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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치수준은 아직도 근대화되지 못했다. 이것은 순전히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다. 대한민국 정치판은 거의 1500여년전의 고대사회와 봉건국가의 틀을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경상도의 우리가 남이가 식의 폐쇄적인 패권주의때문이다. 경상도패권의 <선민사상>은 신라 골품제도와 매우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영남인들은 친일파였던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기 이전에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그렇게 풍요롭거나 권력독점을 하지 못한 채,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보릿고개를 참아 넘겨야 했다. 호남평야의 드넓은 들판에서 기름진 알곡들이 가득 나왔던 호남에 비해서 경상도는 언제나 척박한 땅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상도인의 물질주의에 대한 환상을 채워주고 경제적 이득과 번영을 책임져 준 사람이 박정희였고, 이때부터 경상도인들은 1500년이나 지나서 박물관의 유물이되었던 <신라의 골품제도>를 모방 하기 시작했다. 즉, 영남인들의 뿌리 깊게 박힌 경상도 패권주의는 이른바 신라 골품제도의 복사판 또는 변형에 지나지 않었던 것이다.



예를들면, 신라 골품제도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유사한 점이 많은데, 신라 골품제도의 특성상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성골>과 <진골>이 아니면, 6두품까지만 승급이 가능하고 절대로 그 위로는 신분상승이 안되었다. 신분상승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신분 차별적인 골품제도는 대한민국에서<끼리끼리 문화>의 원조격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특징은,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벌어진다. 신라가 당나라 군대의 힘을 빌려서 백제를 멸망시키고 백제 귀족들을 회유하기 위해서 준 등급이 6두품 관리직보다 훨씬 못한 중간관리자급이었던 7~10두품 정도였다. 즉, 백제 귀족들은 신라귀족들보다 훨씬 못한 대접을 받았고, <성골>과 <진골>귀족에 비한다면 게임이 되지 못한 형편없는 차별대우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신라인들도 삼국통일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다만, 백제를 병합시키고 삼한땅(마한, 변한, 진한)을 통합시켰다고 인식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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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주김씨(신라)의 왕족 후예였던 김부식이 집필한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더라도,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문구는 그 어디에도 찾아볼수 없었고, 단지 대신라( 大新羅)로 표현했을 뿐이다. 大新羅... 큰 신라왕국이라는 신라가 일제 36년 식민지를 겪으면서 심하게 뒤틀렸고, 경상도 군사독재정권 30여년 과정을 겪으면서 심하게 역사왜곡이 되었다. 마침내 서울대 관학파를 비롯한 친일사학이 한국의 정통 주류 역사학을 점령하게 됨으로서 마침내 새빨간 거짓말로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거창한 역사로 변질된 것이다.


다시한번 언급하지만,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다만, 세계제국이었던 당나라의 군사력을 이용해서 눈에가시같았던 백제를 병합시킨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래서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역사관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


정확한 역사관은 신라와 발해의 남북국시대가 정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남인들은 무려 1300년도 더 지난 과거를 끄집어내서 우리 경상도가 삼국을 통일했고, 백제(충청도, 전라도)를 지배했으며, 두고두고 전라도인들은 차별을 받았다는 근거없는 훈요십조를 거들먹거리면서 역사를 왜곡시키고 지역감정과 지역차별을 조장했다.고려 태조왕건의 훈요십조도 위작이라는 가능성이 크다. 왜냐면, 고려왕조가 끝나는 시점까지도 차령산맥 이남의 충남과 호남인들이 차별받았다는 구체적인 역사적인 자료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상도인들이 지역차별을 조장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역사적인 근거로 뽑는 것이 신라가 주도한 백제멸망과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이다. 태조왕건은 민족융합정책을 정말 훌륭히 해낸 군주였고, 그래서 후백제 귀족들에게도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음은 두말할것도 없으며 높은 고관대작을 주고 회유책을 썼다, 그런 의미로 볼때, 진정한 삼국통일의 주인공은 신라가 아니라 고려 태조왕건이며, 이 시점으로 기록한다면, 한민족사의 한반도 통일시대는 고려와 조선을 포함해서 약 1천년이 정확한 역사의 해석일 것이다. 그러나 경상도인들은 이러한 역사인식도 없고, 군부독재자들에 대한 향수와 지나친 권력욕 추구, 경제적 이권과 탐욕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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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호남인들이 임진왜란때까지 핵심적인 주력세력이었으며, 전북출신의 정여립사건 이후에 호남 양반들이 선조 임금과 서인세력들에게 대대적으로 숙청당하면서 조선후기부터 호남양반들이 중앙 정치무대에서 활약 못했다. 여기에서부터 호남 민중들의 비극의 씨앗이 잉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상도지역도 영조 임금시대에 이인좌의 난이 발생했고, 그 결과 영남인들도 거의 90년간 중앙정계 무대에서 퇴출당하면서 경상도인의 정치적 주력세력이었던 <남인>이 박살나버렸으며 경상도인들도 중앙권력에서 멀어졌다.안동김씨의 60년세도정치는 경상도 안동김씨의 본적을 가지고 있었던 서울과 경기도 출신의 노론세력의 양반가문들이 권력을 장악했던 것이지, 결코 영남인들이 조선후기에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었다.


