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에 오랜만에 들어왔고 이름없는 전사님의 글을 몇 개 보질 못해서 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댓글 하나를 보고, 영호남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아크로에 오시는 영남출신 분들은 매우 진보적인 분들이고 호남에 대해서도 많이 열리신 분들인데, 이런 분들이 비판받는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동시에 또 안타까운 점은, 가장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는 이런 분들까지도 대개 호남 문제에 대해서는 바깥 언저리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호남 출신들이 비판하는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일 겁니다. 하하하님의 용어를 빌자면, '피해자'의 입장 속으로 더 깊이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 머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그게 핵심입니다. 

댓글에서 님은 지역주의와 차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지역주의는 어느 정도 당연한 것으로 봅니다. 호남인에 대한 과거의 편견과 차별도 이해되는 면이 조금 있습니다. 영남이 경제적으로 특혜를 본 것... 그것도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것들이 영호남 문제의 본질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영호남이 정말 문제가 된 것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고, 영호남 문제의 중심에는 김대중이 있습니다. 

박상훈에 따르면, 6-70년대만 해도 호남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영남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영남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71년 대선 때 최초로 경북에서 지역감정을 선동한 일이 발생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영호남 문제라고 할 만한 건 없었습니다. 


그런데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71년 대선 때 김대중에게 간신히 이기면서(그 당시 여야간 어마어마했던 선거자금 규모 차이와 지독한 부정선거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졌는지도 모르죠), 김대중에 대한 심한 공포감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대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문의 교통사고가 있었고, 72년인가에는 중앙정보부의 김대중 납치 사건이 있었죠. 김대중을 죽여버리려 한 겁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유신헌법이라는 제2의 쿠데타를 일으켜 장기 집권을 하게 됩니다. 

1980년에는 전두환의 신군부가 5월 16일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제3의 쿠데타를 일으키고, 5월 17일에 김대중과 관련 인사들을 체포했고, 5월 18일부터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그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기록과 증언들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안 보셨으면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한마디로 지독히 잔인하고 끔찍헀습니다. "우리를 개, 돼지로 보지 않으면 이럴 수는 없다"라고 어느 분이 말했는데, 개, 돼지에게도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죠. 그들이 인간이라면...

광주 항쟁이 끝난 뒤 곧 그들은 김대중과 관련 인사들을 '김대중 내란음모죄'로 기소했습니다. 신군부는 이들을 계속 고문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광주항쟁시 잡혀온 사람들에게도 김대중이 시켰다는 걸 자백하라며 고문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은 대법원에서까지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어떤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광주학살을 이용하여 김대중도 죽이고, 호남도 고립시키고, 타 지역과 인물들에는 공포심을 심어주어 감히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고, 동시에 신군부가 집권할 수 있는 명분도 만들고... 일석사조 아닙니까? 그들은 광주항쟁을 무산자와 빈민층의 폭동이라고 선전했고, 그래서 광주를 폭동의 도시로, 김대중과 전라도를 불온한 인물, 불온한 지역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정서적, 이념적으로도 고립시켜버린 것입니다. 호남에 대한 나쁜 편견과 이미지를 광범위하게 유포시킨 것도 그런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1987년, 양김씨의 분열이 있었고, 노태우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투표 하루 전날 입국시켜 대선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김현희 때문에 200만표가 움직였을 거라는 전문가의 추정이 있는 걸 보면, 그리고 야당 선거자금의 수십배를 쓰고 심한 부정선거를 저지른 걸 감안할 때, 공정하게 했다면 실제로는 이 선거도 노태우가 졌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호남 몰표라는 현상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71년 대선만 해도 호남에서 김대중에게 몰표를 던지지 않았는데, 광주학살의 진상이 널리 알려지고 김대중의 수난을 목격하면서 호남이 똘똘 뭉친 결과였죠. 타지역들도 호남의 몰표에 충격을 받았겠지만, 호남 역시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전 지역에서 오로지 호남과 (대부분이 호남출신일) 수도권 일부만 평민당을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과 호남의 고립을 그래픽으로 분명히 보여준 사건이었죠. 동시에 또 충격적이었던 건, 광주학살과 쿠데타의 주역인 노태우를 영남과 전 지역, 특히 경북에서 압도적으로 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1990년에는 김영삼이 노태우, 김종필과 3당 합당을 합니다. 정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호남을 고립시키고 배제한, 그리고 경북과 경남이 완벽히 하나의 영남세력으로 결합한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호남인들은 김영삼의 배신에 충격을 받았고 소외감과 고립감을 절감해야 했습니다. 92년 선거에서는, 광주학살의 주역, 쿠데타 세력과 3당 합당을 한 김영삼이 초원복집의 지역감정 선동으로 코너에 몰렸다가 지역감정이 대대적으로 불붙어서 다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막대한 선거자금을 동원한 금권 선거와 관권 선거도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97년 선거에서는 김영삼이 나라를 부도 직전으로 몰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영남인들은 이회창을 압도적으로 지지했습니다.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간단히 역사를 기술해보았는데, 이 시대까지를 정리하겠습니다.

