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하라는 사람이 있다. 서울시립대 교수로 지금은 활동이 좀 뜸하지만 한 때 월간조선을 배경으로 꽤 활약을 했다. 문학평론가라고 하는데 문학보다는 정치평론에 좀 더 관심을 가진 듯 했고 박정희 예찬과 좌빨 척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 사람이다. 그의 문학평론은 주로 좌파(라고 본인이 생각하는) 문인들을 까는 용도로 이용되곤 했다. 출생지는? 당연히 경상도에 그것도 고담대구 출신이다. ^^

그런데... 이사람은 그렇고 그런 수꼴 가운데 하나로 치부하기에는 약간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항상 약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격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전에 강준만은 그를 ‘따뜻한 극우’라고 칭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억울한 피해를 당한 사람에 대해서 자주 언급을 하기도 하고 또한 페미니즘에 나름 경도되어 있다. 극우와 페미니즘은 좀 안 어울리는 궁합인데다가 그가 제대로 된 페미니즘 철학이 있는지조차 의문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를 둘러싼 논란만 있으면 제꺽 끼어들어 여성계 편을 드느라 난리를 친 적이 여러번 된다. 인종차별에도 나름 열성적으로 끼어들어 흑인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사자후를 토하곤 한다. 그런데 그의 약자에 대한 동정에 유일한 예외가 있으니... 바로 우리나라의 지역 문제이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호남차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당연히 광주에서의 학살에 대해서도 꿀먹은 벙어리다.

자, 내가 이사람 마음속이야 들여다 볼 수 없는 일이지만 그냥 여기저기서 본 일을 바탕으로 한번 추측을 해보자. 그는 경상도 출신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뭐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동정을 표한다. 동정을 표하는 수준이 천박하긴 하지만 그 의도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는 호남인은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드러내 놓고 호남인에 대한 두려움과 경멸 (사실 모순되는 감정이긴 하지만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이다)을 표현할 수는 없으니 입을 다무는 것이다.

강준만이 호남차별 문제는 미국의 인종차별과 비교할만한 수준이라고 처음 드러내어 언급했을 때 그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들도 자신의 첫 반응은 “에이... 인종차별이라니 너무 심하네.”라는 반응이었다고 실토한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이 적어도 비유로서는 그러한 비교를 인정하고 있다. 분명히 이는 발전된 현상이다. 지역과 인종... 서로 다른 개념이니 당연히 차별에 있어서도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이렇고 저런 저러니 너의 비교는 틀렸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의미가 있는가? 중요한 것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이해하는 것이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저기 사는 누구는 너보다 더 불쌍한 놈이니까 너 정도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위로(?)하는 사람을 흔히 세상에서는 뭐라고 부르더라... -_-a

이곳에 들어오는 분들... 너무 자신의 양심을 과신하지 말아주셨으면 한다. “나는 영남인으로서 호남 편을 들어주러 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도 몰라주고 전두환과 같은 취급을 하다니...” “나는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양심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무신론자들은 나같은 양심적인 기독교인까지 싸잡아서 욕을 하다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 별로 의미가 없는 불평 같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심할 때 흑인들은 정말 KKK단 같은 이들보다 자신이 양심적이라 자부하는 리버럴한 백인들을 더 싫어했다고 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