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사적인 경험이긴 한데..

어린 시절 가정불화가 좀 심해서 집구석이 살얼음 이는 듯한 삭막한 분위기였거든요. 냉전의 기류와 긴장감 쩌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던..

또 제가 외동이라 그 분위기를 홀로 감당해야 했는데, 심적으로 그게 많이 힘들더라구요. 집구석에 삭막한 분위기 쩌는데 혼자 티비 앞에 앉아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라디오를 주로 듣게 됐는데, 그러면서 자연히 음악과 친해지게 됐지요. 그게 제 초딩 저학년 때의 일이었고, 그래서 본의 아니게 또래 친구들 보다는 음악을 한박자 일찍 접하게 됐죠. 당연히 음악적 감수성도 또래들 보다는 일찍 발달하게 됐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전혀 좋은 게 아니더군요..

지금 기억에 제 초딩 때 주로 듣던 음악프로가 고현정의 FM인기가요 부터였던 거 같은데..그후로도 같은 FM방송 위주로 해서 수년간을 더 라디오방송 중독자로 살았죠. 이승연-고소영-박소현의 FM데이트, 이종환-윤상의 밤의 디스크쇼,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 배철수의 음악캠프,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이건 AM방송) 등등..아직도 이때의 기억이 남아있네요. 제가 주로 들었던 방송들이고 저녁 부터 자기 전까지 계속 켜두고 있다가 잠 들었고, 새벽에 흠칫 깨서는 방송 끝나서 지지직거리는 라디오를 끄고 다시 잠들곤 했던..

그렇게나 열심히 방송을 들었었네요. 그 순간만큼은, 엄마 아빠 눈치 살피는 일을 안해도 됐고, 신경쓰이는 모든 걸 다 잊고 그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또 노래가 좋아져서..정말 그때는 노래의 가사나 음색, 가수들의 돋는 목소리, 미세한 바이브레이션이나 창법 이런 것에 정말 섬세하게 반응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그 모든 게 조화를 이뤄 감미롭게 가슴을 치고 가는 곡을 만나게 되면 인생의 가장 큰 희열을 바로 그 순간에 맛보게 되었었죠. 그 노래 한소절이 주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의 느낌 때문에 가슴 밑바닥에서 부터 벅찬 희열의 눈물을 쏟곤 했던.. 뭐 그런 절박함과 애절함 같은 게 있었다고 할까. 그래서 그 가수와 곡명을 알아내기 위해 방송을 더 귀기울여 듣고 그 노래가 나온다고 하면 잽싸게 테잎에 녹음하곤 했죠. 그러고는 미니 카셋으로 하루종일 그 노래만 듣고 다녔던..

뭐 그 시절 음악방송 애청자들은 다들 그러했겠지만, 저는 그 짓을 남들보다 좀 더 일찍 시작했다는 것과, 그러면서 음악을 또래들과 눈높이를 맞춰 함께 즐기는 동시대의 문화로서가 아닌, 음울한 집구석이라는 개인사적인 배경이 크게 작용해 그것을 통해 위로받고, 심지어 구원받는 느낌에 까지 사로잡혀 무조건적으로 탐닉하게 됐던 건데..

그 부작용 같은 게 서서히 나타나더라구요..

가령 제가 (라디오)음악방송에 심취했을 무렵에는, 티브이 방송과 라디오 방송의 내용에 확연히 차이가 있었거든요. 제가 라디오 방송에 처음 입문했을 무렵이 조용필이 한국 가요계를 평정하면서 티브만 틀면 조용필이 나오던 그 1인 독주의 시대가 지나가고, 서서히 조용필 이후의 신세대 가수들이 속속 등장하는 세대교체의 시점이었거든요. 그래서 조용필, 이선희 등등을 필두로 하는 기존의 대스타들의 활약 보다는, 서서히 심신, 박남정, 소방차, 강수지, 원미경 등등.. 새로운 남녀 후발 주자들이 등장해 가요계 순위를 석권해 가던 전환기의 시점이었죠. 그래서 티브이 방송의 주류가 이 새로운 신세대들에 의한 발라드와 댄스곡들로 채워져 갔고, 그래서 제 또래 초딩들의 문화도 이 스타들의 춤과 노래를 모방하거나, 이 스타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가 되는 식으로 굳어갔었죠..

