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보면 인간의 탈을 쓰고 저렇게 뻔뻔한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문재인한테 가서 낮짝가죽을 한번 잡아당겨보고 싶어요.  얼마나 두꺼운지.

노무현 수사가 정치보복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근데, 그 정치보복 노무현이하고 문재인이 가장 비열한 방법으로 저지르지 않았어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10614161330&section=01&t1=n

이부분이 진짜 압권이네요.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 주려 애썼던 노 전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싶다.]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 준 결과가 박지원이 없는 죄 날조해서 기소하고 박주선이나 이인제 날조하고, 심지어 남사장 사건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tv에 출현해서 검사들에게 수사의 향방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박주선 사건에서 문재인이 지휘하던 청와대 민정실에 수사 검사가 검사의 양심상 도저히 잡아넣는거 불가능하다고 보고서까지 따로 올렸다는 이야기 아예 파다하게 나돌던 시절이 노무현 정권 초기임.

http://soobok.or.kr/15811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박주선을 도왔던 많은 인사들이 검찰에 불려갔다. 박주선과 그의 친인척들에 대한 계좌추적은 말할 것이 없었다. 선거 때 그를 도와준 80여 명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조사는 간단했다. 박주선에게 돈을 준 사실을 불라는 것이었다.
조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박주선의 청와대 법무비서관 재직 시절 국영기업체 임원 인사는 그의 소관이었다. 이 시절 임명된 인사들이 모두 조사를 받았다. 부영건설 등 호남출신 기업인 수사 때마다 박주선과 관련성을 캐기 위한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졌다. 이때 조사를 받고나온 한 기업인은 “박주선 때문에 죽을 고생을 했다”고 토로할 정도였으니 조사의 강도를 가히 짐작케 했다.
노무현정권이 들어서면서 박주선을 잡기 위한 표적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의 총력전이 펼쳐졌다. 이 잡듯이 뒤졌지만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은 없었다. 검찰로선 물러설 수 없었다. 박주선을 잡기 위한 권력의 의지는 그만큼 강했다. 그 결과는 모두 무죄로 끝난 ‘나라종금 사건’과 ‘현대건설 사건’이라는 무리수였다.
두 사건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선 검사들이 ‘죄가 되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검찰 수뇌부는 이를 무시하고 구속과 기소를 강행했다.
나라종금 사건에 대해 수사검사가 “이 사건은 기소해도 무죄가 선고될 것이므로 검사 양심상 기소를 못한다. 상부에 이야기 좀 하라. 왜 기소를 하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검사의 예견대로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 구속영장 심사 단계에서부터 사실상 무죄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 수뇌부의 관심은 유무죄가 아니었다. 사전구속영장 신청, 국회에 체포동의안을 제출해 박주선에게 ‘비리’의 낙인을 찍었다. 박주선을 정치적으로 무장해제시키기 위한 일련의 수순이었다.
현대건설 관련 사건 역시 담당 검사는 “후원금 처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잘못 파악해서 수사를 했다. 죄가 안된다. 기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또한 변호인을 통해서 기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2004년 1월 6일 대검 중수부장이 변호인을 통해 ‘박주선에 대해서는 구속영장 청구를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했다. 그러나 검찰은 갑자기 입장을 바꿔 박주선을 구속했다. 무슨 힘이 작용했을까.

노무현 정권은 왜 정권출범과 동시에 ‘박주선 죽이기’에 혈안이 됐을까.

