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님이 올려주신 글 잘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글쎄요. 제가 목수정씨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그 글 또한 그리 공감되지 않는군요.

우선 목수정씨 글에서 한국 영화가 K-Pop과 달리 한국 문화로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내세운 근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칸 영화제와 인연있고 2)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에 연대해왔고 3) 영화전문인들의 눈으로 선별된 최상의 작품들이며 그 결과 4) 한국영화들은 잘 알지 못하는 한국, 그러나 묵직한 문화적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라 합니다. 

반면 K-Pop은 1)  K팝(pop)은 일반은 물론 음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2) 아직까진 극소수의 청소년층에 국한한 그러나 매우 열정적인 열기로 짐작할 수밖에 없으며 3) 주류 언론도 한국영화가 주류 영화계에서 비중 있는 작품으로 자리를 차지한다면, K팝은 흥미로운 현상으로 다루고 있으며 4) 일본 문화보다도 훨씬 더 ‘미국적’이라 이야기합니다.  

일정 동의합니다. 솔직히 저 또한 40대 꼰대 답게 K-pop은 거의 알지 못하는 반면(아이유가 여고생이란 사실을 얼마전 알았을 정도입니다. 같이 일하던 젊은 친구들이 거의 기절하더군요.) 목수정씨가 좋아할 것 같은 박찬욱이나 봉준호, 홍상수 등의 영화는 거의 다 보았으니 공감하는 부분 없지 않습니다. 특히 아이돌 밴드의 육성 과정에 대해선 언제고 한번 사회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목수정씨가 그 부분만을 지목해서 비판했다면 저 또한 전적으로 동의했겠죠. 

그렇지만 이 글로만 본다면 지나치게 엘리트적이고 서구 중심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군요. 한국 영화는 '한국 문화'로 인정할 수 있는 이유가 엘리트 층의 선호 외에 설명이 없는 반면 K-pop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유럽의 청소년 층에 전달된 '흥미로운 현상'이고 '열광의 제조처' 일 지언정 '한국 문화'를 전달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라는 그녀의 결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한국 문화'라는 부분부터 그렇습니다. 무엇이 '한국 문화'일까요? 아리랑과 국악, 판소리는 한국 문화이고 서구에서 전해진 악기와 화성, 장르를 따르고 있는 YB는 서구 문화일까요? 한국어로 표현된 문화는 한국 문화일까요? 그 이전에 '문화'는 무엇일까요? 문화는 '상업성'이나 '자본주의'를 치유하는 긍정적 가치일까요?

전 모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우리 음식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김치'부터 그렇습니다. 만약 조선 시대 이전 한국인들에게 김치는 절대로 자신들의 음식이 아니었을 겁니다. 구한말 이전, 아니 60년대까지 한국인들도 그때 만약 박찬욱 감독 영화를 본다면 역시 '독특하고 뛰어난 영화'라 받아들일 순 있어도 '한국 문화 자체'로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더 심하게 말해볼까요? (제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한국 문화의 어떤 정수를 담고 있는지? 어찌보면 누벨 바그 이래 프랑스 영화계가 열광했던 모더니즘과 미국 B급 문화의 아시아 버젼이라 폄하할 수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모 감독의 그로테스크한 세계는 오히려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이 아닌지? ('역시 아시아는 아직도 저런 엽기적 세계가 예술이 될 수 있어. 우리 유럽에서 저렇게 찍었다간 당장 여성 학대니 뭐니해서 난리 날 텐데") 제가 이렇게 생각한다는게 아니라 어떤게 '한국' 문화인지, 혹은 한국 '문화'인지 기준을 잡는게 목수정씨처럼 2분법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냉소적이지만 조금 정밀하게 말해 박찬욱이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한국이 미국 일변도를 벗어나 유럽을 위시한 다양한 예술 조류를 흡수하여 자기화할 수 있는 역량을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그들이 프랑스 영화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건 결과일 뿐입니다. 이야기를 좀 더 진행해 볼까요? 이른바 프랑스 예술 영화계의 가장 큰 아이콘이라할 장 뤽 고다르는 50년대 프랑스 문화 엘리트들 사이에서 저급으로 취급되던 헐리웃의 장르 영화, 그 중에서도 대중의 저속한 취미에 부합한다고 봤던 미국의 슬랩스틱 코미디, 뮤지컬, 느와르, 갱스터 장르 등의 콘벤션을 새롭게 해석하여 모더니즘의 틀 속에 소화하는 놀라운 재능을 보였습니다. 즉, 프랑스 영화계가 나름 군림할 수 있었던 진짜 역량은 '헐리웃은 저급, 저항 연대는 진정한 문화'라는 이분법이 아니라(오히려 이러한 이분법은 유럽 영화계가 처한 위기를 보여줄 따름입니다) 기왕의 '꼰대들' 사고를 뒤집는 자유로움에 있지 않을까요? 제가 일전에 썼듯 브레히트가 지금 살아있다면 '가사와 멜로디, 퍼포먼스의 통일성을 추구하는' 임재범이 아니라 '분열되고 찰나적이며 엔터테인용이란 장르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걸그룹 노래에 더 열광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이든 '문화'든 그 개념에 어떤 형이상학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그냥 '지금 이순간 한국인들이 드러내는 삶의 양태, 혹은 태도'라 한다면 너무나 당연히 한국의 고급 예술 영화는 물론 K-Pop도 한국 문화입니다. 그것도 나름 치열한 어떤 징후를 드러내는 한국 문화입니다.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죠. 가령 문화 엘리트 주의자들이 나름 '문화'라 인정하는 락이나 인디와 아이돌 그룹을 비교해봅시다. 한국 락은 유난히 '발라드'를 좋아한다는 특징을 제외하고 해외의 락 밴드와 비교해서 세계적으로 '더 새롭다'거나 '더 정교하다'거나 '더 수준있다'고 말할 수 있는게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건 제가 한국의 락커들을 폄하하려는게 아닙니다. 분명 그들은 그들만의 개성과 가치를 갖고 있지만 주어진 조건상 국제적으론 다른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디는 또 어떨까요? 안타깝지만 해외에서 유행한 인디 스타일이 몇년 뒤(요즘은 점점 주기가 짧아져서 빠르면 몇달 뒤) 홍대 앞에 등장하는 경우는 너무나 흔합니다. 반면 K-Pop은?

