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들이 사적제재에 그렇게 반대하신다면 가장 먼저 하실 일은 공적제재를 수립하는데 힘을 쓰는 일입니다. 그런데 공적제재를 수립하는데 힘을 쓰고 계신가요? 아니죠? 그런데 왜 유독 사적제재에 대해서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시는 겁니까?

홍어드립은 잘못되었고 그로 인해서 상처입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한 법규를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적제재를 가하는 것이 그렇게 못마땅하다면 님들이 할 일은 사적제재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그보다 더 강하게 공적제재를 요구해야 합니다. 그걸 못한다면 사적제재 자체에 대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부정적인 견해의 무관심을 가지면 될 일입니다.

19세기 성폭행 당한 여성에게 그 누구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헌법 소원을 제기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20세기 초 인종차별을 당하던 흑인에게 그 누구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헌법 소원을 제기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는 약자이고 법을 뜯어고치는 일은 여유가 있는 사람이 할 일입니다. 또한 약자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처벌이지 수십년이 걸릴 느린 의식과 법의 개선이 아닙니다.

님들은 의식과 법의 개선을 위해서 피해자의 인내를 요구하면서 정작 현실 개선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에겐 온갖 요구와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고 있죠.

수많은 차별과 폭력 중 오직 전라도 차별에 대해서만 그런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는 조금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항 수단이 없는 피해자에게 사적제재를 포기하라는 말은 인내하라는 말입니다. 제가 님들을 비법적인 수단으로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저 참으시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사회의 진보가 가능할까요? 모두가 참는다면 노예제 역시 혼란이 없는 평화로운 제도일 뿐입니다. 공적 제재를 위한 수단 중 인내는 방법적 수단조차 될 수 없습니다. 인내를 방법적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국가는 어떠한 공적 제재도 고안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 필요 없는 법은 만들지 않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