참여정부 초기 국정원 고위 간부의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호남의 대표주자가 누가 될 것인가를 조사했다. 박주선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 간부는 이를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한다.
정치인에게 이는 영광스러운 일이다. 응당 축하의 말이 뒤를 이어야한다. 그러나 이 간부의 다음 말은 “몸 조심하라”였다. 그는 이미 이 조사의 목적과 배후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고 있었다. 박주선의 주변 사람들이 고초를 겪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즈음이었다.
노무현 측은 집권하자마자 DJ와 호남세력의 청산을 빠르게 진행했다. 정부 공직에서는 인사권을 통해, 정치권은 신당 추진을 수단으로 삼았다.
이들에게 동교동계는 이미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호남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한 구시대 정치집단으로 전락했다.
문제는 호남의 ‘포스트 DJ’가 등장하는 것이다. 새 정권이 구상하고 있는 권력재편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를 구심점으로 결집하면 호남 무력화와 영남 진출이라는 그들의 목적은 중대한 차질을 빚는다. 그 싹을 잘라야 했다.
‘포스트 DJ’의 싹은 이미 현실정치권에서 싹 트고 있었다. 박주선은 주목대상이었다.
대선이 끝나고 2003년이 시작되면서 호남정치권도 변화와 혁신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DJ의 동교동계 해체 발언, 한화갑의 차기당권 불출마 선언은 동교동계와 DJ의 지배에서 벗어난 새로운 호남정치질서의 시작을 의미했다.
민심과 정치권은 새로운 대안을 요구했다. 16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민주당에 입당했던 이정일은 2003년 1월 7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포스트 DJ’에 대한 나름의 소견을 밝혔다.
“지역 정치권은 현재 ‘포스트 DJ’ 부재에 따른 지도자 공동화 현상이 우려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진단하며 “구심점을 모색하고 이를 중심으로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새로운 정치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일은 “새로운 정치질서 구축을 위해서 초선인 박주선의원이나 이낙연 대변인 등을 키워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을 내비쳤다. 이낙연은 대선기간 ‘민주당의 입’으로 활약했다. 분당과정에서 민주당에 잔류했지만 친노로 분류된다. 반면 박주선은 독립적이었다. 노무현 정권의 통제권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컸다. ]




또 다른 노무현 정권의 표적 수사의 희생양 이인제는?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았는데, 검찰과 경찰, 국정원 모든 요직 죄다 경상남도 애들로 도배하셨나 보네요.

민주화 세력이라는 김영삼 정권 이후 검찰수사 받다가 자살한 사람이 가장 많았던 정권은, 무죄판결 가장 많이 나온 정권이 어떤 정권인지 똑똑히 밝혀야 문재인이 저런 뻔뻔한 거짓말을 못합니다. 가장 많은 자살자가 나오고 가장 많은 무죄판결 나온 정권 노무현 정권입니다.

가장 더러운 수법으로 검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해먹은 집단인 친노세력이 마치 죄없는 희생양인듯 피해자 행세를 하는걸 보면 역겨워서 토할 것 같습니다.

유시민이가 저번 단일화에서 "죄라고는 민주당의 불의에 굴복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쑈 보세요.

고종석도 노골적으로 그 부분 지적하네요.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9694

=그러나 우리는 정치라는 ‘싸움’을 관찰할 때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이명박 정권이지만, 그것은 신구 권력의 다툼 속에서 일어난 불상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신구 권력 사이의 ‘주고받기(묵계)’가 어느 순간 파열을 맞았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 파열은 구정권 청와대 자료들의 관리 문제를 놓고 생긴 갈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신구 권력의 ‘묵계’라는 말에 반발할 노무현 추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BBK 사건이 일개 특별검사의 판단으로 흐지부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 정권은 지선(至善)한 정권이 아니었다. 그 정권은 친삼성 정권이었을 뿐만 아니라 냉혹한 정권이기도 했다. 지금 마무리되어가는 한명숙 재판은 명백히 정치 재판이다. 그런데 지금 한명숙씨가 당하고 있는 고초가 노무현 정권 시절 박지원씨나 박주선씨가 견뎌야 했던 감옥살이와 본질적으로 다른가? 민주당은 2003년 16대 국회 보궐선거 때처럼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유시민씨를 위해 자기 당 후보를 내지 않았다. 유시민씨를 떠받치고 있는 영남 패권주의가 그리도 무서운가? 그렇다면 당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정의는 도대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