 대장으로 진급하던 날 오전, 롯데 호텔에서 개신교 지도자 23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두환 국보위 상임 위원장을 위한 기도회(祈禱會)가 열려, "구석구석 악(惡)을 제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과 전두환 상임 위원장을 위한 기도가 주를 이루었다. 이 사건은 기독교 대한성결교회 소속 한나라 선교회 이선교 목사가 1980년 8월 6일 롯데 호텔에서 열렸던 '전두환 상임 위원장을 위한 조찬 기도회'를 주도하고, 순서를 담당하는 등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인물들을 '반란 방조죄'등으로 서울 고등법원에 고소(告訴)한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이때 참석하였던 목사들의 명단은 한경직, 김준곤, 정진경, 조향록, 김지길, 문만필, 지원상, 유흥목, 이봉성, 신현균, 김창인, 장성철, 김신명, 박정근, 김용도, 김종식 외 7명과 같은데, 고소인 이선교 목사는 "불의(不義)를 보고 대항해야 할 목회자들이 오히려 불의에 동조(同調)하고, 더 나아가 불의(不義)한 정권의 등장에 일조(一助)하기까지 했다"고 지적하고, "1980년 신군부의 등장은 오늘날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평가(評價)되는 등 불법한 반란 행위임이 명백한 만큼, 민족의 대죄인 전두환, 노태우를 위해 기도로 협조(協助)해 준 교계 인사 역시 그 반란 행위의 공범자 내지 방조자로 봐야한다"고 고소 이유를 밝혔다. 이들 중 교계와 사회로부터 거센 질타 속에 신현균, 지원상 목사 2명만이 16년만에 참회성명(懺悔聲明)을 발표하였다. 성명에 동참하지 않은 21명의 목사는 참회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좋지 않았던 이미지가 밝혀지게 되면, 성도들로부터 지탄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교단사정 등의 이유로 인해 참회성명에 불참(不參)하였다.(이하생략)』
(출처는 여기를 클릭)

상기에 거론된 목사들 중에 '한경직'이라는 이름이 보일겁니다. 한경직... 예전에 제가 문화게시판에서 '하하하님'께 언젠가 시간이 되면 한경직의 추악함을 뒤벼드리겠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 한경직.......


그 한경직이 만든 영락교회(당시는 베다니 교회) 소속의 서북청년단이 4.3 제주 학살의 주범입니다.


제주도에서는 나이 드신 노인분들은 '개신교' 이야기만 나와도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계신다고 합니다.(제가 고향을 거의 안가.... 이 것은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전두환의 종교는 불교.......... 그리고 그 학살자의 대장진급을 위해 조찬기도회를 지낸 23명의 목사. 백번 양보해서 당시는 군부의 무서움과 사건의 진상을 몰라서 그랬다고 하더라도 16년이 지난 후에도 단지 '성도들로부터 지탄을 받을까 두려워 참회성명조차 내지 않은 21명의 목사'는 개신교의 대한민국 학살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이라고 하면 지나친 주장일까요?


3. 전국 종교 분포도-제주가 개신교도 비율이 제일 낮은 이유

아래는 주간동아 2008.09.30(654호)호에서 발췌한 것이고 맨 오른쪽 항목인 '인구대비 개신교 비율은 제가 표를 근거로 작성한 것'(인구대비 개신교 비율 = 종교 있음 항목 x 개신교)입니다.

2008년 시도별 종교분포도.gif

아래 (표 2)는 (표1)에서 개신교와 천주교의 신도 비율만 따로 뽑아서 그래프로 만든 것입니다. 특이 사항이 보이지요? 예.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도만 개신교도 수가 천주교도 수보다 적습니다'.

2008년 시도별 개신교 천주교 종교 분포도.gif

왜 그럴까요? 제주도가 섬지방이라서 그럴까요? 아니죠. 개신교의 전도 행위가 천주교는 물론 불교보다 훨씬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제주도만 유일하게 개신교도가 적은 이유가 설명이 안됩니다. 바로, 43 학살의 여파입니다. 만일, 전두환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323명의 목사들이 일제히 참회성명을 냈다면? 그리고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다면? 광주의 현재 개신교와 천주교의 비율은 (표2)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겁니다.

자, 그러면 개신교의 잔혹한 대한민국 학살사를 하나씩 거론해 볼까요?