매우 다릅니다. 싸구려든 저급이든 전 세계적으로 상당히 독특할 뿐더러 퍼포먼스나 음악 수준에서 일정한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 원조라 할 일본의 아이돌 밴드와도 다릅니다. 그건 '문화'가 아니라 '상품'이라 반박할 지 모르겠지만 그건 자본주의 시대, 아니 대중 문화 시대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주장입니다.한국의 락이나 인디보다 K-pop의 수준이 높다는 뜻이 아니라 (다시 말하지만 제 취향은 오히려 전자라니까요!) 전자는 한국 문화고 후자는 그냥 '청소년 사이의 현상'이라고 치부하는 이분법으론 '문화'는 물론이거니와 '현상'도 설명할 수 없다는 이야깁니다.

그래서, 사실 전에 나가수에 대해 쓴 저의 글도 이런 점에서 수정되야합니다. 전 이전까지 보아의 '넘버 1'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소라의 리메이크를 듣고 난 뒤에야 집중해서 들었죠. 처음엔 둘의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 놀랐습니다. 두번째는 뜻밖에도 보아의 '넘버 1'도 대단한 곡이라서 놀랐습니다. 빠른 댄스 리듬에 가사가 갖고 있는 어떤 슬픔을 교묘히 전달하더군요. 뭐랄까, 리듬과 멜로디, 가사의 언발란스함을 나름 소화하면서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더군요. 같이 듣고 있던 아내에게 '이것도 명곡이잖아' 했다가 잔뜩 한소리 들었습니다. 역시 꼰대, 자신의 감각이 후진 줄도 모르는 헛똑똑이... ㅠㅠ.

그리고 다시 이소라에게 감탄했지요. 저같은 장삼이사가 미처 모르거나 무시했던 댄스곡의 어떤 가치를 찾아내 극한까지 밀어붙인 이소라는 정말 예술가입니다. 알고보면 시장에서 잘 팔리는 레퍼토리를 무한 반복하고 있는 일부 '고급' 예술가들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에서 말입니다. 이소라의 '주먹이 운다'를 보며 다시 전율을 느꼈습니다. 전 랩도 거의 듣지 않는 꼰대지만 과연 내가 이소라였다면 저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새삼 자신을 반성하게 되더군요. 난 왜 이소라 반만큼도 치열하지 못할까 하면서 말이죠. 예. 그런 점에서 저같은 장삼이사는 물론이거니와 소위 평론가나 학자들은 '창작자'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문화' '상품' '저급' '고급' 딱지 붙이기 전에 말입니다. 결국 보아의 '넘버1'을 듣지 않았고 알지 못했던 저보다 -너무나 당연히- 이소라는 물론 열광했던 10대들이 더 예민한 촉수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요!

ps - 그럼에도 전 '김범수'가 제일 맘에 들더군요. 그는 정말 '엔터테이너로서의 가수'라는 본질에 가장 충실한 예술가입니다. 이소라는 '창작자'로서의 태도에 전율이 오고. 여러분은 누가 제일 좋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