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등록금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로 '비정치적인 정치적'인 이슈로 다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광우병 촛불시위 초반에 등장했던 중고생 촛불소녀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대학생들이 이번에는 현재 대학생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등록금'을 화두로 삼아 논란의 한 복판에 섰습니다.

등록금 문제는 최신 이슈는 아닙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할 때에도 이걸 가지고 운동권 아이들이 투쟁중이었죠. 운동권 총학이 들어서든 비운동권 총학이 들어서든 항상 등록금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등록금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였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저를 비롯한 상당수의 학생들이 일단 총학 투표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투표를 할 때에도 등록금 문제에 대한 총학 후보들의 공약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비운동권에도 투표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학내복지문제(등록금을 제외한)에 있어서 비운동권이 더 전문적이고 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을 정도였죠. 이처럼 등록금 문제는 여러 학내신문, 운동권,비운동권 홍보문구, 대자보 등만 보면 대학 내 최대 이슈였을지는 몰라도, '그들'만의 이슈였지 대부분 대학생들의 이슈는 아니었습니다. 등록금 투쟁하자고 전학대회하자는 말은 많았지만 제 기억으로는 제대로 성사된 적이 없을 정도니까요.

물론, 등록금이 자신의 삶에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학생들은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문제는 철저하게 '개인화'된 문제였습니다. 일단 제 주변을 보면, 등록금을 못낼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도 가끔 보이긴 했는데, 대부분 현행 학자금 대출제도를 이용해서 별 문제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조금만 노력해서 알아보면 외부 장학금도 비교적 수월하게 받을 수 있어서, 제 친한 친구 중 하나는 학점이 그리 높지 않은데도 모 출판사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있습니다(1년치). 가끔 뉴스에, 등록금 없어서 자살했다, 등록금 없어서 10년 째 대학 다니는 중, 빚이 몇천만원 남는 건 없음, 이런 식의 극단적?인 소식이 나오던데, 솔직히 남의 일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겨레, 경향과 같은 진보언론에서 마치 등록금 문제가 대학생들의 현재 최대의 고민인양 간간히 다루더군요. 등록금이 싸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비싸다고 생각은 하지만, 진보언론의 생각처럼 이 문제가 대부분의 대학생들의 현실적인 고민, 최우선 순위로 해결되어야 할 최대 현안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는데 자꾸 등록금을 물고 늘어지는 게 아쉬웠습니다.

특히 등록금을 많이 받으면서 '대학 교육의 질'은 높이지 않고 '외형'에만 투자한다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공감이 안갔습니다. 특히 그런 기사를 다루면서 제가 다니는 학교를 예로 들며, 기업 후원금 받아서 그 기업 명을 건물 이름에 붙이는 것을 조롱하고, 과거의 영광스러운 운동권 역사는 어디가고 신자유주의에 포획되었느냐는 일갈에 저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은(일단 그런 기사를 대부분 읽지도 않지만) 코웃음을 쳤습니다. 호텔 급 시설에서 수업을 듣고, 학생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많아지고, 편의시설도 다양해졌고...장점이 한 두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교육의 질이 떨어졌느냐? 다른 대학의 교육의 질이 어떤지는 몰라도, 별로 질적 하락이 있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진보언론의 걱정처럼 대학이 신자유주의에 포획되었을 수는 있을 것 같더군요. 기업 명이 떡 하니 박힌 건물, CEO 등 여러 후원자들 이름이 박힌 라운지와 강의실, 호텔로비에 버금가는 삐까뻔쩍한 시설 등을 보면 돈의 위력, 자본주의의 위력, 신자유주의(?)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인문대, 사범대처럼 돈 안되는 학과 건물은 낙후되었는데, 법대, 경영대 같은 돈되는 학과 건물만 좋아지니까 누구 말대로 정말 '신자유주의적'이죠.


그런데 요상하게 올해 유난히 등록금을 가지고 말이 많습니다. 4.27 재보선 패배 이후 한나라당이 '반값 등록금'하겠다고 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등록금 문제가 터져나왔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너도나도 등록금 이야기입니다. 중앙일보는 <등록금 내릴 수 있다> 시리즈를 연재 중이죠. 대학 총학생회에서 수년 간 주장해왔던 '적립금 문제'도 건드는 아주 대학생 친화적인 주장을 한 이주호 교과부 장관의 인터뷰도 실었고, 어제(9일)는 대학 교수들이 열라 쉬면서 돈 받아 먹는다고 교수들도 건드립니다(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701/5610701.html?ctg=12).


오늘이 6월 10일이니까 아마 몇몇 대학들이 주도한 등록금 투쟁을 위한 동맹휴업을 시도할 겁니다. 6.10항쟁도 있고 하니 겸사겸사 항상 하던 투쟁 좀 크게 하려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진보, 보수언론 모두에게 관심을 받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등록금 문제를 다루어주니까 아주 신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학생 입장에서 지금 학내에서 저런 시위 주도하는 학생들을 제외하고 저 문제를 자기 문제라고 깊게 생각해서 뭘 해보려는 학생은 정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금 기말고사 1주일 남았서 다들 레포트 작성, 시험 공부에 바빠하고 있을 뿐이죠.

대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생존과 세속적인 성공'입니다. 적립금이 몇천억 대, 교수가 돈을 너무 많이 가져가, 4대강 안하면 무상교육, 이런 거 다 쓸데 없는 소리입니다. 고교 졸업생의 80%가 진학하는 대학은, 실질적으로 고등학교의 연장입니다. 게다가 완벽하게 서열화된 상태에서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대학의 대학생들은 또 각자 자기 위치에서 나름대로 생존과 성공을 위한 투쟁중입니다. 그리고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노력을 열심히 하면 진보언론이나 진보정당이 떠드는 것처럼 '노력해도 루저'가 되는 일은 별로 발생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부모가 잘나서 다른 거 신경 안쓰고 공부하고 스펙관리해서 편하게 생존에 성공하는 애들도 있지만, 부모가 도와주는 거 없지만 어쨌든 자기 위치에서 노력해서 장학금도 받고, 외부 장학금도 받고, 공부하고 스펙관리해서 생존에 성공하는 애들도 상당수입니다.


무슨 대학 교육의 본질, 미국대학모델, 유럽대학모델...이런 논의들은 정말 현재 대학생들의 고민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대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을 줄여준다면 고맙기는 합니다. 장학금을 실질적으로 대폭 확충한다든가, 반값 등록금이라든가...뭐든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대학생, 나아가 한국 대학, 교육, 사회 전반의 핵심적인 문제라고 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