호남인들은 항상 불의에 맞서 싸우는 투쟁의 DNA를 가지고 있다. 임진왜란때도 그랬고, 구한말 호남 의병으로 끝까지 일제에 목숨바쳐 싸운 본거지도 호남이었다. 일제는 <호남 의병 대토벌작전>을 벌여서 굴복하지 않았던 호남의병들을 모조리 죽였고 마을을 불태웠다. 그러나 호남의 투쟁정신을 끝나지 않았다. 바로, 광주 학생의거와 518 광주 민주항쟁으로 호남정신은 또다시 대한민국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호남세력은 부당한 영남패권주의에 분연히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경상도 군부독재자에 처절하게 투쟁한 지역도 호남이 유일하며, 50년만에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냈던 김대중을 키워 낸 고장이 바로 호남이다.
이제 호남은 경상도 패권주의에 NO라고 당당하게 말을 해야 한다. 경상도패권에 맞서 호남이 NO라고 외칠될때만이 영남 독식의 패권주의를 종식시키고 다같이 대한민국의 주권 시민으로서 동등한 대접을 받을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볼때, 호남정신을 제대로 계승발전시켰던 DJ정신은 참으로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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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인들의 영패주의의 병균을 만든 원흉이 바로 잘못된 역사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수 있다.
경상도인들은 일종의 독일 나치스에 유사한 <경상도 우월주의>를 내세우는데, 그것이 바로 <영패주의>의 본질이다. 전세계적으로< 민족국가>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유럽사회에서 비롯되었는데 불과 2백년이 좀 넘었다.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대혁명이 성공하자, 프랑스는 봉건적인 왕조국가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공화정 국가로 변신했고, 종교세력과 왕족세력을 타파한 근대적인 프랑스를 만들어 나갔다.
특히, 프랑스의 식민섬 코르시카 출신의 포병장교였던 나폴레옹이 유럽원정 길에 올라 유럽 대부분을 석권하자, 자연스럽게 프랑스대혁명의 정신과 기운이 전 유럽에 퍼졌고, 그때부터 자기나라의 고유한 민족성과 역사관을 심기위해 자국의 <국기>를 만들고 애국가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순혈주의>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세계 그 어디에도 단일민족 개념의 <순혈주의>는 한번도 없었고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 유럽국가에서 <민족국가 개념>이 생기기 이전에는 프랑스인들이 독일로 이주해서 마음대로 살았고 자기자신이 독일인으로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독일인들도 여러국가로 분리된 이탈리아로 이주해서 살면 그 사람은 이탈리아인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즉, 외국인 개념이 유럽사회에서 뿌리내린 것은, 18세기 후반에 각국의 <민족주의 개념>의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대두된 것이다. 그런데 경상도인들은 이미 히틀러의 나치제국이 실패한 <순혈주의>를 자랑스럽게 한반도 남쪽 끝트머리 지역에 강제적으로 이식시켜 놓았다. 그것도 아주 자랑스럽게 우리가 남이가로 똘똘 뭉친 <경상도 선민사상>으로 말이다. 경상도인들의<우리가 남이가>식의 집단 폐쇄성이고 봉건적인 마인드는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하면서도 패쇄적인 패권적 사고방식이다.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호남세력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경상도인들의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잡고, 그들의 봉건적이고 폐쇄적인 골품제도의 마인드와 <순혈주의>를 타파시키는 것이다. 영남패권주의를 깨트리려면 호남세력만의로는 불가능하다. 인구 구조나, 경제 규모로 볼때 도저히 호남세력은 영남 패권세력을 물리칠 방법이 없다. 그래서 호남과 민주당은 충청과 강원,제주와 끈끈한 연대고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금 호남세력이 영남 패권세력에게 집중적인 공격과 마타도어를 당하지만, 그래도 호남은 대한민국에서 2등은 항상 고수해왔다. 강원도와 제주도는 경상도 패권세력에게 온갖 부역질을 다했지만, 돌아온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차별의 강도만 더 심해진게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프랑스대혁명과 유사한 정치적 대사건을 만들 주역은 호남과 민주당이다. 그러므로, 영남 지배계급에 의한 <앙시앵 레짐>의 대한민국 통치는 마땅히 끝나야 한다. 영남의 일방적인 독식구조가 끝나야 비로소 대한민국의 남북통일과 지역 균형발전은 현실화될수 있다.


영남패권주의를 척결하려면 최소한 30년 이상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이치다. 지금부터 호남과 민주당 지지세력은 준비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군부독재를 포함한 영남패권주의 40년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그 반대급부로 30~4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루 아침에 만리장성을 쌓지는 못하므로 차근차근 내년 대선부터 영남패권주의를 무너트릴 가능성 있는 대선후보를 호남세력이 키워줘야 한다. 그래야 2012년 대선에서 반영남-비강남 출신의 대통령이 당선될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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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인 결론은 역시 김대중 정신으로 귀결된다. 김대중이 살아왔던 방식이 현재 민주당 지도부에게 절실하게 요구된다. 행동하는 양심이 이 땅에 불의를 몰아내고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이다. 그러므로 김대중정신은 영원하며 앞으로도 호남정신과 함께 민주당의 핵심 가치로 계승발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