반면 라디오방송은 달랐거든요. 티브에서 나오는 주류음악 보다 더 큰 비중으로 티브이 송출이 안되는 비주류음악, 흔히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의 노래들을 틀어줬는데..제가 꽂혔던 게 바로 이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노래였던 것이죠. 한세대 위 통키타 가수들(=주로 386세대가 주축이 되었던)의 명맥을 이으면서도 뭔가 그것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느낌, 그와 함께 특유의 개성을 간직했던 가수들이 그당시 언더그라운드에 포진해 있었는데, 그 중 유재하, 김현식, 장필순, 박학기, 오석준, 푸른하늘, 동물원, 여행스케치..등등의 노래를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브라운관을 타지 못한 이 언더계열 음악들은 거의가 다 통키타 풍의 고즈넉하고 서정적인 느낌의(혹은 애끓는 절절함의) 발라드 일색이었는데, 그 탓으로 제 막귀는 제 마음을 건드는 서정적인(혹은 아주 진득하게 감성을 에리는) 가락에"만" 기울어지게끔 굳어버린 것이죠. 그러니 티브에서 요란하게 몸을 흔들어대는 빠른 비트의 댄스곡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게 됐는데..

바로 그 언밸런스 때문에 제 문화생활의 빈곤이 이어졌던 것이죠.(=물론 당시에는 전혀 그렇게 생각안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런 후회가 든다고 할까..)

근까 제가 듣는 음악방송의 대개의 시청자들이 고딩을 기준으로 그 전후의 나이대가 주축이었는데, 물론 제가 그당시 그정도로 나이가 차있었다면 함께 음악방송의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또래 친구가 주위에 있었겠죠. 그랬다면 제 음악 코드를 간직하고도 여러 친구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장르에 까지 관심을 넓혀갔을 텐데, 초딩들이 저처럼 미친듯이 라디오 방송 듣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가수를 아는 애가 하나도 없었죠. 전 소통이 막혀 음악 얘기만 나오면 줄곧 소외된 느낌을 받게 됐지요. 그러면서 그 소외감을 묘하게 제 취향에 대한 우월감으로 치환시켜 버렸는데, 그런 일이 계속되면서 제가 더 제 취향안에만 갇혀 버리게 됐다고나 할까?

그래서 화려한 신세대 가수들이 티브이를 장악했을 때, 친구들과 달리 저는 시큰둥 했죠. 제 가슴을 떨리게 하는 서정미, 혹은 좀 다른 결로 제 감수성을 에리는 끈적한 인간미, 뭐 이런 걸 노랫가락 속에서 전혀 느낄 수가 없는, 걍 가볍게 티비화면속을 채우는 저 가수들의 몸짓과 노래에 대중들은 왜 저렇게 호들갑을 떨까? ㅋㅋ 혼자 그렇게 진심으로 의아해 했답니다..

그리고 좀 지나..한국 가요사에 전무후무한 획을 그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죠. 이전까지의 귀요미 댄스가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전율이 이는 폭풍 퍼포먼스를 앞세워 무대를 장악했고, 그렇게 등장과 함께 대중들의 눈길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죠.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기존의 틀을 깨는 창조적인 새로움이 무엇인가를 그들의 춤과 노래속에서 과감없이, 정말 파격적으로 보여줬던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우상이었죠. 저도 정말 서태지는 남다르게 보이더군요. 그 파격적인 춤사위를 보면서 가졌던 흥분감이란..

근데 역시나 그 노랫가락이 제 마음속 깊숙이를 울렸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뭔가 그 말할 수 없는 새로움의 격정에 또래 친구들과 함께 무조건적으로 휩쓸려 버렸다고 할까. 서태지 이후로 그 아류 댄스 및 힙합 가수들이 대거 등장했지만, 이미 서태지를 통해 그 문화적 충격을 한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이후로는 그런 아이돌 그룹들에 그다지 끌리지가 않더군요. 그냥 한때의 유행에 빠졌고, 그것을 경험한 후로는 다시 식상해 버린..

그래서 저는 서태지 이후로 생겨났던 그 수많은 국내 아이돌 그룹 중에 서태지 빼고는 매료되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네요. 그러다 보니 그 춤사위나 노랫가락에 맘을 뺏겨본 적도 없었지요. 그래서 그런 곡들은 언제나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그만이었는데, 덕분에 아이돌들의 발흥과 함께 교실이 온통 브레이크 댄스와 같은 춤판으로 변해갔던 제 학창시절 내내, 저는 그 문화를 제 친구들과 함께 즐기면서 그 느낌을 만끽하지를 못했지요. 되돌아 보면 그게 너무 아쉽기만 한데..
 