4. 학살의 시작-제주 43 학살

제주 4·3 사건은 30여 만 명의 도민이 연루된 가운데 2만5천~3만 명의 학살 피해자를 냈다.[16] 당초 토벌대가 파악한 무장대 숫자는 최대 500명이다.[17] <제주4.3특별법>에 의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사망자만 14,000여명(진압군에 의한 희생 10,955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 1,764명 및 기타)에 달한다. (진압작전 중 사망한 군인은 180여명, 사망 경찰관은 140여명이다) 전체 희생자 가운데 여성이 21.1%, 10세 이하의 어린이가 5.6%, 61세 이상의 노인이 6.2%를 차지하고 있다.[18] 그 실례로 제주 4·3학살피해자의 증언 중에는 극우청년들에게 어린이에 불과한 아들을 잃었다는 증언이 한겨레신문에 보도된 바 있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제주도민들은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해병대에 자원입대하는 경우가 많았다.[19][20]

그밖에 재일 한국인들 출신구성을 보면 제주도출신자가 상당히 많은데, 이는 제주 4·3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당시 군정경찰 및 서북청년단등의 반공 극우단체의 가혹한 탄압을 피하기 위해 이른바 '보트피플'로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지역(주로 오사카지역)을 피난처로 떠나간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21]

한편 서북청년단 등 우익단체 회원들은 국가유공자로 남한 정부의 보훈 대상자가 되었고, 남로당 제주도당 수뇌부였던 김달삼은 사건이 진행 중이던 1948년 8월25일 월북, 국기훈장2급을 수여받았으며, 게릴라부대를 이끌고 남침했다 50년 3월 정선지역전투에서 사살됐다. 김달삼은 사후 ‘남조선혁명가’의 비문을 받고 평양근교의 애국열사릉에 안장됐는데, 이러한 사실은 2000년 3월 평양을 방문했던 우근민 제주지사에 의해 확인되기도 했다.

4.3 사건을 경험한 유족들의 회고에 따르면, '좌익도 우익도 자기 마음에 안들면 마구잡이로 죽여버리는, 완전히 미쳐버린 세상이었다.'(인용자 주 참조)고 회고하고 있다.[22]
(출처는 여기를 클릭 : 인용자 주 이외에는 출처의 번호 참조)

인용자 주 : 제가 코블렌츠님 글에 '고향 어른들에 따르면 살기 위하여 낮에는 경찰에 부역하고 밤에는 빨갱이에 부역하였다'라고 했었습니다. 단지, 우익이 좌익만 학살한 것은 아닙니다.


상기 인용한 제주 43학살에서 '서북청년단'이 보이지요? 그 서북청년단이 바로 한경직 목사가 창설한 영락교회(당시는 베다니 교회)의 신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주 43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 레드헌트 1,2편은 1997년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영금지되었습니다. 제주43학살극을 그린 영화 레드헌트 12는 아래를 클릭하면 그 정보 및 영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5. 학살의 연속, 여순반란사건 <왜 419 혁명 때 시위대는 감리교회관에 돌을 던졌나?>

아래는 감리교 청년연합회 자료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지금은 감리교 청년 사이트에서 사라졌는데(아마, 이승만 국부 추대와 관련된 뉴라이트의 조직적 역사 감추기의 일환인듯) 아래 내용 중 특이 사항이 하나 발견됩니다. 
419중에 감리교회관에 군중이 돌을 던진 이유-001.gif

그  것은 419 혁명 당시 시위대가 광화문에 있는 감리교회관에 돌을 던지고 야유를 보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리교 역시 개신교가 벌린 학살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순반란사건 때 학살을 주도한 목사는 바로 김창인 목사입니다.


6. 여순반란사건 때 학살을 주도한 김창인 목사와 김홍도 및 YS의 관계

김창인 목사는 예장 합동 서북노회를 설립했고 그 유명한 김홍도의 감리교 뿌리가 바로 이로부터 시작합니다. 

지난 노무현 정권 때 10만여 개신교도들이 동원되어 데모를 일으킨 사건을 기억하실겁니다. 바로 그 주동자가 바로 이 김창인 목사입니다.

여순반란사건은 제주43사태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하여 발생한 사건입니다. 그러자 이 서북청년단이 여수반란사건을 진압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자신의 빨갱이 전력을 숨기려고 516 쿠테타 직후에 서북청년회를 모두 잡아넣은 후에 교회를 세워 목사로 과거 세탁을 합니다. 그게 바로 예장합동 서북노회와 김홍도의 감리교 뿌리입니다.

김홍도의 빨갱이 발언의 내막은 단순히 호남 차별을 넘어 질긴 개신교도들의 잔혹한 대한민국 학살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김창인 목사가 세운 충현교회............... 그 교회의 장로가 바로 김영삼이었습니다.

 
7. 왜 개신교 목사들은 평화통일을 반대하는가?

제가 위에서 한국 메가처치의 족보를 추적한다고 했는데 후술할 신천군 학살의 주도자로 지목받는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월남을 했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북한의 지주였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말씀보존학회의 우주영'이라는 사람인데 그의 할아버지가 평양에서 월남한 개신교도인입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월남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북한의 지주였다고 했습니다만 이 우주영의 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월남할 때 들고 온 것이 땅문서 뿐이라고 합니다. 즉, 이들에게는 북한을 무력으로 점령해야지만 자신들의 땅을 찾을 수 있는겁니다. 평화통일을 하면 땅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평화통일을 극렬히 반대하고 햇볕정책을 펼친 DJ를 그렇게 맹렬히 비난하는 것입니다.


(계속됩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