1. 영남세력은 불의하고 폭력적이며 잔인한 방식으로 계속 정권을 탈취했습니다.

무려 세 번의 쿠데타를 자행했고, 집권을 위해 광주학살이라는 끔찍한 만행까지 저질렀으며,
노골적인 지역감정을 선동했고, 무고한 사람들을 수없이 죽이고 탄압했으며,
야당의 대선후보였던 김대중까지 두세 번이나 죽이려 했을 뿐 아니라,
김대중과 호남에 대한 무차별적 마타도어를 퍼부었고 더러운 편견을 덧씌웠습니다. 
선거 때마다 극심한 부정선거, 금권선거, 관권선거를 했습니다.
영남세력은 불의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몇 십년 동안 계속 집권한 것입니다.

2. 영남세력은 집권을 위해 호남 대 비호남 구도를 만들어 호남을 고립시키고 배제하려 했습니다. 

3. 영남인들은 영남세력이 쿠데타를 하건 말건, 광주에서 학살을 하건 말건, 나라를 부도 직전으로 몰고가건 말건, 어떤 끔찍하고 더러운 짓들을 일삼건 말건, 변함없이 영남세력을 지지했습니다. 그들의 불의에 눈 감았을 뿐 아니라, 다수는 앞장서서 김대중과 호남을 매도하고 욕했습니다. 덤으로 떨어지는 떡고물까지 챙기면서...
 
4. 영남세력은 45년 동안 집권하면서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관계, 재계, 법조계, 언론계, 학계 등과 끈끈히 밀착하여 대한민국의 부와 권력을 가로채면서 동반성장을 했고 나라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의 시대가 옵니다. 호남이 희망을 걸었던 영남 출신 노무현은 결국, 노빠를 제외한, 지지자들과 호남인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기대가 컸기에 배신감은 더했고, 노무현 때문에 영남개혁세력에 대한 희망은 결정적으로 사라졌습니다. "영남출신은 다 똑같다"는 인상까지 심어주었고, 심지어 얼마 전 아크로에서 노무현보다 박정희가 더 낫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가 되었습니다. 특히 대북송금특검과 한나라당에 대한 대연정 제안은 영남개혁세력에 대한 호남인들의 불신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 여야를 막론하고 영남출신 정치인 중에 호남인의 입장과 정서를 제대로 이해해보려는 사람은 아직 보질 못했습니다(김정길이 예외일 수는 있겠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김영삼은 광주학살과 직선제 개헌을 맞바꾸려 했고, 노무현 정권은 문재인의 부산정권이라는 말마따나 영남공략에만 열을 올렸으며, 그런 전략의 일환인지 호남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호남을 자극하는 발언과 행동들을 보였습니다. 노무현, 유시민을 비롯한 친노들은 호남지역주의를 영남지역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보았고, 민주당에서 호남색을 지우려는 데 열중했으며, 영남에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여럿 당선되면 지역구도가 해소되는 걸로 보았고, 그걸 목표로 삼았습니다. 일련의 그런 과정을 거치며 호남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고 모욕감까지 느끼게 했습니다. 유시민은 아직도 민주당을 호남당이라며 없어져야 할 정당이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는 호남인들이 왜 영남과 영패주의를 비판하는지 조금 이해되십니까? 
 

쓰기로 하면 끝이 없겠군요. 그만두겠습니다. 
제 요지는, 뭘 '어떻게' 하려 하기 전에, 먼저 호남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 보라는 것입니다.
다른 영남인들을 설득하려 하기 전에, 주구장창 한나라당을 찍는 그들을 설득할 방안을 찾으려 하기 전에, 호남인들에게 그들을 설득할 방법을 연구하자고 제안하기 이전에, 먼저 이름없는 전사님 자신이 호남인을 이해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는 호남출신들 중 몇몇 분은 이제 영남인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수없이 말을 하고 또 말을 해도 영남인들이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이쪽에서 무슨 말을 하면, 나름의 논리를 가져와서 방어하고 공격했겠지요. 논리로 안 되면 외면하거나 욕을 하고 조롱했겠지요. 진실을 보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호남인을 이해해 보려는 대신에 영남을 옹호하려는 사람에게는 어떤 말도 먹힐 수가 없습니다. 

아크로에 오는 가장 진보적인 분들조차도, 심지어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진보정당과 지지자들조차도 호남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영패주의와 호남 얘기만 나오면 지역주의라며 매도하고 귀를 막아버립니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어떤 일을 계기로 몇 십년 동안 쌓인 울분이 터져나올 땐 어쩌다 한번씩 말을 하지만, 굳이 그런 얘길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얘길 하면 누가 들으려 하나요? 

쓰다 보니 얘기가 너무 길어졌군요. 마지막으로, 제 글이 논리적, 규범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고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이전에(그것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호남인의 억울함과 울분을, 그 '감정'을, 그리고 왜 영남을, 영패주의를 비판하는지를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만...  


덧붙임)
호남인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이야기가 나와서 별도로 하지 않았는데, 한 마디만 하자면...
한때 저는 대한민국에서 호남인이라는 것은 일본에서 조센징이라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