그래서 지금 게시판을 달구고 있는 K-pop논란이 무척이나 흥미롭네요. 그때의 기억이 자꾸 떠오르게 되고, 그 시절 내 경험에 잇대어 K-pop의 세계화라는 새로운 문화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또 지금 세대는 K-pop을 통해 어떤 느낌과 감수성을 전달받고 있는지.. 뭐 이런 것도 무척이나 궁금하고..

알다시피 90년대 유행했던 아이돌 그룹들은, 모두 다 국내용이었죠. 해외시장에서는 아웃 오브 안중이었고.. 지금과 같이 한류로 역수출 되는 상황을 그때는 아무도 꿈꿀 수가 없었죠. 대중문화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서양이었고, 우리는 변방에서 그 문화를 (일본을 경유한 채) 카피해와 우리식 대중문화로 가꾸어 가고 있었고, 90년대 내도록 아이돌 그룹이 만연한 것은 다 그 연장선 상의 새로운 문화현상이었죠. 하지만 청소년들의 자유 열정 일탈 등의 감수성에만 지나치게 기대어, 그것을 자극하고 증폭하는 식의 아마추어리즘이 꽤 강하게 느껴졌었죠. 그래서 밀레니엄 즈음이었나? 반짝 한류 붐이 일면서 몇몇 스타가 드라마 때문에 유명해지기는 했는데, 그때 함께 건너간 K-pop은 해외시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받고 말았죠. 그후로 지금까지 K-pop이 한류붐을 이끄는 선봉에 선 적은 단한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근데 요즘 K-pop은 느낌이 또 다르더군요. 그 아마츄어 냄새가 지워진, 뭔가 딱딱 이가 맞는 기계적으로 정형화된 틀속에서 보다 세련되고 완벽하게 새로움을 전해주는 느낌이랄까..게다가 한결같이 이쁘고 멋있는 면상에 황금비율 쩌는 몸매를 가진 남녀들이 그 모든 춤과 안무 노랫말에 환상을 덧입히고 있으니 그 새로움의 느낌이 한층 배가 되는 거겠죠. 그러니 K-pop이 흥하게 된 거겠고.. 

사실 대중들은 언제나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을 탈피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죠. 근데 K-pop이 노래와 춤 멋있는 아이돌을 내세워 가장 세련되고 흡족한 방식으로 대중들의 그 욕구를 채워주고 있으니, K-pop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 까지 통하게 된 거고, 자연히 K-pop의 위상이 지금처럼 높아진 거겠죠..그게 반짝하고 말지 오래갈 지는, 해외시장의 수요자들이 K-pop의 진출을 얼마나 큰 신선함으로 받아들이게 될지, 그리고 기획사 측에서 그 열기를 계속해서 이어갈 준비된 전략을 갖고 있는지에 달린 걸텐데, 우선 호응을 일으키는 일에는 크게 성공한 것 같으니, 이후의 성공 가능성도 크게 점쳐보면서 앞으로의 상황을 추근히 지켜봐야 할 듯..

그나저나 저는, 그럼에도 여전히 이 K-pop의 신조류가 시큰둥할 뿐인데..ㅋㅋ

그래서 무척이나 궁금해 지네요. 대체 그 새로움의 느낌이 어느정도 강하게 어필해 오길래 그렇게 열광까지 하게 되는 걸까요? 그게 전율을 일으킬 정도로 좋게 느껴 지는 건가요?

또 그게 그렇게나 좋다면, 그 전율의 출발은 어디서 부터 오는 겁니까? 가수들의 이쁜 얼굴 잘빠진 몸매에서 비롯되는 즉물적인 느낌에서 오는 겁니까? 아님 그것이 촉매가 되어 그 노래가 영혼을 파고드는 반짝하는 순간이 있어서 그렇게 까지 열광하는 겁니까? 그것도 아니면 걍 다같이 즐기기 좋으니까..라는 가벼운 이유로 좋아하는데 막 그 분위기에 전염이 되서 과도하게 좋아하는 "척"들을 하는 것 뿐입니까?ㅋㅋ

ㄴ 솔직히 이게 진짜 궁금함..ㅋㅋㅋㅋㅋ

우리 아크로에는 나이가 적잖이 드신 분들이 많고, K-pop논의에 한마디씩 하신 분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꽤나 많으실 것 같은데..

대체 K-pop 아이돌 이름을 줄줄히 다 꿰고 있고 심지어 그것을 보고 열광씩이나 하신다고 하니, 아마 좀 더 아랫축의 나이대에 있다고 생각되는 제가 그 감수성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이렇게 묻게 되네요..

그게 정말..그렇게나 좋으신가요?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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